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역사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1. 7. 18. 14:23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

사무엘상 15:22-23

 

코로나 19 확진 자가 연일 1,000명을 넘어서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발령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우려 되는 것은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훨씬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에서는 비대면 예배를 드리라고 권고하고 있어요.

그래서 각 교회는 비대면 예배 제작과 송출에 필요한 필수요원 20명 까지만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정부의 요구에 맞추어 오늘부터 영상 제작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진행과정이 다소 매끈하지 못하고 불편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태도와 자세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까요? 보통 성도들은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하면, 나에게 남다른 재능과 능력과 건강 등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것은 교회들마다 새 해가 되면 성도들에게 새로운 직분을 주게 되는데, 이 때 성도들은 나는 재능이 없습니다. 나는 물질이 없습니다. 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나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라고 하면서 직분 맡기를 주저주저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알 수 있게 되지요. 성도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하면서 직분 맡기를 주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가진 힘이나, 능력이나, 재물이나 건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섬김은 형편없는 섬김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아주 보잘 것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섬기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 크신 사랑 안에서 사랑을 알고, 그 알게 된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그 크신 용서의 경험을 가지고, 우리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직분을 감당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가장 먼저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맡기실 때에는 먼저 우리로 하여금 그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환경도 허락해 주시기 때문이지요.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대해 디모데후서 2:6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아멘.

 

이것이 세상일과 하나님의 일의 다른 점입니다.

이 세상은 먼저 사람들에게 일을 시킨 후에 그 한 일에 대한 품삯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일을 시킬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시킨 일을 할 수 있도록 은사와 능력을 먼저 주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을 가지고 일하도록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은혜를 갈구하는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모하는 심령에 만족함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지요.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고, 그 받은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힘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힘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힘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힘에는, 재물의 힘, 권력의 힘, 지식의 힘, 인간관계의 힘, 앞선 기술과 정보의 힘 등등 다양한 힘들이 존재하고 있지요. 누가 이 힘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갈라집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이런 힘을 얻고자 혈안이 되어 있지요.

 

또 다른 힘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입니다.

성경에는 자기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룬 수많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에스더를 보세요.

에스더는 바사 제국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였어요. 피정복 민인 이스라엘 여인이 정복민인 바사 제국의 왕비가 되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있었던 바사국 왕비 와스디를 폐위 시키게 하시고, 에스더가 바사 제국의 왕비가 되게 해 주셨어요. 왜요. 하나님이 에스더를 통해 할 일이 있으셨기 때문이지요.

 

에스더가 왕비로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어요.

바사 국의 총리대신이었던 하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여서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당시 이 하만의 계획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하나님은 왕후 에스더가 왕에게 영향을 미쳐서 이 일을 막게 하려고 에스더를 왕후가 되게 해 주셨어요.

 

그런데 당시 바사 국법은 왕후라도 왕이 요청하지 않은 때 왕에게 나아가면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어요. 하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고 계획한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왕은 국사에 바빠서 왕후를 찾지 않은지 오래 되었지요. 그래서 에스더가 왕후라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에스더가 생각해 낸 방법이 무엇이지요.

왕이 요청하지도 않을 때 왕에게 나아가면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하만의 손에 죽어갈 그 민족을 구해내기 위해서, 3일간 단식기도를 하고, 내가 죽이면 죽으리라라는 순교의 각오로 왕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에스더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지 않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원수 하만이 오히려 죽임을 당하게 해 주셨지요. 에스더는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때를 위해 자신을 왕비로 새워주셨음을 알고 목숨을 걸고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이지요.

 

구약의 사사들을 보세요.

사사들은 모두 다 하나님이 특별히 부르셔서 사사로 세워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덧입고 일어나서 그 원수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사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베풀어주신 능력을 덧입고, 믿음으로 일어나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내었어요.

 

이런 성경말씀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 주시는 은혜의 역사가 있어야 하고, 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주시는 힘과 능력과 은사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절반이나 기록하고, 또 수많은 이방교회를 개척하여 세운 사도바울은 세상 적으로도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사도바울 정도라면 자기 힘으로도 무엇인가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그런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기 이전의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당대 최고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들이 물려준 신앙에 대해 배웠던 사람입니다. 또 그 학식과 그 종교적인 열심은 얼마나 탁월했습니까? 바울은 당시 이스라엘의 차세대 종교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어떻게 변했습니까? 전에는 자기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살았던 사람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과 능력과 은사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이 바울이 한 고백이 빌립보서 4:13절이지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이 고백을 통해 자신의 능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다고 합니까?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성경의 기록자가 되고, 이방교회를 개척하여 세운 교회개척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와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지하고 살아야 할 힘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힘과 은사를 사모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과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들을 믿음으로 감당하며 살아가는 선한 결단들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까?

둘째,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살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이 왜 이렇게 중요합니까?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결과가 좋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몸도 건강해지고, 사업도 잘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부수적인 요인들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목적으로 하여 순종하는 것은 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 우리 삶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삶의 유익은 고사하고 그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박해를 받아도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멘.

 

사무엘 서에는 이스라엘의 두 왕인 사울과 다윗 왕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왕은 어떤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들을 다스렸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하면 사울 왕은 실용주의적인 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또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사울 왕은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승리한 후에,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명한 상대국의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적국의 왕을 포로로 끌고 가서 백성들 앞에 자기가 이룬 업적을 드러내고, 백성들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다 멸하라고 하신 짐승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 중에서 튼튼하고 실한 짐승은 골라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삼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울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백성들이 그 아까운 짐승들을 다 죽이지 말고 살려서 데리고 가서 우리들이 취하자고 한 것입니다. 사울은 이런 백성들의 말을 들어주어서 백성들에게서 인기를 얻고자 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울 왕은 그 목적했던 대로 백성들에게는 인기를 얻었습니다.

 

만약 사울 왕이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백성들에게는 잠시 인기가 없는 왕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순종하는 삶을 인정해 주시고, 결국 그를 높여주시고 권능의 손으로 붙들어주셨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했더라면 믿음이 좋았던 그 아들 요나단이 자신을 이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하나님의 인정보다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그의 왕위를 취하여 다윗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울 왕은 철저히 지금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 라고 하는 실용주의 정신에 입각해서 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 왕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다윗의 믿음을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이런 다윗 왕에 대해서 저는 나와 마음이 합한 자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의 주도적인 정신은 실용주의입니다.

사람들은 실용주의의 영향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별로 좋지 않거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일은 비록 그것이 옳은 일이라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개척교회에 별로 호감을 가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은 인본주의가 득세 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보다 내게 유익되는 것을 쫓아 살아갑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인기 있는 교회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그런 교회들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선교사님은 그 살아온 삶이나 배운 학식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곳이 사역지로 어울려 보입니다. 그런데도 이분은 하나님이 자신 주신 사명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가기를 마다하는 회교국가인 이란에 가서 선교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모슬렘 지역에 가서 꾀 오랫동안 선교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개종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모슬렘을 믿는 사람들이 문서로 기독교신앙을 접할 수 있도록 문서 만드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이 선교사님이 자신을 후원해 주고 있는 교회에 가서 선교보고를 할 때, 제가 여러 해 동안 여러분들의 후원으로 모슬렘 지역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죄송스럽게도 아직 단 한 사람의 결신자도 얻지 못했습니다.’ 라는 보고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도 계속 후원해줄까요? 아니면 후원해 줄 선교사를 바꾸려고 할까요?

 

선교사님들 중에 탁월한 선교의 업적이 있는 분도 있습니다.

파송한 교회가 그 능력을 인정해 주는 선교사님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수많은 회심 자들을 보면서 그 사역에 큰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선교사님들은 최선을 다해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없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내가 이곳에 계속 남아서 사역해야 하는지 갈등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많은 선교사님들이 사역을 포기하고 돌아가지만, 일부 선교사님들은 이 일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라고 믿고 사역의 결과와는 관계없이 묵묵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선교사님들은 사람들도 부터는 성공하지 못한 선교사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면 신앙 안에서의 성공은 그 이룬 업적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며 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믿음으로 살았지만 박해와 핍박과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당하며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사람들 모두를 가리켜 믿음의 용사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삼고 있는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순종을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제물로 제사 드리는 것 보다 더 낫게 여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 말씀을 듣는 것을 값진 수양의 기름을 드리는 것보다 더 나은 제물로 여기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나중에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평가하실 때 그 이룬 업적과 결과만을 보고 평가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룬 업적과 결과 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느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느냐? 하는 삶을 보고 평가하신다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순종하는 삶이 바로 믿음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무런 결과도 성과도 없는 일에 그 종들을 보내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 사람들을 통해 전해지는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자신이 믿지 않았던 불 신앙적 행위에 대해 마지막 심판의 날 핑계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낸 파수꾼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파수 군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파수꾼은 사람들에게 위급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경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으로 파송된 사람들은 그 사역의 결과보다 파수군의 역할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 역할을 어떻게 감당했느냐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 종들을 평가한다고 에스겔서는 잘 전해 주고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는 정말 답답한 처지에 처해 있습니다.

저도 하나님께 이런 모습으로 평생 섬겨야 하는지 반문해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곧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 교회가 이런 모습으로 여기 서 있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비해 두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역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충성하고 헌신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에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을 보아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지만, 그 후 다윗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늘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 왕을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다윗은 그 어려운 고난의 삶을 살면서도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순종하는 삶을 통해 자신이 가진 믿음을 하나님께 보였던 것입니다.

 

순종하는 삶이 왜 이렇게 중요합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삶은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되 순종하기 쉬운 문제 뿐 아니라 순종하기 어려운 때까지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과 같이 순종하는 삶을 통해 우리가 가진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고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순종하는 삶을 통해 우리가 가진 믿음을 하나님 앞에 보여 드리면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까?

셋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온 맘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오늘날을 대표하는 시대정신은 실용주의라고 했습니다.

실용주의란?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 관념적인 이념이 진리가 아니고, 우리 현실의 삶에서 실재적으로 유익을 주는 것을 진리라고 보는 사상입니다. 현실에 유익을 주지 못하면 그것이 아무리 옳다 해도 진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바로 실용주의입니다.

 

이 실용주의는 실용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상으로서,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더 나은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모든 관심을 집중합니다. 실용주의는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가 이끌어 내고자 하는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생각입니다.

 

이 실용주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들은 어떤 면에서 실용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교회 성장입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들은 어떻게 하면 전도를 더 잘하고, 어떻게 하면 교회를 더 빨리 성장시킬 수 있는가에 최고의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종 교회 성장 세미나에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오늘 날에는 교회들까지 인본주의의 대표적인 정신인 이 실용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최고의 목적을 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다양한 행사와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장하는 교회들에서는, 담임 목사님을 보좌하는 전문 연구 그룹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 연구그룹에서는 성도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또 성도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시설들을 계획하고 프로그램들을 연구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잘 되지 않는다고 곳곳에서 아우성치는 상황 속에서도, 이런 교회들은 일 년에도 수 백, 혹은 수 천 명의 새로운 성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 방법이야 어떻든지 그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세상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교회들까지 이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든지 교인 수만 늘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주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를 이루어 가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의 결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삶에 관심을 두라고 합니다.

 

마라톤 경기를 보면, 그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착을 해야 우승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가장 먼저 결승지점에 도착했다고 해도, 그 달려오는 과정 속에서 경기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으면 우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마라톤 선수는 경기 규칙을 잘 준수하며 달려야 우승자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이 중요시 하는 것은 그 이룬 결과가 아닙니다.

그런 결과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이 이룬 업적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매일에 삶 속에서 보여주며 살아가는 성실성과 인내를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 결과만을 중시하는 실용주의는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그 모든 동기와 노력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직 교회의 성장에만 매 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성장에 관심을 가지되 교회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교회의 존재 목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교회를 통해 죽어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고 살리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실 때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시는 바람의 역사로, 죄를 제거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시는 불의 역사로 성령이 하실 사역을 나타내 보이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영혼을 살려 주시고, 죄를 제거해 주시는 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그 존재 목적인 영혼 구원사역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그렇게 연구한 것을 다른 교회들과 함께 나누어서, 이 시대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으로 인도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그 가진 힘과 역량을 집중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모든 교회가 그 연구한 것을 사용하여 영혼구원사역을 함께 감당하는 교회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적 자원을 충분하게 갖추고 있는 교회들이, 그 인적자원을 가지고 교회가 해야 할 그 본질적인 사역에 전력하지 않고, 성도들이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시설과 좋은 프로그램을 갖추고, 교회의 규모를 늘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인본주의 정신인 실용주의 정신의 영향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섬길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실용주의는 철저히 내게 무엇이 유익인가 하는 것에 따라 행동하게 합니다. 우리가 만약 이런 실용주의 정신에 입각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내게 무엇이 유익을 주고 우리 교회에 무엇이 유익을 주느냐 하는 것만 추구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으로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법대로 경기하는 그런 사람들의 삶을 하나님은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벌써 무더운 여름철이 되었습니다.

너무 더워 나태할 수 있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이런 계절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은사를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셋째,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둘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온 맘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 삶의 결과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온 맘을 다해 섬기는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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