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필수 3 요소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이루어진 삼위일체 유일신 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이시며 동일하신 한 하나님이시지만, 그 위격이 삼위로 구분되어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그 분을 본 사람이 없으나 성부 하나님 품속에서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으니 그 분이 바로 성자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한복음 1:18) 다시 말해서, 우주의 창조자,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빛으로 이 땅위에 오셨으니 그 분 안에 생명이 있고 그 분을 영접하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13)
이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심판 주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참 하나님이시며 유일한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골고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으시고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르는 것이 공의이신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단번에 치르시고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 스스로가 우리를 위해 하나님과의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죄를 짓고 죄 속에 사는 어느 인간도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오직 죄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만이 능히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보혈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긴 숨을 내쉬고는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이 그 만큼 절실하고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영이신 성령으로 찾아 오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셔서 거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거듭나 변화되어 인도함을 받고 거룩 즉 성화가 시작되면서 좁은 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시며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거룩하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실 때 우리에게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까요.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임하실 때 성령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 성령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우쳐 주시고 책망하신다(요한복음 16:8)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해 철저히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때 일반적으로는 눈알만큼의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면서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마땅한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회개가 터진다는 간증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인인 인간은 자신 스스로 죄를 진심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단지, 양심의 가책으로 죄를 후회하는 정도이지 진실로 죄를 깨닫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는 참된 회개를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참된 회개를 하게 되면 죄를 단지 미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를 혐오하고 증오합니다. 죄라면 진절머리를 내고는 도망치게 됩니다. 날마다 죄와 피터지게 싸우며 부정한 생각이 들어도 하나님께 곧바로 돌이키며 죄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그 마음의 소원이 되며 마음이 항상 깨끗하고 청결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내 안에 겉 사람은 죄를 원하나 성령의 지배를 받는 나의 속사람은 죄를 증오하며 탄식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참된 회개를 하였다고 해서 완전히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회개한 사람들도 때로는 죄에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와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범하지는 않습니다. 성령으로 참된 회개를 한 자는 자신의 죄성을 탄식하며 죄로부터 나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즉 예수님뿐임을 철저히 깨닫습니다. 이렇게 된 자는 하나님, 즉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 분만을 믿고 의지합니다.
이렇게 될 때 "나의 의"는 사라지고, "예수님의 의"가 나에게 전가되면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거듭난 자로 살게 됩니다.
즉 삶의 가치관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이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 분만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나도 미워하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나도 기뻐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회심하여 거듭난 자는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나와 항상 눈물의 "회개기도"를 즐거워하고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남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세상에 별로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회심하여 거듭난 자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면서 그 사람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인도하시면서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3:23)
사도 바울은 이를 두고 성령의 열매로 9가지를 가르쳤고, (갈라디아서 5:22~23) 베드로는 이를 두고 경건의 열매로 8가지를 설명했습니다. (베드로 후서 1:5~7) 그렇다면, 열매로 표시되는 거룩이 무엇인가요? 거룩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cut"란 뜻이 있습니다. 칼로 나의 죄와 허물을 짤라 내고 세상으로부터 구별됨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은 "하나님만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우리에게 죄가 엄습해 들어옵니다. 인간이 하는 짓이라고는 죄짓는 일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원하게 되면, 그 분의 말씀이 꿀같이 달게 되고 항상 그 분을 사랑하고 묵상하게 되며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절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즉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성령으로 거룩하게 변화되어 거룩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30배, 60배, 100배의 차등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거룩 즉 성화는 점점 자라고 발전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가르치기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14) 즉, 사람은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룩하게 변화되지 못하면 천국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13)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10년, 20년 교회를 다니면서 성령으로 아무런 변화를 받지 못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착각하며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나 않으십니까. 혹시 "나는 예수님을 단순히 믿는다고 고백하였기 때문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죄로부터 자유케 되었다"라고 말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을 보이면서 살고 있지나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아무리 주를 믿는다고 고백하여도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7:21) 그리고 덧붙여서,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을 지라도,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저는 "믿음으로 구원된다."라는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절대로 우리의 어떠한 행위로도 구원받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됨을 믿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 서에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고 구원된다"라고 가르쳤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의 어떠한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 분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디도서 3:5)
여기서 성령으로 새롭게 하심은 바로 성령으로 회개, 거듭남, 거룩하게 변화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나 거룩하게 변화된 자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라고 여기시며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대부분 교회들이 오직 믿음이란 말속에 파묻혀 성령으로 회개, 거듭남, 거룩의 설교가 빠지고 대신 축복의 설교가 난무하고 있으니 가슴이 메어집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 (예레미아 16:9)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에스겔 36:26)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신다. (에스겔 36:27) 그리고 모든 더러운 것과 모든 우상 숭배에서 정결하게 하신다. (에스겔 36:25)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고 돌이키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에스겔 33;11)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어 령으로 거듭나게 하시어서 하나님 뜻에 따라 순종케 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또 그렇게 행함으로써 마침내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중세시대 때 카톨릭이 심히 부패하여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때 종교개혁 가들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관을 성경말씀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주시어서 크게 다음의 3가지를 행하십니다. 첫째가 예수님은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회개시켜 주시어 죄인의 죄를 깨끗이 씻으시고 값없이 용서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곧 "칭의 "입니다. 둘째가 예수님은 성령으로 죄인의 마음과 본성을 새로 빚으시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곧 "거듭남", 즉 "중생"입니다. 셋째가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자안에 성령님이 내주시어서 그 사람을 거룩, 즉 성화시켜 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곧 "성화"입니다.
칭의, 거듭남, 성화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즉,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회심을 통해 거듭남이 주어지고 이때부터 거룩 즉 성화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그 중에 칭의와 거듭남은 단번에 이루어져 완성되는 것이지만, 성화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자라고 성장합니다. 즉, 칭의를 받은 사람은 거듭난 자이고 거듭난 사람은 칭의를 받은 자이며 이런 사람들이 성화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밟아 거룩해져 가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칭의, 거듭남, 성화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지만,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능동적인 행위가 함께 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뜻하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새로운 본성과 원리를 따라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성화는 일시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점점 자라며 그 성화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습니다. 성화는 점진적이 성령의 사역이며 우리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해서 자라고 성장합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 성화의 정도가 차이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즉, 성화는 사람에게는 불완전한 일이고 천국에 이르기까지 완전해지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성화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선하게 살려고 하고 주님의 성품을 닮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며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며 항상 회개하며 의의 주리고 목말라 합니다.
물론 성화되어 간다고 해서 내면에 큰 영적 투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의 소욕이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육체를 거스리면서 옛 본성과 새 본성, 육체와 영의 사투를 벌입니다.(갈라디아서 5:17) 이러한 내면의 갈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여 스스로 성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자유는 이 땅이 아닌 천국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칭의, 거듭납, 성화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절체절명으로 필요한 3가지 요소입니다.
이러한 칭의, 거듭남, 성화 모두는 우리의 공로나 행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칭의, 거듭남, 성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너희가 돌이켜(회개/회심)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13) "사람이 (성령으로)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거룩함(성화)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14)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우리가 성령을 받아서 성령으로 회심하여 거듭나 거룩하게 변화된 자의 믿음을 하나님은 인정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나타나는 특징에 대해서는 사도 요한이 요한 일서에서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요한일서를 잘 살펴보시고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일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였다고 생각이 되시면,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정하신 때에 우리 각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어 은혜를 베푸시고 마침내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를 하나도 잃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을 소망하며 삽니다.
그래서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바른 믿음의 고백이 바로 요한계시록 22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서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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