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오순절 성령강림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2. 1. 23. 15:55

오순절 성령강림

사도행전 2:1-4

 

우리는 지난번에 유대인의 7대 절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첫 절기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이 유월절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는 절기입니다. 두 번째 절기는 무교절이었습니다. 이 무교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보여주고 있는 절기입니다. 세 번째 절기는 초실 절이었습니다. 이 초실 절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는 절기입니다.

 

이 세 가지 절기는 봄 절기입니다.

네 번째 절기인 오순절여름절기입니다. 오순절은 다섯 오()자와 열흘 순()자가 합성된 단어로서, 초실 절이 있은 후 50일째 되는 날에 지켰던 절기입니다. 이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성령강림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에 속해 있습니다. 이렇게 육신에 속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영적인 일들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실 때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두 가지 상징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는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였으며, 두 번째는 불이 혀처럼 갈라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첫 번째 살펴볼 것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입니다.

 

2절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여기 사용되고 있는 바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프노에로서 그 의미는 숨, 호흡, 바람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요즘 과학자들은 바람이 어떻게 분다고 설명합니까?

바람은 기압의 차이 때문에 공기가 이동함으로 분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기압의 차이의 배후에 계시면서 바람으로 불게 한다고 믿습니다.

 

이 세상에 부는 모든 바람의 시작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람으로 공기를 순환시키시고, 비를 오게도 하시고, 바다의 파도를 일으키기도 하시며, 때로는 태풍이 불어오게도 하십니다. 이 모든 바람의 출발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시편 104:30절 말씀을 보면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기서 주의 영주의 숨’ ‘주의 바람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영을 보내시거나, 그 숨을 내 쉬시거나, 바람을 불게하시면, 그 바람을 인해 이 땅위에서는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이 겨울이 지나가고, 하나님이 이 땅위에 봄바람이 불게 하시면, 마치 죽은 것 같았던 산과 들에, 각종 들풀들이 싹을 내고, 각종 나무들이 새로운 순과 잎을 내고, 각종 봄의 꽃들이 활짝 피어나게 됩니다.

 

또 봄이 지나가고 하나님이 따뜻한 여름 바람을 불게 하시면, 북태평양에서 발생한 고기압의 따뜻한 수증기가 그 상층에 있는 찬 공기와 만나게 되면서, 비구름이 활성화 되고, 장마전선이 형성 됩니다.

 

하나님이 더 강한 바람이 불게 하실 때에는, 저 남태평양 상에서 태풍을 만드셔서 비를 동반한 강한 바람이 불게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태풍이 불게 되면, 태풍은 바다를 뒤집어 놓고, 땅위에 있는 시설물들을 날려 버리기도 하며, 강하게 쏟아져 내리는 비는 곳곳에 홍수가 일어나게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불게 하시는 이런 바람들은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기운입니다. 이 바람은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기도 하고, 땅과 강과 바다를 다시 새롭게 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런 바람들이 없었다면 이미 이 세상은 오염에 찌들어서 벌써 생명이 살기 힘든 곳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만 이렇게 바람으로 생명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2:7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생기 즉 하나님의 바람을 불어넣으시자, 그 흙으로 만든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멘.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 코에 숨을 불어 넣어 주실 때 살아 있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그 코에서 숨을 거두어 가시면 죽게 됩니다. 하나님이 불어 넣어 주시는 숨에, 생기에, 바람에 사람의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보면 오순절 날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내며 오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께서 바람을 통해 만물을 살리시고 계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바람을 불어 넣으셔서 생명을 주신 것처럼, 오순절 날 바람 소리를 내며 오신 성령을 통해 우리 영혼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고, 아담 안에서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을 다시 살려주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새 생명을 소유하고 살아가도록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죽어 있는 사람들을 살려 주실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 바로 에스겔서 37장에 나오는 마른 뼈의 환상입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는 죽은지 오래 되어서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없는 바싹 마른 뼈들이 가득히 널려 있었습니다.

 

에스겔이 이 마른 뼈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뼈들이 서로 맞추어지고, 근육이 생겨나고, 그 위에 살이 덮이더니 사람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그 속에 생기는 없었다고 합니다. 37:7-8절입니다.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그 상태는 마치 하나님이 흙으로 처음에 아담을 빚어놓은 그런 상태와 같았다고 합니다.

 

에스겔이 이렇게 사람의 모양으로 회복된 뼈들을 향하여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라고 하자 생기가 그 속에 들어가서 그들이 곧 살아나 일어나서는 극히 큰 군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성령의 역사로 마른 뼈와 같이 죽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마른 뼈와 같이 죽어 있는 자신들을 보며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다.’라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가 바벨론이라는 무덤을 열고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1-12절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이 말씀이 일차적으로는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다시 독립된 국가를 세울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면서, 또 이차적으로는 종말의 날에 있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회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겔서의 말씀과 같이 종말의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는 육적으로 회복되고, 나중에 영적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은 AD 70년에 나라가 망한 이후에 약 2,000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세상을 떠돌다가 1948514일에 독립 국가를 세움으로 육적인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영적인 회복입니다. 영적인 회복구약으로 보면 다니엘서가 예언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위해 남은 마지막 한 이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신약으로 보면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7년 대 환난 때의 중간쯤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영적인 회복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영적인 회복은 개인적인 회복입니다. 개개인이 예수를 믿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전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민족적인 회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무덤을 열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이 에스겔서의 예언이 성취될 것입니다. 아멘.

 

인류역사 전체로 보면 이 오순절의 회복은 먼저 이방인들에게서 일어납니다.

요엘서 2:2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들이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이 요엘서가 예언하고 있는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는 바로 그 일이 바로 오순절 날에 일어났습니다. 오순절 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생명의 바람을 사람들에게 불어 넣으심으로, 약속하신 성령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던 120명의 사람들이 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이들이 성령을 받기 이전에는 예수님을 죽인 당국자들을 두려워하여서 숨어 지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으로 그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면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서, 자기의 생명을 위협하던 사람들에게 까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통해 다시 그 영이 살아난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그리고 로마 전역으로 전파되어 나갔고, 그 이후에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되어 온 것입니다.

 

이렇게 온 세계로 확장되어 나가는 복음 전파를 통해, 성령의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 바로 에스겔서 47장입니다. 그 내용은 성전 제단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환상입니다. 성전 제단에서 흘러나온 물은 성전 문지방 밑으로 흘러 나와서 그 흘러가는 곳곳마다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이루어 갔습니다. 그리고 사해 바다로 흘러들어가서 죽어 있던 사해 바다를 다시 살려 내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오늘날은 죽음의 바다와 같았던 이 세상 속에 복음이 전해져서,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세계만방에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 세상 전체 인구 중에 복음을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약 1/4은 된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박해를 무서워하며 숨어 지내던 제자들이, 힘과 권력을 가지고 위협하는 그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유대인들은 전혀 상종하지도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들까지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였고, 심지어는 자기들을 무력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 사람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였고, 나중에는 황제 숭배를 강요하며 자신들을 박해하였던 그 사람들 까지 찾아가서 목숨을 돌보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이 복음이 온 세상에 편만하게 된 것입니다.

 

정리하면) 오순절 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임하신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바람 즉 성령을 통해 생명을 살려주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령의 역사 안에서 구원을 받았고, 이제 이 성령에 붙잡혀서 오순절에 시작된 그 생명의 역사를 세상에 전하는 전도자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오순절 신앙위에 세워진 우리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아멘.

 

두 번째 살펴볼 것은, 불이 혀처럼 갈라지는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3:16절 말씀을 보면 세례요한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세례를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기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요.’

 

이 말씀의 성취가 바로 사도행전 2:3절입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불같은 열정이 일어나고, 불같이 뜨거운 능력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면 이런 열정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좀 다릅니다. 그러면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불의 이미지가 무엇입니까? 성경이 증거 하고 있는 불은 소멸하는 불입니다. 하나님은 이 불로 죄를 소멸하시고 죄를 깨끗이 정화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사야서 6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친히 뵈옵고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왜요. 죄인인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뵈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보게 되면 죽음 밖에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불타는 숯불을 가지고 와서 이사야의 입술을 지집니다.

불타는 숯불을 통해 이사야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태워준 것입니다. 이렇게 은 우리의 죄를 태우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죄악들을 다 태워버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성령이 불의 혀 같이 임하셨다는 것은 사람들의 죄를 태워주고 사람들에게서 죄악들을 제거해 주시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죄를 태워버리게 하시는 성령의 불이 왜 중요합니까?

만약 죄를 태워주고, 죄를 이기게 해 주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성령을 통해 생명을 주시고 성령을 통해 은사와 능력을 부어주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나가서 성령을 받기 이전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처리하지 못한 죄로 인하여 결국에는 넘어지고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처리하지 못한 죄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성령 받기 이전보다 더 큰 손해를 끼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작은 능력을 가진 사람은 넘어져도 그 영향력이 작습니다.

그러나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넘어지면 그 영향력은 훨씬 더 큽니다. 이런 사람이 넘어지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나 하나님의 나라에 큰 피해를 가져다줍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는 먼저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바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의 역사가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불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불로 우리 죄악을 태워주실 때 우리가 죄에 대해서는 점점 죽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해 나아가게 됩니다.

 

성령이 하시는 이 두 가지 일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불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균형을 잡고 있을 때 우리는 비로써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서, 예수님과 교회를 위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바람과 같은 성령의 역사와 불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됩니다.

 

정리하면) 오순절 날 불의 혀처럼 임하신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불이 더러운 모든 것들을 태어 버리듯이 성령의 불로 우리의 모든 죄와 심지어 죄의 근원까지 다 태워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열매 맺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세 번째 살펴볼 것은, 120명의 성도들이 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2:4절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기 사용된 충만함 차고 넘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물 컵에 물을 부으면 먼저는 물이 컵 안에서 차오르다가 나중에는 컵이 더 이상 물을 담을 수 없게 되면 흘러서 넘치게 됩니다.

 

성령이 성도들에게 충만했다는 말은 이렇게 성령이 성도들을 가득 채웠을 뿐 아니라 성도들의 밖으로까지 흘러넘치는 상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태를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과 함께 대화하거나 또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는 사람의 설교를 들으면, 그 흘러넘치는 성령을 느낄 수 있고 또 그 성령의 은혜의 역사에 함께 참여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러면 사도행전 1:5절에 나오는 성령 세례는 어떤 것입니까?

성령충만과 성령세례는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이 문제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장로교에서는 오늘날 약식 세례를 베풉니다.

하지만 본래의 세례는 사람을 물속에 넣고 마치 빨래를 하듯이 그렇게 흔들어 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침례교에서는 세례를 침례라 부르면서 사람들을 물속에 완전히 잠기게 합니다. 저도 사실은 세례를 침례로 받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령으로 세례 혹은 침례를 받는 다는 것은, 내가 성령이라는 물속에 푹 잠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역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마음 안에 성령이 꽉 차서 흘러넘치게 하는 성령 충만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성령 속에 들어가서 그 성령 안에 푹 잠기게 되는 성령 세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이 둘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성령 속에 들어가서 나를 완전히 푹 잠그게 될 때, 그렇게 성령에 푹 잠긴 내 마음도 성령이 충만해 져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령으로 나의 안이 채워지고, 성령으로 나의 밖이 싸여 있는 그런 삶이 바로 예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삶입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비로써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정리하면)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임하신 것은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려주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이 마치 불의 혀가 갈라지는 모습 으로 임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처리해 주시고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 주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10일 동안 기도에 전념한 것 같이, 우리들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한 사람들이 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성령 주실 것이라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을 받아 성령충만한 성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멘.

 

네 번째 살펴볼 것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동일한 약속을 받고 살고 있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령의 바람을 통해 생명을 살려주시는 역사가 우리들에게서도 있습니까?

성령의 불을 통해 죄를 소멸해주시는 역사가 우리들에게서도 있습니까?

 

예수를 믿고 있는 우리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주시는 이런 역사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주시는 죄를 이기는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증거와 열매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입니다.

 

구약성경 요엘서를 보면 성령이 역사하시는 시대가 되면 사람들이 장래 일을 말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 사람들은 꿈을 꾸며, 이상을 보게 될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라면 이렇게 장래 일을 말하며, 꿈을 꾸고 이상을 보는 이런 성령의 역사가 우리들에게서, 우리들의 교회 안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장래 일이 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꿈을 꾸고 이상을 보고 있습니까?

 

에스겔서를 보면 성령이 역사하시는 시대가 되면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서 그 흘러가는 곳곳마다 죽었던 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이 생명수는 죽음의 바다인 사해까지 이르러 그 사해 바다를 생명이 요동치는 바다가 되도록 한다.’고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이런 생명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 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까?

 

성경은 오늘 우리시대를 가리켜 성령이 역사하시는 시대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이런 일들이 우리들에게서 나타나야 하지 않습니까? 이 시대 속에서 사역하고 있는 교회들 속에서 나타나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증거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에게서 나타나지 않습니까? 왜 이런 증거들이 성도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 속에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볼 때 왜 이 시대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시대가 아닌 것 같아 보입니까?

 

그 이유를 우리는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성도들이, 교회가 이렇게 성령 주시기를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도들이, 교회가 이런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고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은 이런 성령의 역사보다는 다른 곳에 소망을 두고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은 마치 교회를 크고 아름답게 건축하는데 소망을 두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또 최상의 교회 시설을 갖추어 놓고 완성도가 높은 품격 있는 예배를 드리는데 소망을 두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젊은이들을 감동시킬 정도의 차원 높은 음악시스템을 도입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에 이 시대 교회의 소망이 있지 않습니다.

오직 교회의 소망은 2,000년 전 오순절 날에 하나님이 불게 해 주셨던 그 성령의 바람을 오늘 우리에게도 불게 해주시는데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그 바람을 다시 우리에게 불게 해주시고, 우리 교회에 불게 해 주시면, 성령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과 생기가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고, 우리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교회의 참 소망이 있습니다.

 

또 교회의 소망은 오순절 날 임하셨던 성령의 불이 우리 죄를 태워주시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우리의 죄를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성령의 불로 우리 죄를 태워주실 때에 비로써 우리는 죄를 이기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장래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꿈을 꾸고 계시를 보고 환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 있는 세상을 향해 생명의 복음을 전해주는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순절에 임하신 바람 같은 성령, 불과 같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마치 예수님의 부활을 목도한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기도에 전념하였듯이,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이 성령의 바람을 우리에게 불어주시고 이 성령의 불로 우리 죄를 태워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 성령 충만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무리 설교를 많이 해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그것은 사람의 말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설교를 정성껏 준비해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령의 역사이며, 성령을 통해 생명을 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가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생명을 살리는 역사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하시고, 성령의 불로 죄를 태워주시는데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간절히 기도하고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여서 성령의 바람을 불어 주실 때 우리도 살고, 우리 교회도 살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셔서 성령의 불로 우리 죄를 태워주실 때 우리도 살고, 우리 교회도 살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누가 받았습니까?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던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1:14절 말씀을 보면 약속을 믿고 기도하던 120명의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을 통해 새 생명 주시기를, 성령의 불을 통해 우리가 죄를 이기고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극복하고 이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죽어 있는 세상에 새 생명을 전해주는 성령의 역사에 쓰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앞에 열려지는 2022년도의 삶을 살아갈 때,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복된 교회가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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