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4. 1. 14. 13:55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

요한복음 5:1-13

 

우리는 요한복음 5장 말씀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의 명절에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이스라엘 전역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에는 이렇게 모인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유대인의 명절이 되었지만 그 명절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병든 몸을 치료받기 위해 베데스다 연못가에 모여 있었던 병자들입니다. 이곳은 요즘 우리말로 하면 마치 종합병원의 중환자실과 같은 그런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안은 이렇게 상반되는 두 가지 상황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한곳에는 명절에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고, 다른 한곳에는 중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예루살렘의 분위기였습니다.

 

이 명절에 예수님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두 곳 중에 어디를 가셨다고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가진 곳은 순례자들로 북적이고 있는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병자들이 그 병 고침을 받으려고 모여 있었던 베데스다 연못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간 예수님은 왜 먼저 성전으로 가시지 않고, 병자들이 모여 있는 베데스다 연못으로 가셨냐? 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38년간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던 어떤 사람을 찾아 베데스다 연못으로 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특별히 38년 된 그 병자를 찾아가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병자의 병이 다른 사람들의 병보다 오래되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병자의 병이 다른 사람들의 병보다 중한 상태였기 때문입니까?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왜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는지, 예수님이 왜 그 많은 병자들 중에서 오직 38년 된 그 병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살핌을 통해 우리들이 38년 된 병자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38년 된 병자가 은혜를 입은 그 첫 번째 이유는, 이 병자는 38년 동안 중병에 걸린 상태로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병 고침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6-7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만약 이 병자에게 병 고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그는 더 이상 베데스다 연못가에 머물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게 되면 그 병을 고침받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병이 오래되었고 더구나 그 병이 불치의 병일 때에는 오히려 치료를 포기하고 현실을 수용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너는 지금도 병을 고침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냐?’ ‘너는 지금도 병을 고침받아야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으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자는 벌써 38년이나 투병 생활해 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병을 고침 받고자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이 병자의 대화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보길 원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된다고 합니까?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나와서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병을 치료받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바른 신앙을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찾아 나왔다가,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입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의 공회 의원 중 한 사람이었던 니고데모가 있습니다.

로마인 중에는 백부장이 있습니다. 10명의 문둥병자들도 있습니다. 친구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나아왔던 중풍병자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 오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쉽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만나 뵙고,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입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강한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모두 다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찾아가서 만나주시고 은혜를 주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고, 예수님이 베풀어 주시는 구원의 은혜 입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 나올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거라사 지방에서 군대 귀신 들려 고통받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그 누구보다 사모했지만 군대 귀신이 들려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가셔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수가성에 사는 어떤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둔 것 때문에 이웃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정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물을 길러 먹었습니다. 이 여인도 누구보다 구원을 목말라하고 있었지만, 구원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찾아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가성 우물가로 찾아가셔서, 구원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38년 된 병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는 질병이 죄 때문에 온다고 믿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병자는 성전 예배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38년 된 병자도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사모하고 병 고침을 사모했지만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병자를 찾아가서 만나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구원을 사모하는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극복하고 스스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를 너무 사모하지만 스스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친히 찾아가셔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이나 그 주시는 구원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시라도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아무것도 행해 주실 수가 없으십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고향에서는 은혜를 베풀 수 없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입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달려 있습니까?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은혜를 입고, 은혜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은혜를 입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아간 38년 된 병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병 고침 받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병자가 된 지 38년이나 지났지만 그 소원은 약화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병 고침을 바라고 38년간이나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었으며, 그때까지 병을 고쳐야겠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의 그 마음을 보시고 베데스다 연못가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과 38년 된 이 병자의 대화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둘째,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보시길 원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25년 동안 지켜보신 후에 약속하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병자의 믿음38년 동안 지켜보신 후에 찾아가셔서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서 보길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 없다.’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삶의 행위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라면 상황이나 여건이나 환경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황이나 여건이나 환경이 어떠하든지 관계 없이 믿음을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4:18-22)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의 경우 인간적인 조건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후손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그 나이 100세가 되었고 그 아내 사라90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라는 이미 오래전에 자녀를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후처로 주기도 하였습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가진 이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겨주셨다고 합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경우도 같았습니다.

히브리서 11:9절입니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아브라함이 땅에 대한 약속을 받은 후에 오랜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도 땅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38년 된 이 병자의 경우도 같습니다.

이 사람도 38년 동안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응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 깊숙이 뿌리 박고 있으면서,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과 영혼 깊숙이 뿌리 박고 있는 이 믿음은우리에게서 시작되어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닿아 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믿음,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닿아 있는 믿음이었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가 공권력을 가지고 극한 박해를 가하여도 그 신앙을 말살할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인들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육신에 고통과 아픔을 주고, 육신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영혼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이 믿음, 하늘 보좌에 연결되어 있는 이 믿음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은 세상이 감당할 수가 없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성도들이 가진 믿음의 높이와 깊이를 알 수도 없고 짐작도 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아멘.

 

우리 교회는 비록 대림상가 2층의 작은 장소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있지만, 우리가 드리고 있는 이 예배는 사실 하나님의 보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이 예배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해 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연결되고, 인간 차원의 세상과 하나님 차원의 하늘이 하나로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자리에 하나님의 귀가 있고, 하나님의 눈이 있고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그 믿음은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연결되어 있었던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자가 된지 38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에 응답해 주시기 위하여,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지만, 곧 바로 성전으로 가시지 않으시고, 38년 된 병자를 만나주시기 위해 베데스다 연못가로 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믿음은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보기 원하시는 믿음도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얕은 믿음, 피상적인 믿음을 버리고, 우리 영혼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믿음,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이르러 있는 높은 믿음을 가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 가진 거룩한 꿈을 이루지 못합니까?

그것은 중도에 그 꿈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꿈이 이루어지는데 25년 걸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 병자는 그 꿈을 이루는데 38년이나 걸렸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사람들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더딜지라도 그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른 말로 하면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꾸는 꿈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포기하시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포기하면 하나님도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이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환경이 어떠하든지, 상황이 어떠하든지, 여건이 어떠하든지, 믿음을 버리지 말고, 아브라함같이, 38년 된 병자와 같이 늘 우리가 가진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38년 된 병자가 은혜를 입은 그 두 번째 이유는, 이 병자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병을 고침 받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믿음은 반드시 그 삶으로, 그 삶의 헌신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성장할까요?

교회 성장을 바라는 간절한 소원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합니다. 담임 목사가 성장하길 바라고, 사모가 성장하길 바라고, 온 성도가 성장하길 바라는 교회는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소원과 꿈이 있는 사람들은, 교회 성장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교회 성장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과 함께 하시면서 전도할 마음도 주시고, 전도할 능력도 주시고, 전도할 사람을 만나게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믿음이 성장할까요?

자신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성도들입니다. 이런 성도들은 그 믿음의 성장을 바라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성경을 보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믿음은 성장하지 않을래야 성장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병자가 한 말에서 우리는 그가 병 고침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병 고침을 기대하면서,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물이 동할 때 먼저 들어가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병이 중하여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기도였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하나님 저는 신체가 불편하여 38년을 기다렸으나 제 병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물이 동할 때를 알려 주시든지, 저를 도와줄 사람을 보내주세요. 그래서 제 병을 고침 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있던 이 병자에게 어느 날 처음 보는 사람이 찾아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이 병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몰랐습니다. 다만 그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나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병자는 예수님을 향해 나는 도와줄 사람이 없어 병 고침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우리가 가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우리에게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그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됩니다.

 

38년 된 병자가 은혜를 입은 그 세 번째 이유는, ‘예수님이 일어나 걸어가라.’ 라고 하시는 그 말씀을 믿고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믿음 없이 행위만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실한 믿음을 가질 뿐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삶의 행위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하시면서 그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야겠다는 믿음도, 기대도 없는 사람을 찾아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좋은 말을 해 주니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병을 고쳐야겠다는 간절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걸어가라라는 말을 듣게 되면, 그 들은 말씀을 자신의 간절한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일 년 365일이 다 지나가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단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믿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기대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그 음성 듣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마음,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있는 사람들만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신비로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떤 사람들에게 일어납니까? 병든 지 38년이 지났지만 그때까지 병 고침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구하고 찾았던 사람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어디서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3을 보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던 앉은뱅이가 기도하려고 성전에 들어가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오순절 전후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을 통해 나타난 놀라운 구원의 역사병 고침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역사의 정점에 서 있었던 두 사람, 베드로와 요한이 지금 자기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간절한 마음으로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나도 저 사람들이 받는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나도 저 사람들을 통해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베드로와 요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베드로도 이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눈빛 속에서 간절한 바람이 있다는 것을 읽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이 베드로에게 저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해 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을 하였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가라

 

베드로가 전해 준 이 말을 통해 그 사람이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베드로를 통해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더니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게 되는 치유의 역사는 이렇게 일어났습니다.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들의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며,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변화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는 베드로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8년 된 병자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38년 된 이 병자에게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렇게 그 말씀의 능력을 믿고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성경에서 수도 없이 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요단강 물이 말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둥병자를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나던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가 할 일은 말씀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순종하면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 그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들은 말씀에 순종하여서,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의 상황과 처지가 바뀌고 변하더라도 우리는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믿음의 역사를 보고, 희망하던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를 만나더라도 우리가 가진 믿음과 우리가 가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믿음과 희망을 이루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수고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나 행함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반쪽짜리 믿음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은 행함으로 완성되며, 행함과 삶의 헌신으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헛것인 것입니다.

 

셋째,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그 삶에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믿음, 이런 신앙을 가지고 2024년도 한 해 동안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함께해 주시면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누리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란 무엇입니까?  (1) 2024.08.04
무화과나무를 통해 주신 말씀  (0) 2024.03.10
하신 일, 주실 선물  (1) 2023.10.22
성령이 주시는 은혜 ‘거듭남’  (0) 2023.08.06
구하라 주실 것이요  (0) 2023.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