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역사서

열어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0. 8. 2. 16:41

열어주시는 하나님

여호수아 3:1-6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주셨습니다.

여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외형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적인 목적은 이들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 백성들이 지키며 살아야 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훈련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셨습니다. 이 훈련이 끝난 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을 가로 막고 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범람하여 강둑까지 넘쳐흐르고 있었던 요단 강물이었습니다.

 

당시는 봄이었고 우기였습니다.

이때는 우리나라 백두산 보다 더 높은 헤르몬 산에서 눈이 녹아내리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요단 강물은 급격히 불어나서 급류가 되어 강둑을 넘쳐흐르는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는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강물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을 믿고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선택을 합니까?

이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믿음으로 사는 훈련을 받아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강물이 줄어드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급류가 되어 흘러내리고 있는 요단 강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향해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전에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 즉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열어 주셨던 홍해 바다 길을 생각하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자신들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요단강에서도 길을 열어 주실 것을 믿고 바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요단강으로 나아갔더니, 전에 홍해에 바닷길이 열렸던 것 같이 요단강에서도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 속에도 동일합니다.

우리에게도 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삶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며 살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이런 삶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삶입니다. 이런 삶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그대로 그냥 살아가면 되는 삶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런 삶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 살아갈 수 있는 삶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요단강을 갈라지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경험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길을 열어 주셨듯이, 하나님이 우리들의 삶에도 개입하셔서 새로운 길을 내어 주는 삶을 살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여호수아서 3:3-4절입니다.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라.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레위 사람들이 언약궤를 메고 가면 그 뒤를 따라 가라.’고 합니다.

언약궤의 뒤를 따라가되 ‘2,000 큐빗의 거리를 유지하고 따라 가라.’고 합니다. 1큐빗은 보통 사람들의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말합니다. 팔 길이는 사람들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그 길이는 약 45cm 정도 됩니다. 이렇게 볼 때 2,000큐빗은 약 900m 정도 되는 거리임을 알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따라갈 때 900미터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900미터의 거리는 시력이 1.0인 보통사람이 앞서가고 있는 제사장과 제사장이 매고 가고 있는 언약궤를 명확하게 구분해 볼 수 있는 최대거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900미터의 거리를 두고 언약궤를 따르라는 이 말씀은 너희가 언약궤를 따라 가되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는 말라는 말씀이 됩니다. 가능하면 너희가 볼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에서 따라 가라는 말씀이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하지 아니하셨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만약 우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언약궤 가까이 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언약궤 가까이에서 따르려고 경쟁을 하다가 보면,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고 또 서로 밀치다가, 부지불식간에 언약궤를 만지거나 언약궤를 메고 가는 레위 인을 넘어뜨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열성적인 사람들은 언약궤보다 앞서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이런 혼잡이 일어나면 당시 200만 명이나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따라가는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말씀들 속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삶이지,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보다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곳까지 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비록 1,600년 동안 약 40명의 사람들에 의해, 서로 다른 장소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기록되었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사용한 단어의 의미와 뜻과 사상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단어를 선택하여 성경 안에 기록하게 하실 때, 그 단어가 창세기에 쓰였든지 요한계시록에 쓰여 있든지 언제나 같은 의미로 쓰여 졌습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22절에 이라는 단어 바라크가 성경에 처음 나오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동사로서 22절 말씀을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는 복과 연관성이 있는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 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창세기의 이 단어는 기원전 1500년 경 모세가 처음 쓴 단어입니다.

그로부터 5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다윗은 이 동인한 단어 바라크를 시편 115:12절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다윗이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바라크라는 단어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바라크라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윗이 말씀하고 있는 복은 어떤 복이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스라엘의 집, 아론의 집,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은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 하게 되는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에 대한 이런 기초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는데 까지만 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멈춰서면 함께 멈춰 서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또 언약궤를 가까이에서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언약궤 주변에 많이 모여 있게 되면, 언약궤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언약궤를 맨 레위 인을 둘러 싸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그 뒤에서 언약궤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언약궤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약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그 뒤에서 언약궤를 따르던 사람들은 언약궤를 놓치고 따라 가지 못하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놓치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작아서 그런 일이 별로 없겠지만 큰 교회에 가면 강단이 멀지 않습니까?

그래서 뒤쪽에 앉아 예배드리는 사람들 중에 혹 이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배 중에 앞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이상 행동에 집중하다가 예배를 마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와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예배 인도자가 성경을 틀리게 읽거나 찬송가 가사를 혹 틀리게 부르는 것들에 신경을 쓰다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들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우리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아십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자세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비록 수십 년 동안 하나님을 섬겨 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드리는 사람을 향해 너는 나를 예배하고 섬기며 살아온 것이 아니다.’ 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따를 때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과 제사장이 메고 가는 언약궤를 보고 따를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야 언약궤를 놓치지 않고 바로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물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성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제사장과 그들이 맨 언약궤를 주목하고 보면서 따라가야 했듯이, 우리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려고 하면,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주목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18편 말씀을 보면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이 말씀은 다윗이 가지고 산 신앙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피할 바위,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라고 했을 정도로, 오직 하나님만을 주목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은 누가 주관하고 계십니까?

나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를 누가 주관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삶은 전능하신 하나님 이 세상을 섭리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지 결코 사람이 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은 2020년의 삶을 살아갈 때, 나의 삶과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함께 해 주시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그런 길이 아닌,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새로운 그 길을 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에 홍해 바닷길은 어떻게 건너게 하셨습니까?

홍해의 바다 길은 먼저 하나님이 바다를 갈라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의 길은 다릅니다. 요단강의 길은 여호수아가 기도하니까 갈라져서 건너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의 발이 요단강으로 들어가자 그 즉시 그 위쪽에서 내려오던 물이 멈춰서기 시작했습니다. 제사장의 발이 요단강물에 들어가는 것과 위쪽에서 물이 멈춰 서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이 한 해 동안 가지고 살아야 할 믿음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2020년 우리는 코로나 19라는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감염 병 때문에 국제정세가 어렵고, 국내 정세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이 이렇게 어렵다고 근심하고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이런 현실 속에 억매여 사는 삶은 믿음 없는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들의 삶은 이런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써, 지금도 주권적인 섭리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서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전에는 어떻게 살아왔든지 지나간 삶들은 다 잊어버리고, 지금부터는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가라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따라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 하나님이 요단강을 갈라 주시는 길을 밟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서 사람들이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는 그 길을 하나님이 우리 앞에서 갈라주시는 그 길을 따라 믿음으로 걸어가라고 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하여 살아갈 때,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 하나님이 능력으로 열어주시는 은혜의 길이 우리 앞에서 열리고, 우리 가정 앞에서 열리고, 우리 교회 앞에서 열리게 되는 복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 앞에 열어 주시는 새로운 길을 가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둘째,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5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여기 사용되고 있는 성결하게 하라.’는 단어 카다쉬성결하게 준비하다.’ 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서 그들을 위하여 일하시게 하려면 먼저 자신을 성결케 하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16. 11:44, 19:2, 20:7)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뵈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먼저 그 더러움을 씻어내고 내어버려야 합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성결 법은 옷을 빨고, 남녀가 멀리 하고, 속죄 제사를 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옷을 빠는 것은 대표적인 성결 법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매일 세탁을 해서 옷을 빨아 입고 매일 몸을 씻지만 구약시대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광야는 물이 귀한 곳이라 옷을 빨아 입는 것 몸을 씻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약 시대 대표적인 성결 규례는 그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그 마음의 변화를 말하는 회심과 둘째, 그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회개와 셋째, 죄에서 떠나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이 세 가지는 논리적으로는 구분되지만 사실은 거의 동시에 함께 일어나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7:21절 이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는 이적을 행하시지 않으십니다.

 

흘러내리는 요단강 물을 끊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는 요단강을 끊어 주시는 것이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너희가 너희 자신을 성결케 할 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요단을 건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가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신들이 쫓아 낸 가나안 백성들과 똑 같은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다운 거룩한 삶을 살 것인가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열어주시는 새로운 길을 보기 위해서 성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도 성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준비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 언약궤를 매고 앞서 가고 있는 제사장들을 따라 가는 삶, 즉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을 따라 사는 삶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죄를 내어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라는 것을 성결한 삶을 통해 보여주며 살도록 요구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우리 신앙생활의 사활이 달린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과, 이 믿음이 가져다주는 우리 자신의 변화를 보여주는 성결한 삶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 말하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마 교회 성장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믿음이 가져다주는 이런 변화가 있는 교회는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은혜로운 교회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이 가져다주는 이런 변화가 없으면서 교회가 성장하게 되면, 이런 교회에서는 반드시 갈등이 일어나고 분쟁과 분열이 일어나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교회가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냐?’하는 것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그리스도 안에서 변하였느냐?’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었느냐?’ 하는 것에 우리 신앙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믿음 안에서 겸손히 순종하며 사느냐?’ 하는 것에 우리 신앙의 승패가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생활에서는 우리 자신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성결케 하고,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신을 준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위해 기적을 행해 주실 것입니다. 요단 강물을 멈추게 하고 새로운 길을 내실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보길 원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성결케 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놀라운 길을 우리 앞에 열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던 이 약속을 2020년 하반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행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서를 통해 말씀하고 계신 이런 하나님의 말씀들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언약궤를 매고 요단강으로 들어간다고 요단강물이 끊어지고,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고 어떻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날도 언약궤를 매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한강물을 끊어주신다는 말씀인가?

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누리며 사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성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이성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은 과거에는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셨는지 모르지만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작은 머리나 이성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그 분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과 그 앞에 요단강이 갈라지고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성결케 하는 것과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누리며 사는 주인공이 되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어떻게 관계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와 요단강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면서 그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성결케 하는 우리와 가나안 땅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면서 그 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 사이에 계시지 않으신다면 그런 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사이에 계시면서 그런 일들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그 명령을 순종하였을 때 주실 약속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보면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그 하신 약속들이 관계없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면서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잠길 그 때 하나님은 약속대로 상류에서 물을 끊어 벽과 같이 세우셨습니다. 자신을 성결케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국 가나안의 새 주인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내 생각 내 고집 내 아집을 내어 버리고, 우리들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 자신을 성결케 하면,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 앞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다.’ 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열어주시는 길을 볼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 앞에 열어 주시는 새로운 길을 가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셋째, 하나님을 믿고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 믿음을 보면 지식적으로 믿는 믿음이지 진짜 믿음으로 순종하여 사는 믿음이 아님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주의 날 교회 나가지 않으면서도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큰 교회들마다 교회 등록은 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가는 떠돌이 신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보통 예배 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않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큰 교회들에서는 몇 년째 그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교인으로 등록은 하지 않는 낮 익은 손님들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과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명령과 그 명령에 순종하면 주실 것이라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는 믿음이 있다고는 말하나 실재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지는 못합니다. 왜요.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지 못하는 일을 위해 순종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을 펼쳐보면 하나님의 수많은 명령과 약속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 하셨습니다.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어 이 산으로 이끌어 오라. 모세가 순종해서 애굽으로 가자 하나님께서 모세 앞서 가시고 행하셔서 10재앙을 베푸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40년 동안 신앙훈련을 시킨 후에 가나안 땅이 보이는 곳 까지 인도해 가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도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서 1:2-4절입니다. 네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하나님은 그 약속하신 땅을 다 차지할 수 있도록 앞서 행하시며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과 수 없이 많은 전투를 하였지만 아간의 범죄 때 아이 성 싸움에서 패한 것을 제외하고서는 패한 일이 없습니다. 그 많은 전쟁을 하면서도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약속대로 앞서 가셔서 싸워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믿음의 역사들을 보며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2020년 하반기의 삶을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주신 명령들과 약속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리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살펴볼 시간이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첫째, 그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 성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 믿음으로 그 주신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길, 사람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금년 하반기에는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우리 모두 경험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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