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부활 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5. 4. 20. 13:14

부활 신앙

고린도전서 15:12-14

 

오늘은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인 부활절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시하는 두 가지 절기성탄절부활절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 두 절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성탄절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그러면 부활절은 어떤 날입니까?

부활절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이를 통해 부활의 소망을 주신 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 부활절입니다.

 

부활 신앙은 아주 중요한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은 다른 종교에는 없는 신앙입니다. 오직 기독교에만 있는 아주 독특한 신앙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부활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은 죽음을 극복하고, 죽음을 초월한 신앙이며, 부활의 생명을 믿고 확신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초상집에 가보면 울고불고 야단입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죽음은 가장 슬픈 일이고, 가장 애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다릅니다.

성도들이 가진 신앙은, 죽음을 극복한 신앙이며, 영생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성도들은 죽음을 그렇게 슬퍼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슬픔이고 아픔이지만, 죽음을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장래 식을 천국 환송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은 여기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부활을 믿고 있습니까?

첫째는 영혼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영과 육을 가진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2: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영혼과 육체를 가진 존재로 창조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창조하신 사람에게 주신 계명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2:16-1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나무의 열매들은 네가 마음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너희가 이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희는 죄인으로 정죄를 받아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했습니까?

뱀을 통해 유혹하는 사단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게 됩니다. 이것이 가 되었고, 그 지은 죄의 형벌을 받아 그 이 죽었고, 육체는 죽어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류는 그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섬기고 예배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언제 다시 살아나게 됩니까?

예수님이 성취해 주신 십자가 복음을 믿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데, 이 성령의 역사로 우리의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성경은 믿음 안에서 그 영이 살아난 첫 사람이 아벨이었다고 합니다.

이 아벨은 인류의 첫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아벨의 믿음을 따라 그 영이 살아난 사람들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믿음이 신앙의 계보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믿으면 그 아들이 믿었고 그 아들이 믿으면 그 손자가 믿었던 믿음이었습니다. 그럴지라도 구원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부모가 믿어도 자녀가 믿지 않으면 그 자녀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개개인이 믿어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계보 중심의 믿음이, 민족 중심의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셔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구원은 여전히 개인 단위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개개인이 믿어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 유대인이 중심이 되었던 이 민족 중심의 믿음, 이방인이 그 중심이 되는 교회 중심의 믿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후 교회는 지상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 대사관의 역할을 하며, 복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해 내는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대가 바뀌어도 구원은 개인 단위로 이루어졌습니다. 개개인이 믿어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교회를 중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방인의 때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지금은 유대인의 때가 지나가고 이방인의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대인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유대인의 실패가 이방인이 구원받는 기회가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이방인의 때는 구원받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인류는 그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여기에 대해 에베소서 2:1절 말씀에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었던 우리의 영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약속해 오신 메시야,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는데, 이 성령이 우리 죽은 영을 다시 살려 주고, 거듭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말씀이 고린도전서 5:17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죽었던 우리 영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이 살아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혼의 부활이 우리에게서 일어난 첫 번째 부활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여전히 그 영이 죽어 있는 사람들과 예수를 믿음으로 그 영이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보며 살기 때문에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구분하여 보지 못합니다. 누가 그 영이 죽어 있는 사람인지, 누가 그 영이 살아난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영이 살아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영이 살아난 사람들이 얼마나 존귀한 사람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있다고 하면서도 성도들보다 세상 부귀와 영화, 권세 가진 사람들을 더 높이 봅니다. 또 교회 규모를 가지고 목회자들을 평가합니다.

 

또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교회에 나오면 사람들이 어떻게 대합니까? 그 사람의 영이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는냐? 하는 것을 먼저 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소유를 먼저 봅니까? 교회는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보다 세상 적인 조건을 먼저 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처해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도 세상과 똑같다.’라고 하며 실망스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이신 우리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그 영이 살아난 사람들과 그 영이 죽어 있는 사람들을 완전히 다르게 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영이 살아난 야곱은 사랑하셨고, 그 영이 죽어 있었던 에서는 미워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영이 살아난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그 영이 죽어 있는 사람들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그 영이 살아났던 셋의 후손과 불신앙 안에서 그 영이 죽어 있던 가인의 후손을 완전히 다르게 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내용들을 셋의 족보와 가인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5장의 말씀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영의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관점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예수 믿고 그 영이 살아난 성도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믿음이 없어서 그 영이 죽어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믿음의 자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믿음의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그 영이 다시 살아난 성도들을 존귀하게 여길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에서 시험 들고 실족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은혜가 우리 교회 안에도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는 어떤 부활을 믿고 있습니까?

둘째, 인격의 부활과 생활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인격의 부활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람의 영이 어떻게 살아나게 됩니까?

사람이 예수를 믿고 죄 사람을 받게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데, 하나님이 주신 이 성령이 사람의 죽은 영을 살려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의 영이 살아나면, 살아난 영이 사람의 인격에 영향을 미쳐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이것을 우리는 인격의 부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마치 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은 그 안에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릇 안에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 됩니다.

 

인간도 같습니다.

그 마음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 에 따라서 그 존재가 달라집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성령이 들어오시면 그 사람들은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오신 성령 하나님이 그 사람의 영혼과 인격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람 안에 들어오신 성령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하셨으며,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니라.”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신 성령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바로 거룩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각종 정욕 죄악이 우리 마음에 틈을 타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충만하신 성령이 우리 마음을 죄악 된 생각악한 소욕에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생활의 부활

 

예수를 믿는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은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켜 주실 뿐 아니라, 우리 생활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생활의 변화를 다른 말로 하면, 생활의 부활 혹은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으로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특징은 무엇입니까?

영혼이 살아나면 전에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던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살아나면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사람들도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고, 또 기회가 오면 복음을 전해 주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이 사랑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이 사랑은 성령이 우리 인격을 부활시켜 주시고, 우리 생활을 부활시켜 주실 때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인 또 다른 것 즉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등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되는 것은, 성령을 통해 우리 인격과 생활의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성령으로 그 영이 살아난 성도들의 삶 속에서는, 부활의 다양한 증거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에 부활의 증거가 나타나고, 행동 속에 부활의 증거가 나타나고, 생활 속에 부활의 증거들이 나타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 중에는 성령의 은사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부활이나 인격의 부활이나 생활의 부활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각종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에 집중합니까?

성령의 은사는 사역을 위해 주신 것으로, 능력역사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큰 은사를 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보다, 재능보다, 재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주시는 각종 은사 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성령을 통해 영이 부활하고 인격이 부활하고 생활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의 부활은 나의 구원과 연관이 있고, 인격의 부활은 내 존재와 연관이 있고, 생활의 부활은 예수 믿고 변화된 나의 삶과 연관성이 있는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은사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며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사역과 역사가 때때로 능력으로 나타나고 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에 큰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성경 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받은 은사와 나 자신은 별개라는 것입니다. 내게 병 고치는 은사가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만큼 인정함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은사를 통해 나를 도구로 사용하고 계시는 것이지, 나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성령의 은사가 나의 신앙을 보증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성령의 놀라운 은사가 나타나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그 은사가 나타나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교회 안에 아주 심했습니다.

한국교회는 병 고치는 은사가 나타나면 그 사람을 최고의 능력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이런 역사가 나타난다고 하면, 그 사람이 이단이든 삼단이든 관계하지 않고 따라가고 몰려가고 추종하게 됩니다.

 

그러나 병 고치는 은사는 병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병을 고치고 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병 고치는 은사가 그 사람의 믿음을 보장해 주지 않으며, 그 사람의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주신 은사가 병 고침의 은사입니다.

병 고침의 은사는 그 은사를 받은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은사를 사용하여 유익을 받게 될 사람들을 위해 주신 은사입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은사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자가 복 있는 자이며, 은사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 행하시는 역사임을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수준 높은 믿음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또 우리는 어떤 부활을 믿고 있습니까?

셋째, 육체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육체는 죽을 육체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본래 가졌던 영생할 수 있었던 육체가 죽을 육체로 바뀐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사람들은 죽어가는 존재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보면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죽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녹엘리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믿음을 지키며 살아남아서 휴거 하게 될 성도들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육체를 가지고 살다가 죽었으나 다시 살아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사로어떤 과부의 아들 등등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다시 죽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는 했으나, 여전히 죽을 육체를 가지고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죽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것부활은 다릅니다.

부활할 때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죽을 육체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죽을 수 없는 거룩한 영체를 입고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과 부활 때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의 다른 점입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 부활 체도 육체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육체로 살고 있을 때와 같이 만질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고, 육체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점,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이 육체는 물질이기 때문에 으로 막혀 있거나 이 닫혀 있는 곳은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신령체는 다릅니다. 비록 육체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영체이기 때문에 벽이 막혀 있거나 문이 닫혀 있어도 그냥 지나갈 수가 있습니다. 영체의 가장 큰 특징은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 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2-44절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한 영의 몸도 있느니라.”

51-54절에서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다 무덤의 종교입니다. 그 종교의 시조가 지금도 무덤 속에 묻혀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상 숭배도 무덤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조상의 묘를 숭배하고 명당을 찾아 묘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기독교에는 무덤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텅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결국 예수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부활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하고 있지 않습니까?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믿음만 가지고 가겠네.

믿는 자 위하여 있을 곳, 우리 주 예비해 두셨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고린도전서 15:55절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 고백은 부활을 믿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 외침은 부활 신앙 안에서 죽음을 이기고 극복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승리의 외침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부활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9절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같은 점은 부활의 때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예수를 믿고 그 영이 다시 살아나서 영의 부활을 경험한 성도들은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나고, 예수를 믿지 않아서 그 영이 죽어 있는 불신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부활하되 결국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서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토록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며 산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12-15절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부활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영의 부활입니다. 둘째는 인격과 생활의 부활입니다. 셋째는 육체의 부활입니다. 부활에서 중요한 것,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되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다시 살아나서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과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활이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 영의 부활, 인격과 생활의 부활, 육체의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육체의 부활에 참여하되,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지 말고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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