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역사서

목숨을 걸고 행한 할례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8. 8. 24. 07:10




목숨을 걸고 행한 할례

여호수아서 5:1-15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이 무엇입니까?

요단강을 다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쌓은 두 개의 돌무더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무더기를 쌓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은혜를 잊었으면 다시 찾아서 회복해 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여호수아서 5:1절 말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요단 강물을 끊고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가나안 백성들이 보인 반응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단 서쪽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지금 상황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지금 상황은 권투 경기로 말하면, 경기 시작을 알리는 땡 소리가 나자마자, 한 선수가 일격을 날렸는데 상대 선수가 그 일격을 맞고 그로기 상황에 빠진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후 경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대방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몰아 붙어서 경기를 끝내면 됩니다. 그러면 경기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가나안 백성들이 정신을 차리고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선제공격을 해서, 가나안 땅을 신속하게 점령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군사전략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이외의 요구를 하셨습니다.

2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매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태어 난지 8일 만에 행하는 종교의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살아갈 동안 한 번도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 없는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4-5절입니다.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그리고 7절 하반 절 말씀을 보면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할례 없는 백성같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 만민가운데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상징으로 행한 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될 것인데, 할례 없는 백성으로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이전에 먼저 할례를 행하라 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런 긴급한 필요가 있을지라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떻습니까?

요단강을 건너서 적진 한 가운데 들어와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할례를 행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고 고통 중에 있는 때에, 가나안 사람들이 쳐들어오면 재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그냥 앉아서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먼저 할례를 받아야 할 것 같았으면, 차라리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했으면 더 좋아 보입니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적진 가운데서 할례를 해야 하는 위험 부담도 없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리고 성이나 또는 그 주변에 있는 몇 개의 성을 먼저 점령하게 한 후에, 그래서 가나안 사람들이 싸우려고 와도 방어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 놓게 한 후에 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어 보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은 사방이 확 뚫려 있는 길갈 평지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맞아서 싸울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 본 그런 방법들이 훨씬 나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싸워 점령하게 될 가나안 땅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점령해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점령할 수 있도록 싸워 주시는 약속의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할례를 행하라고 하시면서 요구하고 계신 것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할례 명령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확인하려고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가? 자기를 의지하며 사는가를 보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진 한 가운데에서 할례를 행하라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가?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사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이십니다. 그래서 적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목전에서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할례 명령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확인하려고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2. 이스라엘 백성들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지 확인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을 믿고 그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약속의 땅이 되겠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 백성으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땅입니다. 그래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범죄 하며 살아갈 때는 저주와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구약의 할례가 신약에서는 세례로 바뀌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죄의 종으로 살던 사람들이, 나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공동체 앞에 보여주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구약에서는 할례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다 할례를 받았듯이, 신약 시대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세례를 받습니다.

 

그렇다고 세례에 무슨 효력이 있어서 죄를 사해주고 구원을 받게 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나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아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교회 공동체 앞에서 증거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이 세례 의식을 통해 나는 한 사람의 교인으로서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것을 교회 회중들 앞에 공포하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그 교회 성도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 교인이 되면 그 사람은 교회의 일원이 되어서, 교회의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 할례를 행하라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는 그 삶은, 경건하고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너희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식입니다. 또 할례는 너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상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전에 가나안 땅에서 살았던 원주민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 때에는,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거두면서 그 만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이동 신호인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 바로 가재도구들을 챙기고 텐트를 걷어서 이동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불기둥 구름기둥을 따라 이동하다가 불기둥 구름기둥이 어느 장소에 다시 멈춰서면, 그 곳의 땅을 평평하게 고루고 정돈한 후에, 그 위에 천막을 치고 그 천막 안에 가재도구를 풀어놓고 머물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베풀어주시는 만나와 물을 먹으면서 40년을 지내 왔습니다.

 

이것이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이 광야 생활은 우리 신앙생활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모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생활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믿고 살았던 신앙생활 중에 누가 더 경건한 삶을 살았겠습니까?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날 우리보다 더 경건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 무슨 술이 있었습니까?

오락이 있었습니까? 도박이 있었습니까? 이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믿고 바라보며 40년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일주일 중에 주일 날 한 시간 예배드리고서는 나는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러다가 광야 생활을 끝내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각종 죄악들을 밥 먹듯이 행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땅에서 살고 있는 가나안 백성들을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가나안 백성들의 죄를 심판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요구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가나안 사람들과 같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실 율법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요구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곧 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 가시지 않으시고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하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높은 권세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도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죄악 된 세상을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 가고 변혁시켜 나가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이런 사명을 늘 기억하며 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할례였습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때에, 가나안 사람들과 달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보여주는 표지였습니다.

 

이 사명은 21세기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을 보면 어떻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으로 세상과 다른 삶,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자기 자신의 죄와 악과 잘못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가장 큰 바람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내 자녀가 잘 되고, 내가 살아가는 삶이 형통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전해주고 있는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바울의 증거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들의 삶에 함께 하시면서 영적인 은혜와 땅에서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런 믿음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복음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신앙의 기초가 잘못되어 있고, 그 신앙의 전제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도들은 그 기초와 전제가 잘못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교회에서 올바른 가르침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이상한 가르침을 주니, 성도들이 이상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오늘날 교회들에게는 어떻게 하든지 사람만 많이 모으면 되는 줄 아는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모으지 못하는 교회나 목회자는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바른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믿음 안에서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우리 자신의 변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드러나서, 우리를 통해 우리 가정이 변하고, 우리 교회가 변하고, 우리 직장이 변하고, 우리 학교가 변화되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들을 먼저 그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 할례는 이렇게 문화 변혁의 사명이 너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식인 것입니다.

 

또 할례를 행하라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셋째 하나님은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믿음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합니까?

가나안 사람들이 언덕 위에 있는 성 안에서, 길갈 평원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하게 되면, 곧 가나안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될 것이고, 할례를 받은 후 고통 중에 있을 때를 틈타서 일제히 공격을 해오면 모두 다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합니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과 사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이 일을 행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적인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다 내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여 할례를 시행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우리 삶에 큰 손해가 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산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당시 가나안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두 사람의 정탐 군이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갔을 때 가나안 사람들의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홍해 사건, 요단 강 건너편에 있는 시혼과 옥을 죽인 사건들을 듣고, 가나안 사람들은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요단강을 마르게 하면서 건너오는 것을 보고 어떤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고 합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살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힘이 없는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며 살아갑니다. 나의 적은 자본으로, 나의 저급한 학력으로, 나의 비천한 경험과 나의 제한된 건강 때문에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입니다. 이런 내가 가진 온 힘을 다하며 살아도 힘겨운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우리들이기에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실 때 과감하게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들이 내 힘과 판단력과 자본과 경험 등등을 다 내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삶을 결단하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할례를 행하라고 하시면 우리들은 적진 한 가운데에서도 믿음으로 할례를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나의 전 재산이 100만원뿐일지라도 너는 나의 일을 위하여 200만원을 바치라고 하셔도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 할례를 통해 너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보이라고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명령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신앙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첫 발을 들여 놓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순종하여 행한 할례의식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가지의 결과를 주셨습니다.

첫째는, 애굽의 수치가 물러가게 해 주셨다고 합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셨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길갈이라는 지명은 애굽의 수치가 굴러 갔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 노예근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그 마음 그 정신은 아직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자신들의 생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여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이제 너희에게서 애굽의 수치 물러갔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뜻은 이제 너희는 진짜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유인이란 무엇입니까?

그 마음대로 한다고 자유인이 아닙니다. 화날 때 화내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소리 지르는 것이 자유인이 아닙니다. 자기주장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감정의 종, 죄의 종, 욕심의 종, 분노의 종, 마귀의 종일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보면 아직 이런 삶을 살아오면서 후회를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참 자유인은 죄를 거절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내게 유익하지만 옳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속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도 참을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위험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실천할 수 있는 실천력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런 결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참 자유인입니다. 사람의 얄팍한 자존심을 넘어서서, 믿음으로 순종하여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참 자유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참자유인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애굽의 수치가 물러갔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했더니,

둘째, 그 때부터 새로운 양식이 공급되었다고 합니다.

 

길갈 평원에서 할례를 행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주간 동안 애굽에서 행방되어 나온 해방의 절기인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게 되었음을 기념하고 기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때부터 만나가 그치고 그 땅의 소산을 먹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비상식량이었습니다.

광야라는 환경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만나를 내려 주신 것입니다. 이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한 양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내려 주신 양식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삶에 필요한 것을 구하지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필요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기도하기 이전에 무엇이 우리 삶에 필요한지 다 아십니다. 그리고 그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 속에서 불순종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 하나님은 만나를 계속 공급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속이 좁아서 나를 대적하는 사람, 나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들을 보면, 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만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거역하는 백성들을 위해서도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의 차이를 우리는 만나사건을 통해 똑똑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먹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처럼 까마귀를 보내셔서 먹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나 사건은 이런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동안 만나를 먹여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나서, 혹은 하나님 특별히 사랑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 은혜의 풍성하심이,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커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만나와 같은 사건을 우리들이 경험할 때 우리는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의 은혜에 돌려야지, 그것을 우리의 자랑거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광야와 가나안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자기 힘과 수고와 노력을 살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가나안에서는 더 이상 광야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도 됩니다. 이때가 바로 위기입니다. 이때가 되면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때가 와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할례를 통해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했더니,

셋째, 하나님의 군대대장이 찾아왔습니다.

 

여호수아는 견고한 여리고 성을 어떻게 점령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밤에 여리고 성을 정탐하려고 나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한 장수가 칼을 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너는 적의 편이냐? 우리 편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 장수는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천사를 지휘하는 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들이 다 보고 있는 앞에서 믿음으로 할례를 행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싸워 주도록 천사 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행하느라고 1주일을 지내고, 또 유월절을 지내느라고 1주일을 지난 후에 여호와의 군대대장이 찾아왔습니다. 만약 할례를 지키지 않고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천사 장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 힘겹게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순종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싸워줄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이 먼저 나에게 도움을 주시면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순종할 것을 요구하시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하는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혜로운 삶의 자세가 무엇입니까?

내가 방법과 뜻을 다 정해 놓고 무엇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순종하는 우리에게 천사를 보내 주셔서 역사해 주십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군대대장은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지금 심판을 집행하실 정도로 이미 더렵혀져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나안 땅이 거룩한 곳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이제 이 땅을 네 소유로 삼고, 너희는 거룩한 땅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지금 너희가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통해 땅을 차지하여 네 소유로 만들고, 그 소유로 삼은 땅을 너희는 거룩한 땅으로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당시 여호수아에게는 두 가지 전쟁이 주어졌습니다.

첫째전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내 멋대로 살아온 불신앙적인 삶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 개개인이 해야 할 전쟁이었습니다. 이것은 또 우리 개개인이 해야 할 전쟁이기도합니다.

둘째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입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범죄 한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전쟁입니다.

 

우리 앞에도 늘 이 두 가지 전쟁이 놓여 있습니다.

먼저는 아담의 죄에 함께 빠져 있는 내 자신과의 전쟁을 해야 합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내가 해야 하는 전쟁입니다. 먼저 이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게 되는 전쟁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군 천사들이 우리와 함께 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 승리를 주시는 전쟁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룬 승리가 여리고 성에서의 승리이며, 가나안 백성들과 싸움에서 승리한 그 모든 승리였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길갈 평원에서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할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길갈 평원에서 할례를 행하였더니, 하나님은 세 가지의 결과를 이뤄 주셨다고 합니다.

첫째, 애굽의 수치가 물러가게 해 주셨다고 합니다.

둘째, 그 때로부터 새로운 양식이 공급되었다고 합니다.

셋째,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줄 하나님의 군대대장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 땅을 기업으로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 소유로 삼고 거룩한 땅으로 만들어가야 했습니다. / 이 명령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정과 교회와 삶의 현장을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부응하는 삶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 주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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