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을 물 위에 던져라.
제목: 떡을 물 위에 던져라. 본문(전 11:1-6절),
이 세상 지구상에는 많은 큰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종 큰 홍수가 나면 이 강들은 흘러넘치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큰 홍수가 나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고대인들은 생각했습니다. 애굽 나라에는 나일 강이라는 큰 강이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나일 강이 범람하면 애굽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에 나가 강물에 씨를 뿌렸다고 합니다. 그리하면 얼마 후에 강물에 떠내려간 씨앗이 홍수가 몰고 내려온 주변의 옥토에 떨어져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바로 이 같은 고대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농경풍습을 염두에 두고 주어진 말씀입니다. 물위에 떡(식물.씨앗)을 던지는 것은 지금 당장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것은 풍성한 열매가 되어 던진 자에게 도로 돌아옵니다. 신앙생활의 원리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그리고 어떠한 태도로 물위에 던져야 하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떡을 물 위에 던져 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받기로 하겠습니다.
1. 좋은 것을 던져야 합니다.(1절)
“너는 네 떡을 물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농부가 씨를 뿌릴진대, 나쁜 씨앗을 뿌리면 그 씨가 아무리 좋은 옥토에 떨어진다 해도 결실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출의 첫 이삭을 드렸듯이(출 23:19)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드려야합니다. 하루의 첫 시간(시 119:147)을 드리고 인생의 가장아름답고 귀중한 부분(전12:1)을 드려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쓰고 남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든지, 소모하고 남은 물질을 그분께 드린다면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는 마치 달걀의 노른자위를 빼고 흰자위만을 드리는 것과 진배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이와 다름이 없어야합니다. 즉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되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마 19:19) 그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어야 마땅합니다. 혀와 입술로만이 아니라 참된 행실과 실천으로서 하여야합니다(요일 3:18)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구제, 봉사, 헌신 등을 이웃에게 보여 줄 때, 그와 같은 선행은 훗날 많은 열매가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마 13:23절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대가를 바라지 말고 던져야합니다(4절)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강에 나가 씨를 뿌리는 사람이 지금 당장의 결실을 바란다면 결코 그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먼 장래를 바라보고, 심지어는 결과를 기대하지도 않은 채로 떡(씨)을 강물에 던집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이나 이웃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이와 동일해야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 경배, 헌물 등이 어떤 대가를 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곤란합니다. 단지 그분의 용서와 구원에 대한 감사로서 무조건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구제와 자원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루어져야합니다.(마 10:8).
눈앞에 보이는 이기적 목적에 구애됨이 없이 과감히 선한사업을 도모하여야 합니다.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 6:3)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정 우리의 행동 지침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어떤 것을 행할 때 적당한 때나 좋은 시기만을 기다리면서 우유부단하게 행하지 말고 신념과 용기를 갖고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을 수행할 때 자포자기 하지 말고 근면과 성실한 마음으로 꾸준히 행할 것을 암시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 10:8절 말씀에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화 뱅크) 강냉이 다섯 알과 금화 다섯 개
한 임금이 대궐을 나와 신하들과 함께 마을을 시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거리에서 자선을 구궐하는 한 거지가 임금에게 손을 내밀고 구궐하였습니다. 임금은 거지를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저들은 구궐할 줄밖에 모르는가? 평생 구궐만 하고 살 저 불쌍한 인생이여’ 임금은 그 거지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거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너도 나에게 무엇인가를 다오. 그러면 나도 너에게 좋은 것을 주겠다.
임금은 거지의 받으려는 생각에서 주려는 생각으로 바꾸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생 남에게 무엇을 주어본 것이 없었던 인색한 거지는 임금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거지입니다. 저 같은 거지가 남에게 줄만한 것을 가지고 있을 리 있겠습니까?” 그러자 임금은 호통을 쳤습니다. “이놈 남에게 줄 것이 없다고? 그러면 네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이냐?” 거지의 주머니에는 강냉이 한 홉이 들어 있었습니다. 임금의 호통을 들은 거지는 특유의 웃음을 띠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 말인가요?
이건 옆집에서 얻은 보잘 것 없는 강냉인 뎁죠? 이걸 달란 말인가요? “그래 그거라도 좀 다오, 네가 나에게 무엇을 주어야 나도 너에게 무엇을 줄게 아니야?” 그러자 거지는 아깝다는 표정으로 주머니 속에서 강냉이 다섯 알을 꺼내어 왕에게 내밀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내 원 참 살다보니 별일도 다 있네, 이따위 강냉이를 왜 달라 시는 지요? 이렇게 혼자 말처럼 중얼거리는 거지에게서 강냉이 다섯 알을 받은 왕은 웃으면서 신하에게 일렀습니다.
여봐라. 금주머니를 열고 그 속에서 금화 다섯 개만 꺼내어 거지에게 주어라, 임금은 거지에게 말했습니다. 이 바보 같은 놈아! 너는 평생 거지밖에는 못할 놈이구나, 무릇 남에게 주어야 자기도 받을 수 있거늘 그렇게 인색해서야 평생 거지밖에 더 하겠느냐? 임금이 그곳을 떠나자 거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탄식하였습니다. “아이 구! 내가 강냉이를 주머니 채 드렸다면 그 금 주머니는 내 것이 되었을 텐데” 하면서 그 거지는 평생 거리에 앉아 구걸하는 생활을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3. 항상 던져야 합니다(6절).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씨를 뿌리는 농부는 항상 씨를 뿌려야합니다. 바람과 구름만 탓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씨를 뿌려야할 시기에 반드시 씨를 뿌리고 거두어야할 시기에 거둡니다.(4절) 그리고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작물을 가꿉니다(6절) 우리의 신앙 여정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환경과 시간을 핑계 삼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견고하고 경건한 자세를 끝까지 견지해야합니다. 다급할 때 구원을 요청하고, 성실하고 경건한 자세를 끝까지 견지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급할 때 구원을 요청하고, 괴로울 때만 나의 신세를 토로하고 그에 대한 응답이 주어지면 기도의 문을 닫아버리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앙의 경주를 하되 푯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전진하며(빌 3:14)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눅 9:62)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타인을 향한 우리의 태도도 역시 이 같은 정성이 요구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라 하셨습니다(마 18:22).
그들에게 동일한 성실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구제와 선행이 어느 한 순간에만 이루어지고 만다면 그것은 진정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대가가 돌아오든 말든 개의치 않고 처음과 동일하게 유지하는 자세야말로 주님의 칭찬을 듣기에 족할 것입니다.(510장)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타산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저 주는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던져야 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말고 던져야합니다. 항상 던져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은 남은 생애 동안 선한사업에 힘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4월 30일 (참빛교회) 주일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