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3. 11. 19. 15:21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

고린도전서 1:18-24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이되 내가 진리를 찾아가는 자력 구원의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시는 타력 구원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찾아 구원해 주실 때에는 일정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과정을 우리는 구원 서정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구원의 서정은 아주 단순합니다.

로마서 8:29-30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구원의 과정을 보면 가장 먼저는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선택이 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선택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렇게 불러 주신 사람들을 의롭다 해 주시고, 의롭다 해 주신 사람들을 결국에는 영화롭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의 과정 구원의 서정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고린도전서 1:18절 말씀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가 구원의 종교이지만, 그 중심 메시지인 십자가 복음이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이 하나님이 창세 전에 구원해 주시기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이고,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십자가 복음이 서로 다르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린도전서 1:22-24절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주신 그리스도를 전해 주니, 십자가 복음이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었고, 지혜를 구하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시고 때가 되어 불러 주신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관계없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로 믿어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왜 바울이 전해 주었던 십자가의 복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미련해 보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믿어졌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먼저는 사람들이 추구하며 살았던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은 구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니 미련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창세 전에 하나님이 택하시고, 때를 따라 부르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믿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추구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복음이 믿어지기도 하고 믿어지지 않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대하는 믿음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밤의 한기를 완화 시켜 주시고, 또 때를 따라 먹여주시고 입혀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부류의 서로 다른 사람으로 구분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삶에 함께해 주시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믿었던 사람들과 믿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은 광야의 단순한 생활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나도 무료하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황무지와 사막뿐인 광야에서 40년 동안 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삶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늘 의심하고, 원망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공동체 속에 한두 명 있게 되면 나중에는 어떻게 됩니까?

마치 빵 속에 넣은 누룩처럼 공동체 전체 구성원의 신앙에 나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쁜 영향력을 막으시는 방법으로 선택하신 것이 바로 독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에 보내어 사람들을 물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독사에게 물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죽어가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너는 놋 뱀을 만들어서 긴 장대 위에 달아 놓고, 백성들에게 장대 위에 높이 달아둔 놋 뱀을 쳐다보면 살게 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상식에 어긋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모세가 자신들에게 너희가 광야에 나가면 이렇게 생긴 풀이 있을 것이다. 그 풀에는 독사의 독을 해독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 그러니 너희는 빨리 광야로 나가서 그 풀을 찾아서 독사에게 물린 상처에 붙이라.’라고 했으면 따랐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모세는 내가 장대 위의 놋 뱀을 달아 놓을 것인데 그 놋 뱀을 쳐다보면 살 것이라고 하는 허무맹랑한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던 사람들은 모세가 전해 준 그 말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장대 위에 달아둔 놋 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뱀독은 해독되었고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다 죽게 하시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서, 40년 동안 광야에서의 신앙 훈련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사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구분해 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이 있는 사람들과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중요한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모세가 전해 준 그 말씀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믿음이 없었던 사람들은 모세가 전해 준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준 어리석은 교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전해 준 그 말씀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해 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됩니다. 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믿고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전해 준 그 말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고 모세가 준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말이 옳은 말인지? 잘못된 말인지?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치에 맞는 말이면 따르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면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당시 믿음이 있었던 사람들은 모세가 전해 준 그 말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던 사람들은 모세가 전해 준 그 말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도, 순종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도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미혹하는 말을 구분해 볼 수 있는 판단력과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을 보면 이런 판단력과 분별력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 심지어 많은 목회자들이 이단에 넘어가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난 1113일자 중앙일보 두 면에 신천지는 이런 광고를 내었습니다.

지금 신천지에서 말씀 공부를 하고 있는 목회자가 12,732명이라고 하고, 그중에는 아주 신천지 교회로 교회 간판을 바꾼 곳이 1,365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한 신천지의 거짓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 광고에서는 신천지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신천지의 가르침은 신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한 진리라는 문구까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지금 이 시대는 이미 미혹의 시대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미혹의 시대가 아니고는 어떻게 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신천지가, 거짓된 주장을 하고 있는 신천지가 일간 신문에 이런 광고를 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미혹의 시대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뱀과 같은 지혜와 비둘기와 같은 순결함이 요구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듣게 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이단이 미혹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들은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합니다.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들은 말씀이 사람이 깨달았다고 하며 가르쳐 준 사람의 말이라면, 우리는 그 말이 이치에 맞는 말인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인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치에 맞는 말이면 따르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면 거절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7에는 하나님의 인을 맞은 하나님의 종들이 144,000명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144,000명이 신천지라고 하는 말은 사람의 말입니다. 신천지라는 이단의 괴수 이만희의 말입니다. 신천지만 이런 주장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이단들이 다 이런 주장을 합니다. 이런 이단의 말에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이 12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나왔다는 말씀 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신천지가 바로 이 12지파이며, 신천지의 12지파에 소속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사람의 말이며, 거짓된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환난의 때 성도들은 하나님이 예비한 처소로 피난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예비 처가 피지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 교회 성도들을 데리고 피지로 이주 해간 과천 은혜로 교회 신옥주의 말은 사람의 말입니다. 이런 이단의 말을 믿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따라갔습니다.

 

또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겠다고 브라질로 간 돌나라한농복구회는 어떻습니까?

그 교주 박명호(본명:박광규)엘리야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으나, 1994년 북한에서 남침할 것이라고 하며 모든 신도들이 피난처인 시골로 이주시켜 은둔형 종교공동체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200072'성령이 내게 임하시면'이라는 설교를 통해 자신과 합하여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다는 '창기 십자가' 사상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은 교주를 통해서 자신이 새로운 예수님을 낳겠다고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2017년 브라질 바히아주에 있는 거대한 농장으로 이주하여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동력 착취와 인권침해 사례를 20229PD수첩에서 보도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이단들의 유혹과 미혹을 마주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그 말의 진위여부를 먼저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들도 이단의 유혹과 미혹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을 구분해 볼 수 있는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사실도 아닌 것을 사실인 양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짓으로 성도들을 미혹하려고 하는 이단들입니다.

이런 이단들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이런 사람들을 앞세우고 삼킬 자를 찾아 우는 사자처럼 다니고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조심하고 조심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시대가 바로 오늘날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을 보면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 즉 거짓 선지자가 용처럼 말하며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미혹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용의 말을 구분해 들을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세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속에는 거짓된 괴담을 퍼뜨리는 사람들, 괴담에 미혹되어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괴담을 따라가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어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괴담만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단에 넘어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단이 유혹하는 말에 매력을 느끼고 따라갑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진리를 아는 지식도 없고, 진리를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미혹하는 이단의 유혹을 참 진리라고 믿고 따라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미혹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참과 거짓을 구분해 낼 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분별력이 있었더라면 우리 사회는 오늘날보다 더 나은 사회가 되었을 것이며, 한국교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한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구원의 과정을 보면, 가장 먼저는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선택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선택하신 사람들을 부르심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을 신학적으로는 소명이라고 합니다.

 

이 소명은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제일 첫 번째 관문입니다.

그런데 2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유대인이냐 헬라인이냐 하는 인종적인 차별이 없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부르심은 시대의 차별도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고, 노아를 부르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셨듯이,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은 12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도바울을 부르셨으며, 그 후에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우리들도 불러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국가의 차별도 없습니다. 사람이 보면 남한과 북한은 다른 나라입니다. 지금은 비록 휴전상태에 있지만 군사적인 대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국가적인 차별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남한 사람들도 부르시고 북한 사람들도 부르시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빈부귀천의 차별도 없으십니다. 그 사람이 부자이든지 가난한 사람이든지 그 어떤 사람이든지 관계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이 하나님의 부르심 소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소명 즉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무엇입니까?

 

신약의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이 단어는 로부터 불러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 단체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특징은, 우리가 에클레시아 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는 이 세상으로부터 세상 밖으로 불러 모아 놓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아주 놀라운 특혜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구별하시고 택하신 우리들을 세상으로부터 분리해 내시는 특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소명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심을 받은 교회는 다시 세상 속으로 파송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이제 세상 속으로 다시 가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 받은 사명을 감당하면서 세상 속에서는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이 살아야 할 삶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두 가지 모습 즉 부르심을 받은 교회, 보내심을 받은 교회, 소명을 받은 교회, 사명을 받은 교회라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3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첫 단계가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두 번째 단계가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이 부르심은 사람들이 구원으로 향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창세 전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들의 삶 속에 처음 나타나게 되는 형태가 바로 부르심 입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선택해 두신 사람들을 때가 되매 부르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 아담을 부르시고, 노아를 부르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메시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12제자를 부르셨습니다. 마가복음 3:13절입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19:5절입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죄인을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5:32절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로마서 1:6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예수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마태복음 10:20절입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이 말씀은 사람들이 전도할 때, 목회자가 설교할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 말씀을 알아듣고 또 그 마음속에 믿음을 갖게 해 주시므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고, 성령이 역사해 주시지 않으므로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의 종류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소 즉 내적 부르심이고, 다른 하나는 외소 즉 외적 부르심입니다. 이 외소를 다른 말로는 보편적인 부르심, 혹은 일반적인 부르심이라고도 하며, 내소는 효과적인 부르심, 혹은 유효한 부르심이라고도 합니다.

 

첫 번째는, 외소 즉 일반적인 부르심입니다.

 

외소는 세상 만민에게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복음을 선언하는 것을 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나가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성경에 약속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라고 전해 주는 것이 바로 외소입니다. 이사야서 55: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엇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 이사야의 외침도 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외소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과 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듣게 되는 부르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입니까? 외소는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려고 택한 백성들에게는 너희는 내게 속하였으니 내게로 돌아오라는 소집명령이라면,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신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으시다는 하나님의 자기 권리주장입니다. 양면적인 이유로 해서 하나님은 택한 자와 택하지 않은 자의 구분 없이 일방적으로 부르시는데 이것이 외소입니다. 이 외소를 통해 불신자들이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변명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택한 자와 택하지 않은 자를 구분하지 않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부르심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고 거절하는 자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소 즉 효과적인 부르심입니다.

 

내소는 하나님의 거부할 수 없으신 부르심입니다.

이 내소는 하나님이 사람의 귀에다가 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다가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내소는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역사하여 부르시는 부름으로, 이것을 다른 말로는 사람들이 거절할 수 없는 부르심 즉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하기도 합니다. 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말은 거절이 불가능한 은혜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내적 소명을 받아서 예수를 믿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을 믿게 되고, 성령을 통해 새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경험입니다. 이 구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인 부르심을 우리는 내소라고 합니다.

 

셋째, 내소의 활동 방법입니다.

 

사람들을 강제로 교회에 데리고 와서 앉혀 놓을 수는 있지만, 강제로 믿음을 갖게는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강제로 예수 믿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전 시대 로마 카톨릭과 같이 군대를 동원해서 사람들이 믿음을 고백하게는 할 수 있지만, 이것으로는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게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믿음을 갖게 해 주는 것은 바로 내소의 활동입니다.

이 내소는 도덕적인 권유를 통해서 다가오기도 하나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고, 죄인 된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신 그리스도를 믿게도 해 줍니다. 이렇게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고 감동해 주심으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내소의 활동입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 신자였던 한약상 이응찬이라는 사람은, 만주에 가서 팔 한약재를 싣고 압록강을 건너가다가 배가 뒤집혀서 한약재를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만주 땅에서 떠돌고 있을 때 로스 선교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로스 선교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면서 성경 번역을 도와주다가 마음이 열려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소의 활동방법입니다.

그 후 성경 번역에 참여했던 조선인 몇 사람이 그 번역한 성경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집안현 교회, 의주교회, 소래교회 등등을 세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는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중생도 있고, 우리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내소도 있습니다. 내소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이 내적 소명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있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알고 의식적인 반응을 하게 됩니다.

 

내소의 목표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소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가게 역사합니다. 베드로전서 1:15-16절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또 이 내소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하나 되게 하고, 예수님의 사람이 되게 하여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해 줍니다. 고린도전서 1:9절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해 줍니다. 하나님이 이런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내소입니다.

 

내소는 취소도, 변경도, 불가능한 은혜입니다.

1998525일에는 컴퓨터 집계 실수로 미스코리아 취소 파문이 있었는데, 2016년에는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사회자의 실수로 2분 만에 우승자가 미스 콜롬비아에서 미스 필리핀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런 실수가 있지만, 우리 하나님의 부르심에서는 이런 실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영원하며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시고, 또 때를 따라 불러 주셔서, 오늘날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시험들을 이겨내고 영화롭게 되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살게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넷째, 내소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구원을 받게 되는 대원칙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4:12절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내적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게 됩니다. .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 시대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조선시대 사람들입니다. 또 자신의 의지로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때 죽은 어린 아이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런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어린아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어거스틴은 엄마 젖을 먹던 아기 때 엄마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엄마 젖을 깨물었던 일까지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시편 51:5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자신이 죄 중에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어머니가 이새의 본처가 아니라서 한 말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에베소서 2: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그러면 어린아이들,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던 이방인들은 다 지옥 갑니까?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 부분은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부분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다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내적 소명으로 불러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불러 주신 사람들에게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게 되는 삶의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8절 이하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는 다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 복을 이어 받게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 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데살로니가 전서 4:7-8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라.’

디모데전서 6:11-12절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열매로 알게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나타나는 열매를 보고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장차 영화롭게 해 줄 사람임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경이 전해 주고 있는 구원의 순서는 첫째,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이 택하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사람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내적 소명으로 구원의 첫 경험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이 내적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결국 그 가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장차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신 가치는 실로 엄청납니다.

이 부르심은 삼성 그룹의 소유주가 어떤 사람을 그 후계자로 부르는 것과, 정치 지도자가 어떤 사람을 그 후계자로 부르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세상의 부르심은 제한적이고 유한한 부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한하고 영원한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늘의 복과 기업을 누리며 살게 하는 부르심입니다. 또 이 부르심은 하늘에 예비 되어 있는 그 모든 것을 올 패키지로 누리며 살게 해 줍니다.

 

우리 모두는 나를 믿음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감사하고 감격하며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2023년 추수 감사 주일이 되고, 말세를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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