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우리가 입어야 할 옷들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1. 4. 11. 15:30

우리가 입어야 할 옷들

로마서 13:12-14

 

사람들마다 잘 어울리는 이 있습니다.

비싼 옷이라고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싼 옷이지만 잘 어울리는 옷이 있고, 비싼 옷도 잘 어울리지 않는 옷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마다 체형이 다르고, 얼굴생김새가 다르고, 피부 색깔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옷은 그 사람의 체형과 얼굴과 피부색에 맞게 입어야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몸이 아주 뚱뚱하고 다리가 짧은 사람이 초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잘 어울리겠습니까? 혹 이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으면 아주 보기가 거북할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말라서 뼈만 남아 있는 사람이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잘 어울리겠습니까? 혹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혐오감이 들지 않겠습니까?

 

우리말에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잘 골라서 입게 되면, 그 옷은 그 사람을 훨씬 돋보이게 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게 해 준다는 말일 것입니다.

 

옷은 그 사람의 입장나이 신분에 맞게 입어야 합니다.

요즘에 유행하는 패션을 보면 마치 스타킹을 신은 것 같이 다리에 꽉 달라붙는 옷들을 입고 다닙니다. 이런 옷은 젊은 사람들이 자신은 젊고 매력 있는 몸매를 가졌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입습니다.

 

그런데 이런 옷이 유행이라고 해서 만약 어느 교회 여자 목사님, 그것도 70이 다 된 뚱뚱한 여자 목사님이 이런 옷을 입고 교회에 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그런 옷을 입고 찬양을 인도하거나, 강대상에 올라가서 설교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도들이 찬양에 집중할 수 있고, 설교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옷뿐만이 아닙니다.

만약 목회자들이 요즘 유행하는 신세대 학생들과 같이, 노란 색, 빨간 색, 푸른색으로 머리 염색을 하고 오거나, 아니면 엉덩이허벅지의 살이 다 보이도록 구멍을 뻥 뚫어놓은 옷을 입고 교회에 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모습으로 찬양을 인도하거나 설교를 한다면 성도들이 찬양과 설교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거의 남녀 구분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만 보고서는 그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병원에 갈 때, 제가 탄 버스에 어떤 젊은 여자가 타더니 제 옆쪽에 있는 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핸드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디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받는데 보니까 이제까지 여자 인줄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사실은 남자였습니다. 그 말소리와 대화가 남자와 남자가 하는 대화였습니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도 이런 실수를 하지 않습니까?

뒤에서 보면 분명히 여자인 것 같은데 앞에 가서 보면 남자인 경우도 있고, 뒤에서 보면 분명 남자인 것 같은데 앞에 가서 보면 여자인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옷은 자기의 나이와 신분과 성별에 맞는 옷일 것입니다.

나이와 신분과 성별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입어야 할 옷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합니까?

첫째, 새 사람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새 사람으로 옷을 입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4:22-24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먼저는 벗어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먼저 벗어야 한다고 합니까? 먼저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며 살던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또 골로새서 3:9절에서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라고 합니다. 또 히브리서 12:1절에서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먼저 벗어버린 후에,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3:10절에서는 새 사람을 입되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닮은 새 사람, 지식까지 새롭게 된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에베소서 4:22-25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라 살던 옛 사람을 먼저 벗어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덧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 사람을 입는 방법에 대해서는 골로새서 2:11-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먼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어 죽고그 후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안에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통해서 되어 진다고 합니다.

 

이런 성경 말씀들을 보면, 우리가 새 사람을 덧입기 위해서는 먼저 옛 사람에 속한 것들을 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마다 하루 동안 입고 활동할 옷을 골라 입기 위해서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밤새 잠잘 때 입고 있었던 잠옷을 벗어야 합니다. 잠을 자기 위해서 입었던 잠옷을 먼저 벗은 후에야 비로써 오늘 입고 활동할 새 옷을 골라 입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잠옷을 입은 채로 그 위에 다른 옷을 입는다면 그 옷이 잘 맞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옷을 입고 밖에 나간다면 사람들이 그런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보겠습니까? 아마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먼저 벗고 난 후에 입으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그리고 난 후에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상계동에는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서 계절과 관계없이 옷을 입고 다니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겨울인데도 여름옷을 입고 다니기도 하고, 여름인데도 겨울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빨래도 하지 않고 매일 그 옷만 입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감지 않은 사람처럼 늘 산발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외모가 달라졌습니다.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가방까지 하나 들고 다녔습니다. 그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겠습니까? 제가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을 그렇게 씻겨 주고, 깨끗한 옷을 입혀 준 어떤 사람이, 갈아입으라고 준 옷들이 그 안에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전에는 정말 보기에 흉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보기 좋아졌습니다. 아마 우리가 옛 사람의 모습을 벗고, 새 사람으로 옷 입게 된다면, 아마 우리들에게도 이런 변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꺼려했던 사람이었어도, 이후에는 보기 좋아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새 사람으로 옷을 입으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잘못된 옛날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살았던 어리석고 죄악 된 생활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성도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직도 죄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신앙과 세상에 양다리 걸친 채 엉거주춤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솜을 넣어 만든 바지저고리 위에다가 또 양복을 껴입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이렇게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신앙생활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아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먼저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합니다. 엉거주춤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고상한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고등한 종교입니다. 우리가 고상하고 고등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상하고 고등한 종교를 가진 사람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기독교 신앙을 가진 우리가 마치 하등한 종교인 미신을 믿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사를 읽어보면 토착신앙과 유교에 찌들어 살던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교인들 중에는 을 끊지 못하고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술을 마시고, 그 마신 술 때문에 때로 술주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교회에 올 때에도 긴 담뱃대를 등에 꽂고 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교회에서는 성도들에게 술을 먹되 취하지 말도록 했습니다.

담배를 피워야겠으면 교회가 만들어준 한쪽 모퉁이에 가서 피우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런 사람들에 믿음이 들어가자, 교회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술을 끊고 담배를 끊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당시 우리나라에는 첩을 두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첩을 여러 명 둔 사람들도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는 첩을 두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첩을 두고 산 지난날의 삶을 회개하면서 첩을 그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첩을 얻으려고 생각하지 않고 조강지처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아직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첩을 두는 일들은 어린아이 때의 일들입니다. 철없을 때에 하는 일들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철이 들지 않은 철부지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학생인 지금은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때인데도, 지금 아니면 공부할 때가 없는 대도,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핸드폰만 하고, 게임만 하면서 그 아까운 시간을 다 허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없는 아이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자라 철이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철이 들어 되돌아보면 핸드폰하며 허비했던 시간이 너무 아깝고, 게임하며 허비했던 시간이 너무 아까워 집니다. 그래서 핸드폰도 버리고, 게임을 멀리하면서, 허비한 시간을 보충해 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철이 빨리 드는 아이는 장래가 보장됩니다. 그러나 철이 늦게 드는 아이는 인생을 다 허비하고 난 후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이 점점 성장해 나가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돌아서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결국 옛 사람과 그 옛 습관들을 다 내어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그 살아가는 변화된 삶을 통해 보여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버려야 할 옛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옛 사람은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 살던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아담의 범죄 아래에 함께 속하여 죄의 종,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좌절과 절망과 심판과 고통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덧입어야 할 새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중생한 사람이며, 거듭난 사람이며, 하나님이 성령으로 새롭게 창조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의 증거대로 하나님이 그 성령을 통해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새사람을 덧입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게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는 이 말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닮게 창조함을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존재로 창조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 아담이 죄를 짓고 범죄 함으로 이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다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았던 새 사람을 다시 입으라.‘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 가지 외에도 하나님을 닮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우리의 성품들은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을 때 단번에 회복됩니다. 신학적으로는 이런 변화를 거듭남 혹은 중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예수를 믿고 중생하라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중생은 새 사람을 입어 가는 출발점입니다.

이렇게 중생을 통해 회복되는 하나님의 형상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자라고 성장해 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우리는 성화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온전하게 회복하게 되는 때가 오게 됩니다.

그 때를 우리는 영화라고 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 육체가 죽고, 우리 구원이 완성되는 그 때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영화로운 몸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영화로운 몸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우리가 바라는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대하고 사모하는 천국에서의 삶입니다. 이 천국이 우리가 믿음 안에서 꿈꾸고 소망하며 살고 있는 신앙의 최종적인 목적지인 것입니다. 아멘.

 

또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합니까?

둘째,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고 합니다.

 

로마서 13:12절 말씀을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하심으로, 먼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입어야 하는 옷은 빛의 갑옷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로마서 13장에서는 어둠의 일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라고 함으로, 어둠의 일이 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 다툼, 시기 같은 것들이 어둠의 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고 사람들은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빛의 갑옷은 어떤 사람들이 입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면, 하나님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는데, 이 성령 안에서 우리 영이 거듭난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거듭난 새 사람을 덧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바로 빛의 자녀들입니다.

이렇게 빛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입고 살아야 할 옷이 바로 빛의 갑옷입니다. 이렇게 볼 때 빛의 갑옷은 빛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변화된 삶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빛의 갑옷을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생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이 이 세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변화된 새 생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죄악 된 이 세상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시켜 나아가는 적극적인 생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빛의 아들들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옛 것 속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내고 인도해 내는 삶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해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아멘.

 

다른 성경을 보면 우리가 빛의 갑옷을 입고 빛의 아들들로 살아가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학교생활을 하고, 군인들은 군복을 입고 군대생활을 하듯이,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작은 예수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3년에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에는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 기념관이 세워졌습니다.

전라남도 신안군에는 섬이 1004개 있다고 합니다. 문준경 전도사는 신안군 임태도 출신으로 17세에 증도로 시집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다른 여자를 첩으로 얻어 결혼을 하여 살게 됩니다.

 

문준경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잘해주는 그 시아버지 때문에 힘을 얻어 버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게 되어서, 홀로 목포로 나와 생활 하다가 목포의 북교동성결교회에서 이성봉 전도사를 통해 기독교를 접하게 됩니다.

 

그녀는 그 후 경서성서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한 후, 다시 증도로 돌아와서 수많은 섬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일생을 바치게 됩니다. 문준경 전도사는 신안군 일대에 개척한 교회가 약 100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증도에만 11개 교회를 개척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증도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서, 현재 증도에 살고 있는 2000명의 주민들 가운데 약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독교인이 많은 곳이 바로 증도가 되었습니다.

 

1950북한군의 남침으로 6.25가 일어나게 되고, 이 신안군 섬에도 북한군이 들어오게 됩니다.

문준경은 북한군을 피해 도망갈 수 있었지만 섬 주민을 살려야 한다고 하면서 계속 전도를 하다가 공산당으로부터 전도를 많이 하는 씨 암 닭이라고 잡혀가서, 수없이 곤봉으로 맞고, 죽창에 찔리고, 결국에는 총탄을 맞고 순교하게 됩니다.

 

문준경 전도사는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고 살아가는 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고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 땅 위에서 이루어 가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멘.

 

또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합니까?

셋째, 하나님이 주시는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6:12절입니다.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성도들이 입어야 할 것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면, 가장 먼저 입어야 것은 새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입어야 하는 것이 바로 빛의 갑옷입니다. 예수 믿고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을 다른 말로는 빛의 자녀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빛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입고 살아야 할 옷이 바로 빛의 갑옷입니다. 이 빛의 갑옷은 외적으로 입게 되는 옷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빛의 갑옷은 우리의 변화된 삶 속에서 나오는 변화된 생활 즉 어둔 세상을 밝혀주는 빛 된 생활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 받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만 세상의 빛이다.’ ‘너희만 세상에 소금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예수 믿고 변화된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살아가는 변화된 생활 즉 빛 된 생활을 통해 보여주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빛의 자녀로 살기 시작할 때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악한 마귀의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악한 마귀의 세력과 싸워 이겨 나가야 합니다. 이 때 우리가 꼭 입고 있어야 하는 옷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전신 갑주라고 하니까 군인들이 전쟁을 위해 무장을 하듯이 그렇게 전신을 무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무장을 한 군인처럼 보이도록 겉모습만 꾸미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이 입으라고 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영적이고 내적인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입고 살아야 할 전신 갑주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그것은 군인들이 군복을 입을 때 허리띠를 단단하게 묶듯이 진리를 허리띠 묶듯이 단단히 묶으라고 합니다. 또 로마 군인들이 가슴을 보호하기 위하여 흉배를 붙이듯이 그렇게 의와 거룩함으로 무장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또 군인들이 군화를 신고 전쟁터로 나가듯이 그렇게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발을 신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또 군인들이 방패로 적의 화살을 막아 내며 나가듯이 믿음이라는 방패를 손에 들고 마귀가 쏘아 되는 불화살을 막아 내라고 합니다. 또 군인들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투구를 쓰듯이, 나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구원을 확신하며 나아가라고 합니다. 또 군인들이 을 들고 적군과 싸우듯이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기도로 무장하여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나가는 성도들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신분에 대해 고린도후서 5:17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신 것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도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처럼 살아야 하고 또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처럼, 빛의 자녀처럼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 믿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우리들이, 빛의 갑옷을 입고 세상의 빛으로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갈 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악한 마귀는 이런 우리들을 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울부짖으며 달려들 것입니다. 이런 악한 마귀의 공격을 대적하기 위하여 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합니다. 죄와 세상과 마귀와 싸워 승리하길 원하는 성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었다고 저절로 승리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는 수고와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계속해서 죄와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4절을 보면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힘이 약한 줄 알게 되면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라.’고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기도하며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깨어 영적인 전투를 하며 살아가는 삶이, 우리가 살아가는 날마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 믿는 너희가 믿음이 있는 성도들로 살아가고, 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입어야 할 옷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첫 번째 옷은 새 사람을 입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두 번째 옷은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세 번째 옷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옷을 입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옛것과 옛 습관과 어두움의 일들은 벗어 버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먼저 이것을 한 후에 하나님이 주시는 옷을 입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성 어거스틴은 한 때 방탕한 삶을 산 일이 있습니다.

이단에 빠져 쫓아다닌 경험도 있습니다. 이런 어거스틴을 보며 그 어머니 모니카는 날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3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살아생전에는 그 아들이 믿음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날 어거스틴은 낙담하고 낙담하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아이들이 어거스틴의 집 담밖에서 뛰놀면서 "가서 읽어 보라! 읽어 보라!"라고 하는 동요를 부르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어거스틴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집으로 들어가 성경을 펴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읽은 성경이 바로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로마서 13:12-14절이었습니다.

 

우리 다 같이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을 읽을 때 어거스틴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이 회개를 통해 어거스틴은 새 사람이 되고 나중에 성자라 불리는 거룩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죄인이 회개하여 성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도 이 어거스틴과 같이 변화시켜 주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 모두 어거스틴에게 임하였던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부터 어두움의 일을 다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고 사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죄에 져서 죄에 끌려 다니는 성도가 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죄를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늘 죄와 세상과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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