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하신 일, 주실 선물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3. 10. 22. 14:07

하신 일, 주실 선물

요한복음 1:9-14

 

오늘날에는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전쟁의 위협은 아주 심각합니다. 일단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십시오.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을 보십시오. 전쟁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길바닥에 나뒹굴게 되고, 전쟁의 파괴 속에 고통당하며 울부짖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비참한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이유 불문하고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늘 있어 왔고, 전쟁이나 테러를 통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 있어 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그 당사자들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곧바로 세계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쳐서, 유통구조에 혼란을 가져다주고, 물가 불안을 조성하여, 세계 경제를 큰 어려움에 빠뜨리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생활이 불안해지면 이런 혼란을 틈타 이단들이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이단 교주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이단적인 교리를 전파하면서, 내가 메시야다.’ ‘내가 그리스도다.’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인류의 참 구세주는 어떤 분이시라고 합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내가 구세주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가짜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분이 진짜라고 합니까?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대로 오신 분이 진짜라고 합니다. 진짜와 가짜의 구별은 성경의 예언대로 오신 분이시냐? 아니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단의 교주들은 성경의 예언대로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에서 이런 이단들이 올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있는대로 온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런 이단들의 우두머리 격인 적 그리스도가 와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까? 하나님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해방하는 말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와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까? 마치 용처럼(사단처럼)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전해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시며, 성경의 예언대로 이새의 후손으로 다윗의 고향인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신 분이시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5:3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이단의 교주들과 같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신 분이 아니시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약속해 오신 그 메시야시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높이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만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고 있는 이 말은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 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단의 유혹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은 자신이 이단에 빠져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이단의 잘못된 신앙을 믿고 또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과 이단의 교주를 구별해 볼 수 있는 신앙, 참된 신앙과 거짓된 신앙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열려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이전에 예수님이 하신 일과 주신 선물을 살펴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일과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첫 번째 하신 일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는 일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4 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우리는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이 성육신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그 신성을 부인하시고 예수라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을 정도로, 하나님은 우리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설명해 보면 이렇습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는 자국민이 전쟁의 포로가 되거나 테러범들에게 납치되어 가면, 국가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국민을 구해 내려고 합니다.

 

전에 팔레스타인 게릴라 독일 적군 파 테러 조직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부분 타고 있던 에어 프랑스 항공기를 납치하여 우간다 엔테베 공항으로 끌고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육군 최정예 부대인 35공수여단 소속 군인 166명을 보내어서, 인질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출해 오게 하지 않았습니까?

 

또 얼마 전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납치된 19살의 길라드 샬리트 병장을 구해 내기 위해서, 무려 1,047명이나 되는 팔레스타인 포로들을 풀어주지 않았습니까? 그 포로 중에는 과거 이스라엘 국민들을 살해한 악질 테러리스트들하마스의 지도자핵심 전사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한명의 포로를 살리기 위하여 1,047명을 풀어준 것이 이스라엘 정부였습니다.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는 하마스는 이번에도 이스라엘과 전쟁을 일으키면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지 않았습니까? 하마스는 자신들이 포로를 많이 잡고 있으면 이스라엘이 쉽게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마스는 지금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 포로 6,000명을 풀어주면 그 붙잡고 있는 인질들을 풀어줄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군대를 보내 포로된 사람들을 구출해 내려고 하면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마스가 원하는 대로 포로를 교환해 주는 것도 타산이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왜 포로 된 자국민을 구출해 내기 위해 상식을 넘어서는 일, 손해 같아 보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은 이 일을 통해 국가는 국민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들의 마음을 이런 확신을 심어준 결과 백성들도 자원하여 국가에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 중에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다른 나라 젊은이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도망가기에 바쁜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나이 60이 넘었어도,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으면서도,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지키는 전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귀국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안에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구해 주시려고, 독생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성육신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인 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나를 존귀하게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라면, 지금 또 다시 내 대신 십자가에 그 생명을 내어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나를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로 보고 계신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믿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만 받아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 은혜는 병이나 고침받아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만 목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나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마음, 나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아는 사람들만 알게 되는 은혜입니다.

 

요즘은 청년들이 직장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대학을 나온 후에도, 공무원이나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한 후에도, 발령을 받으려면 많은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청년에게 어떤 사람이 그렇게 놀지만 말고 직장에 출근하기 전까지 임시로 아르바이트막노동이라도 해 보라고 하면, 내가 왜 막 노동을 해야 합니까?’ 라고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나 벌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따지고 대들지 않겠습니까?

 

막노동도 아르바이트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도 아주 큰 각오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시는 성육신은 어떠했겠습니까? 신성을 부인하고 피조물이 되겠다는 각오결단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지방에서 꽤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학교 다닐 때 집이 망해서, 친구들은 다 학교에 가는데 자기는 동네 만두 집에 취직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가장 부끄러웠던 것은 자기 친구들이 학교 갈 때 자기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만두가게 종업원으로 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 가는 그 시간에는 언제나 가게 안에 들어가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 신성을 버리시고 피조물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는 것, 거지가 되는 것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추시고 그 손으로 만드신 피조물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이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렇게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의 창조주가 되시는 부요하신 예수님께서, 가난한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분의 가난하게 되심을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해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또 다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피조물의 천한 몸을 입고 낮아지신 것은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높여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를 믿고 있는 우리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 신성을 버리시고 사람이 되어 주셨을 정도로 우리는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낮아지심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높여 주신 것이 바로 성육신 사건을 통해 주신 선물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우리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한 일을 마치 하나님께 한 것 같이 여기시고, 상을 주시기도 하시고, 화를 내리시기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31절 이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 의인들을 보고 하신 말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등등등 이라고 하시자, 의인들은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런 일을 하였습니까? 우리는 주님께 그런 일을 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여기 있는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한 일을 마치 예수님 자신에게 한 일 같이 생각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0:40,42절 말씀을 보면 더 구체적으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라고도 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반대되는 말씀들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0:14절입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스가랴서 2:8절에서는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한 자 같이 여기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민감한 곳이 바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민감한 마음으로 바벨론에서 포로가 되어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 사람들을 범하고, 해를 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아마 간이 부은 사람이거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북한의 김정일 시대에 우리나라의 많은 목사님들이 북한으로 납치 되어 갔고 또 거기서 죽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미국 국적을 가진 북한 인권 운동가 로버트 박이라는 청년은 김정일에게 복음을 증거하겠다.’라고 하며 두만강을 넘었다가 붙잡혔습니다. 그런 그가 43일 만에 북한에서 추방되었는데, 북한에서 받은 고문과 괴롭힘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을 했던 김정일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늘 최고의 의료진과 함께 다니는 그였지만 하나님이 치시니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가복음 9:4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김정일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예수님을 대적했던 헤롯 대왕처럼, 하나님의 종들을 대적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그 형상을 닮도록 지으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더욱더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 갈라디아서 6:9-10에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는 특별히 주의 종들에게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17절 말씀을 보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잘 다스리는 장로는 오늘로 보면 교회 장로님들입니다. 주의 일에 앞장서서 하시는 이런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목사님들에게는 더욱더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님들이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장로님과 목사님을 어떻게 존경하고 따라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오른손에 일곱별 즉 일곱교회 사자들을 붙들고 일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오른손에 붙잡고 일하시는 주의 종들을 대적하거나, 해를 입히는 일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주의 종들을 그 오른손에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께 반기를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사울 왕이 비록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자기는 사울 다음 왕으로 정해져 있는 상태에 있었지만, 자기 손으로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사울 왕을 해치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사울 왕을 폐하든지 그대로 두든지, 죽이든지 살리든지 하실 분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고 하며 하나님께 그 처분을 맡기는 겸손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런 다윗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의 믿음을 받으시고 마음을 받으시고, 그런 다윗을 높여 주시고, 다윗과 영원히 폐하지 않는 언약을 맺어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육신을 통해 우리를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계시는지, 얼마나 존귀한 존재로 여기시고 계신지를 잘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삶이 가난해도 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삶의 환경과 현실이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이 장차 우리에게 주실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만족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된 것입니다. 이 은혜가 성자 하나님께서 그 신성을 버리시고 예수라는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두 번째 하신 일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일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을 통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지만, 우리와는 달리 죄는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여기에 대해 히브리서 4:15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수님께 무슨 죄가 있으셔서 죽으신 것이 아니고,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대속적인 죽으심을 죽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29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히브리서 10:12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인간은 한 번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 후에는 그 살아온 삶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고, 생명을 창조하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으실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다 해결해 주신 후에는, 생명의 주인 되시는 그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의 대속적인 죽으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죄를 사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 은혜 안에서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영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이 왜 필요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내가 존귀한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지게 되나, 이 자긍심만 있고 구체적인 역사가 없으면 이 자긍심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다 처리해 주시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의롭다 칭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부활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죄로 죽어 있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 신앙을 가졌던 사도바울은 무엇이라고 선포하였습니까?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라고 하면서, 죽음을 이긴 승리자의 입장에서 사망을 향해 승리의 선포를 한 것입니다.

 

또 바울은 3층 천 즉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후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은 자기의 가장 큰 소원은 빨리 죽고 부활하여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바울이 왜 이 세상에 더 살고 있었다고 합니까?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를 통해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될 사람들의 유익과, 자기의 가르침을 받고 신앙이 견고하게 될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더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을 소망하며 살게 해 주시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목적하며 사는 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두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 번째 하신 일은,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신 일이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땅에 속하여 살다가 죽어서 땅에 묻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비록 마리아의 태를 빌려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셨지만, 본래는 하늘에 속하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본래 계시던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3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속하신 분이 아니시고, 하늘에 속하신 분이셨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승천하신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 부활 신앙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이 되었지만, 그런 우리에게는 아직 하나님 자녀의 권세도, 능력도, 열매 맺는 삶도 없었습니다. 이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보내주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실 때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 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켜 주고,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신시켜 줍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임도 확신시켜 주고, 또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며 살 수 있는 각종 은사와 능력을 주셔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을 보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중 가장 좋은 선물은 바로 성령 주심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좋은 것을 우리와 공유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승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성령이 자기 안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할 정도로 겸손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에 계신 성령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에 대해 잘 모르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려고 하면, 또 성령이 주시는 은사와 능력과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면, 우리는 성령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관계를 늘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내 안에 계신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성령의 은혜 안에 우리 신앙을 굳게 세워 나가게 되지만, 우리가 성령과 무관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우리의 신앙은 율법적인 신앙, 형식적인 신앙, 인간적인 신앙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너희는 성령으로 기도하라. 성령으로 사랑하라. 성령의 가르침을 받으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라.’라고 하시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우리가 얼마나 성령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만,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같은 설교자는 늘 성령으로 설교하려고 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 모두는 늘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령으로 봉사하고, 성령으로 섬기고, 성령으로 기도하고, 성령으로 참고, 견디고, 인내하면서 성령 안에서 열매 맺는 성도들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아멘.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과, 그 일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예수님은 그 하실 일을 다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직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해 주실 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재림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모든 예언의 말씀들을 다 이루어 주신 것 같이, 재림의 약속 또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네 번째 해 주실 일은, 장차 재림하셔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는 일이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천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선물 중 가장 크고 가장 귀한 선물은, 재림하셔서 우리에게 주실 메시야의 왕국이고 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날에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메시야의 왕국과 하늘나라를 주시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의 형벌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하심입니다. 그래서 그날이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기쁨과 안식의 날이 되겠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심판과 고통과 저주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야 왕국이나 천국은 이 세상 차원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차원에 속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사람들이 어찌해 볼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로 그 나라를 친히 보았습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사도바울도 성령에 이끌리어 그 나라를 친히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후 그 본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도 기쁨으로 인내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 하나님의 나라를 본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거의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아는 것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총동원하여서 가장 좋고, 가장 행복한 상태를 상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는 훨씬 더 좋은 나라일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가 본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았다.’라고도 하였고, 또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계시면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나라라고 전해주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신앙은 바로 재림신앙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날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중요한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다양한 재림의 징조 중에서 이스라엘과 연관성이 있는 징조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나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1:12-1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무화과의 때가 아닌 계절에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시다가 찾지 못하시자 그 나무를 저주하여 죽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24:32-34절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저주하여 죽은 그 무화과나무가 다시 잎사귀를 내고 열매를 맺게 되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가 되면 인자가 가까이 이른 줄 알고 있으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그 죄의 값을 지고 나라 없는 백성으로 약 2,000년간을 떠돌며 생활해 오다가, 1948514일에 기적같이 다시 독립 국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다시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을 본 세대가 다 죽기 전에, 재림이 있게 될 것이고, 성경에 약속하신 메시야의 나라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에 김홍도 목사님 같은 분은 많은 돈을 지불하고 일간 신문에 전면 광고를 내어서, 이 한 세대를 100년으로 계산하여서 ‘2048년 이전에 주님이 재림하신다.’라고 광고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둘째,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전파됨

또 마태복음 24:14절을 보면 또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는 것은 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다 전해지고, 그 후 마지막까지 남은 한 민족인 유대인에게까지 전파될 때 이 세상 끝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예수를 믿는 신자들의 숫자가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회복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제 이방인의 때가 끝나가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이방인이 구원받는 때가 끝이 나고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하나님의 나라의 도래가 임박하였다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셋째, 3 성전의 건축

1 성전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입니다. 2 성전은 무엇입니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그러면 제3 성전은 무엇입니까? 종말의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건축하게 될 성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성전을 건축할 자재들을 다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성전의 터를 닦고, 성전을 완공하는데, 불과 몇 달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지금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이슬람 사원인 바위 돔 사원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이슬람 사원을 헐고 그곳에 유대인의 성전을 지으려면 중동의 회교국가들과 생사를 건 싸움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모든 준비를 다 갖추어 놓고서도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자리가, 지금의 이슬람 사원 옆에 있는 공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슬람 사원을 헐지 않고서도 유대인의 성전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3 성전의 건축은 언제 있을 것이라고 합니까?

적 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이슬람과 유대교 사이에 7년 평화조약을 맺게 할 때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들과 유대교도들 사이에 평화의 시대가 오게 되면, 지금 있는 회교도의 바위 돔 사원 옆 공터에 유대인들이 성전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이 7년대 환난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때 적 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이슬람과 유대교 사이에 평화를 담보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십시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인류 역사는 정확하게 7년 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평화조약이 맺어진 후 3년 반 동안은 이스라엘과 이슬람 사이에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3년 반이 지나면 적 그리스도가 그 본색을 드러내어서 다니엘이 말한 바와 같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4:15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자는 깨달을진저)’ 다니엘서 9:27절입니다. 그가 (그는 적 그리스도입니다.)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이렇게 해서 이 땅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은 멈추어지게 되고,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짐승 경배의 표시로 모든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매매를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손과 이마에 넣어서 매매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이 짐승의 표를 받으면 유황불 못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짐승의 표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매매를 할 수 없어서 굶어 죽더라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격변의 시대 교회는 어떻게 됩니까?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예비 처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만약 예비 처로 피신하지 못하고 세상 속에 남아 있는 성도들은 짐승의 표를 받고 배교하여 살거나 아니면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여 죽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길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예비 처로 피신한 성도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비 처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와 양육하심을 받으면서 살아남아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하늘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 소리를 듣고 천사들에 의해 공중으로 휴거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휴거 된 성도들은 공중에서 재림하신 예수님과 하늘 군대가 죄악 된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하신 일과, 그 하신 일을 통해 주신 선물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선물을 주셨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와 죽음을 이기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되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보내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거룩한 삶,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실 일이 아직 한 가지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재림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심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해 오신 그 나라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예수님의 재림이 아주 임박한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마라나타 신앙을 가지고, 다시 오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