바울서신

재림 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1. 4. 18. 15:11

재림 신앙

고린도 전서 7:29- 31

 

1. 성경을 보는 관점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구약성경은 모세오경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가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시 했던 말씀은 모세 오경입니다. 그 다음이 선지자들의 글이고, 그 다음이 시가서입니다.

 

유대인들은 왜 성경을 이렇게 구분했을까요?

유대인들은 모세 오경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직접 주신 말씀으로 생각했습니다. 선지자의 글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아 전한 말씀으로 생각했습니다. 시가 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쓴 글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등급을 서로 다르게 매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모두를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구약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던 증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하신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27절입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과 시가 서를 하나님이 주신 동일한 말씀으로 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속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44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이 말씀도 보면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은 신약성경에서도 같습니다.

디모데후서 3:16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성경은 신구약성경을 통칭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신구약성경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2. 성경의 중심적인 내용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이 중심적으로 증거 해 주고 있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이 중심적으로 증거 해 주고 있는 내용은 예수님이시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5:39절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구약성경을 말합니다)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구약성경은 예수님을 증거 하되 장차 오실 예수님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신약의 복음서는 예수님을 증거 하되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서 이후의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 하되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안에는 다양한 사건들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중심적으로 전해주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면 다시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 중심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내용이 예수님이시라면, 성경은 예수님의 무엇을 중점적으로 증거 해 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아주 명확합니다.

성경이 중점적으로 증거 해 주고 있는 내용은, 예수님의 초림과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우리에게 초림 때에 중요한 것은, 우리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재림 때에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라를 주시려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초림2,000년 전에 성취되었습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육신하심으로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는 우리대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심으로 우리 구원을 완성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전해지고 있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의 재림뿐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재림에 대한 기록이 성경 속에 약 2,500회나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경 전체 절수가 31,102절이라고 볼 때, 성경의 약 열 한(11)절마다 한 번씩 예수님의 재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왜 이렇게 재림을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의 재림이 성경이 증거 하고 있는 가장 중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구약의 족장들이 믿었던 것도 바로 재림신앙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16절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과 그 후손인 족장들이 이 세상을 자기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오게 될 하늘나라를 그들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구약의 족장들이 가지고 살았던 신앙이 바로 재림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2,000년 동안 고대하고 살았던 신앙도 재림신앙이었습니다.

 

3. 메시야의 오심

 

우리가 구약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메시야 사상을 연구해보면, 메시야는 두 번 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오실 때에는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고난 받는 메시야로 오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오실 때에는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왕으로 오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초림을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성경의 증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림신앙과 재림신앙을 함께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메시야의 초림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고, 재림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림의 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지도했던 랍비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랍비들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야는 왕으로 영광의 주로 이 세상에 오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죄악 된 세상은 멸하시고, 그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랍비들로부터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림의 주로 오신 예수님,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고난 받고 죽으시는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었고 또 영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일부 사람들 즉 동방박사들, 목자들, 시므온과 안나, 그리고 예루살렘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만 아기 예수님을 보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왕 같은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고, 세상 죄를 대속해 주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는 고난 받는 메시야로 오셨다고 증거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아주 일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지도자들은 이렇게 잘못된 가르침을 백성들에게 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사단이 그렇게 역사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단은 랍비들의 눈을 가리어서 예수님의 초림 시에 재림의 주를 보고 기다리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선으로 바꾸사 이방인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아멘.

여기에 대해서는 다니엘서 9, 로마서 11장에서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살펴 볼 시간이 없습니다. 다음 기회에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재림을 잊고 살아가는 신약의 교회들

 

사단은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초림을 믿지 못하게 하였듯이, 지금은 신약의 교회가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못하도록 역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단은 교회로 하여금 초림의 주에게 집중하게 하고, 재림을 주를 기다리지 않도록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는 사단의 고차원적인 전술입니다.

 

그러면 사단은 어떻게 성도들이 재림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역사하였습니까?

첫째, 사단은 재림에 대해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재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 잘못된 사람이라는 이상한 풍토를 조성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재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해 놓았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잘못된 주장을 해 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이장림과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의 1992년 재림설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후에 재림에 대해 말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풍토를 조성해 놓은 것입니다. 재림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광신자 집단으로 보는 풍토를 조성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성도들이 재림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해 놓았습니다.

 

또 사단은 어떻게 성도들이 재림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역사하였습니까?

둘째, 교회가 증거 하는 편향된 메시지를 통해서 재림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해왔습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은혜와 함께, 은혜가 성취 될 재림을 함께 강조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을 보면 십자가 은혜는 강조하나 재림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습니다. 요즘 교회의 중심 메시지는 예수를 믿음으로 받게 될 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거룩한 신부를 준비시키는 메시지는 듣기 쉽지 않습니다. 교회의 편향된 메시지가 성도들로 하여금 재림에 관심을 갖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또 사단은 어떻게 성도들이 재림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역사하였습니까?

셋째, 21세기는 문명이 아주 발달하여서 아주 편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돈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의 생활도 천국생활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습니다. 돈으로 누리며 사는 편안함이 천국을 앙망하는 성도들의 신앙을 무디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 편안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잠시 잠깐 살다가 가는 이 세상의 편안함 때문에 천국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려고, 그 사랑하시는 성도들의 삶 속에 때로는 고난도 주시고 어려움도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또 사단은 어떻게 성도들이 재림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역사하였습니까?

넷째, 우리 신앙의 기초는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성도들이 많지 않습니다. 사단이 이런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두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성도들은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 마음속으로는 남몰래 하나님 아닌 이 세상 성공을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하고, 부를 추구하고 살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경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실패하고 넘어졌던 것이 바로 이 양다리 걸치는 신앙이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신앙에 대한 성경의 증거는 확고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바른 신앙에 이를 수 없다.’고 합니다.

 

4. 회복해야 할 재림 신앙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과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얼마나 앙망하며 살고 있습니까?

 

구원을 앙망하는 조종사

 

군인들은 적군과 싸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거의 모든 군인들은 모두 다 자기 나라에서 적군과 싸웁니다. 그런데 공군 조종사는 다릅니다. 비행기를 타고 적국에 가서 싸우는 사람들이 조종사입니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항상 적이 쏘는 미사일이나 대공포를 맞고 격추될 위험성을 안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조종사들은 왜 적진에서 대공포와 미사일을 맞고 추락할 위험성을 알면서도 적진 깊숙이 날아가서 전투를 수행합니까? 그 이유는 적진 상공에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혹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불시착을 하게 되면 국가는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구해 준다는 불문율 같은 약속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약속이 없으면 조종사들은, 비행기에 무슨 일이 생겨도 낙하산을 타고 적진에 낙하하지 못할 것입니다. 적진에 떨어진 자신을 구출해 줄 사람도 없는데 적진 한 가운데에 내렸다가, 붙잡혀서, 각종 고문을 당하다가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비행기와 함께 죽는 것이 더 나아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 적국에 불시착한 한 명의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군대는 특공대를 파송하여서 많은 희생을 치루고 그 조종사 한 사람을 구해냅니다. 한 명의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서 수 십 명이 특공대가 죽는 그런 작전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국가는 그렇게 합니까? 그 이유는 국가가 조종사들을 적진으로 보낼 때 당신이 만약 작전을 수행하다가 적진에 고립되게 되면 국가는 반드시 구해 줄 것이라고 한 약속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자신을 구해 줄 특공대가 반드시 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추락하는 비행기를 버리고 적진에 낙하하는 것입니다.

 

재림을 앙망하는 성도

 

제가 왜 이런 비유를 듭니까? 성도들의 삶이 마치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천년만년 하나님의 복을 누리면서 살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지금 이 세상의 신은 원수 마귀입니다. 우리는 마치 원수 마귀의 나라 가운데 낙하하여 있는 조종사와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주실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우리 구원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내가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내가 두 번째 이 땅에 오는 바로 그 재림의 날이 너희 구원을 완성하는 날이 될 것이다.’ 라고 약속하시면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목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 땅에서의 성공도 아닙니다. 이 땅에서 얻게 되는 부도, 명예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과 약속하신 그 나라입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재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소망을 갖고 기다리라고 약 2500회나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 내가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라고 여러 번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시자 제자들이 예수님이 승천하신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때 천사들도 이런 제자들을 보고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증거 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신 재림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금년에 오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는 징조들을 보면 금년에는 오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징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금년에도 안 오시고, 내년에도 안 오시고, 그래서 우리가 생애를 다 마치고 죽을 때까지 안 오시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개인에게는 내가 생명을 다 살고 죽는 그날이 바로 재림의 날과 같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되면 우리가 천국가고 지옥 가는 것이 결정되듯이, 우리가 죽는 그 순간에 우리의 천국 가는 것과 지옥 가는 것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다른 기회는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종말은 두 가지 모습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내 개인의 죽음으로 오는 종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오는 이 세상의 종말입니다. 우리 개개인에게는 이 두 종말이 같은 종말입니다. 아멘.

 

5. 재림이 임박했다는 증거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재림은 임박하였다는 구체적인 징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임박한 재림의 날을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징조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마태복음 24:7-8절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첫 번째 징조가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같은 나라 안에서의 전쟁입니다. 지금 버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이런 분쟁입니다. 이런 분쟁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올 징조는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바로 이런 전쟁입니다.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패권 전쟁이 바로 이런 전쟁입니다.

 

그 다음에 올 징조는 곳곳에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기근은 기후와 아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다고 하는 경고를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는 이상기후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곳에서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난리이고, 어떤 곳에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난리이고, 어떤 곳에서는 가뭄이 들어서 난리이고, 어떤 곳에서는 전혀 비가 오지 않아서 난리이지 않습니까?

 

이상기후는 지구 곡물의 수확량을 급격히 줄어들게 할 것입니다.

이상 기후가 오면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힘겨워지는 것입니다. 이상기후로 인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힘들어 지는 것 이것이 종말의 중요한 징조인 것입니다.

 

그 다음 징조가 바로 곳곳에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지진이 많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런 지진이 더 많이 더 크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종말에 이 세상은 지진으로 멸망을 하게 될 것인데, 지구의 판들이 갈라지고 그 갈라진 판들 사이로 올라온 용암으로 인해 지구는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심각한 징조들을 보여주십니까?

그것은 종말에 대해 아무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라도, 이런 현상들을 보고 종말이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이 외에도 수많은 징조들이 성경에 나와 있고 또 있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적그리스도가 주도하는 세계 단일정부가 들어설 것입니다. 이 세계정부는 정치 종교 경제를 한 순에 거머쥔 채, 민족과 나라의 구분을 없앤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세계정부가 될 것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요즘 기승을 부리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의 결실로 종교간 화합과 종교일치운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타락한 종교가 바로 요한 계시록이 말씀하고 있는 음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음녀 교회는 적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세주로 사람들이 추앙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인류종말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는 경제적 파탄이 올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경제질서가 붕괴되고 있는 조짐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위기의 때 새로운 경제 질서를 도입하고 재편하게 되는데 적그리스도가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그를 인류의 구세주라고 추앙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종말에 앞서 핵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전쟁으로 인류 1/3이 죽게 된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징조들이 계속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6. 우리는 이런 종말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정말 종말이 가까이 와 있다면 우리는 이 종말의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말세를 사는 우리가 가져야 삶의 자세에 대해 고린도전서 7:29-3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바울은 아내 있는 자는 마치 아내 없는 자 같이 하라고 합니다.

종말 시대 아내가 있고 없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아내가 있는 사람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아내가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염려해 주어야 할 아내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말세를 사는 성도들은 아내가 없는 자처럼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할까 라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삶 속에 아무리 슬픈 일이 있고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그것에 너무 마음 두지 말라.’라고 합니다. 왜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불타고 없어지고 사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 때문에 울고 웃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세상 물건을 파는 자들이나 세상 물건을 사서 쓰는 사람들도, 이것을 내가 필요해서 팔고 또 필요해서 사서 쓰지만 내가 이것을 다 쓰지 못하여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마음으로 물건을 팔고 또 물건을 사서 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약 10년 후에 주님이 오신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무엇을 사든지 그것은 10년 후면 다 불타고 없어질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게 되면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서 쓰지 않게 될 것입니다. 꼭 필요한 집이 아니면 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종말시대를 내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의 자세를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누가복음 12:36절입니다.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12절에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도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25장에서 그 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기다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세상은 멸망당하게 되는데, 왜 우리는 세상이 멸망당하는 그 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기다려야 합니까?

 

그 이유는 그 날이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심판과 파멸과 멸망의 날이지만, 예수를 주로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우리 그렇게 소원하고 고대해 오던 우리 구원이 완성되고 결정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렇게 기다려오던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 확정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주님 이제 오시는군요.’ ‘빨리 와 주세요.’ 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굳게 서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두려워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개개인들은 각자 자신의 믿음과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경이 중심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내용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경의 주된 증거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초림은 2,000년 전에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의 재림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21년도는 어떤 시대입니까?

지금은 마라톤 경주에 비유하면 이제 긴 달리기를 끝내고 마지막 결승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운동장 안으로 들어서는 것과 같습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결승점을 골인하면 모든 신앙의 경기는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까?

말씀이 증거 해 주고 있는 재림의 징조를 통해, 주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밝히 바라보고, 주의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설교를 전하고 듣는 우리 모두는, 이제 잠자는 신앙에서 깨어나서,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들을, 우리 모두 다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참으로 복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