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감사하는 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3. 17. 13:57



감사하는 신앙

시편 50:23

 

아이작 왓츠(Isaac Watts)하나님이 계신 곳이 두 곳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천국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약 32회 나오고 신약성경에는 약 38회 정도 나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절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 말씀은 좋은 일을 만났을 때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나쁠 일을 만났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스펄젼은 감사하면 형통하게 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그 형통이 계속된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두 친구가 길에서 만나 대화한 내용입니다.

한 친구가 ‘3주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내게 2억 원을 유산으로 남겨 주셨다.’고 하자, 다른 친구가 , 너 수지맞았다. 요즘 같이 어려운 시대 2억 원이 어디냐!”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또 ‘2주 전에는 외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내게 3억 원을 유산으로 남겨주셨어.’ 라고 했고, 다른 친구는 부러워하면서 아이고, 5억원을 벌었구나. 얼마나 좋으냐?’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다시 지난주에는 고모님이 돌아가셔서 1억 원을 남겨 주셨지.’ 라고 했고, 다른 친구가 그럼 유산으로 받은 것이 총 6억 원이 됐네. 부럽다 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6억 원을 유산으로 받은 친구의 얼굴에는 감사한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불만으로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긴 친구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 많은 유산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는데 너는 왜 불만스러워 하고 있니?’ 그러자 그 친구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이번 주에는 아무도 안 돌아가셨잖아.’

 

우스개소리 같지만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내게 아무 것도 없었을 그때를 기준으로 생각하게 하지 않고 나에게 뭔가 있었을 때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처럼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1. 감사하며 사는 삶

 

좀처럼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욕심을 비울 때 비로써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시편 50:23절에서는 욕심을 비우는 정도가 아니라 감사로 제사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첫째, 감사한 일이 있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참빛교회를 개척할 때는 참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당시에는 교회를 세워나갈 재정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런 형편 속에서 지금은 세 자녀이지만 당시에는 두 자녀를 양육하며 살아야 했던 때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교회를 개척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그간 믿음으로 함께 해 주신 성도님들이 계셨고, 힘과 정성을 다해 섬겨 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쌀 나누기, 반찬 나누기, 빵 나누기, 등등을 하면서 오늘 여기까지 달려 왔습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 말처럼 무엇이든지 시작하고 결단하기가 가장 힘든 것입니다. 믿음으로 시작을 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도우시고 역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동역할 사람들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참빛재가복지센터도 세울 수 있게 해 주시고, 또 지금의 정도 까지 성장시켜도 주셨습니다. 물론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도 많이 하고, 재가센터를 위해 수고도 많이 했지요. 그러나 되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형편을 보면 어렵고 힘들지만 개척할 당시를 기준으로 삼고 여기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 삶 속에는 분명히 감사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감사하지는 않고 오히려 불평하고 불만을 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감사한 일들이 많이 있는데 불평하고 불만만 토로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토 폼이 세상의 죄 중의 가장 큰 죄는 감사하지 않는 죄다.’라고 했습니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감사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보다 나쁘고 술 취하는 것보다 나쁘고 어떤 부도덕한 행동보다 더 나쁘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 삶속에 감사한 일이 있을 때에는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하되 누구보다 더 크게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전하고 듣는 우리 모두는 우리 삶 속에 감사한 일이 있을 때 누구보다 더 크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른 삶의 자세입니다.

 

또 우리는 어떻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둘째, 감사한 일을 생각하고 찾아내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그 용량이 남자는 1,500cc 여자는 1,200cc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은 뇌를 평생 동안 약 5%정도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이해나 생각이 얼마나 좁고 편협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하나님 학자들은 말하기를 아인슈타인같이 뛰어난 사람도 그 뇌를 5%정도 밖에 사용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 제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저의 뇌 기능이 쇠퇴하지 않게 해 주시고, 또 뇌 기능을 10% 이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라고 늘 기도합니다.

 

우리의 IQ가 낮고, 우리가 좀 부족하고 못났어도, 하나님이 우리의 뇌의 기능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만 하신다면 우리의 부족은 보충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누구보다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하면 사는 제게 무슨 선한 것이 나타나게 된다면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타나는 선한 일에 대한 모든 영광은 다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게 되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인 것입니다.

 

혹시 제 삶 속에 나타나는 부족과 못난 모습은 본래부터 제가 가지고 있던 제 것들입니다.

혹시 제 삶 속에 나타나는 선하고 의로운 모습은 하나님이 제가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 두 가지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머리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거나, 우주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에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지를 깨닫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감사한 일이 우리의 삶 속에 널려 있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속에 널려 있어도, 우리는 이해력이 부족하여서 무엇이 감사한 일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8:28절 말씀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고 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시는 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것이 됩니다. 범사를 감사할 수 있도록 해 주시지도 않으시고서는 이런 말씀을 할 수 없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삶 속에 하나님이 행하신 감사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를 감사하며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처럼 범사를 감사하며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처럼 습관적으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성으로 생각을 하여서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이 행하신 감사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를 이해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깨달음과 이해가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우리 생각이 중요한 예를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어머니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아들은 우산을 팔고 다른 아들은 짚신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비가 오면 짚신을 파는 아들 생각에 걱정을 하고 날씨가 좋으면 우산 파는 아들 생각에 적정하였습니다. 그래서 평생 걱정만 하고 살았습니다.

 

만약 이 어머니가 생각을 바꾸어서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파는 아들을 생각하고 날씨가 좋으면 짚신 파는 아들을 생각했더라면 늘 감사하고 늘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태풍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태풍이 불어오면 때로는 어선이 부서지고, 가옥과 농경지가 침수 되는 등 많은 피해를 입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가 많이 오면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늘을 원망하고, 비가 적게 오면 비가 적게 온다고 하늘을 원망하고, 바람이 세게 불어서 과일이 떨어지면 바람 때문에 과일농사 망쳤다고 하면서 하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태풍은 이런 피해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날에는 강을 통해 많은 영양분들이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매년 강과 바다에서는 녹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녹조현상이 심해지며 물속에 산소가 부족하게 되어서 그 물을 먹을 수가 없고 또 물고기들도 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런데 녹조현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여름에 태풍이 불어와서 강에 쌓여 있는 영양분들을 바다로 쓸고 가고, 또 바다에서는 바닷물을 한 번 뒤집어 주게 되면 강과 바다에서 녹조현상은 금방 사라지고 고기들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게 됩니다. 태풍이 없다면 이런 일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여름에 집중적으로 비가 오는데 만약 태풍이 불지 않아서 비가 적게 와서 가뭄이 오고 기근이 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사람 뿐 아니라 짐승도 초목도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태풍이 주는 피해만 보고 하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태풍이 주는 유익을 생각하고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얼음이 어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물이 얼게 되어 있습니다.

물이 얼면 시골 아낙네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어집니까? 식수로 사용하는 공동 우물물이 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얼음을 깨고 식수를 길어 와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지난겨울에는 우리 집에서도 급수관이 동파되기도 했습니다.

 

날이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얼음은 두껍게 업니다.

그러면 그 두꺼운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 와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날씨가 추운 것을 가지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다.

날이 추워져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추워지면 얼음은 더 두껍게 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깥 온도가 아무리 영하 20, 30도를 넘게 되어도 두껍게 언 얼음이 차가운 기운을 막아 주기 때문에 얼음 밑에 있는 물은 겨울 내내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 얼음 때문에 물속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 각종 물고기들이 얼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는다거나 물이 바닥에서부터 얼어오면 물고기들은 추운 겨울을 나지 못하고 다 죽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구는 생명이 살지 못하는 황량한 별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날이 추우면 추울수록 물이 더 두껍게 얼도록 해 주심으로 물고기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얼음이 꽁꽁 어는 날씨 속에서도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이나 환경을 보고 감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 그리고 모든 환경들은 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의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불평의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것이 다 불만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한 일을 찾고 찾아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말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는 감사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겨울이 되면 밤이 길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많이 나옵니다.

이 때 우리는 전깃불 보다 더 밝은 햇빛을 공짜로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햇빛을 사용한 고지서를 우리에게 보내신다면 우리가 1년에 과연 얼마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빛에는 빛(Light)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해 빛 안에는 열도 있고 각종 광선들이 있어서 사람들과 동식물들이 성장하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또 겨울에는 난방비가 많이 나옵니다.

여기저기서 난방비가 많이 나왔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바꾸어서 생각해 보면 난방비가 많이 나왔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감사한 일이 아닙니까?

 

또 어떤 나라들을 보면 1년 내내 겨울인 나라도 있고 또 1년 내내 여름인 나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사계절이 아주 뚜렷한 아주 좋은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중동에서는 물 한 드럼 값이 기름 한 드럼 값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물이 맑아서 약수터에 가면 공짜로 물을 떠 올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렇게 우리가 불평불만 하는 삶들은 조금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감사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음식 쓰레기도 다 돈입니다. 버릴 때마다 비용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먹은 것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보릿고개가 있었을 정도로 음식이 귀하였습니다. 이것도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연말이 되면 내야 할 세금이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내야 할 세금이 많다는 것은 내가 그 만큼의 수입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에게 청소해야 할 곳이 많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만큼 큰 집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많다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입니다.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른 새벽마다 자명종 소리를 듣고 깨어나야 한다면 그건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두 친구의 대화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두 친구가 만날 약속을 하고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그곳은 말을 며칠 씩 타고 가야하는 곳이고, 또 때로는 험한 지역도 지나야만 하는 곳입니다.

드디어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여보게 나는 오다가 말에서 떨어졌는데 다행히 아무 곳도 다치지 않았다네. 그래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감사드렸다네.’ 하자, 다른 사람이 갑자기 무릎을 꿇으면서 여보게, 말에서 떨어졌으나 다치지 않은 자네보다,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내가 더 감사해야 할 사람이네.’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감사해야 할 사람입니까? 말에서 떨어졌으나 다치지 않은 사람입니까? 아예 말에서 떨어지지 않은 사람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잘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고서야 겨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살아온 자신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기 전까지는 어려움이 없이 살고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감사할 일이 무진장으로 널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을 때, 이 말씀 속에는 우리들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미 그렇게 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 속에 감사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어떻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셋째, 나의 삶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삶 속에 감사한 일이라고는 전혀 없고, 또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 보아도 감사한 일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사하는 일이 전혀 없으니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이때는 믿음으로 감사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감사하였던 사람을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바로 구약성경에 나오고 있는 욥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욥은 그 삶에 감사한 일이 전혀 없었지만 믿음으로 감사했던 사람인 것입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10명의 자녀를 함께 다 잃었습니다. 그리고 건강까지도 잃어버리고 질 그릇 조각으로 굳어 딱딱해진 피부, 진 물러서 고름이 흘러내리는 그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당시 욥의 삶을 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때 욥은 어떻게 했습니까?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또 욥은 남편의 그 추한 모습을 보기 싫어해서 그렇게 구차하게 더 살지 말고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했던 그 아내에게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욥은 어떻게 누가 보아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욥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하박국 선지자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전쟁의 와중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무엇이라 고백하고 있습니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 삶을 보면 감사한 일이 전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계시다는 것을 인해 즐거워하며 자신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을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 삶 속에 감사한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때 우리는 누구보다 더 크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랍니다.

또 감사한 일에 대해 생각하고 깨달아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감사하는 일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때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믿음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며 사는 삶이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계신 삶인 것입니다. 아멘.

 

2. 시편 50:23절 해설에 대해

 

이제 오늘 우리가 본문삼고 있는 시편 50:23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50: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첫째는 감사로 제사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생각하고 깨달아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 삶 속에 감사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감사로 드리는 제사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의 간절한 소원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깨닫고, 그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되면,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앤드류 마리아라는 사람이 쓴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이라는 책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도착하자 예수님의 수제자이었던 베드로가 그에게 천국을 구경을 시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간 베드로는 여기는 접수부라고 하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접수하는 곳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많은 천사들이 지구 도처에서 사람들이 보내온 두툼한 청원들을 분류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에서 베드로는 여기는 포장 및 발송 부인데. 사람들에게 보내 줄 은총과 복된 선물들을 포장해서 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발송하는 곳이라고 했답니다. 그곳에도 엄청나게 많은 천사들이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셋째 방에 들어가자 그곳에는 단 한 명의 천사가 한가롭게 빈둥거리고 있었답니다. 베드로가 여기는 확인부인데.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기도한 대로 선물을 받았다는 확신 서를 접수하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확인서를 보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가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을 받았다는 확인서는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어보았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는 아주 간단한데. 그저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감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이 글의 내용은 우리가 마음에 둘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 마음에 두어야 하는 것은 바로 감사하는 삶의 중요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크고 놀라운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로 제사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50:23절에서는 이렇게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감사로 제사 드리는 사람이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절 말씀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바른 신앙의 삶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알아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신앙의 삶은 무엇입니까?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사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삶 속에서 선을 행하고 사는 삶이나, 의를 행하고 사는 삶 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사는 삶을 더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바른 삶이고 올바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셋째, 감사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이 땅에서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면 어떤 구원의 역사가 우리 삶에 나타납니까?

여기에 대해 어떤 사람은 증거 하기를 우리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전기 불을 주시고, 전기 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그 유업으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이 땅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단언하건데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가서 보면 거기에는 감사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만 다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나중에 지옥에 가 볼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지옥에 가서 확인해 보면, 거기에는 세상에서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하던 사람들이 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 땅에서의 삶에서도 유효하고, 또 저 천국에서의 삶에서도 유효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사느냐? 불평하는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왔습니까? 아니면 불평하는 삶을 살아왔습니까?

- 루터는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 라고 했습니다.

- 성경은 감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 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게 가장 특징적인 모습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 삶 속에 감사한 일이 있을 때 그 누구보다 더 크게 감사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생각하고 또 깨달아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감사한 일이 없을 때에는 욥을 생각하고 하박국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기쁨과 은혜와 구원을 2019년의 삶 속에서 충만하게 경험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믿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의 복음  (0) 2019.05.18
십자가 신앙  (0) 2019.04.23
작은 믿음 큰 역사  (0) 2019.02.15
하나님의 구원과정  (0) 2018.12.04
늘 배우는 신앙  (0) 2018.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