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대한 가르침
디모데전서 2:1-4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말씀은, 사도바울이 그의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이 디모데는 누구입니까?
디모데는 초 신자가 아닙니다. 어린 나이에 바울이 세운 에베소교회를 맡아서 목회하였던 담임 목회자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한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되어 사역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런 디모데가 기도가 무엇인지,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겠습니까?
심지어 이 디모데는 금식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든지 그 위장이 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 5:23)라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이런 디모데에게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말씀은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초신 자들에게 준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또 그 누구보다 기도에 열심이었던 디모데에게 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우리들도 기도가 무엇인지 몰라서 이 말씀을 살펴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또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 온 사람들입니다. 이런 선행적인 이해를 가지고 이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까?
첫째, 먼저 네 가지 기도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바울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되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해 오신 기도, 지금 하고 있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보통은 자신의 신앙문제, 가정문제, 자녀문제, 남편의 사업문제, 교회에서 직분 잘 감당하는 문제 등등이 주된 기도제목입니다. 이것은 저의 경우도 별단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우선 내 자신의 문제를 기도하고, 내 눈에 가까이 보이는 성도들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고 헌신하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와는 좀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초신 자들이라면 몰라도, 신앙생활을 오래 한 너희들이 하는 기도는 그 격이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네 가지 기도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간구입니다.
간구는 헬라어로 “데에시스”인데 이것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그 해결을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간구하는 기도는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 지금 당장 그 해결책이 나와야 하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의사는 그 병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가망이 거의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고 해 봅시다. 이 때 그 당사자가 하나님께 하게 되는 기도가 바로 간구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간구하는 기도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의사도 포기한 내 병을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다른 방법들을 다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전심전력을 다해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간구의 기도입니다.
간구하는 기도에는 하나님의 응답하심도 빠르게 옵니다.
사람들이 분초를 다투는 급한 일이 있어 간구하며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여유 있게 천천히 응답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급한 문제를 가지고 급하게 간구하며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급한 상황에 맞게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간구하며 부르짖는 기도에 기적이 많이 나타나고 역사가 많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급한 일에는 급하고도 신속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서 33:3절 말씀이 바로 이런 상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너희가 내게 간구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내가 그 부르짖는 기도를 듣고 곧 바로 응답해 줄 것이며, 네가 이전에 알지 못하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네게 보여줄 것이다. 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 다급한 일을 만났을 때 하게 되는 기도가 바로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헬라어로 “프로슈케”인데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마치 대화하듯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를 영적인 대화라고 할 때 이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구하는 기도와 이 기도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첫째, 간구는 기도일 수 있지만, 기도는 간구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간구는 특정사안에 대해서 지금 당장 응답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지만, 기도는 지금 당장에 응답해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기도에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기도를 응답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도 있고, 하나님의 나를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도 있고, ‘하나님께서는 제가 무엇을 행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도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아주 다양한 모양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심지어 우리는 찬양까지도 곡조를 붙인 기도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도는 이렇게 그 구하는 내용도 다양하지만, 그 구하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세 번째는 도고입니다.
도고는 헬라오로 “엔튝시스”인데, 이것은 디모데 전서에서만 두 번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이 엔튝시스는 ‘백성이 다른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그 왕을 만나서 대담하고 면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도고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는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중보기도는 나의 필요나 나의 소원 등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간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중보기도를 할 때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임금들을 위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기도의 범위가 얼마나 넓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범위를 넓히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가 미리 기도해 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기도의 범위를 넓혀 나가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감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감사를 이야기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의문이 들지요.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을 하신 데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디모데 전서 2:1-2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기도해 주어야 할 대상이 누구라고 합니까?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되, 그 중에서도 특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해 줄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또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기도해 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 안에 그 사람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 마음속에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 감사하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의 기도, 진심어린 기도를 해 줄 수 있습니다. 만약 그 마음 안에 감사하는 마음은 전혀 없고,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런 상대방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겠습니까? 기도해 주기 보다는 악평하고 저주하며 다니지 않겠습니까?
창세기 27장을 보면 이삭이 그 장남 에서에게 이런 요구를 합니다.
‘네가 사냥을 해서 잡은 그 고기로 요리한 음식을 가져 오거라. 내가 그 고기를 먹고 흡족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너를 축복해 주려고 한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삭이 에서가 가지고 온 그 별미를 먹고 감사하는 마음, 흡족한 마음으로 그 장남에서를 마음껏 축복해 주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기도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은 어디서 나옵니까?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의 변화에서 나옵니다. 믿음 안에서 마음이 변한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범사를 감사하며 살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감사가 생활화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기도생활은 바로 이 마음의 변화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의 변화를 노래하고 있는 찬송가가 바로 289장입니다.
그 가사를 보면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이렇게 마음이 변한 사람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 중에는 남성이 많습니까? 여성이 많습니까?
여성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자 성도들이 믿음이 없는 사람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 후 평생 그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삽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편들이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힘들어 하며 사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평생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왔는데 그 남편들이 잘 변하지 않는 것입니까?
왜 평생 기도해 주었는데 남편들은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기도하고 있는 그 여자 성도 자신의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을 위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바보 온달은 키가 크고 힘이 천하장사였지만, 정신적인 지능은 낮아서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고구려의 평강공주는 어렸을 때 얼마나 많이 울었든지, 그 부모가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겁을 주면서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평강공주가 장성하여 자신은 바보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말리다 말리다 말릴 수가 없어서 두 사람을 결혼시킵니다. 그런데 평강공주와 결혼이 이 바보 온달을 어떻게 변화시켰습니까? 그 유명한 고구려의 온달장군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바보 온달을 온달 장군으로 변하게 했을까요?
바보 온달은 모든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보통사람도 아닌 한 나라의 공주가 자신과 결혼하여서, 자신을 인정해주고, 믿어주고, 진심으로 사랑해주자, 이 평강공주의 진심어린 사랑과 섬김이 바보 온달을 변화시켜서 온달장군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바로 이런 분이 아니십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우리들을 불러주시고, ‘너는 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다. 너는 나의 유업을 이어갈 아들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 나는 너를 믿는다. 용기를 가지고 다시 해 봐라. 내가 너를 도와주시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해 주리라.’ 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격려해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오늘 우리들이 있는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들이 믿음이 없는 남편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기 자신이 변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살아가는 남편, 죄악 된 세상에 속해 살아가고 있는 그 남편을 보고, 우월감을 가지고 지배하고 주도하려고 해서는 결코 남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아내들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진정 남편이 구원 받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믿음을 가진 아내로서 본이 되는 생활을 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회개하고, 이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거듭난 성도답게,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남편을 섬기는 삶을 살되, 마치 성도들이 주님을 섬기듯이 그렇게 남편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내가 이렇게 변화된 삶을 살게 되면 변화되지 않을 남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감사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는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감사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고 합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라고 할 때 그 안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들어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된 형제이기 때문에 기도해 주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직 예수를 믿지 않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선을 베풀고 잘 해주는 사람에게는 그들의 선행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 선행을 갚아주시기를 기도하고, 우리에게 가시 같은 사람들에게는 장차 그 사람들이 당하게 될 불행을 마음 아파하며 그 악행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이 말씀은 한 사람도 빼 놓지 말고 기도하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70억이 넘는 그 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도 빼 놓지 않고 기도해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주려면 한번 씩만 기도해 주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이 말씀은 이렇게 한 사람도 빼 놓지 말고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주라는 말씀이 아니고, 그 어떤 사람들도 빼 놓지 말고 기도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미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일본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일본 사람들만 빼 놓고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북한 사람들만 빼놓고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늘의 복 주시는 것에서 제외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의 완악함으로 인해,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는 것에서 빼어 놓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이 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완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그룹도 어떤 계층도 빼놓지 않고 그 모든 사람들에게 햇빛과 비를 내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즉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매일 만나는 경비아저씨, 환경미화원들, 집배원들, 이웃 슈퍼 직원들을 위해 기도해 줄 뿐 아니라,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우리에게 까다롭게 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감사하는 마음으로
둘째, 임금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고 합니다.
본문에는 임금이라는 단수가 아닌 임금들이라는 복수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임금은 지금 우리의 말로하면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왜 대통령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고, 대통령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대통령이 두 명인 나라가 있습니까?
내각책임제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도 대통령은 한 사람입니다. 대통령과 함께 내각의 수반인 총리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임금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자기 나라 대통령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고, 또 다른 나라 대통령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복수를 쓰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촌이란 말을 많이 쓰지 않습니까?
그만큼 모든 나라가 가까워져 있습니다. 세계화가 시대적인 추세가 된 이후에 어느 나라도 더 이상 고립된 채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같이 해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WTO에 가입했을 뿐 아니라, 미국과 또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문제도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가장 피해를 볼 나라는 누구입니까? 남한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핵무장에 왜 다른 나라들이 관심을 가집니까? 왜 많은 나라들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고 함께 동분서주 하고 있습니까?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는 요즘은, 어느 한 나라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는 그 한 나라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공동체로 묶여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나라가 그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는 북핵문제에 함께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증시를 보십시오.
미국 증시가 하락하면 동시에 유럽, 아시아, 동남아 등 세계 증시가 동시에 하락하게 됩니다. 동남아에서 외환위기가 오면 우리나라 일본은 물론 전 세계 경제가 그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작년 말부터 미국에서 금리를 올리니 온 세계가 그 보조를 맞추어서 금리를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대통령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나라 대통령만을 위해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김정은은 신년 초부터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핵 무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고 외신들은 한반도가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소련의 푸틴 대통령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감사하는 마음으로
셋째,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여기에는 장관들, 정계 인사들, 단체장들, 군대 장성들, 기업체의 사장들과 함께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사회 지도층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늘날 사회는 뛰어난 어느 한 사람을 통해 움직이거나 유지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할 때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와 같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개개인은 마치 큰 기계 속에 있는 부속품과 같습니다. 부속품이 하나라도 망가지면 그 기계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 지위만큼 큽니다.
이런 사람들이 잘못되면 그 피해는 힘없는 국민들이 입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높은 지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기도해야 합니다.
3.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때 얻게 되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이렇게 기도하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까?
첫째,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 줌으로 대통령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잘 하게 되면, 그 나라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서 그 사람들의 삶이 평안해지면,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도 평안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욥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10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다 잃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몸에도 악창이 나서 그 짓무르고 고름이 흘러 내렸습니다. 당시 욥의 모습이 얼마나 흉측했으면 그 아내도 그런 욥의 모습이 보기 싫다고 하며 떠나갔습니다. 이제 욥은 치료해 줄 사람도 없고, 치료 받을 수 있는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잿더미 위에 앉아서 기와 장으로 가려운 몸을 긁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욥이 언제 회복되었습니까?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42;10) 욥이 자신과 논쟁하던 그 벗들을 용서하고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줄 때 하나님은 회복을 주시고 평안을 주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욥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안에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바울은 이렇게 기도해 주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까?
둘째,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는 기도는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도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는 기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으시는 기도에는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입니다.(약4;2-3) 죄악을 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구 망하게 해 달라는 악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는 기도입니다. (주기도문)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기도’ 등등은 하나님이 듣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 대통령들을 위한 기도, 높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면 그 혜택을 우리가 기도해 준 그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고, 높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중보기도해 준 그 사람들을 통해서 그 혜택이 사회 곳곳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흘러넘치는 혜택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 이웃 사람들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한 기도의 한 좋은 예가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린아이들과 부녀들과 국민 전체가 아픔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전에 2차 대전 당시 전쟁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던 북 유럽에 사는 한 여인이 한국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 전쟁으로 고통당하게 될 한국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이집트의 시내 산으로 가서, 마치 모세처럼 그 산에서 전쟁으로 고통당하게 될 한국을 위해 40일 금식기도 했다는 기사를 읽어 본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여인의 기도를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응답해 주심으로 오늘날 우리나라는 재앙이 변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민족이 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고 여러분들은 앞으로 기도할 때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바울은 이렇게 기도하면 또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까?
셋째, 우리가 기도해 주면 그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임금들을 위해 기도해 주면 나라가 평안하게 되고 국제정세가 평안하게 됩니다.
이렇게 나라가 평안해 지고 국제정세가 평안해지면 복음 전하기 좋은 때가 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게 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4절 말씀과 같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게 될 것”입니다.
도시 목회와 달리 시골목회는 특히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합니다.
한번 동네 사람의 눈 밖에 나거나, 동네에 나쁜 소문이라도 돌면 전도도 안 되고, 더 이상 목회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시골교회로 부임해 갔는데 그 동네에는 목사님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 핍박하고 교회 예배를 방해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막아 주시고 성도들을 박해하지 못하도록 혼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목사님의 마음속에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전도하는 것을 방해하고, 갖은 미운 짓을 다하는 그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자신을 이 마을에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 사람에게는 전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미워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못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돌이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이 목사님의 기도가 변했다고 합니다.
미운 짓만 골라서 하던 그 사람을 저주하던 기도가 변하여 그 사람을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의 마음 주시기를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의 마음에 전에는 느껴볼 수도 없었던 평안이 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변하게 되고, 그 변화된 마음으로 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게 되자, 나중에는 그 사람도 변화되어 결국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내가 기도하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진리를 알도록 해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중보기도에 깨어 있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스케일이 큰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기도를 통해 혜택을 보게 될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스케일에 맞게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의 스케일을 넓혀서, 모든 사람과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우리 기도가 응답이 되어서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기도의 스케일을 넓혀나갑시다.
그래서 각 나라와 민족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각 나라 대통령들과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 교회와 우리 가족과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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