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역사서

버림받은 사울 왕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5. 5. 25. 13:17

버림받은 사울 왕

사무엘 상 15:10-19

 

우리나라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입니다.

국민이 선출한 국가 원수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선거가 아주 중요합니다. 63일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모든 국민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떤 사람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면 좋을지를 숙고하여서, 자기에게 주어진 한표 한표를 무겁게 행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미래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 우리가 뽑은 대통령에 의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스라엘은 신정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국민이 뽑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세우시는 그 사람이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그렇게 세워졌고, 2대 왕 다윗이 그렇게 세움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는 사울이 어떻게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사울 왕의 왕위가 왜 박탈당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베냐민 지파는 어떤 지파였습니까? 사사기 20을 보면 베냐민 지파는 자기 지파에 속한 불량배들을 옹호하다가 이스라엘 11 지파와 전쟁을 하게 된 지파입니다. 이 전쟁에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거의 다 죽고 약 600명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사사기 20:47 절입니다.

베냐민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 달을 지내었더라.’ 이 살아남은 600명으로부터 다시 시작된 지파가 바로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가장 미약한 지파였습니다. 이 미약한 지파 출신이었던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베냐민 지파 안에서 사울의 집안은 어떠했다고 합니까?

사무엘 상 9:1절입니다.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사울의 집은 베냐민 지파 안에서는 유력한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유력한 집안이라는 말은 힘과 능력, 부와 권세를 가진 집안이라는 뜻입니다. 사울은 유력한 집 아들이었을 뿐 아니라 준수한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준수한 소년이란? 생김새도 잘생겼을 뿐 아니라 그 마음도 선한 소년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균 키보다 2-30Cm 정도 더 컸다고 합니다.

 

정리해 보면,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가장 미약한 지파였던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지만, 집안이나 사울 개인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사울은 효심도 지극한 사람, 순종적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사무엘 상 9:3-5절 상반 절입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 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 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한지라,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은 아버지가 잃어버린 암 나귀를 찾아보라고 하자,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 나귀를 찾기 위해 에브라임 산지, 살리사 땅, 사알림 땅, 베냐민 사람의 땅, 숩 땅까지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사울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찾아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사울이 그 부모를 얼마나 공경하고 순종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도 잘 섬기게 됩니다. 땅에서도 잘 되고 건강과 장수의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울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 정성을 다해 잃어버린 암 나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럼에도 암 나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사울의 종이 이런 제안을 합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선지자가 있으니, 그 선지자를 찾아가서 어디로 가면 잃어버린 나귀를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자고 합니다. 그래서 예물을 준비하고 선지자를 찾아가게 됩니다.

 

바로 그때 선지자 사무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사무엘 상 9:16 절입니다.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정리해 보면, 사울이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숩 땅까지 오게 된 것이, 그 숩 땅에서 종이 사울에게 선지자를 찾아가서 물어보자고 한 것이, 사울이 그 종의 말을 듣고 예물을 준비하여 선지자 사무엘을 찾아가게 된 모든 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이며 인도하심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울을 사무엘에게로 인도하셨습니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에게도 이방인들과 같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에 응답하여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그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울만 섭리로 인도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울뿐 아니라 우리들도 섭리로 인도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인 섭리와 인도하심으로, 개개인들의 삶을 주관하시고, 국가의 지도자를 세우고 폐하시는 일을 주관하시고, 또 이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섭리하신 결과라고 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하나님의 역사하심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을 우연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가진 믿음을 구분해 보는 시금석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인 섭리하심으로, 자신의 삶, 세상 역사를 이끌어가고 계심을 믿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이나 이 세상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사건이나 현상들의 배후에서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신다고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모든 사건이나 현상들이 우연히 그렇게 일어난 일들이라고 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물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역사를 볼 때, 단순히 나타난 현상만 보며 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현상의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보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역사의 격동기 혼란기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사울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되었습니까?

사무엘 상 10:21절 말씀을 보면, 제비뽑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혔다고 합니다. 당시 사울은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행 구 사이 짐 보따리 사이에 숨어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사울이 아주 소심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울을 보고 일부 부랑자들이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그 부랑자들까지도 포용하게 됩니다. 사울은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도 품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살핌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만한 좋은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을 찾고 인도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살펴볼 것은

둘째,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울 왕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울은 인간적으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왕위는 오래 가지 못하고, 버림받은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울 왕을 버리셨습니까?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제 남은 시간 동안은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사울 왕은 신앙을 자기 유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사무엘 상 13: 8-9절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에 두고 있었던 사울 왕은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제사를 드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기로 약속한 날짜에 사무엘은 오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오지 않자 전쟁하려고 모인 백성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동요가 일어나더니,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의 동요와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기가 하나님께 번제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교회는 만인 제사장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들이 보면 사울의 이 행동에서 잘못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달랐습니다.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세웠습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왕이 되고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왕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무엇을 했다고 합니까? 당시 제사장이며 선지자였던 사무엘이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자, 백성들이 동요하고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자기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제사는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도 아닌 왕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사울 왕은 성직을 모독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제사장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죽임을 당합니다. 그렇게 죽은 아론의 아들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사장이라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그것이 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제사장도 아닌 사람이,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기 마음대로 드린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백성들의 동요를 막아보려는 목적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울 왕은 제사를 자기 유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이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성직을 모독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멸시하고, 성직을 모독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사 제도를 세우시고, 성직 제도를 세우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여기십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 우리말로 하면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중요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늦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준비하고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한 사람들이 그 삶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예배에 성공한 아벨과 그 후손들은 믿음의 계보를 이루며 살아왔고, 예배에 실패한 가인과 그 후손들은 불신앙의 저주 속에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꼭 예배에 성공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사울 왕의 행동이 단순히 성직 모독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전후 상황을 참작해 보면, 사울은 백성들이 불레셋과 전쟁을 하려고 모였는데, 사무엘이 약속한 기한이 지나도 오지 않자, 백성들이 동요하여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자신이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따라 제사드리는 것보다, 자신의 왕 위의 보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왕위를 보전하고, 왕의 통치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까지도 자기 마음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 행동을 통해, 자기의 유익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까지라도 서슴없이 이용하는 이기적인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사울이 가진 신앙은 하나님의 경외함에서 나온 신앙이 아니고, 자기 이익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까지도 이용하는 그런 신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보통 신앙으로 자기가 섬길 교회를 결정하고, 신앙으로 살아갈 방향을 결정하고, 신앙으로 주일날을 쉬면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을 찾게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신앙으로 그 살아갈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신앙으로 자기가 살아갈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얻게 될 유익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 선택이 달라지고 그 살아가는 삶이 달라집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아닌 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내게 유익한가? 무엇이 내게 이익인가?’ 하는 것이 모든 선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내게 유익이 되는 교회를 선택하고 내게 유익이 되는 대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게 됩니다.

 

또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만큼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을 귀하게 여깁니다.

또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앞장서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장로, 집사, 권사님들을 귀하게 여기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고 존경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던 다윗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가 폐하시고, 자신을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세우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사울 왕을 자신의 손으로 제거하기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으니, 그 왕위를 폐하시는 것도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사울 왕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다윗의 행동 속에서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고, 적의 침략에 대처하기 위하여, 3,000명 정도의 상비군을 두었습니다. 그중에 약 2,000명은 자신과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였고, 나머지 1,000명은 그 아들 요나단의 지휘 아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백성들을 모병해서 병사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쳐들어오자, 사울 왕은 상비군 3,000명과 동원령을 내려 모병한 백성들을 데리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주기로 한 사무엘이 기한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무엘의 영향력은 대단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늦게 오자 백성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이 축복해 주지 않은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면서 흩어지는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사울은 나도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세워주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울은 이를 통해 백성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하였습니다.

 

사울의 이 행동을 외형적으로 보면 마치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는 오직 자신의 왕위를 보전하고, 자신의 통치권을 확립하려는 목적으로 제사를 이용한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까지도 이용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의 이 행동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시지, 인간이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이용할 대상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기 왕위를 보전하기 위한 이용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사무엘 대신 자기가 직접 제사를 드린 사울의 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피조물로서 입장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겨야 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그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그 주신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섬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립니다. 그런데 왜 십일조를 드립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게 건강 주시고, 재능 주시고, 직장을 주셔서, 한 달 동안 살아갈 수 있는 소득을 얻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십일조이고 각종 헌금입니다. 십일조에는 하나님이 내게 이 물질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그 소득으로 얻은 물질을 어떻게 씁니까?

하나님이 주신 물질이니 감사함으로 누리고 살면서도, 또 그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하나님의 일에 필요하다고 하면 십일조뿐 아니라 특별 작정 헌금을 드리기도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드림으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소득의 십일조를 넘어서서, 하나님이 주신 건강도 은혜로 주신 것임을 고백하며 몸으로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바쁜 세상 삶을 살아가면서도, 교회에서 성가대로, 교사로, 차량 운전으로, 식사 당번으로 수고하고 애써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내가 받을 은혜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하는 이유를 보면, 내 장사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런 교회를 찾아서 등록하고, 자녀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 그런 교회를 찾아 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의 간증문을 읽어보니, 이 사람은 한 150명 정도 되는 교회를 십 년 이상 섬기다가, 바로 옆에 있는 교회, 성도들의 숫자가 2,000명이 넘는 큰 교회로 옮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다고 간증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았더니 이 사람이 교회를 옮긴 이유가, 규모가 큰 그 교회에는 주일학교가 잘 갖추어져 있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출석하고 있으니, 그런 교회를 다니면 자신의 삶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라고 하면서, 자신을 그런 교회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였습니다.

 

카톨릭 신자이나 그 신앙은 별로였던 케네디 대통령이 명 연설을 했습니다.

케네디는 미국 국민에게 말하기를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십시오라는 취임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수십 년째 잘 믿어왔다는 이 사람이 한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내게 유익이 되고, 내 자녀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내가 십 년 이상 몸담고 있던 교회를 떠나, 옆에 있는 큰 교회로 가게 된 것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좋은 신앙 간증 문이라고 교회 회지에 싣게 한 그 교회 회지 담당자의 의식도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오늘날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위해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 유익을 위해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울 왕은 섬김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왕권 보존이라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을 이용의 대상으로 섬기지 말고, 섬김의 대상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사울 왕을 버리셨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울 왕은 신앙을 자기 유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은혜 입은 자다운 헌신과 섬김의 삶이 없었습니다.

 

사무엘 상 15:3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신 분 같아 보입니다.

하나님은 아말렉과 관계된 모든 생명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명령을 하셨습니까? 아말렉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말렉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많은 괴로움을 주었던 사막 민족입니다.

이 사람들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동태를 살피다가, 후미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으면 습격 하였고, 홀로 낙오된 사람이 있으면 납치해 가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질러 왔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원한 원수를 상징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군대를 데리고 나가서 아말렉과 전쟁을 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이 국가 조직을 갖추고, 통일된 한 나라를 이루어, 힘이 있는 국가가 되었다고 하면서, 사울 왕에게 이제 때가 되었으니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제까지는 힘이 없어서 원수를 갚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는 힘이 있으니 원수 아말렉 사람들은 물론 그 가축들까지 다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시고자 하셨던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받게 될 심판 형벌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또 이를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받게 될 심판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과의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함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분이 누구십니까?

사울에게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됩니다. 사울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았던 사울에게 부여된 임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 주심에 대한 감사와 그 주신 사명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말렉 왕 아각과 짐승들은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영광을 드러내는 승전 기념비까지 세웠습니다.

 

사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믿고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고, 심지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대상에게 내 마음이 다 가 있게 됩니다.

 

여인들이 서로 사랑할 때, 그 마음이 어디에 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다 가 있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좋은 것만 보아도 누가 생각납니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생각이 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될 때도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왜요. 그 좋은 것을 함께 보고, 그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마음이 듭니까? 그 사람의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20년간 목회를 해 오면서 누구에게 밥 한 끼 사달라거나, 도와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또 앞서서 일하는 저희들을 사랑해주셔서, 필요한 헌금도 해 주시고, 화분들도 사 오시고, 자원하여 교인들의 식사 대접도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 정성이 가고 우리 물질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유익과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까지도 이용했습니다.

 

사울이 이렇게 자기 영광과 자기 유익을 추구하며 살다가 보니, 아말렉 왕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아말렉 왕을 포로로 끌고 가면 백성들 가운데 자신의 명성이 얼마나 높아질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사울 왕이 그 악명 높은 아말렉 왕을 잡아 왔다고 하며 칭송하지 않겠습니까? 사울 왕은 백성들의 칭송이 듣고 싶어서 아말렉 왕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잡아 왔습니다. 이런 사울 왕이었기에 아말렉을 이긴 자기 공적과 업적을 기념하는 공적 기념비까지 세웠던 것입니다.

 

아멜렉 족속들은 이곳저곳에서 약탈해 온 많은 짐승들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짐승들까지 다 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그 짐승들이 너무 아까워서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끌고 온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의 이 불순종을 책망하자, 사울 왕은 무엇이라고 핑계합니까?

이 짐승들이 너무 좋아 보여서 제사의 제물로 쓸려고, 끌고 왔다고 핑계 대었습니다. 나는 제물로 쓸 몇 마리만 남겨두려고 했는데, 전쟁에서 수고한 백성들이 이 아까운 짐승들을 죽이지 말고 끌고 가자고 강력하게 요구하여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짐승들을 죽이지 못하였다고 그 잘못의 원인을 백성들에게 돌렸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오직 자신의 왕위의 보전과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영광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자신을 불러주시고 왕으로 삼아주셨는데 사울 왕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헛되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아 누리고 살면서도,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는 감사하지도 않았고,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사울에게 사무엘은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어떻게 합니까?

세 번째는, 사울 왕은 사무엘의 회개의 요청을 거부하였습니다.

 

사울에게는 자신의 명예명성왕위의 보전최고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에게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사무엘을 붙잡고 애원합니다. 얼마나 붙잡고 애원하였든지 사무엘의 옷이 찢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사울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를 짓지 않고 범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 전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갑니까? 저는 목회자이지만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실수하고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지은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고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매일 매일 지은 죄를 회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매일 죄를 짓고 살면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잘못을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잘못을 책망받고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잘못을 책망받았을 그때라도 회개하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사울의 문제가 여기 있었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하고서도,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다윗은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하고서도, 예수님을 은 30에 판 가룟 유다는 버림을 받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저주하며 부인한 베드로는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또 성전에서 자신만만하게 기도하던 바리새인은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고, 그 살아온 삶이 부끄럽고 창피하여 기도할 용기조차 낼 수 없어 했던 세리는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 차이는 바로 회개하는 삶에 있습니다. 그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였느냐? 회개하지 않았느냐? 의 차이에 달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뉘우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아니하십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게 하며,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인도해 줍니다.

 

우리 모두는 늘 회개하기에 빠른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늘 회개하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삶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울이 살았던 삶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받은 사람답게 살지 못하여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특혜이고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거저 값없이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은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왕이 되었으나, 그 주신 은혜를 감사하지도 않고, 은혜받은 사람처럼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사울 왕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은혜받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 실수하고 넘어질 때는 그 즉시 죄를 회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한 다윗베드로세리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모두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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