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이유와 방법
시편 100:1-5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천차만별입니다.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늘 불평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똑 같은 상황을 만나도 있는 사실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감정을 썩어서 불평불만을 표출하는 기회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들은 사실 그 자체를 말하며 늘 감사하며 사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모든 현실을 불평불만을 재료로 삼으며 살까요. 사람들은 그 마음에 있는 것을 입으로 말하며 삽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감사나 불평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하며 사는 말을 통해 그 마음을 읽게 됩니다.
여러분이 한 주간 살아오면서 읽고 또 읽으며 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아니 혹 내 마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혔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도 배려하고 사는 자비와 긍휼이 있는 사람으로 읽혀지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만난 것을 감사하게 해 주는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감사하며 살까요?
첫째, 감사는 내 삶 속에 감사한 일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 할 수 있습니다.
내 삶 속에 감사한 일이 있어도 그것이 왜 감사한 일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모습을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아이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철이 들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이 부모님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고 살면서도 아직 감사할 줄 모릅니다. 왜요. 부모님이 보살펴주심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둘째, 감사는 그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들은 무슨 말을 듣거나 무슨 일을 만나면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왜요.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 눈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잘 압니다. 이런 사람들은 또 무엇이 내게 고마운 일이고 무엇이 내게 감사한 일인지도 잘 압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전혀 감사하지 않는 일들을 가지고도 감격하고 감사해 하기도 합니다.
셋째, 감사는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까? 우리 삶에는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늘 그 입에 감사를 달고 삽니다. 왜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렇게 살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감사의 크기는 그 가진 믿음의 크기와 같다.’ 이렇게 볼 때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하며 사는 아주 복된 특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시편 100편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말씀이 생명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삶에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릅니다.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들이 성도들의 마음 안에서 생명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이전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후의 삶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런 삶의 변화가 있는 사람들이 그 영혼이 다시 살아난 사람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맺으며 사는 열매로 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가져다주는 삶의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에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이후에는 더욱 더 풍성한 감사가 있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맺으며 사는 변화된 삶의 열매를 통해 내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것을 교회와 세상에 보여주며 살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1. 시편 100편의 본문 강해
이 시편 100편의 말씀은 다섯 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말씀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3절과 5절의 말씀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말씀이고, 1절과 2절과 4절 말씀은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며 사는 방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이 3절 말씀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째,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음을 감사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아버지로 두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살아가는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농부를 아버지로 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며 살든지 농부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게 되고, 어부를 아버지로 둔 사람은 어부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리고 유명한 학자를 아버지로 둔 사람은 자기가 그 학자의 아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서도 같습니다.
우리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그 영적 유산을 이어 받아 가지고 삽니다.
부모가 순교한 자녀들은 그 부모의 순교 신앙이 그 마음 안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의 순교신앙이 자녀의 이후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에서도 같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믿고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그 살아가는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교의 석가모니를 믿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석가모니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어려움을 도와줄 수 있습니까? 석가모니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해 주지도 못하고 우리가 하는 기도에 응답도 해주지 못하는 석가모니를 믿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세상을 주권적인 섭리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이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사,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기로 작정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택하심과 작정하심 안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깡패같이 포악한 부모에게서 태어나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잘 되길 바라시는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 천지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하여 공부도 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야 하는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형편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아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무지한 우리들까지도 싫어하시지 않고, 우리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알게 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면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우리 삶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어서 그렇게 해 주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죄의 종으로 태어나서 죄를 짓고 사는 데는 유능했지만, 선을 행하며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데는 무능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 같이 우리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들"이었습니다. 또 ‘그 마음의 생각은 부패했고, 그 행실은 부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을 위해 그 사랑하는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없었으면 오늘 날의 우리도 없습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 죄인이 된 우리를 미워하셨더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죄를 용납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죄인이 된 우리를 외면하셨더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살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하게 하겠다.”
“내가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그 기원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자비와 긍휼이 크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어 주셔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그 강한 손으로 지켜 보호해 주시는 것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감사의 시작점이고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3절 말씀에서는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유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 되어 주신 것’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멘.
다시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또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둘째, 여호와가 우리 몸과 영혼을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몸이 병들어서 고통하며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제 주변에는 신장병으로 투석하며 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할 수만 있다면 신장 이식수술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투석을 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 건강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장 이식수술을 받으려면 누군가가 신장을 기증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증한 신장이 내 몸의 면역체계와 맞아야 합니다. 신장은 우리 몸에 두 개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하나 떼어 주어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 신장을 다른 사람에게 떼어 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귀한 신장을 떼어 준다면 그 신장을 떼어 준 사람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늘 그 이식 받은 신장만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신장을 이식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건강합니다.
우리는 병들어서 고생 고생하다가 어렵게 신장 이식을 받은 사람들보다 사실은 더 많은 감사를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건강하면서도 건강이 얼마나 감사한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을 주셔서 그동안 신장이라는 장기가 어디 붙어 있는지, 그 신장이 어떤 기능을 하는 장기인지, 또 신장 이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없겠지요?
사실 저도 이런 감사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건강한 손발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한 눈과 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 보지 못했습니다.
제 다리에서 동맥질환을 발견한 의사는 수술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는 의사의 치료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대답하지 못하자 의사는 ‘한 달 생각해 보고 결정합시다.’ 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벌써 내일이면 한 달이 되네요.
지난 한 달 동안 하나님이 고쳐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기도를 했습니다. 다윗이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다윗이 그 말년에 인구조사를 하였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이 일이 죄라는 것을 알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 죄에 대한 세 가지 형벌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그 땅에 7년 기근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왕이 대적에게 쫓겨 3개월을 도망 다니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땅에 3일 동안 온역이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24:14절 말씀을 보면, 이 때 다윗은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라고 하면서 하나님에 의한 3일 동안 온역이 이스라엘 땅에 임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저도 사실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 할 수만 있으면 제 몸을 의사에게 맡기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콜레스테롤을 낮추어서 혈관에 피가 잘 돌 수 있도록 음식을 조절하고, 근육을 유연하기 위해서 근육 운동도 하고, 피가 잘 돌 수 있게 하는 오메가3도 먹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기도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저의 막힌 혈관은 하나님이 고칠 수도 있고 의사가 고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고치든지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몸이 아픈 것이 결코 저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있지 않습니까?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라는 말씀도 있고,(히12:6)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아프니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깊이 인식하는 기회가 되더라구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될 수 있으면 병든 후에 건강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말고, 건강할 때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주신 건강을 잘 지키며 주를 위해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튼튼한 뼈를 가지고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를 가지고 있고, 물건을 잡고 들 수 있는 손과 손가락을 가지고 있고, 어디든지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다리와 발을 가지고 있고,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두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우리의 몸을 지어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몸과 영혼을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임신하게 되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아이의 신체와 정신이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간호사는 아기를 거꾸로 잡고 손가락도 검사하고, 발가락도 검사하고, 입천장도 검사하고, 또 울려 보기도 하면서 확인합니다. 그리고 난 후 산모에게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건강한 공주님이 태어났습니다.’ 라는 말로 안심시켜 줍니다. 이 때 모든 부모들은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은 감사합니다. 이 말은 아기의 몸을 부모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을 내가 만들거나 내가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건강한 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몸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몸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10절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전에 하나님이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믿음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건강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또 무엇이라고 합니까?
셋째, 하나님의 베풀어주시는 은혜가 영원하다는 사실 때문에 감사해야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이 땅에 사는 동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영원하여서 천국에 들어가 살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하여서 천국까지 이어진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마치 학생들이 그 원하는 학교에 입학 통지서를 받아 놓은 것과 같습니다.
예은이는 중학교에 주영이는 고등학교에 입학 통지서를 받아 놓았습니다. 그러면 입학통지서를 받은 학생은 어떤 상태에 있는 것입니까? 지금은 아직 그 학교 학생이 아니지만 시간이 되면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꿈을 그렇게 신뢰하는 사람도 아니고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거나 천국을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그렇게 신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지금 제가 꿈 이야기를 예화로 이야기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가 꿈을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 밝고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가 보니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듯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가보았더니 아주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 서서 큰 소리로 ‘나는 생긴 모습 그대로 세상에서 깡패로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여서 사형수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내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나 같은 사형수도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 는 말을 듣고 좀 염치가 없어 보였지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사형을 당하고 죽은 후에 보니 정말 그 전도자의 말과 같이 내가 천국에 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세상에 이런 은혜가 어디 있답니까? 나는 내가 받은 이 은혜를 숨기고 있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소리 지르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은혜를 더 많이 받은 사람이 있으면 어디 좀 나와 보세요.’ 라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얌전하게 생긴 사람이 입을 열더랍니다.
"여러분! 내 말도 좀 들어보세요. 나는 믿는 가정에 태어나서 어머니 아버지의 신앙으로 어릴 때 세례를 받고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자랐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는 믿는 처녀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교회에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 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내가 저 사람보다 더 큰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닙니까? 나는 세상에서도 은혜를 받으며 살고 또 은혜로 천국에까지 왔으니 아무래도 내가 은혜를 더 많이 받았지요." 라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또 이렇게 말했답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힘든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공산당이 와서 예수를 믿으면 죽이겠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배반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님 없이는 못 살 것만 같아서 끝까지 예수님께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산당이 우리를 찾아와서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왠지 죽음이 두렵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찬송을 부르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죽고 보니 천국에 와 있었고 또 예수님을 위해 생명을 바친 순교자라고 하면서 귀한 상까지 주시니 이런 감사한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장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 아닙니까?" 라고 하면서 자기가 받은 은혜가 가장 크다고 서로 자랑하더랍니다.
이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이든지 모두 다 감사의 재료가 되고 기쁨의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살아가는 삶은 다 다르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삶을 통해 결국 하늘나라를 주시고자 목적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며 의도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를 잘 알았던 예레미야는 이렇게 전합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안다. 그것은 마치 재앙 같아 보이는 일들일 지라도 재망이 그 목적이 아니다. 그 모든 일들은 너희에게 기쁨을 주고 평강을 주려는 것이다.’ 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떤 일을 만나게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되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예레미야는 고난처럼 보이는 바벨론과의 전쟁에서의 패배가 사실은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평강을 주고 소망을 주려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만사를 우리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고, 우리 하나님은 마치 재앙과 같아 보이는 그런 일들까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실 수 있으신 분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서 5:18절 말씀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너희들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라,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멘. 우리 모두 이 믿음으로 무장하고 우리 삶에 어떤 어려운 일이 다가오더라도 범사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감사를 표현하며 살아 왔습니까?
시편 100:1절 말씀에서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 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온 땅이’ 즐거이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온 땅"은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 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존재는 다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불러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마음속으로만 ‘감사합니다.’ 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즐거운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소리를 내어서 감사의 고백을 찬송으로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감사하는 마음을, 말로나 혹은 찬송으로 표출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하며 사는 말에는 환경과 자신을 지배하고 바꾸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감사할 일이 깨달아지거든 감사하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감사의 표현을 하며 살 수 있도록 연습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즐거이 찬송을 부르며 감사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까?
둘째,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노래하며’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합니다.
2절입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찬송하며 드리는 감사는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우리의 생활과 영혼에 활력을 주고 윤택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2절 말씀에서는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있으면, 기쁨으로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찬송하고 노래하며 나아가라고 권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우리가 무엇으로 갚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부모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도 갚을 수가 없는데,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기쁨으로 예배하고, 찬송하며 예배를 드리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게 될 뿐입니다.
우리는 또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까?
셋째,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며’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합니다.
4절 말씀에서는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때 감사함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며 들어가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려고 준비할 때부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편 50:23절 말씀을 보면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이 구원을 보이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이라고 약속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도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에 와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감사가 10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감사하는 마음이 커져서, 우리의 감사가 기도에서, 찬양에서, 예배에서 풍성해 질 뿐 아니라, 가정에서 교회에서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삶 안에 충만하게 흐르고 넘쳐서, 그 누구보다 더 많은 감사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