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교회
요한계시록 2:1-7
1. 에베소 교회
오늘은 제가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거의 50년, 참빛교회에서 거의 20년 가까운 목회를 마치고 은퇴하는 날입니다. 그간 저희교회에서 함께 주를 섬겨온 김천환 목사님도 함께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교회는 이제 두 명의 목회자 은퇴하고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제 교회가 아닌 것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있는 교회를 종교단체로서의 교회라면, 목회자가 없어도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게 되면, 종교단체로서의 교회는 아니지만 여전히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지 다 교회입니다.
저는 은퇴한 후에도 당 분간 예배를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각자가 섬길 교회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찾아간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 정도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지금과 같이 저희 가족을 중심으로 함께 하는 성도들과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에 가기 어려운 성도들, 혹은 교회가 없는 오지 마을을 찾아가서 예배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제가 평신도 때부터 많이 해 오던 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은퇴한 목사님들과 함께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한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제게 있습니다. 만약 이런 교회를 세우게 된다면 참 보람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무슨 계획을 세울지라도 인도하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제 앞에 어떤 길이 예비 되어 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후,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로마 동부 지역에서 세 차례의 전도 여행을 하며 교회를 세워 왔습니다. 이런 바울의 마음속에 새로운 꿈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안디옥 교회의 후원을 받아 로마 동부 지역에서 전도해 왔다면, 이후에는 로마교회의 후원을 받아 로마 서부 지역 즉 스페인과 영국에까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제국의 종교 박해라는 상황 속에서 순교함으로 그 생애와 사역을 끝마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제가 마음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들도 허락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결정하고 서둘러 시작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손길, 하나님의 역사와 표징을 보여주시면 시작하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참고: 사도행전 16:6-10)
저는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앞으로는 어떤 교회에서 어떤 목사님과 신앙 생활을 하고 싶습니까?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설교가 앞으로 여러분들이 섬길 교회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참빛교회에서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은퇴를 하고 나면 여러분들은 다른 교회에서 다른 목사님과 신앙생활을 해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떤 교회에서 어떤 목사님과 신앙 생활하는 것이 좋을지를 소아시아에 있었던 에베소 교회를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2. 에베소 교회의 신앙적인 특징
요한계시록 2. 3장은 소아시아에 있었던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일곱 교회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오직 칭찬만 있는 교회입니다. ‘서머나교회, 빌라델비아교회’가 여기에 속합니다. 둘째 부류는, 오직 책망만 있는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여기에 속합니다. 셋째 부류는, 칭찬과 책망이 함께 있는 교회입니다. ‘에베소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가 여기에 속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에베소 교회는 칭찬도 있고 책망도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가 있었던 에베소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에베소는 소 아시아주의 수도로써 상업과 교통,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에는 웅장한 아데미 신전이 세워져 있었고, 우상숭배가 성행하였던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중에 이 에베소에 3년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마 이때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도 같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어떤 특징을 가진 교회였습니까?
첫째, 믿음과 헌신과 영성이 칭찬을 받았던 교회였습니다.
2-3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교회를 칭찬합니까?
교회를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급성장하여 자립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모인 성도의 숫자로 교회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을 칭찬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너희 교회가 크구나!’ ‘젊은 사람들이 참 많이 모이는구나!’ ‘지역 사회에서 이름난 유지들이 많이 나오는구나!’ ‘학생들이 많은 것이 장래가 있어 보이는구나!’라고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가 가지고 살았던 믿음과 헌신과 영성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을 안다’ ‘또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밝혀내었던 것을 내가 안다’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에베소교회에는 믿음이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그 믿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예수님은 알고 있다고 하시며 인정해 주셨습니다. 또 당시에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는 순회 전도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방문하면 무조건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시험하여 그 사람이 ‘참 전도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해 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을 시험하여 ‘참 하나님의 일군인지 아닌지를 분별해 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에베소 교회는 믿음이 좋은 교회였을 뿐 아니라, 영적인 판단력과 분별력도 있었던 교회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안다.’ ‘내가 아노라.’라고 하신 이 말씀들에 사용된 단어는 ‘오이다’입니다.
우리 말에는 ‘내가 안다.’ ‘내가 모른다.’라는 단 두 개의 단어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헬라어에서는 다릅니다. 헬라어에서는 이 ‘안다’라는 말을 세 가지로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식적인 앎입니다.
이 지식적인 앎은 두 가지로 구분해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그 머리로 이해해서 아는 관념적인 앎입니다. 빌립보서 1:16절입니다.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알고’라는 단어는 ‘오이오마이’입니다. 이 ‘오이오마이’는 내가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지식적으로 알았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알았다.’라는 뜻을 가진 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2절입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고 할 때 사용된 ‘안다.’라는 단어는 ‘에이도’입니다. 이 ‘에이도’는 내가 마음으로 이해하고 알았다는 뜻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고 내가 마음으로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신 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니고데모는 자신이 마음으로 알게 된 그 신앙을 고백하려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정리하면) 지식적인 앎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가 머리로 깨달아서 아는 앎이고, 또 하나는 내가 마음으로 이해해서 아는 앎입니다.
두 번째는, 경험적이고 체험적인 앎입니다.
여기에는 ‘기노스코,’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기노스코’는 구약 히브리어 ‘야다’를 헬라어로 번역한 단어입니다. 이 ‘야다’를 우리 말 성경에서는 ‘동침하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1절입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 ‘기노스코,’를 우리말 성경에서는 ‘동거하기 전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 된 것이 나타났더니.’ 이 ‘야다’와 ‘기노스코’라는 단어는,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하고, 확인하여서 아는 앎, 즉 경험적이고 체험적인 앎을 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직관적이고 계시적인 앎입니다.
여기에는 ‘오이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사용되고 있는 ‘안다.’ ‘아노라.’라는 단어가 바로 ‘오이다’입니다. 이 ‘오이다’와 ‘기노스코’를 비교해 보면, ‘기노스코’는 사람들이 체험이나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수평적인 앎이라면, ‘오이다’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계시를 주셔서 알게 되는 수직적이고 직관적인 앎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직관적인 앎, 계시적인 앎을 사진에 비유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사진을 많이 찍어 보셨지요. 요즘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시대 아닙니까?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진에 찍혀 있는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다 보고, 알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어떤 계시를 주시면, 사람들은 한순간에 하나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아주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이렇게 일게 되는 앎을 ‘오이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루터가 로마서 1:17절의 말씀을 받고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되었을 때, 그 한순간에 이제까지 고민하고 갈등해 오던 믿음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이다’의 앎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그 한순간에 모든 의심과 모든 의문들이 다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알게 되는 앎이 바로 계시적인 앎, 직관적인 앎입니다.
이 ‘오이다’를 하나님의 아심에 적용해 보면 이렇게 됩니다.
영원에 계시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서 살고 있는 제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80 – 90년의 전 삶을, 마치 한 장의 사진으로 찍어서 명확하게 알듯이, 그렇게 한 순간에 저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영원에 계신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그 시작부터 그 끝 날까지를 마치 한 장의 사진으로 찍어서 명확하게 알듯이, 그렇게 한순간에 모든 인류 역사를 다 보고 아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심이며, ‘오이다’의 앎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것을 직관적으로 한순간에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말, 우리의 드러난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게 된 마음의 동기와 의도와 목적까지를 한순간에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심에 대한 이런 선행적인 이해를 가지고 요한계시록 2장의 말씀을 살펴보면, 요한계시록 2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아심,’은, 지식적으로 알게 된 앎이 아니고, 체험하고 경험해서 아는 앎도 아니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신 신적인 앎, 즉 직관적이고 계시적인 앎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시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살았던 믿음과, 헌신과, 영성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 정도로 대단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에베소교회가 오늘날 한국 땅에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의 모든 교회가 모델로 삼을 만한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가 가진 믿음이 이런 믿음이 되고, 앞으로 여러분들이 섬기며 살게 될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3. 에베소 교회를 향한 칭찬과 책망
에베소 교회는 칭찬도 있고 책망도 있었던 교회입니다.
이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에베소 교회가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베소 교회가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시지요?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예수님이 인정해 주시는 교회가 된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나는,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읽어보면, 에베소 교회를 세우고,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였던 아주 훌륭한 사역자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가장 먼저는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은 탁월한 지성을 가졌던 아볼로였습니다.
사도행전 18:24절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아볼로 이후에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정말 대단한 부부, 정말 부러운 부부입니다. 이들은 유대인으로서 처음에는 로마 교회의 일원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할 때 이들은 고린도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 고린도에서 그 직업이 같았던 바울을 만나 1년 6개월 동안 함께 일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동역자로 있게 됩니다.
고린도에서 전도 사역을 하던 바울은 이후 에베소에 가서 전도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이런 바울의 계획을 알고, 바울의 에베소 전도 사역을 돕기 위하여, 그간 고린도에서 닦아 놓았던 사업적인 기반, 즉 천막을 만들어서 팔고 로마 군대에 납품하는 사업을 다 포기하고, 바울보다 먼저 에베소로 옮겨가서 장차 바울이 에베소에서 선교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작업을 하며 전도하게 됩니다.
정말 대단한 부부가 아닙니까?
이렇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닦아 놓은 기반 위에서, 후에 지성과 영성이 탁월했던 바울이 사역을 하게 됩니다. 바울은 약 3년 동안(실재 2년 3개월) 이 에베소에 선교 본부를 세우고, 인근 소아시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성공적인 사역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헌신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어떤 사역자였습니까?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수많은 기적 들이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바울이 너무 바빠서 성도들을 심방 갈 수 없을 때에는, 그 사용하는 손수건이나 천막을 만드는 일에 쓰던 앞치마를 앞에 놓고 기도하고 그것을 자신 대신 사람들의 손에 들려 보내었는데, 성도들이 그것을 환자 위에 덮어놓고 기도하면, 바울이 심방 왔을 때와같이 병은 나았고, 귀신은 떠나가는 기적들이 나타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이 능력이 메가톤급으로 나타나자, 바울을 대적하고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이 일으킨 소동 때문에 더 이상 에베소에서 선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 수제자였던 디모데를 에베소교회 담임 목회자로 세우고 자신은 에베소를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이후에는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였습니다.
이 디모데는 나중에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할 때 잠시 로마로 갔다가 돌아와서 목회를 계속하다가 5월 아데미 축제 때에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에베소 교회는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에베소교회 장로들이 이 일을 놓고 기도하다가 예수님의 사랑 받는 제자였던 사도 요한을 후임 목회자로 청빙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에베소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에베소 교회는 대단한 지도자들을 많이 모셨던 교회였습니다. 아볼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 사도 바울, 디모데, 사도 요한 같은 당대 쟁쟁한 목회자들이 목회했던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런 목회자들의 지도를 받으며 믿음이 대단한 교회로 세워져 갔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했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은 27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들이 처음에는 한 권씩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록된 성경을 여러 교회들이 돌려가면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없는 교회도 있고, 성경이 한두 권 있는 교회도 있고, 여러 권이 있는 교회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는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니 성경이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그러다가 나중에 각 교회들은 서기관들에게 성경을 필사하게 했습니다.
각 교회들은 필사한 복사본을 한 권씩 비치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필사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과 돈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약 27권을 다 비치하고 있는 교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성경이 없는 채로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달랐습니다.
에베소교회는 교회 설립 초창기부터 여러 권의 성경을 가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는 어떻게 여러 권의 성경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이 에베소 교회에는 보내진 성경이 아주 많았습니다.
첫째는, 에베소 교회를 떠난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에베소서’가 있었습니다.
둘째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남겨 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디모데 전.후서’가 있었습니다.
셋째는, 사도 요한이 당국자들에게 붙잡혀 밧모섬에 유대 되어 있을 때,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기록한 ‘요한계시록’ 한 권을 에베소교회에 보냈습니다.
넷째는, 밧모섬에서 풀려난 요한이 에베소로 와서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다섯째는, 사도 요한이 말년에 전한 설교를 정리하여 남긴 ‘요한 1. 2. 3서’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에베소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에베소 교회는 대단한 지도자들을 모셨던 교회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했던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믿음이 대단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은 얼마나 훌륭한 지도자가 있느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겠습니까?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가진 성도가 될 확률이 아주 높은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와는 다른 조건 속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완성된 성경 66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더하여 오늘날 우리들은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확립되어 있는 교리를 전해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도들의 신앙을 정립하여 전해 준 사도신경이 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확립하여 전해 준 삼위일체 교리가 있습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확립하여 전해 준 기독론 교리가 있습니다.
15세기 종교 개혁 이후에는 ‘이신득의’라는 확립된 구원론을 전해 받았습니다.
그리고 청교도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하여 전해 준 신조와 대소요리문답서가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성령론에 대하여, 이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종말론에 대한 가르침들까지 주어졌습니다. 오늘날은 이 종말론이 교회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그 신앙의 참되고 거짓 됨은 이 종말론에서 갈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아직 완성된 성경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또 우리처럼 확립된 교리를 전해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교회가 그 놀라운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에베소 교회는 훌륭한 지도자들을 모셨던 교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한 교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에베소 교회는 정말 복 받은 교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는 앞으로 이런 훌륭한 목회자를 통해 은혜를 받고, 말씀이 풍성한 교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여서, 예수님이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되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둘째, 에베소 교회가 책망받는 교회가 되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부터는 에베소 교회가 책망을 받았던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에베소 교회는 믿음과 헌신하는 삶이 인정을 받았던 교회였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올바른 믿음 위에 서 있었던 교회였으며, 영적인 판단력과 분별력도 가지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에베소교회를 향해 책망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4-5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촛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촛대를 옮기신다는 말씀은 더 이상 교회로 여기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교회에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성경은 믿음과 사랑을 함께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관련된 가르침들을 살펴보면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에서입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서 한 교훈이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내가 전에 3년 동안 너희를 가르쳤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는데, 그 가르친 내용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째,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삶으로 보여준 것 같이 ‘너희도 수고하여 얻을 소득으로 약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도우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에서입니다.
에베소서 3:17-18절에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가 나오는데 그 기도문을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라고 기도한 후에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들과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기도’하면서 19절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기를 구한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믿음과 사랑의 삶이라는 두 가지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또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올바른 믿음 위에 서 있게 되기를 기도하였고, 또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도록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울은 그 가르침에서도, 기도에서도 믿음과 사랑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편지에서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담임 목회자로 있던 디모데에게 보낸 디모데 전서를 보면 목회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믿음과 사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에 견고히 서서 이단에 대처할 수 있는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둘째는,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단들과 싸우는 싸움 중에서라도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의 중요한 가르침도 믿음과 사랑이었습니다.
요한의 가르침에서입니다.
요한 1, 2, 3서의 중요한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믿음으로 이단을 물리치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사랑은 여기 있나니’ 라고 하면서, (참고 요한1서 4:10-11)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과 사랑 이 두 가지는, 바울이 40년 복음 전도 사역을 할 때 내내 강조한 내용이며, 사도 요한이 70년 목회할 때 내내 강조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은 그 모든 가르침에서 믿음과 사랑 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바른 믿음 위에 서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위기는 바른 믿음을 잃고 실천적인 사랑이 없을 때 찾아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바른 믿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사랑은 잃어버린 교회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둘째로, 잃어버린 사랑을 책망하셨습니다.
에베소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에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밖으로는 불신의 세상과 싸우고, 또 안으로는 교회를 파괴하려는 이단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싸우다가 보니, 나중에는 처음에 가졌던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에베소 교회가 사랑이 없는 교회라는 말은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는 목회자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가족을 너무 사랑하고, 교회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가족을 지키고, 교회를 지켜 내기 위하여, 세상 권세와 싸우고, 거짓된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과 싸우다가 처음 가졌던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은 무엇입니까?
이 사랑을 성경은 최고의 사랑, 그 아가페 사랑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사랑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아가페 사랑으로 지목되고 있는 사랑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아가페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두 가지 사랑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랑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하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랑을 해도 내가 중심이 되어서 사랑하며 삽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하는 이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며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하며 사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랑으로 자기를 사랑합니다. 가정을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어떻게 보실까요?
하나님은 이 사랑을 인정해 주실까요? 이 사랑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세속적인 사랑이고, 이기적인 사랑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랑이고, 나를 기준으로 하는 아주 편협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런 사랑은 죄인들이라도 다 하며 사는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의 사랑과는 그 기초가 다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사랑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나의 가족은 사랑하나 나를 어렵게 하는 원수는 사랑할 수 없게 합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사랑해도 다른 교회의 어려움은 외면하게 합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존경하나 다른 교회 목사님은 존경하지 않게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사랑이 가진 한계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하며 살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그 중심에 두고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은지를 생각하고 아무 조건 없이 그 일을 해 주게 하는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어떻게 나타났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 그 죄와 죄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복음의 약속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대로 죄에서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십자가를 져주시는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세상에 전해 주는 교회를 이루고 살아왔습니다. 그때 에베소 교회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이든지 전혀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사람이 파렴치한 사기꾼이나 흉악한 살인범일지라도 싫어하지 않고 찾아가서, 그 사람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 사랑 위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에베소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 있었습니까?
교회를 박해하는 세상 권력과 싸우고, 또 거짓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이단들과 싸워오다가,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지 관계없이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그 아가페 사랑, 상대가 비록 사도 바울과 같이 죄인의 괴수일지라도 찾아가서 구원의 복음을 전해 주었던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이런 에베소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아가페 사랑을 다시 회복하여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 아가페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교회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아가페 사랑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교회라고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촛대를 옮긴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진정 예수 믿고 구원 받아 그 영혼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먼저는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라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죄인들에게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이 배우고 믿음도 좋았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이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훌륭한 목회자들을 모셨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잘 알았습니다. 그 가진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르는 헌신의 삶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셨던 그 아가페 사랑은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습니다.
4. 에베소 교회를 향한 경고와 권면과 약속의 말씀들
오늘날 성도들도 에베소 교회 성도들과 같이 많이 배우고 똑똑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현대 교인들에게 요한계시록 2장의 말씀을 통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혹시 너희들도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가진 믿음이 아무리 대단한 믿음일지라도, 너희 믿음의 수고와 헌신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너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면, 사랑을 잃어버린 너희의 믿음은 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나는 너희에게서도 촛대를 옮기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 너희 교회를 교회 공동체로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고의 말씀을 주시면서 더하여 주신 권면과 약속이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주신 이 권면과 약속을 중하게 받아들여서, 나 자신과 그간 내가 살아온 신앙의 삶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이킬 것이 있으면 빨리 회개하고 돌이켜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겨나가는 성도들이 되어, 장차 하나님이 이기는 성도들에게 약속하고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천국에서 먹으며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하는 것, 교회들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은 믿음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자신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사단 마귀의 유혹의 역사를 이기며 살아서, 이긴 성도들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살아갈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루, 한주, 한 달, 한 해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부 / 목사 은퇴식
목회를 시작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은퇴식을 그간 저희 교회에서 함께 하나님을 섬겨 온 김천환 목사님과 같이하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 목사님은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저와 같이 공부하시고, 또 두 번씩이나 저희 교회에 오셔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은퇴식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은혜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 목사님의 은퇴 이후의 삶도 은혜로 인도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저희가 교회를 개척할 때는 참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당시에는 예은이가 태어나기 전이라, 저희 4식구가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거의 교회에서 살았으며, 사모는 10원이라도 절약하며 가정생활을 꾸려 왔습니다.
이런 저희 가정에 하나님은 참빛재가복지센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재가센터 운영은 쉽지가 않습니다. 서비스받는 쪽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도 거의 노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재가센터를 운영하며 교회를 섬겨 온 사모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부모 때문에 개척교회를 함께 섬기며 자라온 아이들에게, 하나님이 앞으로는 더 좋은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한 후 하나님께 두 가지를 구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교회 임대료가 밀리지 않게 해 주세요. 였고, 또 하나는 아이들에게 우유도 못 사 먹이는 부모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셔서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임대료가 밀리지 않게 해 주셨고, 아이들을 굶기는 일이 없도록 해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교회를 개척한 후 저희 교회와 함께해 온 성도들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만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아주 멀리 계신 분도 계시지만, 그분들의 헌신이 모아져서 오늘이 있게 된 것입니다. 장차 천국에 가면 모두 만나게 될 것이지만, 가끔씩 그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삶 속에 은혜로 역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목회에는 은퇴가 있어도 인생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서 살든지, 이웃을 위해서 살든지, 하나님을 위해 살든지 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 삶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합니다.
이제 은퇴하면, 목회 현장에 있을 때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또한 평탄한 길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찾아오는 문제들이 많이 있는데, 가장 먼저 찾아오는 문제는 건강의 문제일 것입니다.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우리 건강입니다. 건강 외에도 경제적인 문제, 자녀의 문제, 외로움의 문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문제 등등의 다양한 문제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더하여 은퇴 목사는 기존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지내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이, 신앙생활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이 성도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화조차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퇴 목사님들을 위한 새로운 교회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시편 32:8절입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하나님이 오늘 은퇴하는 저와 김천환 목사님의 삶에 함께해 주시면서 앞길을 인도해 주시고, 또 새로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할 성도들의 삶에도 함께해 주시면서 그 앞길도 인도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은퇴식을 하는 저와 김천환 목사님의 앞길에 함께 해 주시며 인도해 주시고, 사모와 아이들과 성도들의 앞길에도 함께 해 주시며 은혜의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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