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유선언
로마서 8:1-2
1. 로마서의 구조
로마서는 그 구조가 아주 정교한 신학 논문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아주 논리적이고 논증적입니다.
로마서의 전체 구조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로마서 1:1-1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둘째는 본론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로마서 1:18-15:3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셋째는 결론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로마서 16장의 말씀입니다. 로마서를 이렇게 나누어 놓고 보니 이 로마서는 아주 정교한 한 편의 신학논문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로마서의 저자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왜 이 정교한 논문과 같은 로마서를 기록하여 로마교회에 보냈습니까?
당시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지원을 받아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그리고 아가야 지방에서 1.2.3차 전도 여행을 해오면서 많은 교회를 세워왔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는 다른 전도자들도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왔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어느 정도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중요한 전도 전략은 아직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이 어느 정도 전파되었고, 또 교회가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는 지역을 떠나서, 아직까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 그래서 교회가 세워져 있지 않은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지역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곳은 바로 로마 너머에 있는 스페인과 영국과 같은 지역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안디옥 교회에 선교본부를 두고 복음 전도사역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스페인과 영국에 전도하려면 안디옥은 너무 멀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가까운 로마에 선교본부를 두고, 로마교회의 지원을 받아서, 가까이는 로마와 그 인근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멀리는 스페인과 영국에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로마교회의 지원이 절대적입니다.
바울로서는 로마교회에 자신을 알리고, 또 로마교회가 자신의 선교사역을 지원할 수 있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써 보낸 서신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자신이 이제까지 전해 온 복음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로마교회에 전달하고자 한 중심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 내용은 바로 로마서의 본론 부분에 기록하여 보낸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면 로마서의 본론 부분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로마서의 본론에는 먼저 죄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1:18-3:20절) 다음에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3:21-8:39) 그 다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9:1-11:36) 그 다음에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바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2:1-15:33)
이렇게 로마서의 본론 부분을 정리해 놓고 보니,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로마서 8장은 로마서에서 아주 중요한 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의 말씀은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대한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중요한 로마서 8장의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자유선언
바울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의 결론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로마서 8:1-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아담의 후손 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해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인의 자유선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선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는 자유선언,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가 가져다준 정죄함에서 해방되었다는 자유선언입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놀라운 선언, 이보다 더 위대한 선언은 없습니다. 이 믿음의 선언을 저와 여러분들이 매일 매일 하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러면 우리들이 이 놀라운 믿음의 선언을 하며 살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로마서의 말씀 속에서 어떤 성도들이 이 놀라운 믿음의 선언을 하며 살게 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로마서에서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 직면하게 되는 것은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1:18-3:20)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게 될 때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것은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마주하고, 또 이 죄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참 신앙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믿음을 가지려고 하면 반드시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죄의 문제와 마주쳐야 하고 그 죄의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로마서는 어떤 죄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까?
로마서는 사람들이 네 가지 죄에 매여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영적 소경이 된 죄라고 합니다.
로마서 1:18-20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 가운데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자연 만물들을 보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연만물을 보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영적인 소경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녀가 그 낳은 부모를 잊어버리고 무시하는 것을 폐륜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영적 소경이 되어서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로마서 1:21절 말씀에서는 영적 소경이 된 사람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살므로)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또 어떤 죄에 매여 살고 있습니까?
둘째는, 우상숭배를 하며 산 죄라고 합니다.
영적 소경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살게 됩니다. 십계명을 보면 하나님이 이 우상숭배를 경계하시면서,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그것들에게 절하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구약시대와 같은 우상숭배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바울은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우상숭배가 행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우상숭배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쉐마의 말씀인 신명기 6:4-5절에서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37-38절에서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어떤 죄에 매여 살고 있습니까?
셋째는, 정욕의 노예가 되어 산 죄라고 합니다.
로마서 1:24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그리고 이어지는 26-27절 말씀을 보면 사람들의 성적 타락의 마지막 모습이 바로 동성애로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오늘날에는 성적 타락이 만연된 시대입니다.
그리고 성적 타락의 결말인 동성애가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시대입니다. 유엔의 지원 아래 세계 각국에서는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을 제정하여 동성애를 합법화 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동성애자들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교회가 당면한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는 다양한 이단들이 준동하여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인권을 앞세우며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인본주의의 득세가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인본주의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본주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종교적 관용 정신을 내세우며 교회가 독선적인 단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다른 종교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이런 사람들은 인권을 앞세우며 동성애를 옹호하고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수차별금지를 법으로 제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법이 제정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려고 하는 교회들은 차별금지법을 어긴 불법한 단체가 되게 되고, 진리를 따라 신앙고백을 하며 살려고 하는 교인들은 범법자가 되는 그런 시대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또 어떤 죄에 매여 살고 있습니까?
넷째는, 부도덕한 삶을 산 죄라고 합니다.
죄의 시초가 무엇이었습니까?
죄의 시초는 영적 소경이 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적 소경이 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우상숭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적인 타락입니다. 사람들은 성적인 타락을 통해 자신이 사단의 노예이고, 죄의 노예이고, 육체의 노예라는 것을 보여주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의 노예, 정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반드시 부도덕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면 자신이 부도덕한 삶을 살 뿐 아니라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옳다고 격려해 주고 조장해 준다고 합니다. 로마서 1:32절입니다.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것이 사람들이 매여 사는 죄의 네 가지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죄인이 된 모든 사람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선언합니다. 로마서 3:23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6:23절입니다. ‘...... 죄의 삯은 사망이요.....’
여기에는 모든 인류가 다 해당 됩니다.
이 말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유대인들도 죄인이고 이방인들도 죄인입니다. 로마서 3:9절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이것이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인간의 실존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3. 이런 죄인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3:21-8:39)
로마서 3:21절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이라는 넘지 못할 산을 만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앞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이라는 절망의 산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은 바로 복음으로 율법이라는 산에 터널을 뚫어 주시는 방법이셨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이 복음의 터널을 통해서 율법의 산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의 터널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믿음으로 복음의 터널을 통과하며,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 바로 에베소서 2:8절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로마서 4:3절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은 3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믿음이 시작되는 단계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그 믿음이 완전하지 못한 단계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믿음의 갈등도 있고, 때로는 믿음으로 살다가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여 사는 등등 그 믿음이 오락가락하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믿음이 성장하는 단계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 이후에 찾아옵니다. 이때부터는 더 이상 믿음의 문제를 가지고서는 갈등하지 않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살아가는 삶에서는 아직 부족하고 흠이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실수하고 넘어져도 더 이상 정죄함을 받지는 않습니다.
이때는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정죄는 없습니다. 이 때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 잘못 산 허물이 사해지고 그 죄가 가리 움을 받게 되는 것을 믿는 단계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그 삶이 성장하고 성숙해 나가는 성화가 이루어져 갑니다.
세 번째는, 믿음이 완성되는 단계입니다.
이때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말씀과 우리들의 삶이 하나로 일치를 이루게 되는 단계입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아들이삭을 번제로 바칠 때 이 믿음의 단계에 이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4:17절 말씀에서는 이때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다고 합니다. 아멘.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가진 믿음은 어느 한순간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는 그 시간부터 시작해서, 믿음으로 거듭나고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일치시키는 믿음에까지 나아가는 이 전체 과정을 믿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이렇게 시작되고 성장하고 성숙하여서 완성되어 나가는 과정을 신학적으로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전에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받은 구원이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완성을 향하여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될 때 이미 믿음으로 사는 삶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믿음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기도 하고 때로는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하면서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화 되어 나아갑니다. 우리의 믿음의 완성은 우리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생애를 다 살고 죽게 될 때 이루어집니다. 인류 구속사적으로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우리 구속의 역사를 마무리해 주실 때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적인 믿음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전 생애를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자신의 믿음의 삶에 대해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디모데후서 4:6-8절입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간이 가까웠도다. 나는 (믿음의)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을 로마서 6장에서는 ‘우리 주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해서는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부활을 믿는 신앙 안에서, 거룩한 종,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로마서 7장에서는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에서는 바울이 이제까지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성령에 대해 말씀하면서 우리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8장)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율법의 기능에 대해 논증하다가, 로마서 8장에서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 주제를 변환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이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이 로마서 8장을 끝으로 구원문제에 대한 논의를 끝맺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로마서 8장은 구원론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우리 구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신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에서는 성령도 성 삼위 하나님의 한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성령 론을 신론에서 다루지 않고 구원론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이런 논증들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죄의 종이 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구원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는 우리 구원과 연관된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도우심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그 누구도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시작이 전체를 지배한다.’ 는 것이 성경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지 않으신 것에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보면 그 어떤 일을 누가 시작하였는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이 시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의 시작은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우리 신앙은 우리의 의지와 결정에 의해서 시작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의지와 결정에 그 신앙의 출발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신앙의 출발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예정하심에서 시작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출발이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나님께서 그 시작하신 구원을 성령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 과정을 보면
첫째, 하나님의 택하심, 예정하심에 대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예정하셨다고 하십니다.
에베소서 1:3-6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둘째,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속사역 이라함은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말합니다. 이 일들은 그리스도의 비하와 그리스도의 승귀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비하라함은?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성육신과 사람이 되셔서 율법에 순종하여 사시고,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죄인으로 정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어서 그 몸이 무덤에 장사되심 까지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승귀라 함은? 예수님이 죽으신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과 승천하심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까지를 말합니다. 이 예수님이 장차 영광의 왕으로의 재림 하셔서 성도들에게는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을 베푸실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구원이 완성되고 끝이 나게 됩니다.
셋째, 구원을 위한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의 전 과정을 신학적으로는 구원서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 구원의 전 과정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를 믿음으로 부르심은 소명이라고 하는데 이 부르심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중생하게 되는데 이 중생 즉 거듭남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됩니다. 구원 서정 가운데 있게 되는 회심도, 신앙도, 칭의도, 양자됨도, 성화도, 견인도, 영화도 모두가 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구원과정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는 로마서 8장이 사람들이 구원받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구원받도록 도와주신 사람들
성령은 아무 사람이나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중에는 성령이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령이 구원에 이를 수 없도록 유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하심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됩니까?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하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서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받아가지고 평생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이 구원에 이르도록 도우시는 사람들은 먼저 그 자신이 구원에 이르고자 수고하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수고와 애씀이 없는 사람들은 구원의 은혜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예를 성경 속에서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많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 이런 증거들은 너무 많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역사 속의 증거들을 몇 사람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전기들을 읽어보면 루터, 어거스틴, 웨슬리, 휘필드 등등의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죄에서의 구원에 이르기 위해 누구보다 고민하고 애썼던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은 이렇게 구원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도우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우시는지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를 로마서 8장에서 해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8:1-30절 말씀에서 전해주고 있는 성령을 행하시는 사역을 보면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도우십니다. 그 대상은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8:31-39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해서 구원의 은혜를 입었던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과 확신 속에 무엇이라 외치고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이렇게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록하고 있는 로마서 8장의 말씀들은 우리가 읽으면 읽을수록 믿음을 더해주고 확신을 더해주는 귀한 말씀들입니다. 우리는 이 로마서 8장의 말씀들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읽고 또 읽어서 마음 판에 새기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입었던 사도바울이 외쳤던 이 신앙고백적인 외침이 우리의 외침이 되고,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고백하고 있는 믿음의 고백들과 확신들이, 우리 모두가 가진 믿음의 고백이 되고 확신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로 믿음으로 주시는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늘 그런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예배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5. 결론을 맺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까?
첫째,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갈망하고 구원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받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며 살아가는 신앙 고백적인 선언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우리 모두도 사도바울이 했던 이 믿음의 선언과 이 믿음의 고백들을, 같은 믿음 안에서 함께 선언하고 고백하고 외치며 살아가는, 복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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