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역사서

여호와의 전쟁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8. 6. 20. 11:54




여호와의 전쟁

사사기 20:17-28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나라는 전쟁의 위험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과 같은 동북아의 위기가 어디서 왔습니까? 북한에 김정은이라는 호전적인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핵과 경제의 병진정책을 국가의 과제로 삼고 국가의 모든 역량을 여기에 집중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1km를 날아가는 미사일을 만들었고, 6차 핵실험까지 마쳤습니다.

국제사회는 이 위험한 미사일과 핵을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통해 국가 존립을 보장 받고 또 적화 통일을 이루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개발한 핵폭탄이 서울에서 터지면, 그 즉시 200만 명이 죽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측불허의 북한이 핵단추를 누르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 국민들은 미국의 핵우산보다 북한의 핵공격을 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자,’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오게 하자.’ 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가진 것을 가장 염려해야 할 나라는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나는 가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나는 예수 믿기 때문에 죽으면 천국에 가는데 뭐가 걱정이냐 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런 무책임한 말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런 위중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여호와의 전쟁

 

성경에는 전쟁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 여호와의 전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전쟁을 살펴보면 전쟁은 언제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셨습니다. 그러나 둘째,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그 언약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과 싸우셨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전쟁의 이중성입니다.

 

우리가 이런 예를 가나안 정복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백성들과 싸워서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어떻게 점령했습니까?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한 방법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서 여리고 성을 하루 한 바퀴씩 돌다가 제 7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난후 그 성을 향해 소리친 것뿐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견고한 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충실히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싸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불충실하여 죄를 지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우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를 아이 성 싸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이 성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던 아주 작은 성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아주 적은 수의 군인들을 보내 싸우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 성 싸움에서 수효가 훨씬 많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패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아보았더니 아간의 범죄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아간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은 아이 성 사람들보다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먼저 싸우셨던 것입니다.

 

이런 여호와의 전쟁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어둠가운데서 자기 뜻대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10명의 정탐 군들과 같이 우리들도 불신앙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바로 서 있는 사람이면 승리하는 삶이 있을 것이지만, 그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먼저 범죄 한 그 사람과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서 죄인들과는 함께 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라고 하십니다. 그 심령이 가난하고 성결한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우리가 주의 뜻을 알고, 주를 위해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쟁이 이중성을 잘 알고 있었던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갈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백성들을 성결케 하는 일을 했습니다. 여호수아 3:5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내일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 하셔서 기사와 권능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에 너희는 성결케 하라고 한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죄가 있다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해 주실 수가 없으시며,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가나안 백성들과 싸워주시기 전에, 먼저 죄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에게 자신을 성결케 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3.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전쟁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사사기 20장의 말씀도 이런 내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어떤 레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레위인은 제사장의 신분으로 해서는 안 될 첩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첩이 다른 사람과 간음을 해서 친정집으로 쫓아 보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분노가 가라앉게 되자 레위인은 그 첩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장인 집에 가서 그 첩을 다시 데리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을 지체하며 늦게 출발하였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날이 저물게 됩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가 살고 있는 기브아 지방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됩니다.

 

그 밤에 기브아 성 비류들이 나타나서 이 레위 인에게 동성애를 요구합니다.

신변에 위험을 느낀 레위인은 첩을 대신 내어주었고, 밤새 비류들에게 시달림을 당한 그 첩은 이튿날 아침에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일에 분노를 느낀 레위인은 그 첩의 시신을 12 조각내어 이스라엘 12 지파에게 보내면서 자기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기를 호소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분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기브아 비류들에게 죄를 묻기로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결정한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동성애를 정죄하고 심판한 소돔과 고모라 성 이야기와, 레위기 20:13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기브아 비류들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동성애를 요구하였고, 성적 욕망 때문에 한 여인을 무참하게 짓밟고 희생시키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전에 그 조상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숭배할 때 레위 지파가 일어나서 우상 숭배한 백성들을 심판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게 한 것처럼, 가나안 백성들과 싸움을 할 때 아간이 지은 죄를 심판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게 한 것처럼, 자신들도 기브아 비류들의 죄를 심판하므로 언약백성의 순결성도 지키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면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 지파적인 자존심 때문인지 자기지파 비류들을 감싸고 나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족 사이에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18절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이 말씀은 누가 전쟁의 선봉부대가 될 것인가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유다지파가 이 전쟁을 지휘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유다지파의 지휘아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패하여 22천명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황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서 싸운 전쟁인데 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용기를 내어 다시 베냐민을 대하여 진을 치고 그 일부는 사랑하는 형제를 잃은 슬픔을 가지고 울며 여호와 앞에 올라가서 다시 물었습니다. 23절입니다.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가서 치라이 약속의 말씀을 받고 이튿날 다시 전쟁을 하였으나 이번에도 져서 18천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성애라는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도응답까지 받고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는 지고 약 4만 명이나 되는 청년들이 죽은 것입니다. 당시 40만 명의 군인들이 싸움에 나섰는데 그 중에 1/10이 죽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는 형제나, 친구나, 친척이 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청년들이 죽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왜 하나님을 뜻을 이루려고 한 전쟁에서 우리가 패하였는가? 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악을 제거하고, 또 언약백성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시작한 전쟁인데 왜 우리는 졌는가? 하나님께서도 두 번씩이나 올라가서 싸우라.’라고 응답해 주시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왜 우리는 전쟁에서 진 것인가?

 

이 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아에서 있었던 전쟁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집이 있는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사랑하는 자녀, 형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들은 울며 울며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성경에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이 때 벧엘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겠습니까?

 

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레위인이. 죽은 군인 가족들이 죽은 자를 위하여 슬피 우는 모습을 보면서, 부상을 입은 군인 가족들이 그 상처를 치료해 주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레위 인은 자기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이 민족적인 불행을 보면서 자기를 돌아보지 않았겠습니까? 자기는 제사장 지파의 일원이면서도 하나님이 금하신 첩을 취하는 악을 행하므로 이 모든 불행들의 원인자가 된 것을 깨닫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이 레위 인이 먼저 울고 통곡하며 자기 죄를 고백하며,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백성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자기 죄를 아파하고 회개하며 통곡하는 레위 인의 절규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 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자기들이 지은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였던 이 벧엘은, 자기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통곡의 현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 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죄를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지은 죄를 회개하는 금식을 선포하고, 그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철저히 죄를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서 묻습니다.

28절입니다.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나님은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전쟁에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모두 다 죽고, 산성으로 도망한 600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두 번의 전쟁에서 졌습니까?

하나님께서 올라가서 치라. 올라가서 싸우라.’ 라고 하시는 응답을 받아서 싸운 전쟁인데 왜 패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범죄한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는 돌아보지 않고, 베냐민 지파의 죄를 심판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먼저 범죄한 이스라엘과 싸우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의 전쟁에서 진후에 자기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다시 베나민 지파와 싸웠을 때에는, 하나님이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면서 베냐민 지파의 죄를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여호와의 전쟁의 이중성을 잘 볼 수 있습니다.

 

4. 이런 상황에 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

 

그러면 이런 상황에 대해 신약성경은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까?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죄악 된 세상에서 살아갈 때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6:1절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 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라디아서 6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범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그 일을 거울로 삼아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를 성찰하여서 나에게는 죄가 없는지 돌아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죄가 있으면 먼저 내 죄를 회개하여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한 후에 온유한 심령으로 범죄 한 사람들을 바로 잡아 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사기에 나오는 백성들의 잘못이 무엇이었습니까?

4만 명이나 되는 청년들이 죽게 되는 아픔을 경험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 비류들의 죄를 보게 되었을 때 그 죄를 통해 자기 자신들을 먼저 돌아보는 성찰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자기 자신들을 성찰해 보았다면 그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먼저 자기 자신들을 돌아보고 자기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더라면 그 레위인은 하나님이 구별해 두신 레위인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첩을 얻어 살았던 자기 자신의 죄악 된 삶에 대한 성찰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간음하였다고 내어 쫓았던 그 첩이 예쁘고 젊다고 잊지 못해하며 다시 데리러 간 자신의 잘못된 욕망에 대한 성찰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자기 한 목숨 보전하겠다고 첩을 비류들에게 내어 주었던 자신의 몰염치한 행동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어디 이뿐이었겠습니까?

여행 중에 있는 동족을 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기브아 사람들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브아 비류들이 지은 죄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 죄에 대한 회개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알게 모르게 만연되어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각종 죄악 된 삶에 대한 성찰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먼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그래서 깨닫게 된 자기 자신의 죄를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로운 각오와 헌신을 결단한 후에 기브아 비류들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랬더라면 이스라엘 11지파는 40만이라는 군대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오만함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베냐민 지파 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만한 때문에 감정이 상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무작정 거부하지 않고 베냐민 비류들의 죄를 징벌하는데 협조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의 문제에서도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육신적인 눈으로 보면, 미사일과 핵으로 위협하는 김정은은 우리의 원수이고,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서 먼저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하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것처럼 한국교회는 먼저 그 지은 죄를 깨닫고 뉘우치고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서로를 인정해 주고 배려해 주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나라는 거의 단일 민족으로 내려온 나라이기 때문에 배타성이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잘 용납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카톡을 보니 전주에서 전주장애인 지원협회, 주간보호센터 등등을 하고 있는 이 00여자 목사가 저질러 온 범죄를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2012년에는 KBS의 아름다운 사람들에 나왔으며, 2016년에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 상을 수상하였고, 한국의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녀가 성범죄로 카톨릭에서 파문당한 신부와 함께 각종 사기 행각을 벌렸다는 것을 폭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디 이것 하나뿐이겠습니까?

한국교회는 이런 문제를 볼 때 심각하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아 회개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이 지은 죄를 아파하며 회개하고 나아갔듯이,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울고 또 울며 하나님께 그 죄를 속죄하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나아갔듯이, 한국교회도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사랑했던 죄를 회개하고, 결국 불태워지고 없어지게 될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았던 죄를 회개하며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속화 되어서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욕망에 사로잡혀서 세상과 똑 같은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각종 비리 사건에 한국교회가 연루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얼마나 욕되게 하고 있습니까?

한국교회가 이런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여, 이제까지 지으며 살아온 죄를 회개하고, 이제까지 지으며 살아온 죄를 끊어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사는 거룩한 백성으로 돌아서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죄를 회개하고 나아가는 한국교회와 우리나라를 다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오도록 이제까지 지켜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앞날도 은혜로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전처럼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그 천사를 보내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심으로, 우리 앞에 닥쳐와서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북한의 핵 위험에서도 벗어나게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5. 교회가 싸워야 할 영적인 싸움

 

성경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고 합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 앞에 닥친 위기인 북핵문제는, 우리 눈에 보이는 김정은과 그 추종자들과의 싸움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반영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땅의 바람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전쟁을 막고 있는 천사들이 있다고 합니다.

천사들이 바람을 막고 있는 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천사들이 그 붙잡고 있는 바람을 놓아 보내면 전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들을 우리 하나님이 통제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어디 있습니까? 전쟁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이, 이런 악화된 상황 속에서 우리가 희망을 가지게 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영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은 언제나 기도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신 후에 중요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밤을 지새우시며 기도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신 후에 12제자를 임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신 후에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내시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의 영적싸움에서 승리하신 후에 무슨 일이든지 행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현실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우리와 우리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회개하며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죄악과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해 회개하며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먼저 제거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죄악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지 않고 우리의 대적이 되셔서 먼저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어떤 모양으로든지 집행하실 것입니다. 그런 불행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라도 우리민족이 지으며 사는 죄를 아파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기도를 우리는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교회가 영성을 회복하게 되면, 다시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적인 안목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회복된 영적인 눈으로 오늘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보면, 북한의 김정은도 다르게 보입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기회가 있을 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할 한 사람의 불쌍한 죄인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두려움 속에 떨며 몸부림 치고 있는 가련한 한 젊은이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김정은을 바라볼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기도해 주어야 할 대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영적으로 회복되게 되면 우리 앞에 있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 하는 것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셨듯이 그렇게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변하며 이런 변화와 영적인 안목을 가지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런 영적인 안목을 가져야만 비로써 우리가 김정은을 사랑으로 품고, 그를 위해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셔서 김정은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신다면, 김정은도 멸망하지 않고 우리 민족도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런 일을 이루어주실 줄을 믿고 사랑으로 오래 참으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김정은과 북한 괴뢰 정권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적하다가 멸망당했던 바로와 그 군대와 같이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들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기회의 문을 우리 앞에 열어두고 계십니다.

 

6. 우리나라에 사랑해 오신 하나님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조선 말기 대원군이 쇄국정책으로 나라 문을 닫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나라 운둔의 나라였던 조선이 오늘날에는 선진국들의 모임인 G20에 들어가고 또 세계에서 10위 안에 드는 무역대국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우리나라를 보고 세상 사람들은 국토도 작고 부존자원도 없고 또 남북이 대치중에 있어서 엄청난 국방비를 지출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6.25 라는 동족상전의 비극적인 전쟁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던 나라가 아닙니까? 그런 우리나라가 오늘날과 같은 경제적 성장을 이룬 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이런 복을 누리며 살게 된 진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민족이 근면하고 뛰어나서입니까? 높은 교육열 때문입니까? 일찍 해외로 눈을 돌려 무역한국을 지향한 것에 있습니까? 무역규모가 커지고 대외의존도가 높아지면 외부의 영향을 더 크게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몇 차례 세계경제위기에서도, 국가부도사태인 IMF도 잘 견디어 내며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이루어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가 하면 같은 한반도에 사는 북한은 왜 10년을 넘게 냉해와 홍수와 가뭄으로 자국민의 식량도 해결하지 못해서 여기저기서 구걸하고 있습니까? 북한의 평양 사람들은 그래도 살만하지만, 오지인 함경도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전에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은 남한이 훨씬 더 잘 살게 된 것입니까?

 

이렇게 남한과 북한의 현실이 이렇게 극명하게 달라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종교적인 열심이 남다른 나라,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우리나라를 사랑해 주시고 여러모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일에 열심인 우리나라에 지금도 여전히 복을 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도와주셨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6:1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삭은 가나안 땅에 가뭄이 들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의 땅인 그랄 지방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뭄이 심해져서 그랄 사람들이 농사는 지었지만 수확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땅에서 농사를 지었던 이삭은 달랐습니다.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오고 우물을 파면 물이 나와서 그 우물물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더니 가뭄 때에도 100배의 수확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가뭄 때가 되면 수확량이 적어지기 때문에 물가가 폭등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삭은 가뭄 때 비싼 값에 곡식을 팔아서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과 동일한 땅에서 동일한 조건 속에서 동일한 시기에 농사를 지었는데,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흉년이 들고 이삭은 100배의 수확을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있었던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이삭은 기근 때에도 풍년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위기가 무엇입니까?

 

남북한 사이에 있는 이 군사적인 대치는 점점 전쟁의 위험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그 생존과 적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핵과 경제라는 이 두 가지의 병진정책을 계속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북한은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였고, 수소폭탄시험까지 마쳤습니다.

 

북한이 이 일에 모든 국력을 올인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미국을 위협하면서 미국과 대 타협을 이루어서, 한반도에서 휴전 상태를 끝을 내고 평화조약을 맺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유엔군이 우리나라에 있을 필요가 없게 되고 주한 미군이 한국에 머물 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게 한 후에 남한을 적화통일 하려고 꿈을 꾸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오면 우리가 아무리 강한 군대를 갖추어 놓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북한이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긴장을 조성하고 나중에는 핵무기를 가지고 위협을 하게 되면 그런 위협을 견디어 낼 정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 양보하고, 또 하나를 양보하다가 보면 결국 우리나라는 북한의 수중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면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계속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공산화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희망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부터 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회개는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 사회 속에도 영향을 미쳐서 한국 국민들이 회개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 때 한국은 미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가장 기뻐하시는 일에 기쁨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유일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편이 되어 주셔서 위기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7.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멜렉과 전쟁을 할 때, 모세와 아론과 훌이 산 위에서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 기도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겼던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살 수 있는 이 유일한 희망 유일한 길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아직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나라가 당면한 이 위기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하고,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그 날에도 자유롭게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기도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우리나라의 장래는 정치 지도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에게 달려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이 민족의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심정으로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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