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말씀에 기초한 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8. 11. 15:05




말씀에 기초한 신앙

시편 119:105-106

 

사람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을 보면, 기적과 능력에 기초를 둔 신앙도 있고, 꿈과 환상과 신비한 체험에 기초를 둔 신앙도 있고, 윤리 도덕에 기초를 둔 신앙도 있고, 선행과 공덕에 기초를 두고 있는 신앙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가진 믿음 안에는 이런 요소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때로 기적을 경험하기도 하고, 환상을 보기도 하고, 또 우리의 삶이 윤리 도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우리는 믿음 안에서 선행을 실천하며 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신앙이 이런 것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신앙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는 이 세상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어디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축복된 삶도 하나님의 말씀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우리가 받은 구원도 우리가 장래 소망으로 삼고 달려가는 하나님의 나라도 다 약속의 말씀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고, 이 말씀에서 흔들리는 것이 불신앙이고 범죄입니다. 하와의 범죄 사건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이 언약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마귀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거짓말로 유혹하였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우리의 믿음도, 사명도, 삶도 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아벨이 하나님께 더 나은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 아버지 아담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 바른 믿음의 삶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우리의 신앙과 삶은 철저히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삶의 등불이 될 뿐 아니라, 우리 삶의 방향을 바르게 지시해 주는 빛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이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첫 번째 살펴볼 것은,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의 증거를 보면 하나님은 곧 말씀이고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진 신앙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그 기초를 둔 신앙이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주보를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대로 믿고 배우고, 말씀대로 살고 전하는 교회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소개할 때도 맨 처음에 참빛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에 소속되어 있는 복음적인 교회로서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원리요 규범이요 질서로 믿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역사하셨다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으로 역사하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3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1:6-7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1:9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어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다 창조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소유주는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고 누리며 살아가는 그 모든 것과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도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하나님의 소유를 내 것처럼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둘째,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분이 우리의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신적 능력으로 사람들이 고칠 수 없었던 중풍병자, 나병환자를 고쳐주셨을 뿐 아니라, 심지어 죽은 과부의 아들까지도 살려주셨습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의 경우에는 직접 가서 고쳐 주시지 않고 그 능력의 말씀으로 고쳐주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고 그 즉시 그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으로 역사하셨습니까?

셋째, 하나님은 그 말씀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신구약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사람들을 감동하시고, 그 감동하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신구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주신 말씀을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록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도 신적 역사와 능력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신적능력에 대해 히브리서 4:12절에서는 이렇게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디모데 후서 3:16절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증거 합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도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기적과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단지 기록된 성경말씀을 믿었는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과거의 기적의 역사는,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기적의 역사는, 오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 누구나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두 번째 살펴 볼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는 신앙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게 하시면서 하신 훈련이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매일 아침 만나를 주어 먹고 살게 하시는 그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신명기 8:3절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분명하게 그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살 때는 자기 능력과 자기 수단과 방법대로 살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위기를 만나자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황이 좋을 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 지도자 모세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때가 오면 여지없이 그 자신의 불신앙을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곱에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10가지 재앙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라는 장애물을 만나자 곧 바로 그 불신앙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신앙은 하루아침에 주어지지 않고, 한 두 번의 신앙적인 경험을 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은 아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하게 되는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이 훈련을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40년 동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우리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사람들이 처음 예수 믿고 나오면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의 훈련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훈련기간 동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적과 역사를 많이 경험하게 하십니다. 지금도 복음이 처음 전해지는 곳에 기적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예수를 처음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과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이런 연유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 속에 경험하게 되는 신앙의 경험들을 통해 우리 신앙을 굳게 세워 나가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살펴볼 것은,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가지려고 하면 먼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지만, 하나님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속에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적인 부귀, 영화, 명예, 권세가 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이 부러워하는 부귀, 영화, 명예, 권세 등등은 모두다 결국 불태워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사도바울의 눈에는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 같은 것들이 마치 배설물 같이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마치 금보다 더 귀한 믿음으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신앙은 철저히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의 원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진리를 담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가치관을 이 세상의 언어로 우리들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 그 말씀은 이 세상의 논리나 가치관이나 관점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사람들의 보기에는 이성적이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고, 공명정대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예가 성경 속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라고 명령하신 이 말씀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여리고를 점령하는 방법으로 “6일 동안은 매일 성을 한 번씩 돌고, 7일에는 일곱 번 돌고 난 후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 때 함께 소리 지르면 무너질 것이다.” 라고 하신 이 말씀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중병이 들어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아무 처방도 안하시고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라고 명령하실 때 이 말씀을 우리 이성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또 복음은 어떻습니까? 한 번도 본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또 역사적으로 살았던 인물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하니 이 복음을 이성적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은 또 어떻습니까? 이것이 이성적으로 믿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다 이렇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진리라는 것이 다 이렇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이성을 초월해 있는 말씀이며, 이 세상의 가치를 초월해 있는 하나님 차원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못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믿지 못하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한계를 잘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학교에 입학시키셨습니다. 이 학교의 수업 기간은 40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매일 주시는 만나를 통해 가르치셨습니다. 3절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 을 통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도록 가르치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신앙, 즉 말씀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가르치고 계신 것도 바로 이 말씀중심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보면 다양합니다.

 

1) 어떤 사람들은 지식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되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자라고 부릅니다.

2) 어떤 사람들은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기도를 많이 하고 열심이 특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보다 계시, 체험, 병 고침, 환상, 등 나타나는 현상에 기초를 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신학적으로는 은사주의자라고 부릅니다.

3) 어떤 사람들은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말씀 영원히 변치 않고 폐하시지 않으시는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네 번째 살펴볼 것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첫째, 노아입니다.

창세기 6:22절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성경은 노아가 가지고 살았던 믿음을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산 신앙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홍수심판의 날을 대비하여 산 위에 배를 만들라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배를 만드는 일에 그 모든 삶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노아가 가진 신앙에 대해 히브리서 11:7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둘째, 사무엘입니다.

사무엘 상 3:18절입니다.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은 500세가 넘어서입니다. 이때는 사리판단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은 아직 어린 아이 때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받은 말씀을 이스라엘의 사사이며 제사장이었던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이런 엘리 앞에 서는 것도 두려워하며 말도 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하나님이 주신 심판의 말씀을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무엘을 인정하셔서 1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그리고 이런 사무엘을 백성들은 어떻게 보았습니까? 20절입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얼마나 부러운 삶 얼마나 멋진 삶입니까?

 

셋째, 아브라함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믿음으로 떠난 것이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린 사건은 정말 대단한 믿음의 순종입니다. 이런 믿음의 순종을 통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다운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넷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입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후 삶은 어떠했습니까?

 

1) 요단강을 건넌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갔던 때는 곡식 거두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비가 많이 오는 우기이고 또 북쪽에 있는 헤르몬 산의 눈이 녹아 내려서 강물이 자주 범람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습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다리를 놓았습니까? 배를 준비해서 타고 건넜습니까? 아니면 밧줄을 양쪽 둑에 걸어놓고 그것을 잡고 건넜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다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 요단강을 건너 네가 너희에게 약속한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비록 요단 물이 강에 넘쳐흐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실 것을 믿고, 앞서 걸어가던 제사장들이 요단 강물을 밟고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급하게 내려오던 요단강물이 위에서부터 끊어져 말라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뒤 따라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는 마른 땅을 밟고 요단강을 건너갔습니다. 광야 40년 훈련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백성으로 변화 되었던 것입니다.

 

2) 여리고 성의 점령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앞을 가로 막고 있던 난공불락의 요새 여리고를 어떻게 점령했습니까? 장기간 포위하여 그 성에 양식과 물이 떨어지게 하고 항복을 받아내었습니까? 아니면 마치 중공군들이 우리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숫자로 밀어붙이는 인해 전술로 점령했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6일 동안은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돌고, 7일에는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돌고 난 후, 제사장이 일곱 양각 나팔을 길게 부는 소리가 들릴 때 그 성을 향해 무너지라 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여리고 성은 무너졌습니다.

이것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고 순종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받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의 나라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민족입니다.

세상의 다른 나라들은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거나, 국제적인 무역을 잘하거나,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고 세상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세상 방법과 법칙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사는 길이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누리고 경험하며 사는 길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삶에 대해 시편 1편에서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라고 하며 그 살아가는 삶이 마치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형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삶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살아야 할 삶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힘이고 능력이고 자랑이고 기업입니다. 아멘.

 

다섯째, 모세와 여호수아의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 모세는 어떻게 그 많은 백성들을 성공적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여기에 대해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에게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능력 있는 삶을 산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간 그 백성들에게도 말씀에 순종하는 이 훈련을 하셨습니다. 신명기 28:1절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네가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네 자녀와 토지와 짐승과 그릇까지 복을 받고,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28:15절 이하에서는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면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고 들에서도 저주를 받고, 네 자녀와 토지와 짐승과 그릇까지 저주를 받고,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신명기 28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복을 주시기도 하고 저주를 주시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그 믿음을 인정해 주고 그 믿음을 인정해 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일곱 째, 베드로가 고백하고 있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후서 1:16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는 변화 산에서 경험한 놀라운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베드로가 경험한 것 중에 이보다 더 놀라운 경험은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산에서 예수님의 신적 영광을 직접 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9절입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빛을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변화 산의 경험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의 모든 예언은.....’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변화 산의 경험보다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을 통해 전해주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경험한 변화 산의 신비한 체험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들에게 영감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불완전한 사람이 한 경험은 그것이 아무리 확실한 경험일지라도 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틀릴 수가 없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가졌던 신앙도 철저히 말씀중심의 신앙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살펴볼 것은,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신앙은 말씀에 기초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게 되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고, 말씀을 통해서 기적과 은사와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철저히 말씀 중심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시며,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경험하는 것은 곧 하나님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기적을 경험하지,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은사를 경험하지, 은사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7장을 보면 기적과 능력과 이루어지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알고 또 특별한 충성을 해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나아와 그런 자기들의 수고를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불법을 행한 자들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기적과 능력과 은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삶을 살았던 이 사람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며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합법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런 합법적인 방법을 놓아두고 기적과 능력과 은사라는 다른 방법 즉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법적인 방법을 썼던 존재가 누구입니까? 바로 불법의 아비 사단입니다. 사단을 따랐던 문선명 박태선이 이 불법의 방법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하여 왔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불법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너희는 불법의 아비를 따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철저히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으며, 이제는 기록된 성경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으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믿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은사를 베푸시고 기적을 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볼 때 바른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입니다.

 

우리 앞서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다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철저히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에 기초를 둔 말씀 중심의 신앙이,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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