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역사서

기적을 이루는 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0. 7. 10. 15:49

기적을 이루는 신앙

열왕기하 4:1-7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참 살기 어렵다라는 말입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이 ‘IMF 때보다도 더 어렵다.’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어떻게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습니까?

정부가 기업을 밀어주고,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세계 시장을 내다보고 수출산업 위주로 경제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래서 자체 시장규모도 적은 우리나라가, 지하자원도 별로 없는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이런 경제적인 성과는 정부와 기업, 사용자와 노동자가 힘을 합쳐서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도 노조의 목소리가 큰 나라인데, 정부가 친 노조 중심의 정책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점점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 상공인들은 어떻습니까?

소상공인들도 자기 사업체를 운영해 나가기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여파로 소상공인들은 더 이상 손익계산을 맞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폐업하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어려움을 절실하게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고정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다니는 직장이 문을 닫지 않는 한 정해진 월급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국가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장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장기화되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참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런데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시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열왕기 하 4장의 시대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시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아합 왕의 손자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입니다.

이때는 여호람의 할머니인 이세벨이 들여온 바알 신앙이 백성들 가운데 성행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그 결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위기를 맞이하였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시 하였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신앙의 위기를 맞이하였다는 것은 곧 국가의 위기를 맞이하였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선지 학교를 세운 엘리야

 

이런 시대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보고자 일어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엘리사였습니다. 엘리사는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극복해 보려고 그 대안으로 세운 것이 바로 선지학교였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신학교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 선지학교를 통해 신실한 종교 지도자들을 양성하여서, 그 사람들을 통해 백성들의 영적인 분위기 신앙적인 분위기를 변화시켜 보려고 했습니다. 엘리사의 이런 뜻과 비전에 공감한 다수의 사람들이 이 선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선지학교의 학생 중에는 아내와 어린 두 자녀가 있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승 엘리사의 비전을 공유하며, 잘못된 바알신앙을 무너뜨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그 백성 가운데 다시 심어주는 일을 위해, 자신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 바친 사람입니다.

 

이렇게 가장이 가정을 돌보는 일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자, 그 가정에 찾아온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선지학교에서 훈련 받는 기간이 해를 더해 가면서, 그 가정형편도 점점 어려워져만 갔습니다. 얼마나 어려웠든지 나중에는 이웃에게 돈을 빌려서 살아가야 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정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선지학교 과정을 마치고 나면,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 되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선지생도의 아내는 그 남편과 함께 이 꿈을 꾸며, 어려운 생활을 인내하면서 남편을 도왔습니다.

 

이 가정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이 가정의 어려움을 생각하노라면, 제가 신대원에서 3년 동안 공부할 때가 생각납니다.

신학생 중에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거나, 자기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여유 있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 1/3의 학생들은 빚을 져가면서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저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내는 가정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임신 중에도 직장생활을 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당한 한 선지생도의 가정

 

예나 지금이나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와중에 한 선지생도의 가정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1절입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가정의 가장이었던 선지생도가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와 두 아이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오늘날과 달라서 여인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죽자 당장 살아갈 길이 막막하게 되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선지생도가 죽자 채주는 빌려 준 돈 받을 길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라도 종으로 삼아 빌려 준 돈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내고자 했습니다. 이 여인은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고, 이제 남은 두 자녀까지도 잃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여인의 아픈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여인의 남편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살아가고 있던 시대에, 심지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하나님의 율법까지도 쉽게 어기고, 또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바알숭배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그런 시대에,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선지학교에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 여인이었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습니까?

이 여인이 해결 방법으로 찾아낸 것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나아가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간증 이야기

 

제가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기도모임을 함께 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저보다 연배인 한 강도사님이 저희와 함께 청계산에서 기도모임을 갖다가 그 산위에서 소천 하셨습니다.

 

이 강도사님은 나중에 저희 교회 차로 썼던 15인승 봉고차로, 언제나 우리 기도모임의 이동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먹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 모임의 모든 식사를 이 강도사님의 교회에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먹이기 위해 이 강도사님의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새벽에 음식을 장만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강도사님은 그 장만해 준 음식을 차에 싣고 저희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교회 성도님들이 얼마나 정성들여 음식을 해 주시는지는, 계절을 따라 다르게 해 오시는 음식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저희는 감사하며 그 음식을 먹었습니다.

 

당시 이 강도사님 집에는 칠순이 넘는 모친이 계셨는데, 이 강도사님은 그 모친의 밥을 손수 떠먹일 정도로 효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해 7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 모친상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저희 기도모임에 누가 될까봐 그 사실을 숨기시고 저희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

 

이 강도사님은 모친상을 당하시고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그래서 한 주 동안 거의 금식하다시피 한 상태로 저희 기도모임 참석했고, 그 날도 우리와 함께 청계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워낙 튼튼하신 분이시라 다른 날 같으면 언제나 앞장서서 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맨 뒤쪽 그룹과 함께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얼마나 몸이 힘드시면 그렇게 뒤로 처지셨겠습니까? 그러나 그 때 우리는 몰랐습니다.

 

우리는 산 정상에 올라가서 흐르는 땀을 식히며 잠시 숨을 고르고 난 후에, 기도모임을 시작하기 위하여 함께 통성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분 정도 기도 후에 모임을 가지려고 하는데 이 강도사님은 엎드린 채 그대로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시나 보다 생각하고 기도 마치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척이 없었습니다.

 

이분이 바로 저의 앞쪽에 자리하고 계셨기 때문에 제가 강도사님 하고 몸을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통성 기도하는 그 시간에 쓰러져 소천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지 살려보려고 응급조치를 취하면서 119에 연락을 취하였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임시 들것을 만들어서 병원으로 가기 위해 이분을 메고 산을 내려 왔습니다.

 

경사가 급한 산에서 들것에 실린 장정을 메고 내려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힘든 순간에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은, 그 강도사님의 아내가 되는 여자목사님이었습니다. 그 여자 목사님은 강화사랑교회를 개척하여 10년째 목회를 해 오고 있었는데, 남편 되시는 강도사님이 목사 안수를 받으시면, 교회는 남편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기도의 동역 자들과 기도에 전념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그 여자 목사님을 어떻게 봐야 할지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산을 내려온 후 강도사님은 119 차로 먼저 강남 삼성병원에 갔고, 저희는 그 강도사님이 몰고 온 봉고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삼성병원에서 의사로부터 강도사님의 소천 소식을 전해 듣고, 강화에서 택시를 대절해서 오고 있는 그 여자 목사님을 기다렸습니다. 이 때 우리는 그 여자 목사님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었습니다.

 

선지 생도로 훈련을 받고 있던 제자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엘리사는 가장 먼저 누굴 생각했겠습니까? 그 선지생도의 아내와 남아 있는 자녀들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이때 엘리사는 어떤 마음으로 선지생도의 아내를 맞이하였겠습니까?

 

엘리사는 그 아내가 무슨 원망의 말을 해도 달게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내는 전혀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남편과 같이 그 여인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 여인이 엘리사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에게 자기의 딱한 사정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말 속에서 우리는 섭섭함이나 원망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이 엘리사에게 한 말을 읽으면서, 믿음의 사람들이 그 삶의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똑똑하게 보게 됩니다. 이런 믿음이 삶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저희 앞에 강도사님의 사모님이 도착한 것은 새벽 두시가 넘어서입니다.

그 강도사님에게도 두 자녀가 있었는데, 그 여자 목사님은 이제 군에서 갓 재대한 아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 여자 목사님이 우리가 있는 병원영안실에 들어서면서 한 행동은, 마치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이 형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가로채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만난 에서에게 한 것 같이 하였습니다. 야곱은 그 형에서를 볼 면목도 없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고개를 일곱 번 숙여 절하면서 에서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 여자 목사님도 마치 야곱처럼 그렇게 고개를 숙이시면서, 죄송합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하고 송구스럽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라는 말만 연발하였습니다.

 

우리는 내심 그 여자 목사님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 목사님이 그렇게 나아오는 모습을 보고 조금 여유를 가지고, 인사도 하고, 서로 소개도 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절차를 마치고 강도사님은 강화도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하였고, 기도의 동역 자들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장례절차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 선지생도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다가 가장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던 이 강화사랑교회와 그 가정에 여러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 하신 말씀에 그 답이 있습니다.

2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엘리사는 측은지심을 가지고 네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네 집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이 때 여인은 자신의 집에는 기름 한 병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여인의 말을 듣는 순간 엘리사는 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그 남아 있는 기름 한 병으로 선지생도의 가정을 회복시켜 주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3-4절입니다.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이런 깨달음은 하나님이 주의 종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주의 종들이 심방가거나 말씀을 준비할 때, 때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전해 주게 됩니다. 이 때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는 성도들은 자신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아멘.

 

이 때 이 여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엘리사 선지자가 시킨 대로 그 이웃에게 빈 그릇을 빌려와서 그 빈 그릇들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병에 든 기름은 빌려온 모든 그릇이 다 찰 때까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52어의 기적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마치 기름이 빈 그릇들을 가득 채웠듯이, 거기 모인 굶주린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도록 떡과 물고기가 불어나지 않았습니까?

 

이 여인은 이 사실을 엘리사에게 가서 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엘리사는 이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두 자녀가 생활하라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남편을 잃고, 어려움을 만난 이 가정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런 말씀들 속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위한 헌신과 희생에는 반드시 그것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이 여인같이 하나님을 섬기다가 빚 진 분이 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헌신하다가 빚을 졌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그 빚을 갚을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습니까?

저는 개척교회를 하다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개척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나는 빈털터리가 되겠다.’라는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교회를 개척할 때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개척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가진 물질 뿐 아니라 내 생애 전체 까지도 다 쓰겠다.’라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교회를 시작했다고, 하나님께서 그래 너 나를 위해 빈털터리가 되려고 개척했으니 네 원대로 빈털터리가 되게 해 주마.’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는 1년도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회는 작아도 임대료와 관리비가 많이 나가고, 자녀들도 두 명이나 있었습니다. 생활비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빚지지 아니하고 교회는 유지되고 있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의인의 자녀가 구걸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자녀가 구걸하며 사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내가 은혜를 입으면 그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고 합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그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보상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런 분이심을 믿으라고 심지어 이런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일컫는 이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만 주어도 결코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냉수 한 그릇 준 것도 잊지 않고 갚아주시는 분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손해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주의 일에 헌신합니다.

 

우리 이전시대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까?

그런데도 그 때 성도들은 믿음으로 헌신하고 믿음으로 충성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힘에 지나는 헌금을 작정했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적금을 깨어 바쳤습니다. 또 다른 성도들은 자기 집을 팔아 바쳤습니다. 심지어 어떤 성도들은 학교를 마친 후 1-2년을 먼저 하나님께 바친 후에 그 자신의 인생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동들을 지혜 있는 사람들이 보면 물질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손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령 없이 그렇게 산다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렇게 헌신한 사람들 중에 굶어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 집안에 망조가 들어 망한 집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여서 바친 희생과 헌신을 사람들은 보상해 줄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의 생애 속에 보상해 주시고, 또 이 사람들의 자녀들의 생애 속에 보상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 믿습니까?

 

이 선지생도의 가정에 왜 어려움이 찾아왔습니까?

그 가정의 가장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지학교에서 훈련받다가 진 빚 때문에 왔습니다. 하나님이 이 가정을 위해 해 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끝도 없이 기름이 흘러 나오게 하는 기적을 통해 그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 계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나를 위해, 너희가 내 일을 위해, 행한 그 어떤 수고와 희생도 나는 반드시 기억하고 보상해 주다.’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에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흔치 않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자녀를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집도 팔고 적금도 깨고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성도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는 이렇게 헌신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계산적이고 또 얼마나 잘 따지는지요.

사람인 우리가 보기에도 이런 모습들이 보이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믿음으로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지생도의 가정과 같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빚도 기쁘게 지고, 수고와 희생과 헌신도 기쁘게 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면, 이렇게 헌신한 선지생도의 가정을 위해 기적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가정을 위해서도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또 풍성하게 쓸 것도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이렇게 믿음으로 헌신하는 가정들을 위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가정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가정들을 위해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들도 누리며 살아가는 가정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이 가정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느라고,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기름 한 병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름 한 병 외에 이 가정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듣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려면, 먼저 비우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셔도, 빈 그릇에 무엇인가를 채워줄 수 있지, 무엇이 꽉 차 있는 그릇에는 아무 것도 채워 주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빈 그릇을 채워 주시는 분이시라고 해서,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지생도의 가정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다가 이제 기름 한 병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비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그 필요를 채워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게 되면, 그 때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오해하여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헌신 했으니,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상응하는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기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했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기름 한 병만 남게 될 때까지 희생하고 헌신해야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들의 생애를 다 비우면서도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고, 또 그 의뢰하며 살아오던 남편까지 먼저 떠나보내고 난 이후에도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가정을 위해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믿음은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여전히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 신앙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전에 살펴보았듯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당시 제자들은 이제 막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 장소 또한 아무 것도 없는 빈들이고 광야였습니다. 오직 있는 것이라고는 어린 아이의 한 끼 분량의 도시락이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습니다.

 

당시는 사람의 모든 수단과 방법이 한계에 달해 있던 그런 때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여주셨습니다.

 

이 기적과 동일한 내용이 구약성경에 나오고 있습니다.

2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당장 먹을 양식이 없었고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런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그 때, 하나님은 아침 이슬이 내릴 때 기적을 베푸셔서 만나가 내리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됩니다.

인간의 가능성이 다 사라져버리고, 이제 나의 의뢰는 하나님뿐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행복은 우리가 가진 소유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느냐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만 소유하고 있으면 우리의 형편과 처지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믿습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은 이 여인에게와 같이 우리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만을 소유하고 살았던 이 여인의 빈 그릇을 채워주신 사건을 통해 또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고 있다면, 우리의 그릇이 비어져 가더라도 너무 염려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그릇들이 다 비워져 갈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으면 우리의 빈 그릇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과부가 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과부들 중에서 누가 하나님이 기적을 경험했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비웠던 이 여인만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적은 어떤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비워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 빈 그릇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멘.

 

그리고 또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셋째,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가진 빈 그릇에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 빌린 빈 그릇에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실 때 요구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이 여인이 가진 빈 그릇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이 가난한 여인이 가진 그릇은 몇 개 안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여인의 가진 빈 그릇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빈 그릇까지 사용하셔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다른 사람, 나와 연관되어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나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누가 경험했습니까?

도시락을 바친 어린 아이만 경험했습니까? 아닙니다. 제자들과 거기 참여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이 기적을 경험하고 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또 믿고 있는 우리들의 지혜로운 처신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나의 빈 그릇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의 빈 그릇을 보면서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빈 그릇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 모두 함께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기도해 주게 되는 근거가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해 주게 되는 근거가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면, 교회에서 여러분에게 전도하자고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시간이라는 빈 그릇을 빌려주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의 집을 공동체 예배처소로 사용하고자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을 공동체 예배처소로 빌려주십시오. 주의 일을 위해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빌려 줄 때, 여러분은 그 빌려준 것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선지생도의 아내 이야기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옵니까?

또 다른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던 수넴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수넴 여인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지만, 그 남편은 이미 나이가 많았고 이 여인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런 수넴 여인이 엘리사에게 어떻게 합니까?

이 여인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종으로 알고, 엘리사가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대접하고, 또 엘리사가 전용으로 쓸 수 있는 방과 가구들까지 다 마련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여인이 왜 이렇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선지생도의 아내에게 빈 그릇을 빌려주었다가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경험하게 된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이 여인은 자신도 그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자, 자신의 소유로 엘리사를 대접하고 자신 집에 있는 빈 방을 엘리사가 쓰도록 빌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자식이 없어서 빈 그릇이었던 이 여인의 가정에 하나님은 아들을 주심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배우고 있는 우리의 지혜로운 행위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빌려 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수넴 여인과 같이 아주 주도면밀하게 빌려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수넴 여인의 빈 가정을 채워 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의 빈 삶도 채워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어려움을 당한 선지자 생도의 가정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보상은 우리의 헌신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비워나갈 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단과 방법과 가능성을 다 비우고 빈 그릇이 될 때,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셔서 그 빈 그릇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그릇을 빌려주었던 사람들도, 엘리사를 위해 음식을 마련해 주고 쉴 곳을 마련해 주었던 수넴 여인도,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비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우리의 빈 그릇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 충만한 삶이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남은 생애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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