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역사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다윗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4. 4. 21. 13:45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다윗

사무엘하 7:1~17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기인 창세기를 보면, 서로 상반이 되는 두 형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삭의 장남이었던 에서이고, 또 한 사람은 이삭의 차남이었던 야곱입니다. 이 두 사람은 쌍둥이로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가지고 살았던 신앙이나 삶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 왕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이었고, 다른 한 왕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입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으나, 그 가지고 살았던 믿음과 삶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이 두 사람에 대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나는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고, 다윗은 사랑하여 그 왕위가 자자손손 계속되게 해 줄 것이다.’

 

이런 말씀들을 읽으면서 우리 마음에는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이 두 사람은 무엇이 달았기에, 서로 다른 삶을 살았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서로 다른 대우를 받으며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네 사람들 중에서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던 다윗의 삶을 살펴보면서, 우리들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삶을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하나님이 사랑해 주신 다윗입니다.

 

사무엘 하 7장의 말씀을 보면, 다윗이 주변 나라들과의 전쟁을 다 마친 후에 삶의 여유가 생기자,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수입해 와서 궁궐을 짓고 그 궁궐에서 평안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에게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백향목 궁전에서 평안하게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광야에서 생활할 때와 같이 여전히 천막 안에 있는 것입니다.

 

특히 비가 쏟아지는 날이 되면 이 대비는 아주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든든한 건물 안에 있는 자신과 임시로 쳐 놓은 천막 안에 있는 법궤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대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왕궁으로 불러들여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백향목으로 지은 궁에 편안하게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도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법궤를 위하여서도 성전을 하나 지으려고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을 좋게 보고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왕이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하소서.’라는 답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기도하는 나단 선지자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나를 사랑하는 좋은 마음으로 성전을 건축하려고 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라고 하시면서, 다윗이 나를 향해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내가 그의 비천함을 보지 않고, 그의 좋은 마음을 보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주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주신 말씀이 바로 사무엘 하 7: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았느니라이 말씀은 다윗이 양을 치는 목동으로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뽑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윗의 비천함과 하나님이 그를 높여주신 은혜를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천한 직업을 말할 때 3D 직종을 꼽습니다.

3D 직종이란? 영어의 더러운(dirty) 힘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이라는 단어의 첫 글자를 따온 말로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런 3D 업종의 대표적인 직종이 무엇입니까? 청소부, 가죽공장 노무자, 건설 노동자, 도금이나 프레스 공장 노동자 등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3D 업종과 같이,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이 천히 여겼던 직종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인과 세리들과, 목자와 창기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천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다윗은 당시 사람들이 천하게 여겼던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천한 목동이었던 다윗을 데려다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주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이런 다윗에게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해 주겠다라고 하시면서, 다윗의 주위에 살고 있으면서 다윗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잘못되기를 바라는 원수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다 제거해 주시겠다.’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그런 사람들보다 너를 더 뛰어나게 해 주겠다.” “내가 너를 가장 존귀한 자가 되게 해 주겠다라는 약속의 말씀까지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른 말로는 히브리인이라고 합니다.

히브리라는 이 말이 어근은 이동한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뜻과 같이 히브리인들은 거주지를 자주 옮겨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히브리 민족이었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삶을 살았더니 더 이상 떠돌지 않고 한곳에 정착하여 사는 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무엘 하 7:10절입니다.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떠돌며 살지 않고, 한곳에 정착하여 살도록 축복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7:15 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초대 왕 사울은 버리셨지만, 2대 왕 다윗은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이런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던 다윗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해 주시고 존귀하게 여겨 주셨는지가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살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모두 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여러분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원수들을 제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걱정없는 삶,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조금 더 바란다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 존귀한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바울도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기 전의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당시 바울은 복음의 박해자요. 복음의 원수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을 찾아가서 만나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방인의 사도라는 중요한 직분까지 맡겨 주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원수로 살았던 자신, 죄인의 괴수와 같은 삶을 살았던 자신을 찾아와서 만나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사명까지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놀라워하며, 그 받은 사랑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하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더 열성적으로 충성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전에는 복음을 대적하는 원수로 살았더라도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는 누구보다 복음에 충성하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산 이유입니다.

 

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삶을 살았습니까?

첫째,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부모님을 잘 섬기며 사는 자녀가 됩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잘 아는 자녀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남편의 마음에 의지가 되고 평안함을 주는 아내가 됩니까? 남편의 마음을 잘 아는 아내입니다. 이런 아내는 남편을 돕고 그 남편을 위해서 사는 아내가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고 섬기며 사는 성도가 됩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아는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들은 자신을 사랑해 주신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고 섬기며 사는 사람들이 됩니다.

 

사람들이 다윗처럼 살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부재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몰랐던 사울과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실 사울 왕도 그 인품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었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심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오히려 지기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며 살았고, 백성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 왕과 같은 삶을 살았던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전에 이스라엘의 사사로 부르심을 받았던 엘리 제사장입니다. 엘리 제사장도 하나님보다 자기 아들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범하여도 그냥 두었습니다. 그 결국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아들들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훼방을 받도록 놓아둔 부모가 된 것입니다.

 

이런 엘리 제사장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사무엘 상 2:30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께 한 그대로 하나님께서도 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며 사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보지 않고, 마치 돌을 깎아 세워 놓은 신상이나 우상과 같이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만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아시고, 내가 하나님을 앞을 떠나 이 세상 속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전혀 모르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나와서 하는 행동과 집으로 돌아가서 하며 사는 행동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치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섬기며 사는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을 닮게 창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격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는지 멸시하는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과 중심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섬기며 살 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 사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삶을 살았습니까?

둘째, 다윗은 하나님을 그 영의 아버지로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에게는 늘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12 부족 중에 다윗을 따르는 부족은 유다 족속뿐이었고, 나머지 11 부족은 사울 왕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죽고 나면 사울 왕의 자녀들이 다시 왕으로 세움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7:12절입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이 말씀보다 다윗에게 더 큰 위로가 되었던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다윗은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한 자기 후손들을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그 영의 아버지로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다윗과 그 자녀들을 지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13절 말씀을 보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라고 하시면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까지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주 중요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아들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후손들에게 아들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다는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마태복음 1을 보면 다윗의 족보가 나오고 있는데, 그 족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에서도 이 구절이 인용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근거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그 영의 아버지로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왕의 체면과 체통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열렬히 춤을 췄던 사람입니다. 또 자신의 삶이 부유해졌을 때 거기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는 하나님의 성막을 위해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드려야겠다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이런 다윗이었기에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를 사모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했고,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소중한 것이 없는 양 그렇게 살았습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처럼 만족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1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멸했던 사울에게서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았다고 합니다.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사울은 하나님보다는 자기 권력 유지를 더 중요시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녀들을 더 사랑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보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세속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서 그 백성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잘못한 사람이 왕을 신하이면 왕은 그 신하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나 그 잘못한 사람이 왕의 아들이면 아버지는 그 잘못한 일은 벌하여도 부모 자식의 관계를 끊어버리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사울은 군신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잘못했을 때 그의 왕위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다윗은 부자지간이었습니다. 그래서 14절 말씀에서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는 하되,’ 15절 말씀을 보면 내 은총을 빼앗지는 안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부자 관계를 이루며 살 수 있습니까?

빌립보서 3장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세상적인 자랑 거리들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자랑거리에는 자녀, 학식, 재물, 지위 등등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이 세상에서는 중요한 것들이지만, 우리가 일생을 다 살고 죽게 될 때가 되면 우리의 죽음과 함께 다 사라질 것들입니다. 언젠가는 배설물처럼 다 버려두고 가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영원히 자신과 함께 해 주시는 예수님을 소중히 여겼기에, 영원하지 않은 이 세상의 자랑거리들을 배설물처럼 내다 버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이것입니다.

만약 내게 명예나 권세가 귀하게 여겨진다면 우리는 바울처럼 명예와 권세를 의도적으로 버려야 합니다. 성공과 업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이 귀하게 여겨지면 우리는 의도적으로 이런 것들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바울이 세상의 자랑거리를 마치 배설물 같이 여기며 버렸다는 말씀은, 바울은 하나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으로 여기며 살기 위해서, 세상의 자랑거리들을 계속해서 버려 나가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바울이 가지고 살았고 또 다윗이 가지고 살았던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됩니다.

다윗도, 바울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훈련을 계속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은 구약과 신약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삶을 살았습니까?

셋째, 다윗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무엘상 2:3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존중이 여김을 받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와 같이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같이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시고 존중히 여김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여기 존중히 여긴다.’라는 히브리어는 카바드라는 동사인데, 그 명사형은 카베드입니다.

카베드는 우리 몸속에 있는 장기인 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 가장 큰 장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고 할 때 간처럼 여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의미는?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여긴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이렇게 존중히 여겨 주신다고 합니다.

 

반대로 경멸히 여긴다.’라는 말은 바자인데, 그 의미는 목을 꼿꼿이 세운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내가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서서, 목을 꼿꼿이 세우고, 하나님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처럼 본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런 태도를 가지면 하나님께서도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멸시하신다.라고 하십니다.

 

멸시한다.‘는 말은 작은 먼지처럼 여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이런 태도를 가진 우리들을 멸시하셔서 아주 작은 먼지처럼 여기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먼지는 하도 작아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도 작아서 하나님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존중히 여긴다.’라는 히브리어 카바드는 피엘형 동사로서 강조와 반복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을 존중하게 여긴다.’라는 이 말은, 한 번 존중히 여김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계속 적으로, 반복적으로 존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을 그렇게 존중히 여기고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늘 함께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다윗의 이름을 존귀케 해 주셨으며, 다윗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대적들을 다윗의 앞에서 없애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까지 주셨습니다.

 

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삶을 살았습니까?

넷째, 다윗은 마음과 뜻과 성품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다윗은 드디어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법궤를 다윗이 거주하는 궁궐 옆에 있는 성막에 모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성막을 볼 때마다 가슴 아팠습니다. 자신은 백향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호화롭고 아름다운 궁궐을 지어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가죽들을 엮어서 만든 성막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을 누구보다 더 사랑했던 다윗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지 못하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막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런 사울에게 별 관심을 가지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였던 다윗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십계명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2:37-4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임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을 보면, 베드로는 자기 한목숨 살겠다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래도 안 믿어 주자 이번에는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이런 베드로를 만나서 한 질문이 무엇입니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때 베드로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던 일이 생각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였지만 그 마음 안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고백을 할 때 베드로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아마 그 마음속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던 예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솟아 올라오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속에 솟아오르고 있었던 그 사랑을 보시고 내 양을 먹이고,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이름을 부르시면서 ‘00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베드로처럼 마음속에 담고 있는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 사랑으로, 우리들도 예수님을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 살기를 바라십니다.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신 만큼, 우리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녀들도 같습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사용하여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부모가 자기를 사랑해 주는 것은 당연시하면서도, 자신들은 그런 부모를 사랑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자신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으로 부모님을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베소서나 골로새서 등등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부모 공경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공경에 대한 이 말씀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함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모든 관계에서 다 같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부모는 자녀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남편도 아내를 사랑한 만큼 그 아내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해 주신 만큼 우리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살았던 사울 왕을 사랑하셔서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양 생각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보다 자기의 권력과 자기의 영광을 더 추구하였고, 자기 인기를 위해서 백성들의 말을 더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마음과 뜻을 다해 그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편 18편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27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그 마음이 조석으로 변하시는 분이 아니시니까? 내가 어떻게 살든지 관계 없이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사랑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존중하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사랑하는 자를 내가 사랑하신다.’라고 합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하나님을 대하였던 대로 사울을 대해 주셨으며,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을 대하였던 대로 그렇게 다윗을 대하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며 사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인격적인 우리들이 존중히 여김을 받고 존귀히 여김을 받고 싶어 하듯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존귀히 여김 받으시길 원하시고, 사랑과 관심받으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대충 생각하고 대충 대하여도, 하나님은 항상 나를 존귀하게 보시고, 항상 사랑하시고, 미소를 지어 보이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존중하는 자를 존중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나의 삶 속에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래서 만일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으면, 곧 나의 신앙에 문제가 생겼음을 깨닫고, 바울이 세상 부와 세상 자랑을 배설물처럼 버렸듯이 우리들도 그렇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충만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기쁨과 충만함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날마다의 삶 속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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