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믿음이 주는 세 가지 은혜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10. 1. 11:13



믿음이 주는 세 가지 은혜

히브리서 11:13~16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이유를 보면 다양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서로 다른 다양한 이유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공통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대표적인 세 가지 은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은혜는 예수를 믿게 되면 그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은혜는 예수를 믿고 그 영혼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자녀 된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각종 은혜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이 세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각종 은혜들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은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삶 속에 베풀어주시는 각종 은혜들을 누리며 살다가, 이 세상에서 주어진 생애를 마치고 나면 하나님이 저 하늘에 예비해 두신 그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천국에서 지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음으로 그 영혼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각종 은혜들을 누리며 살 뿐 아니라, 장차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그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이 세 가지 은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예수를 믿으면 그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1:9절 말씀을 보면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육과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이렇게 창조함을 받았던 아담과 하와는, 그 육으로는 물질로 이루어진 이 세상과 관계를 가지며 살았지만, 그 영으로는 영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음으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죄는 아담과 하와를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죄는 우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아담과 하와를 분리시켰습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처럼 사람들은 죄로 인해서 죽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곧 바로 죽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담은 이후 930년을 자녀를 낳으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나무에서 분리된 나무 가지가, 그 가지가 가진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다가 죽게 되듯이, 죄를 지으므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분리 된 아담과 하와도, 그 가진 육체의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영은 다릅니다.

영은 죽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 땅에서 살 때 복음을 믿고 죽은 사람들의 영은 낙원에 가고, 복음을 믿지 않고 죽은 영들은 음부에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의 영은 지금 어디에 가 있겠습니까? 저는 아담과 하와의 영은 하나님이 창세가 3:15절에서 전해 주신 복음을 믿고, 짐승을 잡아 그 가죽옷으로 수치를 가려 주셨던 그 복음의 은혜를 입고 낙원에 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영은 죽을 수 없는 존재인데, 그러면 그 영이 죽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죽을 수 없는 영이 죽었다는 것은 그 영이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에게서 분리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장차 그 지은 죄의 값으로 지옥형벌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에게서 분리 되어 죽었던 그 영이, 복음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다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나라를 유업으로 누리며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영이 다시 살게 되는 것을 요한복음 3장에서는 거듭남이라고 하고, 고린도후서 5장에서는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비로써 하나님을 그 영의 아버지라 부르며 살게 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런데 사람들의 영혼이 거듭나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그 죄를 사함 받아야 합니다. 이 죄 사함에 대해 베드로전서 1:18-19절에서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이 말씀은 사람들이 그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 안에서 그 죄를 사함을 받고,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 일입니다. 이보다 더 급하고 긴요한 일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실하고 근면하게 노력한 결과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성실한 삶은 누구나 본 받아야 할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실한 사람들일지라도, 그 자신에게 주어진 일생 동안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 믿음에서 실패하면, 그 성실하게 살아온 삶까지도 실패한 인생이 됩니다. 왜요.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이 세상 넘어에 계신 하나님과 그 나라의 관점에서는 실패한 자로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비록 이 세상에서는 실패하고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을지라도, 그 실패와 낙오 속에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고 붙잡아야 하는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이런 사람은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서는 실패자라는 평가를 받아도, 그 가진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과 그 나라에서는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으로 평가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평가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평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의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성실한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이 세상의 신은 마귀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개인과 권력과 단체의 배후에서는 악한 마귀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를 이 세상 임금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한 나라의 임금이 그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를 다스리듯이, 악한 마귀가 이 세상의 임금이 되어서 지금도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나라 안에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배후에서 마귀가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단 마귀를 짐승이라고 하고, 사단 마귀가 배후에서 다스리는 이 세상의 나라를 짐승의 나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들은 비록 이 짐승의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 믿고, 구원 받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하늘 백성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지배자인 사단 마귀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이런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신인 사단 마귀가 더 이상 역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마귀가 그 사람에게 계속 역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도들이라도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저주가 있다고 하면서 그 가계의 저주를 끊어야 한다고 하거나, 혹은 귀신들이 성도들에게도 역사한다고 하면서 무속적 축귀사역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기 이전에는 이 세상의 신인 악한 마귀에게 속하여 살았습니다.

그 때에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종이 되어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각종 악행을 행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되면 그 신분의 변화가 있게 됩니다. 그것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의 변화가 있게 되고,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빛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그 영이 다시 태어나게 된 사람들에게는, 비록 마귀는 시험을 하고 유혹은 할 수 있어도 이전처럼 종을 삼고 노예로 삼지는 못합니다.

 

이런 우리의 신분에 대해 갈라디아서 3: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죄가 전혀 없으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율법의 저주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신분에 대해 로마서 8:1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합니다. 왜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으로는 이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마귀가 가져다주는 각종 저주에서 해방이 되었으며,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육신에 속하여 살고 있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가계의 저주가 계속되고 있다고 하기도 하고, 이 세상 신인 마귀가 계속해서 성도들에게도 역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영이 거듭나서 영의 세계에 속하여 살고 있는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성령의 은혜 안에서 성령이 가져다주는 참된 해방과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그 영이 거듭나 영적 세계에 속하여 사는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또 그 영이 거듭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요한 14:18절입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 쫒나니.....’라고도 하셨습니다.

또 그 영이 거듭나 영적 세계에 속하여 사는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마음의 기쁨입니다. 빌립보서 4:4-7절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렇게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해방시켜주시고 또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이런 은혜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 안에서 우리 영혼이 거듭나게 될 때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그 영혼이 거듭난 성도들은 이런 기쁨과 평안 안에서 그 영혼이 마귀의 저주와 정죄에서 해방된 참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첫 번째 은혜입니다.

 

또 예수를 믿으면 어떤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까?

둘째, 예수 믿으면 그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죄를 사함 받고, 그 영혼이 거듭나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 사람들은, 그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누리며 살게 되는 은혜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성도들은 비록 그 몸은 이 땅에 속하여 살아가지만 그 영은 영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또 그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함께 하시면서 각종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 그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은혜를 누리며 살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아벨이 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는 그런 와중에서도, 어떻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산 기록들이 성경말씀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게 되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떤 은혜를 누리며 살았는지 잘 볼 수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은혜를 누리며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산 성도들의 삶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2절 이하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네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이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삶을 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이후에 오히려 세상 속에서는 고난당하는 삶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이런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학대를 받았으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그 앞부분에는 하나님을 믿고 은혜를 누리며 살았던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고, 그 후반부에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오히려 고난을 당하며 산 사람들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경우도 같지 않습니까?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기도 하지만, 때로는 또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사람에 따라 달라서, 어떤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게 되면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고 철야하고 금식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극복하고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미리 미리 은혜로 공급해 주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하나님이 아시고 미리미리 공급해 주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믿음을 가진 우리들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은 매 일반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살아가는 삶을 깊이 있게 따져보면 너무 다른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당하게 되는 고난은 그 말 그대로 고난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당하는 그 고난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전에 우리나라가 IMF를 맞아 국민 전체가 고난당하던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IMF의 고난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고난이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세상에 빠져서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세상 일만 하며 살아온 그 삶을 되돌아보고 믿음으로 살기를 결단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하며 살아오던 일들을 접고 하나님을 위해 남은 생애를 살고자 새로운 삶의 결단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고난당하는 삶을 인하여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아가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경험하기도 하였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살아온 죄악 된 삶을 버리고 거룩한 하늘 백성으로 살기로 결단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IMF 뿐 아니라 부지중에 당하게 된 질병, 사업실패, 가정의 불화, 자녀의 탈선 등등의 사건들 속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당하는 불행들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고린도 후서 12장을 보면 바울에게는 고통스러운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 가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 가시가 주는 고통이 너무 커서 바울은 하나님께 세 번이나 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하여 주옵소서.”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 육체의 가시를 사단이 가져다 준 저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 고통스러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바울을 고통스럽게 하고 절망스럽게 했던 그 육체의 가시는 사단이 바울에게 가져다 준 저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에게 계속 머물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의 가시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하신 예수님께서, 육체의 가시를 통해 바울은 약하고 겸손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바울에게 머물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수많은 교회들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수많은 성경말씀을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큰 은혜의 역사를 이룬 바울은 교만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교만해지지 못하도록 육체의 가시를 바울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병든 자들을 고칠 때 사람들이 그런 바울을 주목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때 바울이 교만해 지면 사단의 덫에 걸리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의 몸에는 사단의 가시가 있습니다. 이 사단의 가시는 바울로 하여금 비록 나의 사역을 통해 이 놀라운 기적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실상 나는 내 질병 하나도 고치지 못하는 미약한 자다.”라는 것을 늘 인식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그 모든 능력과 역사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이루어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겸손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사단의 가시가 이런 역할을 해 왔다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이후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바울의 삶의 고난은 저주이고 불행이었습니다.

바울처럼 병이 들면 어떻게 됩니까? 질병이 가져다주는 고통이 있습니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치료에 돈도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다릅니다. 그 병 때문에 바울은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또 병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고통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통이 우리들의 살에 주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천로역전의 저자 존 번연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덧셈을 하실 때에는 뺄셈을 하시고, 뺄셈을 하실 때에는 덧셈을 하신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노라면 내가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삶이, 나중에 보니 하나님이 더 많은 것을 내게 주시기 위해 그렇게 인도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씨 뿌리지 않고 수고하지 않은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계산법과 우리의 계산법은 너무 다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삶에 고통이 오고, 또 실패하게 되는 것은 뺄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실패가 곧 바로 뺄셈이 아니고 덧셈이 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고난과 실패는 인생의 장애물인 것 같아 보이지만, 이 고난과 실패가 오히려 긍정적인 요인으로 역사하여서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은혜가 내게 주어지게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물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우리 삶에는 언제나 좋은 일도 찾아오고 또 나쁜 일도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그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다가올 때는 기도하면서 이 모든 어려움까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믿음을 굳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어떤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까?

셋째, 예수를 믿으면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지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전도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7:4) 그 마음이 초상집에 가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고, 그 마음이 혼인집에 있는 사람은 우매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혼인집에 가면 누구나 기쁨에 들떠서 지내게 됩니다.

그래서 한바탕 즐겁게 먹고 마시고 나오게 되지만 그것으로 끝입니다. 남는 것이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혼인 집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상집에 가면 다릅니다.

거기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잠시 잠깐 살다가는 죽을 인생이라면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참 가치 있는 인생인지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해 줍니다. 이렇게 초상집은 누구에게나 죽음이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그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사람은 모두가 다 죽습니다.

그러므로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다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 앞에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죽음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죽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명을 연장시키는 비결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피할 장사가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수고하고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생명을 잠시 연장시키는 것도 해답이 아닙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떻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죽음이라는 증상이 우리에게서 나타나게 만든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죽게 된 죽음의 근본원인은 무엇입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하여서 죽는 것입니까? 또 병이 들어서 죽는 것입니까? 또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죽는 것입니까?

물론 이런 것들은 사람이 죽는 직접적인 원인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죽음의 근원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기력을 증진시키고, 병을 고치고, 사고를 피해도 여전히 죽음은 찾아옵니다.

 

죽음에 대한 근본원인은 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 그 죄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게 했고, 그것이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6:23) 그러므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이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함이 없이 죽음의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한 일을 힘쓰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속을 떠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양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석가모니처럼 고행을 하거나 혹은 자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들은 그 죄에 대한 정죄와 심판과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인간의 비참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세주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때가 되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대신 죄인이 되셔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신 말씀이 바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복음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만이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는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 증거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인간의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1:25~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이 말씀은 예수님은 우리처럼 부활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는 분이 아니시고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고,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되고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육신적인 면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게 됩니다. 장차 예수님의 구속이 완성될 때 우리들은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셋째,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영적인 면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즉시 구원을 받고 거듭나서 영원토록 죽지 않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넷째,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 부활과 예수 생명의 역사는 오직 믿음으로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 안에서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우리 육신은 죽게 되지만, 그 죽음은 거듭난 우리 영혼이 낙원으로 들어가는 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결국 우리들은 장차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을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1:13절 이하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 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행을 사모하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들은 바로 이 믿음 이 소망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과 이 소망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제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대표적인 세 가지 은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성도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를 믿으면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를 믿으면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믿음, 이 은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2019년도 하반기의 삶을, 믿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참 복 있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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