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상태
1. 타락 전 인간의 상태
성경은 인간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지상에서의 모습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의 모습이다. 첫째로, 지상의 모습은 타락 전과 타락 후, 그리고 중생된 인간의 상태이며, 둘째로, 하늘의 모습은 영화된 상태로서 사망 후 하늘나라에서 구원받은 자만이 누리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영벌 가운데 있을 것이다.
인간 이해를 위해 순차적으로 타락 전과 타락 후, 그리고 중생된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개혁신앙의 교리도 이 순서를 따른다.
타락 전의 상태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1권 15장, <벨지카 신앙고백서> 14항,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10문과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17문에서 설명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10문의 “하나님은 어떻게 인간을 창조하셨나?”에 대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답변한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17문에서도 동일한 질문과 답변을 하지만, “타락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고 덧붙인다. 이 상태를 설명이라도 하듯이
<벨지카 신앙고백서> 14항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영예로운 상태에 있었을 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시 49:20) 탁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죄를 범할 수 있었던 아담의 상태가 바로 타락 전 인간의 상태였다. 아담 자신은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도록 버려두었기에 죽음과 죄에 종속하게 되었고(창 3:16~19; 롬 5:12)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창 2:17; 엡 2:1, 4:18)”고 고백한다.
타락 전의 상태를 칼빈은 “인간의 처음 창조 시에는 모든 후손과 달랐고…영의 모든 부분은 청렴함을 갖고 있었다.
선을 선택하는 의지의 자유와 마음의 순전성이 있었다.”고 말한다. 돌드레히트 신조에서도 “그의 의지와 심정은 정직했고 그의 모든 애정 역시 순결했기에 인간은 완전 거룩했다”고 한다. 그렇다! 인간은 정직, 청렴, 순결 또는 올바른 상태로 창조되었다.
타락 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의, 진리 및 거룩으로 창조되었지만 죄를 범할 가능성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타락 후의 상태처럼 이기적이고, 음흉하고, 기만적이지 않는 겉과 속이 일치하는 아름다운 상태였다. 변할 수 있었으니 불완전한 상태로 또는 미완성의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타락 전의 상태를 순전하고 청렴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이해해야지 기계처럼 융통성도 없고 자유도 없는 움직이는 물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벌거벗음을 보고도 음욕이 불타지 않았고, 사탄이 들어간 뱀을 보고도 편견을 갖지 않을 수 있는 상태였다. 칼빈은 “부패하지 않은 성품에서는 영예로운 것 외에 어떤 것도 없었다. 이것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까지의 우리의 상태였다.
인간은 타락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순전했다? 이 의미는 영의 기능 중 한 부분인 의지의 자유가 있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모든 선택이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포함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자유를 주신 것이다. 인간은 순전한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따를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타락 후의 상태에 있고, 영의 기능들이 제각기 활동하기 때문에 이런 순전한 상태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타락 전에는 영의 기능들이 올바르고 순전하게 활동한 상태였다. 이것을 불완전하다거나 부족한 상태라고 해서는 안 된다.
2. 타락 후 인간의 상태
십대들이 훔친 차로 질주하여 사람을 치고, 목사라는 자가 딸을 죽여 수개월 동안 방치하고, 사람을 죽여 조각내기도 하고, 행패를 부리고, 끝까지 거짓말하는 등 부정과 부패, 불법, 불의한 소식들이 끊이질 않는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개혁신앙의 교리는 이런 점에 대해 신학적이고 성경적 답변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죄로 말미암는다. 그 죄의 정체를 밝혀본다.
첫째, 인간을 동물처럼 만들어버리는 “죄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의 율법에 미치지 못하거나 벗어나거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되었던 것은 모세 때였지만,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 때의 율법은 곧 하나님의 신탁 또는 명령이었다. 그 명령에 대해 인류의 부모인 그들은 따르지 않고 무시했다. 그 결과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둘째, 그들이 범한 죄의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은? 바로 “금지된 실과를 먹은 것이다” 금지한 것이 그들에게 율법이었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20문은 하나님의 율법의 내용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고, 21문에서 “자신들의 의지의 자유가 있던 최초의 우리 부모는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였고, 그 결과 순결의 상태로 창조된 데에서 타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그 죄의 내용은 의지적으로 그분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순전한 자유의지를 가진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의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어긴 ‘의도적인 불순종’이었다.
셋째, 칼빈은 최초의 범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금지는 순종의 시험이었다…그의 믿음을 증명하고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불순종의 죄는 유전적이든 출생법에 의해서든 우리 모두가 행하고 있다. 교리들마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누구나 그 자리에 서면 그들처럼 범할 것임을 의미하고, 우리를 지배하기에 이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온갖 “영적으로 선한 것을 행할 마음이 없고, 무능하고, 전적으로 거역하고 모든 악한 것에 전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것을 가리켜 흔히 ‘원죄’라 부르는데, 여기서 모든 실제적 범죄들이 나온다.” 그렇다면 처음에 언급한 인간의 부패한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다. 교리에서는 원죄와 실제적 범죄들로 나누지만, 성경에서는 그저 ‘죄’라고만 언급한다. 그것으로 인해 육체적 일들이 일어나고, 온갖 범죄가 죄의 지배 하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넷째, 아우구스티누스는 노예적 의지라고 말했고, 칼빈도 이 개념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러면서 “죄가 자유의지를 어떻게 강탈했는지 알기 위해 영의 기능들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2권 2장 2항). 죄가 세상과 우리 안에 들어와서 지배한다는 의미는 인간성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인간성의 부패는 곧 영의 기능들의 부패를 의미한다. 부패의 기능 중 하나인 의지는 죄를 범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고, 극단적 또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을 내려놓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의지적 결단과 선택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이고, 심지어 창조자 하나님의 명령보다도 더 우선적이다.
다섯째, 영의 기능에는 크게 의지, 감성, 오성, 이성 및 지성이 있다. 이런 기능들은 자신을 위해서만 행해진다. 여기서 지성, 오성 및 이성보다 더 중요하고 복잡한 것은 심정(heart), 즉 의지와 감성이다. 심정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감성과 의지가 함께 심정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감성을 변화시키면 의지도 함께 변하고, 세상은 미혹하지만 성경은 이것과는 반대 입장을 취한다. 의지의 전환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면을 칼빈은 2권 2장에서 부패한 인간성, 즉 의지, 오성 및 이성은 스스로 정화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는 인간의 어떤 가시적인 노력으로 감성은 변하나 의지적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락한 인간이 의지적 전환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영의 기능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의 사역만으로 일어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오직 성령 하나님의 사역뿐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기능의 회복에 대해 어느 정도 설득시킬 수 있을 뿐 심정까지 바꾸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인간 누구나 이기적이고, 누구도 죄의 지배 아래에서 부패한 인간성을 가지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기적이지 않는 인물의 삶을 보고 우리는 어느 정도 감동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참된 선을 향한 전환은 부패한 어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구원에 있어 인간에게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하신다.
3. 중생 된 인간의 상태
타락 후의 인간의 상태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죄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 결과 인간성은 부패하여 모든 것은 이기적임을 설명했다. 이것은 인간은 결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하신다.
영의 주요한 기능인 ‘마음(mind)’보다 ‘심정(heart)’이 훨씬 복잡하고 늘 변한다. 당시 존경받던 학자 니고데모는 중생에 대한 그리스도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의 이해는 육적으로 다시 태어남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중생에 대한 부족한 이해나 잘못된 이해의 경우가 있음을 흔히 본다. 기독교인은 타락 후의 상태에서 중생된 상태로 전환한 자들이다.
중생은 흔히 내적(효과적) 부르심 또는 회심이라 불리기도 한다. 중생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다. <돌드레히트 신조> 3~4장 12항에서는 “외적 가르침에 의해서, 도덕적 확신에 의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행한 후 다시 중생되거나 회심되는지 그러지 않는지가 인간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인간의 어떤 프로그램이나 노력도 믿음의 준비에 불과하지 인간을 전환시키진 못한다. 변화시킬 수 있다거나 변화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아르미니우스파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셈이다.
하나님의 자녀, 즉 창세전에 선택된 자만 중생된다. 그러나 가끔 다른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거나 외적으로 부르심을 받을 수 있고, 말씀의 사역에 의해 부르심을 받아 성령의 일부 일반적인 역사들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자신들에게 제안된 은혜를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기 때문에 불신앙 가운데에 당연히 남게 되어 결코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되게 나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에는 중생된 자들만 아니라 중생된 척 하는 자들도 함께 섞여 있다. 가라지와 알곡이 밭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본인 외에는 자신이 선택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유기된 자도 자신을 철저하게 기만하거나 무지 가운데 있기 때문에 중생된 줄 알고 지낼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 즉 창세전에 선택된 자만 중생된다. 여기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대 교리문답서 68문에서는 “모든 선택된 자만 효과적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러나 가끔 선택되지 않은 사람들이 외적 부르심을 받거나 성령의 일부 일반적인 역사들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은혜를 고의적으로 무시하거나 경멸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되게 나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에는 중생된 자와 중생한 척 하는 자들이 함께 섞여 있다.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중생은 무엇일까? 중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의 기능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또 의지를 갱생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향하도록 한다. 이런 점에 대해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때에 자신의 말씀과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선택된 자들을 초청하시는데 구원을 받도록 마음을 계몽시키고 의지를 갱생하여 자발적으로 그분의 은혜를 수용하도록 한다.”
중생의 과정에서는 마음이 계몽되고 의지가 갱생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꿰뚫어 보도록 하셔서 닫히고 강퍅한 심정을 부드럽게 하신다. 하나님을 거역했던 죽은 의지를 살려주고, 반항적인 의지를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의지로 바꾸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살고자 하는 심정을 갖게 한다. 이 사역은 그분의 비밀적 사역이다. 인간은 결코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중생했다고 확신을 하는 자는 그 증표로 세례를 받는다. 그러면 비밀 적으로 일어난 중생을 인간이 어떻게 인지할까? 그것은 선물로 받은 믿음으로 알 수 있다. 믿음 역시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회개이다. 회개를 진정으로 했다면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죄의 주도권으로부터 자유했지만 아직도 부패한 인간성 때문에 부단히 영적 갈등과 투쟁 속에 살 것이다. 그럼에도 심각한 죄에 빠지지 않고 그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순종하려고 인내하며 따른다. 이런 사람에게 율법은 우리의 안내자가 되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스스로 증명해 나가도록 이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쁜 심정으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배우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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