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3. 7. 23. 14:17

하나님의 자녀들

로마서 8:28~30

 

이 세상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믿음이 작을 때에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의 구분이 모호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확실해지면 그 구분 또한 확실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확실하게 구분됩니까? 그 구분은 교회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 로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있다고 하느냐 하지 않느냐? 로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은혜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살펴볼 내용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 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안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안다.’라고 하고 있는 단어는 헬라어 오이다 멘입니다. 오이다 멘은 무엇인가 특별히 강조하고자 할 때, 그 강조하고자 하는 문장의 서두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렇게 볼 때 로마서 8:28 절 말씀에서 이 오이다 멘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사도바울이 로마서 8장의 말씀들 중에서 이 말씀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특성을 강조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자녀는?

첫째, 사람 편에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다고 합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모든 성도들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사랑하고 있지 않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그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같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좋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젊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핸드폰에 빠져 있고 또 게임에 빠져 있는 시대입니다. 이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습니다. 미국 어느 교회 목회자의 자녀인 학생이, 목회자인 그 부모님에게 신앙을 배우고 자라서, 늘 새벽기도를 하고, 교회 예배에도 잘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학생들처럼 이 학생도 게임을 간간이 즐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학생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다른 학생들은 어쩔지 몰라도, 목사님의 아들인 이 학생은 예수님과 게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예수님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학생에게 너는 예수님과 게임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무엇을 택하겠느냐?라고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이 질문을 듣고 이 학생은 조금 망설이더니 곧 게임을 택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학생은 또래 친구들과 달리 새벽기도도 하고 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있었지만, 그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 게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왜 중요합니까?

지금 이 시대가 말세이기 때문입니다. 말세는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노아의 때와 롯의 때의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때이며,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세상을 따를 것인가? 를 선택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 그 중에서 믿음이 좋아 보이는 목회자의 그 자녀도 하나님보다 게임을 선택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다른 학생들은 어떠하겠습니까?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지 않겠습니까? 학생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가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고 한다면 성인들도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사는 신앙보다는, 이 세상을 따라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집을 짓고 땅을 경작하며 사는 삶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할 자신이 있습니까?

 

이런 시대를 향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0:37절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이 말씀의 배경으로 깔려 있는 사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를 기본으로 깔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너희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모님 사랑 안에는 형제 사랑과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까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요점은 부모를 사랑하되, 그 부모를 사랑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합니까?

종말의 날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선택할 것인지,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선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때가 오게 됩니다. 그날이 오면 여러분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날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다고 합니까?

마태복음 10:38 절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보면 어떻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재산이나, 사회적인 지위, 지식을 좀 가지고 있다고 건방을 떨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행동을 전에 누가 했습니까?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하였던 바리새인들이 했던 행위입니다. 대제사장과 율법사들과 사두개인들이 했던 행동입니다.

 

이 사람들이 결국 예수님을 향해 어떤 행동까지 했습니까?

예수님을 시험하고, 대적하고, 적대시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 노릇을 자청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자존심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지식이 가져다주는 우월감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소유하고 있는 부와 명예까지도 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그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의나, 자기 평판이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부모를 공경합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를 내세우느냐? 자기를 내세우지 않느냐? 하는 것을 보고서도 그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내세우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 마태복음 6: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우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참 마음과 참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 편에서 볼 때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멘.

 

또 하나님의 자녀는?

둘째,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시고, 때가 되자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모두는 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연히 이뤄진 사건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하나님이 불러주신 시기와 방법은 다 다르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었고, 또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의 부르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6~7절입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러분은 어떻게 부르심을 입었습니까?

우리들이 어떤 방법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든지,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고 먼저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1절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아멘.

 

성경을 보면 야곱은 아주 종교성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70년 동안 장자의 명분을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진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야곱의 피나는 노력과 수고에 달려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이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시고, 야곱을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행해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모두 다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셔서 불러주시는 종교입니다. 로마서 8:30절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1절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무 조건도 없이 먼저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지명하여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부르셨고, 모세를 부르셨고, 기드온을 부르셨고,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많은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부르셨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건져 내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신약성경도 보면, 예수님께서는 고기 잡는 어부 베드로를 부르셨고, 그의 동역자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부르셨고, 나중에는 의사였던 누가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12명의 제자를 부르셨고, 70인의 전도대를 부르셨으며, 승천하신 이후에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에 전념하던 120명의 성도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 믿은 사람들을 잡아 오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던 바울을 찾아가셔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바울에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가셔서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를 특별히 선택하셔서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나를 선택하시고 지명하여 불러주셨다는 이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디모데후서 1:9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우리의 행위대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은혜대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은혜'라는 이 말은 우리를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이 값없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 있는 물건을 나의 소유로 삼으려면 그 물건에 상응하는 값을 지불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은혜가 아니고 값을 지불하고 사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값을 지불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것이 바로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우리의 어떤 행위나 공로나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인간 편에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아멘.

 

두 번째 살펴볼 내용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며 살게 되는 은혜는?

첫째, 삶의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십니다.

 

로마서 8: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이란?’ 어떤 특별한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경험합니다. 성공도 경험하고 실패도 경험합니다. 때로는 인간관계의 아픔도 경험합니다. 그러다가 그 마지막에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것이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그 모든 것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합력하여란?’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합력하여는 헬라어 '쉬네르게오'라는 말인데, '함께 일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배후에서 나와 함께 일을 행하심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서, 지금처럼 평화롭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인생을 계획해서 오늘 나의 삶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배후에서 그렇게 되도록 역사하심으로,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내게 유익하도록 해 주신 결과가 오늘날 우리들의 삶입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이 내 영혼에 유익 되고, 무엇이 내 삶에 복이 되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엇이 내 영혼에 유익이 되는지, 무엇이 내 삶에 도움이 되는지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배후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심으로, 모든 것이 우리 영혼에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우리 신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인도해 주신 결과가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배후에서 함께 일하심으로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이 되도록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해 주시는 일들 중의 하나가 기도입니다.

로마서 8:26절입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십니다.

우리가 가장 연약해 있을 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기도를 도우심으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기도를 도와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이 은혜의 경험은 기도 생활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줍니다.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줍니다. 아멘.

 

이 뿐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해 주고 계십니다.

로마서 8:34 절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 삶에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성령님의 기도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계십니다. 아멘.

 

선을 이룬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헬라어로 이란 아가돈인데 이 말은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형통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가치 있는 열매를 맺게 한다.’ ‘옳고 유용하게 만든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말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합력하여 가장 유익하게 만들고’ ‘가장 가치 있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로마서 8:28절을 다시 번역해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마침내 모든 것이 합력하여 가치 있게 만들어 주시고, 유익하게 만들어 주신다.’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 운명론이나 숙명론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섭리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삶에 고난이 오든지 오지 않든지,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건강이 좋든지 질병에 걸렸든지, 내게 납득이 가든지 납득이 가지 않든지, 그 어떤 것이든지 관계없이 우리는 운명이나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이런 삶의 요인들을 하나씩 하나씩 따로 생각하게 되면 우리에게 해로운 것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합쳐 놓으면 그 모든 요인들이 잘 조화되어서 우리 삶에 유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창세기 39:1절 이하에 나오는 요셉의 삶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 그 주인 보디발의 인정을 받았고 그 가정의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것 때문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애굽 왕의 두 신하를 만나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그것이 동기가 되어 나중에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에게 일어난 이런 일들을 하나씩 떼어 놓고 생각해 보면, 어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그런 어려운 삶을 주시는가?’ 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삶 전체를 통해서 보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간 것도, 보디발 아내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간 것도, 거기서 바로의 신하를 만나 그들의 꿈을 해석하여 준 것이 동기가 되어서,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주고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 모든 삶들이 다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결국에는 선을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바라볼 때 어느 한 면만 바라보지 말고 인생전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가까이만 바라보지 말고 멀리서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의 어려움 때문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되고, 그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한 과정임을 깨닫게 되고 또 믿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의 삶 속에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일을 당하는 것 같아보여도, 그 한 가지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들입니다.

 

어부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습니다.

그런데 어부들이 바다에 나갈 때 꼭 물통에 메기 새끼 몇 마리를 준비해 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부가 망망대해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 배 밑창의 좁을 공간에 집어넣으면, 고기들이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여 자포자기(自暴自棄)함으로 다 죽게 된다고 한답니다. 고기가 죽으면 상품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배 밑창에 메기 새끼를 몇 마리를 넣어 놓으면 그것들이 왔다 갔다하면서 물고기들을 괴롭혀서, 물고기들은 살려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살아 있는 채로 있게 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 속에도 메기 같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우리 믿음을 굳게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사람 중에 의미 없이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일들 중에 의미 없는 일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당하게 되는 그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우리에게 유익을 주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이해,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되더라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할 수가 있게 됩니다. 아멘.

 

또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며 살게 되는 은혜는?

둘째, 우리 영성과 인격이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가게 해 주십니다.

 

로마서 8:29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택하시고 미리 정해 놓으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 택해 놓으셨습니까? 에베소서 1:3~4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 전에, 우리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이미 택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미리 택하시고, 미리 아신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당하며 사는 그 모든 일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우리들로 하여금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1:4~5절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아픔과 절망, 고통과 실패 등등을 허락하시는 것은, 그 고난의 삶 가운데 우리의 인격이 연단을 받고 훈련을 받아서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을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이 처음에는 사기꾼 같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그 당한 그 많은 고난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한 족장이 되어갔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가 처음부터 반석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혈기도 많았고 욕심도 많았고,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 그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의 형상을 닮도록 변화되어 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고난도 오고, 시험도 오고, 갈등도 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들이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하십니다. 우리 신앙이 성숙해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성과 인격과 삶을 변화시킨 후에 일군으로 들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서 사용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그 믿음과 인격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온유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오래 참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변화된 사람들을 일군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변화시켜 가시는 이런 영성과 인격과 마음과 삶의 변화가,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있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 편에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뜻대로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확신이 있어야 합니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또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런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것 즉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성공이나 실패까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적은 우리 속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그 모든 일들은 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어떤 일을 주시더라도, 하나님이 그 모든 일들을 사용하셔서 결국에는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며 살아가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통해 우리들이 예수님을 닮은 성도로 변화시켜 나가시게 될 영광스러운 미래를 내다보며, 늘 주어진 삶을 긍정하며, 창조적인 생각을 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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