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긍정적인 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9. 23. 16:16


긍정적인 신앙

민수기 13:30-33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것을 우리는 출애굽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약 16개월쯤 되었을 때 바란 광야 즉 가데스바네아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 명령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12 사람을 뽑아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각 지파에서 한 명씩 12명을 뽑아 가나안 땅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 때 모세가 한 말이 13:18-20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땅의 어떠함을 탐지하라. 곧 그 땅 거민의 강약과 다소와, 그들의 거하는 땅의 호 불호와, 거하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의 후박과 수목의 유무니라. 담대 하라. 또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그 내용을 보면 첫째, 그 땅의 거민의 상태입니다. 그 땅 거민의 강하고 약함과 그 수효의 많고 적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성읍의 형태입니다. 그들의 성읍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지, 견고한 산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셋째, 그 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토지의 기름짐과 척박함, 그리고 그 땅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어떠한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그 땅의 과일을 가지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은 모세의 명령대로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다니며 정탐하고, 그 정탐한 증거로 포도송이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정탐한 보고를 하였습니다.

 

- 먼저 10명의 정탐꾼은, 그 땅을 악평하면서, 그 땅의 원주민들은 강하고 철병거로 무장을 하고 있고, 또 그들의 성읍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이루고 있었다고 보고 하면서, 아무런 무기도 없는 우리의 힘으로 그 땅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들의 보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이런 상황 속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을 안심시키면서 전혀 다른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10명의 동료들이 보고한 대로 그 땅 거민들은 강하고 철병 거로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그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장차 네 후손들에게 준다고 약속하신 땅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그 땅을 반드시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전정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10명의 다른 정탐 군들은, 동일한 가나안땅을 함께 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서로 다른 보고를 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먼저 이들이 왜 서로 다른 보고를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들이 서로 다른 보고를 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1. 하나님을 믿는 그 신앙의 차이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내가 중심이 되어 하나님을 믿는 나 중심의 신앙과 하나님을 그 중심에 두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의 차이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애굽에 들어가 살게 된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들이 애굽에 들어갈 때는 약 70명이 들어갔는데 4대 만에 약 430년 만에 출애굽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20세 이상의 남자만 60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아마 여성과 어린아이들을 다 합하면 적어도 200만은 되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이렇게 불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게 하겠다.’라고 약속하신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주신 약속대로 그 자손들을 번성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문헌을 보면 당시 애굽에 살았던 인구의 약 1/3이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어떤 나라가 번성하게 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조국 법무부 장관과 같이 자신의 인적인 자산과 능력과 정보력을 활용해서 그 자녀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황제 스펙을 쌓도록 도와주면 잘 되고 번성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의사를 만들어 놓으면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어떤 가정이 번성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번성함을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바르게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4대만에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까?

혁명을 일으켜서 나왔습니까? 아니면 게릴라 전법을 써서 나오거나, 독립운동을 해서 나왔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애굽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에 애굽에 들어가서 살다가 4대 만에 나오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은 그 강한 손과 편 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것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현장에 있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첫 번째 재앙이 무엇이었습니까?

물이 피로 변하는 하는 재앙입니다. 애굽의 젖줄인 나일 강의 물이 다 피로 변하게 되었을 때 이 물을 의지하며 살아가던 애굽 사람들이 받은 충격이 어떠했겠습니까? 이 재앙은 7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집트 이프웨르의 권면이라는 기록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개구리재앙입니다. 애굽 땅 전체가 개구리들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애굽 사람들이 쓰는 밥그릇, 국그릇, 침실, 선반 위 등등 개구리가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셋째는 이 재앙입니다. 땅을 모든 티끌들이 다 이가 된 것입니다. 이가 얼마나 많은지 바람이 불면 이가 먼지처럼 바람에 날려 다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먼지처럼 날아다니는 이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이었겠습니까?

 

이 세 가지 재앙은 애굽인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당했습니다.

이 재앙으로 애굽 사람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심판의 고통이 어떤 것인가를 친히 체험했습니다.

 

넷째는 파리재앙입니다. 하나님이 이 파리 재앙부터는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분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네 번째 재앙부터 열 번째 재앙까지 애굽 사람들은 징벌하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별하여 보호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사실은 애굽 사람들이 받고 있는 저 모든 재앙들은 우리도 받아야 하는 재앙인데 애굽 사람들은 재앙을 받으며 고통을 당하고 우리들은 재앙에서 보호하심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았겠습니까?

 

성경은 이런 때가 장차 온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5장을 보면 마지막 대접 재앙이 쏟아져서 온 세상이 불로 심판을 받게 될 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공중으로 휴거 되어서 심판을 받아 불타는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장차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 성도들을 구별하시는 때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 예수 믿는 성도들이 나중에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게 될 때 또 이런 경험을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아서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당하고 있는 우리 옆집에 살았던 저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인데,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 하나 때문에 나는 심판에서 구원을 받아 천국의 은혜와 영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찬양하며 감사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애굽 사람들은 징벌하시고 자신들은 보호해 주셨을 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전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 된 것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너무 자랑스럽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지금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 이르면, 예수 믿는 우리들을 구별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그날이 이르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이 믿음이 얼마나 귀한 믿음인가를 바로 알게 됩니다. 이 믿음이 얼마나 귀한 믿음인지 잘 알았던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에서 이 믿음을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다섯째는 가축에 악질이 생기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재앙으로 애굽 인의 가축은 다 죽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여섯째는 독종재앙입니다. 온 몸에 독한 헌대가 나는 재앙입니다.

일곱째는 우박재앙입니다.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리는 재앙이었다고 합니다. 우박과 불덩어리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재앙 여러분은 이 재앙이 상상이 됩니까? 이 재앙을 이기고 견딜 사람이 있겠습니까?

 

여덟째는 메뚜기 재앙입니다. 이 메뚜기 재앙은 영화로도 많이 나왔었습니다. 수많은 메뚜기 때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메뚜기 뿐 아니라 개미도 많아지면 재앙이 됩니다. 하여간 무엇이든지 너무 적어져도 재앙이 되고 너무 많아져도 재앙이 됩니다.

 

이것은 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너무 오지 않아도 재앙이고 비가 너무 많이 와도 재앙입니다.

이것은 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물도 너무 없어도 재앙이고 재물이 너무 많아도 재앙입니다.

이 말은 꼭 기억하십시오. 무엇이든지 너무 적어도 재앙이고 너무 많아도 재앙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갑자기 하나님이 재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주시면 빨리 그 재물을 주를 위해서 써야 합니다. 그러면 복이 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어떤 기업들이 성공한다고 생각합니까?

좁은 우리 생각에는 100원 벌면 기술개발에 많이 투자하는 기업, 그 이익을 가지고 기업을 자꾸 확장시키는 기업이 성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공한 기업들은 자기들이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 첫째, 그 기업의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결과 유능한 사람들이 그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하며 몰려든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래서 이런 기업들은 더욱 더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기업이 주는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평생 살아가면서 그 기업을 좋게 알리는 긍정적인 효과가 그 돈을 기업광고에 쏟아 붓는 것 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삼성, 엘지, 에스케이, 현대 등의 기업들이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복지 사업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들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선은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는 삶입니다. 자선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전매특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 승리하는 성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성도가 되길 원한다면 우리들은 바로 이 메뚜기 재앙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과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능력만 되면 자선을 행하고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모두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교회의 성장도 여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물건을 파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미지를 파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놓으면 그 심어 놓은 이미지대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심어 놓아야하는 교회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입니까? 전도하는 교회,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 기도를 통해 은혜가 있는 교회 등등의 이미지를 심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심어 놓은 이미지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아멘

 

아홉째는 흑암재앙입니다. 3일 동안 해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열번째는 마지막으로 장자가 죽은 재앙입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재정해 주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 때 심판의 천사가 찾아와서 애굽 인들의 장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는 무사했습니다. 애굽인의 집은 초상집이 되었고, 이스라엘인의 집은 구원의 은혜를 입은 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경험했던 이 일들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애굽에서의 그 경험을 잊지 못하고 거듭 거듭 상기하고, 되새겨 보고 있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홍해에서는 무슨 경험을 했습니까? 모세가 지팡이를 든 팔을 홍해를 향해 내 밀자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물이 마치 벽과 같이 서게 되는 기적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이 물 벽 사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밟고 건넸고 뒤따라오던 애굽 군대는 수장되었습니다. 이 경험이 얼마나 놀라웠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을 지새우며 춤추고 노래했다고 합니다.

 

어디 이것뿐입니까?

광야를 살아갈 동안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양식이 떨어지자 하나님께서 메마른 광야에서 만나와 메츄라기로 먹이셨습니다. 또 물이 없는 광야에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시고, 때로는 쓴 물을 단물로 바꿔주시기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서 그렇지 성경에 기록된 일 말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이라고 함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다 기록하지 않고 있다고 하였듯이, 출애굽기에서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에 행하셨던 일들을 소상하게 다 기록하면 그 분량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출애굽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도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이 인간적인 노력으로 가능했겠습니까? 홍해바다를 가르는 일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광야에서 어떻게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40년 동안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이것 뿐 아닙니다. 이후 이스라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면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 우리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산헤립이 이제 남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185,000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 와서 화친하려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요구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의 전에 있는 은과 금, 그리고 왕궁에 있는 은과 금을 다 모아서 주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진군을 해 와서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고 성 밖에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왕이 너희를 구원해주리라고 생각하지도 말라. 그리고 왕이 여호와를 의뢰하라는 말도 듣지 말라. 내 앞에서 무너지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었느냐?’ 라고 하면서 열국의 모든 신들이 어디 있느냐? 여호와가 내 손에서 예루살렘을 건져 내 줄 것이라는 말은 듣지도 말고 믿지도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앗수르 왕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한 말을 하는 것을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때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소식이 왔습니다.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한 영을 저희 속에 두어 곧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나님은 어떻게 이 약속을 이루셨습니까? 열왕기 하 19:35절입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5,000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이 사건은 인간의 편에서 볼 때는 기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상식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우리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믿음은 우리의 입장이나 우리의 생각으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말 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주신 약속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 주신 말씀을 보고 약속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유하신 믿음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비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불신앙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전능 하신대 우리의 불신앙이 그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문제를 잘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55:8-9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생각은 너희생각보다 높으며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훨씬 높으니 너희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나의 생각을 제한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너희와 똑 같은 인간으로 만들지 말고, 하나님답게 대접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비록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사실은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두고 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상식적인 수준으로 살지만 우리들은 세상의 상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삶을 살아가다가 만난 문제들을 믿음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상식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런 모습을 우리가 52어의 기적사건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빈들에 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 즉 어림잡아보아도 20,000명은 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 어렵게 나아온 신체 장애인도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병 고침도 받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곳은 빈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마을로 보내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라고 건의하자, 예수님께서는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빌립은 우리가 허기만 면할 정도로 조금씩 나눠주어도 200데나리온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상식적인 대답입니다. 그만한 돈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여기 사람들이 가진 것은 한 아이가 먹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도시락 즉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라고 대답 했습니다. 아주 현실적인 대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기도하시고 떼어 나누어 주매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를 남겼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다가오는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왔습니까?

제자들과 같이 인간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상식으로 해결해 오셨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우리만 이렇게 믿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수 없이 많이 체험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와 같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던 10명의 정탐 군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그 주어진 환경을 생각하고 판단하여서 이렇게 그 입장을 말하였습니다. 민수기 13:31절입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 주어진 환경을 해석하고 이렇게 그 입장을 말하였습니다. 30절입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10명의 정탐 군과 같이 내가 내 생각과 내 기준이 중심이 되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내 삶의 중심이 되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신앙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달라집니다.

 

우리 참빛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이 세상의 상식에 우리 신앙의 기초를 세우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을 믿는 믿음 위에 우리 신앙의 기초를 세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체험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10명의 정탐 군과 여호수아와 갈렙이 서로 다른 보고를 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2. 그 가진 신앙의 차이가 그 가진 생각의 차이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신앙의 차이는 반드시 그 가진 마음과 생각의 차이를 가져오게 합니다.

신앙이 서로 달랐던 이 사람들은 그 정탐한 가나안 땅을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평가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었기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하여서 자기스스로를 메뚜기 같이 볼 정도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자신들의 밥이라고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신앙을 가진 사람과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이 차이가 납니까?

인간은 범죄한 아담 안에서 그 생각까지 타락하였습니다. 그래서 너나할 것 없이 죄의 생각, 부정적인 생각, 망하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이것은 목회자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담 안에서 천성이 된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믿고 나 자신을 맡기고 사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염려한다고 머리터럭하나 희고 검게 할 수 없고 내 작은 키를 한자도 더 크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나 자신이 무능함을 인정하고, 나보다 더 사랑이 많고 더 능력이 많으시니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 나의 삶을 다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말씀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시인하고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여준 믿음의 삶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누가 내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좋은 사람에게 가서 돈을 주고 살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은 또 빌려 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자기가 가진 믿음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다가 보면 나중에는 인간적인 생각을 먼저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로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 예배 빠지지 말고 참석하고, 기도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주를 섬겨 봉사하고, 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다가 보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믿음은 차츰 차츰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빌립보서 4:13에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내게 믿음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신앙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바울이 깨닫고 섬겨온 하나님은 전적으로 자기를 믿는 자를 전적으로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내가 믿는 주님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믿음의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과 그 주신 약속한 말씀을 굳게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의 신앙과 긍정적인 생각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사야서 40: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런 약속의 말씀들을 통해 우리 믿음을 키워나가고 우리 마음과 생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당면한 현실의 어려움만 보고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자기 자신만 바라보고 죄와 싸울 때에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라고 하며 처절한 패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순간 바울은 죄에서 벗어나는 승리의 삶을 노래 부르며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아멘.

 

우리가 나의 어려운 환경이나 자신의 나약함만을 보고 있거나 자기의 약한 것만 본다면 낙심할 수밖에 없고 불안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하여 우리는 찬송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부정적인 생각과 염려는 모두 다 불신앙의 소산입니다.

불신앙적인 보고를 했던 10명의 정탐꾼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까지나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게 될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는 철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바울과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소유하십시오.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믿음의 결국인 영혼의 구원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게 도움을 주는 요인들을 보면

첫째,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 세 사람이 모여 예배하는 곳에 함께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심을 다해 예배하는 자들을 만나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영감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아침저녁으로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어 우리 심령에 믿음과 긍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어주십니다.

셋째,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는 세상을 바라보던 우리의 시야를 하나님께로 돌리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 번뇌와 근심을 끊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부어 주십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는 우리 마음과 영혼을 뜨겁게 해 줍니다.

넷째. 순종하는 삶이 있습니다. 신앙은 사실 순종을 통해서 확증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가진 믿음을 인정하실 때 순종을 보시고 판정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보십시오. 그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의 영혼에 삶에 역사하시는지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체험은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켜주며, 우리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아멘

다섯째,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교제입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을 만나면 악한 영향을 받듯이,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교제는 그들이 받은 은혜에 함께 참여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충만한 이런 사람들이 혹시 우리 주변에 있으면 저는 도시락을 싸들고서라도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하시기를 권합니다. 왜요. 그렇게 하면 우리는 그 은혜 충만한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되고 우리 또한 은혜 충만한 성도로 자라고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참빛교회 모든 성도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여전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그 성경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너희는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 부정적인 보고를 했던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과 그 주신 약속을 믿는 신앙 안에서 긍정적인 신앙인이 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신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자세히 살펴보고, 연구하는 수고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큰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우리는 내 입으로 말한 대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말로 씨를 뿌린 대로 우리는 그 열매를 삶 속에서 거두며 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다 지혜가 있으니 콩을 심어놓고 수박을 추수하려고 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말, 불신앙적인 말의 씨를 심어놓고, 긍정적인 결과와 열매를 거두려고 하면 안되지요. 우리는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며 산 그 긍저적인 말이 씨가 되고 자라서 우리 신앙과 삶 속에서 긍정적인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아멘

 

우리 모두는 이 한 주간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신앙과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세상의 악과 마귀의 역사와 죄를 이기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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