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에녹의 믿음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2. 8. 7. 14:50

에녹의 믿음

히브리서 11:5-6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정의,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에 대한 가르침을 얻고자 할 때에는 히브리서 11장을 읽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큰 믿음을 가진 성도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영으로 계신 분이시고,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눈에 보이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는 이 믿음에 대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가지고 살았던 믿음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던 믿음이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되어 있는 에녹의 믿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라기는 에녹이 가지고 살았던 그 믿음, 말세 중에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성경의 증거에 의하면 에녹은 아주 특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1:5-6절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 속에 나타난 에녹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 죽음을 이긴 믿음이었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세상에서 다시 그를 볼 수 없었다.’라고도 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아담과 그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명 자체이신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이 분리로 사람들은 그 영이 죽은 존재가 되고 그 육체는 죽어가는 존재 즉 사망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의 절망을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라고도 말씀하였으며, 한번 죽는 것을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담과 그 후손 된 모든 사람들이 처한 실존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에녹은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그 영이 죽은 존재가 되고 또 그 육체가 죽어가고 있는 존재로 살고 있었는데, 에녹은 믿음으로 그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난 사람이 되었을 뿐 아니라, 육체적인 죽음을 이기고 육체적인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첫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에녹은 죽음을 이긴 신앙, 죽음을 극복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죽음을 이기고, 죽음을 극복한 신앙에는 어떤 신앙이 있습니까?

첫째로, 부활신앙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로 죽음을 이기시고 죽음을 극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신앙과 에녹의 죽음을 이긴 신앙은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어떤 차이입니까? 부활은 언제나 먼저 죽고 후에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녹은 죽지 않았고, 죽음을 이기고, 죽음을 극복한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에녹이 가졌던 신앙은 부활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부활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난 것도 부활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육체로 죽고 또 다시 육체로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육체로 죽고 다시 육체로 살아나는 것은 부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부활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는 육체가 죽고 그 후에 영체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성육신 하셨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후에 거룩한 영체를 입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영체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음식을 먹으실 수 있으셨습니다. 영체를 입으셨기 때문에 이런 물질로 이루어진 벽은 그대로 통과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죽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은 첫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에녹이 가지고 있었던 죽음을 이긴 신앙을 부활신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죽음을 이기고, 죽음을 극복한 신앙에는 또 어떤 신앙이 있습니까?

둘째로, 휴거신앙이 있습니다.

 

휴거란 무엇입니까?

휴거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믿음을 지키고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하늘로 들어 올리시는 것을 휴거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들을 휴거를 시킵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부된 교회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는 죄악 된 사람들과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먼저 순교자들을 부활시키시고, 그 후에 믿음을 지키며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을 공중으로 휴거시키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공중에서 재림하시는 주를 영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때 이 지상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 지상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은 죄악 된 세상과 함께 불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됩니다. 불 심판이 집행되는 이 땅위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도들을 먼저 휴거시킨 후에 이 세상을 불태우는 심판을 집행하십니다.

 

그런데 보통 이단들은 어떤 주장을 합니까?

이 지상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겠다고 하며, 흰 옷을 입고, 밤을 지새우며,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기다린 대로 예수님이 오셨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오셨다면 이 세상을 불태우는 심판을 집행하셨겠지요. 그리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땅에서 기다렸던 그 사람들도 세상과 함께 불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겠지요. 그런데 아직까지 이 세상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재림하시지 않으셨고, 이단들이 한 그 모든 주장들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은 지상에서 예수님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천사들에 의해 공중으로 휴거되어서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공중에서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태워지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와 함께 천년동안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나라가 바로 죄와 죽음과 마귀가 다 제거된 천년왕국입니다. 아멘.

 

부활과 휴거에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부활은 먼저 그 육체가 죽은 후에 거룩한 영체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휴거는 육체를 가진 그 상태 그대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담의 죄를 물려받은 우리 육체가, 아담의 범죄 이전의 죄 없는 육체로 회복된 상태로 변화되어서, 천사들에 의해 하늘로 끌려 올라가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이 모습 이대로 휴거된다면, 그래서 이 모습 이대로 천년왕국에 들어간다면, 죄인들을 모아 놓은 천년왕국도 지금 이 세상과 똑같이 죄악이 가득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낙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성도들이 아담의 범죄 이전 상태로 회복되어서 휴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가 전혀 없는 상태로 살기 때문에 천년왕국은 에덴과 같은 낙원이 될 수 있고, 죽음이 없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천년왕국에서 살도록 허락된 사람들은,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 누리며 살았던 그 행복한 삶을 경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제게 이 행복한 삶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때까지 살아 있을 자신이 없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은 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가지셔서, 그 놀라운 삶, 그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종말시대 환난들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다 그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입니까?

 

본문으로 돌아가서, 어느 날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그 육체가 땅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에녹이 가졌던 신앙은 휴거신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휴거신앙을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사건이 바로 노아의 홍수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전에 노아와 그 여덟 식구를 방주에 태워 물위에 들어 올려놓으시고 난 후에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듯이, 종말의 날에는 천사를 통해 성도들을 하늘로 휴거시킨 후에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 심판에서 노아와 그 여덟 식구만 구원을 받았듯이, 불 심판에서는 하늘로 휴거된 성도들만 구원을 받게 됩니다. 노아의 때 세상에 남아 있던 그 나머지 사람들은 다 홍수심판을 받아 죽었듯이, 종말시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그 나머지 사람들은 다 불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기독교 신앙이 이 세상의 다른 신앙들다른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죽음으로 끝나는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신앙은 복음 안에서 죽음을 정복한 신앙이며, 육체적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과 새 생명의 역사를 바라보고 믿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믿음을 지키고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은 육체를 가진 그대로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휴거하게 된 성도들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기 이전의 아담과 하와와 같이, 죄가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로 회복되어 천년 왕국에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신앙입니다. 아멘.

 

이런 부활신앙휴거신앙을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1:25-26절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기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말씀은 부활신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이 말씀은 휴거신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신앙휴거신앙이 우리가 가지고 사는 신앙입니다. 이 중에서 에녹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은 휴거 신앙입니다. 에녹은 그 믿고 있었던 대로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되었던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이 세상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있는 우리들은 내게 주어진 생애를 다 살고 죽더라도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혹 우리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 때까지 믿음을 지키며 이 땅위에 살아남아 있게 된다면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되었던 에녹과 같이 우리들도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을 믿는 휴거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부활신앙과 이 휴거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이 말씀 속에 나타난 에녹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 에녹의 신앙은 에녹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그는 옮겨지기 전에 (즉 에녹이 땅 위에 살고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하는 증거를 받았다.”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에녹은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에녹의 신앙과 에녹의 은 상호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녹의 신앙삶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었다고 합니까?

히브리서 11:6절 말씀은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을 보면 에녹은 첫째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자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에녹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멘.

 

첫째로, 에녹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에녹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고 동행하는 삶을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5:21절 말씀을 보면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365세를 살았다.”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기 이전에도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므두셀라를 낳은 이후부터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을 때 무슨 경험하였기에 이런 삶의 변화가 왔습니까?

성경은 여기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에녹이 어떤 경험을 하였는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하지만, 그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에녹이 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므두셀라라는 말의 뜻은 투창의 사람’ ‘창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리고 또 므두셀라라는 이 말은 창을 던지고 투창을 던지듯이 보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므두셀라 라는 이름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가 죽을 때에 창을 던지듯이, 투창을 던지듯이, 그것을 보내리라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므두셀라가 죽을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홍수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므두셀라969 세로 죽은 그 해에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였습니다. 이 때 므두셀라의 손자 노아600세였습니다.

 

이런 역사 속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짐작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한 계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므두셀라가 죽을 때에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계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그 계시를 받은 대로 그 아들이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주신 계시대로 므두셀라가 죽을 때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 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성경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5장에 나타나고 있는 성경의 연대를 계산해 보면, 홍수심판은 정확히 므두셀라969세에 죽은 그 해에, 노아가 600세 되는 그 해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을 때 자기에게 나타나 계시를 주신 하나님을 믿고, 이후 300년 동안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이후에 삶이 어떠했겠습니까?

에녹은 그 아들 므두셀라만 바라보면 뭐가 생각났겠습니까? 전에 자신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던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에녹아 나 거룩한 여호와는 죄악이 관영해 가는 이 세상을 심판할 수밖에 없구나! 그러므로 너는 아들을 낳게 되거든 그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하여라. 그가 죽게 되면 내가 세상을 물로 심판할 것이다.’

 

에녹은 그 아들 므두셀라를 바라볼 때마다 이 말씀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은 죄악 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늘 의식하면서, 300년 동안 하나님의 홍수심판의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경우도 같습니다.

우리가 종말의 때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기억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살고, 깨어 근신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불 심판을 늘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절재하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둘째로, 에녹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을 보면 에녹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첫째,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다고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자심을 믿었다고 합니다.

 

여기 사용된 상 주신다.’는 말씀은 보상해 준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시는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시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보면, 젊은 사자는 굶주릴 수 있어도,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멘.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늘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갔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삶에 부족함이 없었던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삶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늘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자신은 하나님이 돌보시는 양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또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삶에 베풀어주시는 상을 기대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대대로 다윗의 삶에 함께 하시면서 풍성한 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그 약속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 또 성경에 약속하신대로 상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이 두 가지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해 주신 그 모든 것들을 받아 누리며 살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아멘.

 

성경에는 기도하면 응답해 준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약속을 주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또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대로 반드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기도응답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도응답이라는 상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성경에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면 복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면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대로 반드시 순종하는 성도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은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약속하신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이 믿음을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내게 베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 우리 가정에 베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 우리 교회에 베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은 기대가 없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바꾸어 말하면 아무 기대도 없이 사는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있는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믿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상 주심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삶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셋째로,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5절 말씀을 보면 그는(에녹은) 옮겨지기 전에(휴거되기 이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6절 말씀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녹의 삶을 살피면서 노아를 생각하게 됩니다.

노아와 에녹은 둘 다 홍수심판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노아와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받은 계시를 세상에 전해 주는 전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노아와 에녹에게서 홍수심판의 말씀을 전해 들었던 그 나머지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전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수심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살았습니다. 홍수심판은 자체를 잊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살았습니까?

성경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도 믿지 않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 주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 수 없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무시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도 무시합니다. 그리고 그 살아가는 죄악된 삶에서 돌이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의 삶도 같습니다.

종말 시대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 심판의 날을 기억하고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도 무시하고 매일 죄를 지으며 매일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 살아가는 삶을 보면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그 다음은 믿음으로 얻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상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전도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 내려는 전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다윗도 이 전도인의 삶을 살았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시편 51:12-13절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 오리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으로 살면서 또 전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내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또 전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 3:15절에서 메시야를 보내셔서 죄인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다윗이 이 세상에 있음을 기뻐하시면서 그의 삶의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또 동일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홍수심판을 세상에 전하며 살았던 노아와 에녹이 이 세상에 있음을 기뻐하시면서 그들의 삶에 동행하여 주셨습니다. 아멘. 우리 앞서 살았던 이런 사람들의 믿음의 삶이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아픔과 안타까움이 무엇입니까?

 

1. 우리를 포함해서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처럼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치 돈을 믿고 사는 사람들처럼 보이고, 마치 자기 재능과 힘과 지혜를 믿고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비록 돈이 없어도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돈에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처럼 돈 돈 돈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그 삶의 보화로 믿고 살았던 사람들의 고백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14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56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72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이런 믿음의 고백들이 우리들이 하며 사는 고백이 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2. 우리를 포함해서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기대하며 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통해 상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처럼,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데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3. 우리를 포함해서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지 않으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기쁘게 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들처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김일성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교회와 유사하게 사상 교육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마치 성도들이 새벽기도를 하듯이 새벽훈련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 매일 아침마다 충성맹세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아기들은 3세 때부터 탁아소에 맡겨져서 김일성 우상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고 합니다. 수요일에는 수요예배 드리듯이 자아비판을 하는 날로 삼고, 또 매주 주일에는 성도들이 주일을 지키듯이 철저히 지키면서 주체사상을 암기하는 강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주체사상은 북한 사람들에게 거의 종교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북한의 성도들이 남한의 성도들을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앙과 신학적인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는 남한의 성도들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믿는 북한 사람들보다 열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남한 성도들이 북한 사람들같이 하나님을 믿게 되면, 남한의 교회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남한교회에는 그런 열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 아쉽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 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살아가는 삶을 통해 보여주며 살아야 합니다. 왜요. 성도들의 이런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요즘 목회자들이 주로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 나오는 성도 중에 정말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는 열심히 나오는데 그 살아가는 삶을 보면 예수 믿는 사람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삶은 어떠해야 한다고 합니까?

첫째, 복음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죽음을 이긴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부활신앙휴거신앙영생을 믿는 신앙을 가지야 합니다. 이 신앙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기본이고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보고, 이웃을 보고, 세상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돈이나 명예나 이 세상의 다른 것을 의지하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다 쇠하게 되고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의지하며 사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삶은 없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노아는 홍수심판과 죽음에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되었습니다. 우리들이 혹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살아 있게 된다면, 우리들도 에녹이 누리며 살았던 휴거의 복을 누리며 사는 참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사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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