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평강의 기원
에베소서 1:2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13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들을 바울서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바울 서신을 읽어보면 그 모든 서신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1절에서 살펴본 로마식의 인사입니다.
로마인들은 편지를 쓸 때 가장 먼저 그 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를 명확하게 기술하였습니다. 바울도 이런 로마인의 인사법을 따라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발신자가 누구이며 그 글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울서신을 읽으면서 그 말씀들이 바울이 어느 교회에 보낸 말씀이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이어지는 2절 말씀에서는 유대인의 인사법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편지를 써 보낼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였습니다.
바울도 이런 유대인의 인사법을 따라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면서 그 편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기원하였던 은혜와 평강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세 번째로,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기원하였던 ‘은혜와 평강’에 대해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은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거저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은혜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charis)라고 합니다.
이 카리스는 본래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베풀어주는 호의나 친절’을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나중에 교회 안에서 쓰일 때에는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카리스라는 단어가 교회 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인해 아무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구원’을 말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래 사람들은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아담의 범죄에 함께 속하여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예정되어 있었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사람으로 보내주시고, 사람들의 모든 죄를 그 한 몸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려주시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신 구원의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 십자가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그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죄인 된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은 이 은혜로 받는 것이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다음에는 평강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평강은 헬라어로 ‘에이레네’라고 합니다.
‘에이레네’는 히브리어 ‘샬롬’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평안하고 안정된 심리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평강’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죄를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임한 심령 천국 즉 마음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참된 ‘평강’이 그 마음의 참 ‘평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은혜와 평강임을 알게 됩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바울은 이 ‘은혜’와 ‘평강’이라는 단어의 순서를 한 번도 바꾸어서 기록한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은혜와 평강 있을지어다.’ 라고 썼지, ‘평강과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고 쓴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만, 하나님이 그 마음에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순서를 단 한번도 바꾸지 않고, 먼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기원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그 마음속에 누리며 살게 되는 ‘평강’을 기원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이 ‘은혜와 평강’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덧입기를 간절히 열망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이 은혜와 평강을 살아가는 날마다의 삶 속에서 충만하게 누리며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떤 통로를 통해서 이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까?
2. 하나님이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살펴볼 것은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평강’을 어떤 통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첫째, 은혜와 평강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된 우리들에게 복음의 약속을 통해서 은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은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절기와 제사의식을 통해서 거듭거듭 그 주실 은혜를 상고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범죄한 이스라엘 민족이 그 죄를 회개하고 나올 때 그 죄를 용서해 주시는 사건들을 통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구약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기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3-6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심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됨으로 은혜의 역사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며 은혜 안에 나타난 그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며 살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둘째, 은혜와 평강은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은혜에 대한 최초의 약속은 창세기 3:15절의 원시복음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복음의 약속의 성취로 오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이 되어 오신 성육신을 통하여,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는 속죄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이 원시복음에서 약속하신 구원의 약속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비하와 속죄와 승귀의 사역을 우리는 메시야 사역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를 요한복음 1:9-12절 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참 빛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은혜가 주어지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은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아멘.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이 은혜에 대해 에베소서 1:7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집니까?
첫째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둘째는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2절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멘.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받았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의 통로로 세워주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구주로 영접했느냐? 영접하지 않았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살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주님으로, 우리 삶의 주인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아멘.
이렇게 볼 때 믿음을 가진 우리들이 가장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계신가? 아니면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서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님을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믿고 영접하게 될 때, 우리는 죄 사함을 받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며, 이렇게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어지는 것이 바로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예수님을 내 마음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점검해 보았더니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으로 계시면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그 자녀 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해 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지속적으로 공급받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은혜 받은 사람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평강을 누리며 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무엇보다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님으로,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일입니다. 이것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없습니다.
정리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마음 안에 임하게 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거저 값없이 우리 마음 안에 충만한 은혜를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저거 주시는 충만한 은혜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열망하며 살아가는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것이 바로 하늘의 평강입니다. 아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 안에 부어 주시는 이런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입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들이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려고 하면
첫째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셔서 공생애 사역을 행하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의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또 기적까지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떠나갔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었지만 자신의 구주로는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대등한 존재로 서서 믿고 살았기 때문에 또 스스로 생각하여서 아니다 싶으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주님으로, 그 인생의 주인으로 믿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왔노라.’(마 9:13, 막 2:17, 눅 5:32). 우리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려면 먼저는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죄인들을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전에는 죄악 된 삶을 즐기고 살았으나 이후에는 신령하고 경건한 삶을 살기에 힘쓰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 삶을 고쳐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며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늘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영접기도를 드리고 나면 그것으로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 구부러지고, 구겨지고, 어그러지고, 부서진 우리의 삶을 고치시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고쳐야 할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매일 매일 우리들을 고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을 통해서 내게는 고쳐야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를 고치실 수 있도록, 나의 죄를 토설하고 고백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예수님 앞에서 고치고 다듬어져야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날마다 예수님이 나를 고쳐주시길 원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삶입니다. 이런 삶이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 위해서는
둘째 죄가 가져다 줄 비참한 결과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잣집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 자기 몫의 재산을 미리 받아 가지고, 먼 도시로 나가 방탕한 삶을 살다가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궁핍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그 사람은 돼지의 사료로 쓰이던 쥐엄 열매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하나 그것도 거저 주는 사람이 없는 아주 비참한 처지에까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 사람은 그 길을 돌이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둘째 아들이 그 삶을 돌이키게 된 것은, 아버지를 거역한 죄가 가져다 준 비참한 결과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아버지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면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떠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산 그 삶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를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이 둘째 아들은 그 인생을 실패하고 난 이후에야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아들로, 아버지의 법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바로 회개의 출발점이고 돌이킴의 시작이었습니다.
죄인들이 이렇게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님을 그 삶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과거 내가 주인이 되어 산 삶이 얼마나 잘못된 삶이고, 얼마나 불행한 삶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 위해서는
셋째, 그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20절 말씀은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약속에 근거하여 우리가 예수님께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면,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시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아멘. 이것이 지금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믿음의 삶을 우리 인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예수님이 재림의 주로 오시는 그 날까지 지켜 나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4.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한 이후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한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늘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그때부터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 동행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후 우리는 매 순간 나의 삶에 함께 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하고, 또 내 삶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 예수님께서도 이런 우리의 삶에 함께 해 주시며 은혜와 긍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한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친밀한 교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믿음을 드리는 헌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아주 강도 높은 훈련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 훈련은 아마 우리에게 주어진 생애를 다 마치는 그날까지 계속되는 훈련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바울의 이 고백이 장차 우리가 믿음의 삶을 다 마치고 주님께로 갈 때 하게 되는 승리의 고백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한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 하나님과의 깊어지는 관계 속에서 내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우리의 생애 전부를 예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을 보면 믿음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많은 부분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삶을 버리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는 삶으로 계속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 삶을 보면 우리 입술로는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익숙한 고백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실재적인 삶 속에서는 여전히 내가 주인이 된 채 살아가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 예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매일 나의 삶을 예수님 위탁하고,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삶을 통해 우리의 신앙은 더욱 성숙되어 가고,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친밀해져 가는 것입니다. 아멘.
5.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들이 누리는 권세를 살펴봅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권세는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요한복음 1: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분명히 영접했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어떤 권세가 주어집니까?
자녀에게는 그 삶의 필요를 부모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는 그 능력의 한도 내에서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줍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권세를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권세가 있음을 확인시켜 주셨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열심히 구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까지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둘째, 그래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기도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7:7-12절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에서 가장 분명한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도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안다고 하시면서, 하물며 거룩하시고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않겠느냐?’ 라고 반문하시고 계십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그런데도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도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내가 확실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변화된 신분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이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실 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무엇보다 먼저, 내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책임져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확신했던 사람이 바로 ‘조지 물러’였습니다.
조지뮬러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1만 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보아주었습니다. 조지뮬러는 그 일생 동안 최소한 5만 번 이상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조지 물러’에게는 4가지 재정 원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필요할 때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고정된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둘째, 아무리 처지가 급박해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녀들을 돌봐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필요한 것을 아뢴다.
셋째,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않고 외상으로 물건을 사지 않으며 아무것도 꾸지 않는 대신에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만 신뢰한다.
넷째, 돈을 남았더라도 저축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으로 알고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전부 다 쓴다.
‘조지 물러’는 이 4가지의 원칙을 평생 지키면서 기도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약속해 주신대로,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와,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았다고 합니다. 조지 물러가 이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조지 물러의 삶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하는 것은 ‘나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그 마음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손을 놓치지 말고 꼭 붙들고 가시길 바랍니다. 혹 이전에는 예수님을 주인 삼고 살았지만, 지금은 내가 인생의 주인 되어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분들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다시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매일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매일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찾되 어려울 때에만 찾지 말고 매일 예수님을 주님으로 주인으로 찾고 영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공급받으며 살아가는 유일한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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