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의 관리자
재물의 관리자
디모데전서 6:17-19
최초의 대서양 횡단
미국과 유럽 사이에는 대서양이라는 큰 바다가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대륙 사이에는 인적교류와 물적 교류가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이 단절된 두 대륙을 하나로 이어준 사람이 바로 콜럼버스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1492년)은 아주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미 국가 중에는 이 콜럼버스의 업적을 기리고 추앙하기 위하여, 국가의 이름을 콜롬비아라고 지은 나라도 있을 정도입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이 콜럼버스보다 약 500년 전에 바이킹들이 먼저 이 미주 대륙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시 바이킹들은 아이슬란드를 거쳐 캐나다 쪽으로 미주 대륙에 접근했었습니다. 그러나 바이킹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이 신대륙을 유럽인들에게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이 미주 대륙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 미지의 대륙을 발견하여 유럽인들에게 알려 준 사람이 바로 콜럼버스였습니다.
콜럼버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고, 이렇게 건너간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가 지금의 미국입니다.
당시 유럽인들이 배를 타고 미주 대륙으로 가려면 거리도 멀고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이후 비행기가 발명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로 빠른 시간에 대서양을 횡단하려고 시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만들어진 비행기 성능과 항공 기술로는 대서양 횡단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찰스 린드버그’입니다. 이 일로 린드버그는 미국 사람들과 유럽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사람들에게 영웅처럼 추앙받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연아’ 선수입니다. ‘김연아’ 선수는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등장한 세계 최정상급의 빙상선수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위기 속에 많이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해성같이 나타난 김연아 선수는 얼마나 큰 위로를 주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는지 모릅니다. 당시의 김연아 선수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인기 있는 빙상의 스타였습니다. 그래서 기업체들은 많은 돈을 주고서라도 ‘김연아’ 선수의 초상을 기업광고에 넣고자 했습니다.
당시 ‘린드버그’도 같았습니다.
‘린드버그’가 한번은 프랑스를 방문하였는데, 프랑스 담배회사 직원이 찾아와서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자기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는 모습을 담은 두 장의 사진만 찍게 해 주면 오만 달라를 주겠다는 제안을 해 왔습니다. 당시에 오만 달라는 엄청나게 큰돈이었습니다. 하지만 ‘린드버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그 담배회사의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이 린드버그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큰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포기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담배를 한 번 입에 물고 있고, 또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한 번 끼고 사진을 찍는다고, 그 신앙이 달라지기라도 하느냐?’라고 하며 비난했습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용기 있는 결단을 한 린드버그를 위해 모금을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그 모금한 액수를 정산해 보니 그 액수가 무려 10만 달러를 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 ‘린드버그’는 신앙을 위해 포기한 5만 달러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후원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물질입니다. 재물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물질을 대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에게는 물질을 취득하는 방법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정당한 방법으로 물질을 취득하여야지, 부당한 방법으로 물질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단계나, 보이스피싱 등 잘못된 방법으로 물질을 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까? 신앙을 가진 우리는 정당한 방법으로 물질을 취득해야 합니다.
또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그 얻은 물질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옛말에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쓰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물질을 버는 것보다 쓰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은 조금 바뀌어서 ‘정승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물질을 버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벌어들인 물질을 쓰는 방법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재물을 올바르게 취득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재물을 올바르게 취득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려고 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재물의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들에는 소유주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소유라면 그 소유주는 자신으로 되어 있겠지만, 만약 그 집을 전세나 월세를 주고 살고 있다면 그 소유주는 집을 빌려주고 세를 받고 있는 사람의 이름으로 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상가 2층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상가의 실제 사용자는 우리교회지만 그 소유주는 다른 사람입니다.
저희가 교회로 쓰고 있는 이 상가의 소유주는 교회 다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교회에 잘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가를 교회에 세놓을 때 옆에 있는 상가들보다 저렴하게 임대계약을 맺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임대계약을 맺은지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찾아오지도 않고, 한번도 월세를 올려 달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교회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요.
우리 현실을 보면 상가나 건물, 땅이나 나무들까지 모두 다 소유주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지적 소유권이라고 해서, 특허나, 특별한 아이템이나, 개인의 연구 업적이나, 악보 등등의 모든 것들까지 그 소유권도 인정을 해 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는 다 소유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주장합니까? 창세기 1: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대 상 29:12절 말씀을 보면 심지어 사람들의 부귀영화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권세와 능력과 재능과 스케일의 크기까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볼 때, 우리는 이 세상 만물의 소유주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누리며 살아가는 재물, 지식, 건강, 사회적인 지위 등등이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둘째, 나는 소유자가 아니고 관리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사람들이 소유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 만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의 참 소유주는 바로 세상 만물들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의 재물을 소유하고 있든지 그 소유하고 있는 재물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잠깐 맡아서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청지기 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한 청지기이고, 다른 하나는 악한 청지기입니다. 그러면 그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 6:16-19절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
선한 청지기는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그 소유한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고, 그 재물의 참 주인 되시며, 또 그 재물을 자신에게 맡겨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 재물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재물을 사용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선한 청지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악한 청지기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 사람들은 재물의 참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고, 그 소유한 재물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그 재물을 의지하고, 그 재물을 자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재물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재물이 많아지면 그 마음이 높아지고, 재물이 적어지면 그 마음이 비굴해 집니다. 이렇게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성경은 악한 청지기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생애는 유한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인생입니다. 내게 주어진 8-90 년의 삶을 다 살고 나면 너나 할 것이 없이 우리는 다 죽습니다. 사람들이 죽음 앞에 서게 되면 이제까지 의지하며 살아온 재물이 아무런 도와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음 앞에서는 그 많은 재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삶을 인도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한 헌신과 재물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들의 적은 헌신을 받으시고 언제나 넉넉하고 충족하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그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나는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 나는 재물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재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에 하나님이 맡겨주신 재물을 사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삶입니다.
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셋째,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재물을 낭비하지 말고 절제하면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재물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임을 알게 되면, 그 재물을 낭비하지 않고 사치하고 허비하지 않게 됩니다.
강남에 있는 모 교회의 장로님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오랫동안 교회에서 안내를 담당해 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주일예배를 드리려고 오는 성도들 약 80% 정도가 모피 옷을 입고 오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이 모피 옷을 입고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피 옷을 입은 모습이 좋아 보이니까? 나중에는 너도나도 모피 옷을 사서 입고 교회에 오더라는 것입니다. 그 입고 오는 모피 옷의 가격도 천차만별이어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하는 옷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가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은 5,000만원 짜리라고 자랑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부자라면 5,000만 원하는 모피 옷을 입을 수도 있겠지요. 그럴지라도 자랑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습니까? 교회에 옷 자랑 하려고 오는 것도 아니고, 패션쇼 하려고 온 것도 아닌데, 꼭 나는 비싼 모피 옷을 입고 있다고 자랑해서야 되겠느냐?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습니다.
제가 신학 공부를 할 때 같은 그룹에 속해 있던 한 전도사님은 그 부모가 남대문에서 악세사리 전문점을 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때마침 중국과 우리나라가 수교하여(1992년) 중국 시장이 열리게 되자 이 전도사님은 중국으로 건너가서 악세사리 판매망을 개설하면서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신학생들은 대부분 가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이 전도사님은 저희가 모임을 가질 때마다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부담 없이 감사함으로 같이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돈 많음을 자랑하면서도 인색한 부자는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해도, 겸손히 섬겨주는 부자는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됩니다. 이 전도사님이 그랬습니다. 돈 많다는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돈을 써야 될 때에는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면서도 절제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월세 방에 살면서 자동차는 아주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속 빈 강정같이 겉모습만 번드레하게 치장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먼저는 나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의 주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소유의 재물을 맡아서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청지기답게 낭비하지 않고 규모 있고 절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는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인색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가능하면 도와주고 섬겨 주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에게 선한 청지기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가진 재물을 선한 사업에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말 중에 구두쇠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재물은 많으면서도 베풀며 사는데 인색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구두쇠라는 말은 나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구두쇠는 생활의 여유가 있으면서도 자기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몪만 하려고 하지 그 이상은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구두쇠는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타인의 입장과 어려움은 외면하는 이기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며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디모데 후서 6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구두쇠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인색하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부요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답게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역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라고 하십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는 너그러운 삶을 살아가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렇게 사는 것은 재물을 그 사람에게 꾸어주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도움을 받은 그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받은 그 재물을 갚아줄 수 있겠습니까? 가진 것이 없으니 갚아줄 수 없지요. 그러면 우리는 그 도와준 재물을 허비하고 날려 버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실 때,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준 것을 마치 하나님에게 꾸어준 것처럼 여기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가난한 사람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꾸어준 그 재물을 갚아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멘.
사람들의 삶을 보면, 구두쇠같이 재물을 과도하게 모아도 부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눠주고 베풀어 주는 삶을 살면서도 부자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살아가는 선한 삶을 통해 좋은 터를 닦아 두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닦아 둔 그 좋은 터 위에 복을 주시어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부유함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또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이 물질적인 부와 함께 영적인 부 즉 영생의 은혜까지 함께 받게 됩니다. 그래서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고, 또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영적인 삶에 우선권을 두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영적인 일도 있고 육적인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육적인 일은 무엇이고 영적인 일은 무엇입니까? 육적인 일은 이 세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은 영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는 우리나라의 인천이나 부산과 같은 항구도시였습니다.
항구도시에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고 들어오는 뱃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거칠고 난폭한 도시가 됩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고린도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울에게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내가 너와 함께해 줄 것이니 거친 도시 분위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에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할 내 백성들이 많으니 침묵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 오래 머물며 고린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믿음을 가지게 된 고린도 교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다고 합니까?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게 되었기에, 어려운 생활 속에 환난과 많은 시련을 당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렇게 생활은 어려웠지만 하나님을 향한 헌신은 남달랐다고 합니다. 이들은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연보하고,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고린도 후서 8:2-5절입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이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이 세상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부자가 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더 큰 헌신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런 사람들보다는 예수를 믿고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주를 위해 더 큰 헌신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그랬습니다.
전에 우리나라가 가난할 때 교인들의 신앙과 헌신은 지금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에서도 같았습니다. 이들이 당하고 있는 극한 가난이 더 풍성한 헌금을 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가난하다는 것이 꼭 저주라고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육적인 가난함이 영적인 부요함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하였던 고린도 교인들이 그 힘대로 헌금을 했을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헌금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고린도교인들은 그렇게 헌금할 수 있었다고 합니까?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합니다.(고후8:5) 고린도 교인들은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 그들이 소유한 물질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위한 일에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진정한 헌신을 하려면 먼저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가진 물질까지도 기쁘게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제물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온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이 사람의 생명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면 그가 얻은 온 천하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물질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화폐 그 자체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소유한 물질로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한다면 이보다 더 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물질로 총이나 칼을 구입 하여 사람을 죽이는 일에 사용한다면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소유한 물질은 그 쓰이는 곳이 어디냐? 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업에 쓰고, 그렇게 쓴 물질을 통해 한 영혼이 구원을 얻게 된다면, 천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며, 또 그렇게 물질을 쓴 사람들에게는 어떤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15:4-7절입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어버리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보다 더하리라” 우리가 사용한 물질을 통해 한 영혼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된다면, 그 한 영혼이 구원 얻게 되는 것 때문에 천국에서는 그 영혼을 환영하는 잔치가 열린다고 합니다.
다니엘서 12:3절입니다.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물질을 쓴 사람들은, 천국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영광을 얻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게 되는 재물은 그것을 사용하였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미래를 위해 하늘 창고에 저축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사용한 그 물질에 대한 보상을 장차 천국에서 천배 만배로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없는 사람들과 같이 재물을 이 세상에 쌓아두면 어떻게 됩니까?
좀이나 동록이 해하게 되거나 도둑이 찾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6:19-21절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무슨 일에 사용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삶의 숙제를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내어주신 숙제를 잘 풀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 세상 모든 재물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가 소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 모든 재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물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재물을 맡아서 관리하여 살아가는 청지기들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서 보물을 쌓아두는 곳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가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땅에 속한 사람이라면 보물을 이 땅에 쌓아두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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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어디에 보물을 쌓아가는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디에 보물을 쌓아 가는 삶을 살아가시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물을 감사함으로 사용하며 살아갈 뿐 아니라, 장차 우리들이 가게 될 하늘나라 곡간에 이전보다 많은 보물을 쌓아가는 성도,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부유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