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작은 믿음 큰 역사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2. 15. 07:21




작은 믿음 큰 역사

마태복음 13:31-32

 

1. 말에는 능력이 있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미 살펴본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말에는 어떤 능력이 있었습니까?

 

첫째, 우리가 하는 말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말의 능력을 알았던 사람들은 말을 조심하며 살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 입으로 한 원망이나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 있는 부모들은 자녀를 양육할 때 특별히 그 하는 말을 조심했다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한 대로 그 자녀가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말은 그 말을 하는 자기 자신의 삶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오늘 우리의 삶은 우리가 과거에 말해온 대로 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해온 사람은 그 말한 대로 긍정적인 삶을 살게 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늘 부정적으로 말해 온 사람들은 그 말한 대로 부정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증거들은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말은 하나님의 역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으로 믿음으로 말한 그대로 우리에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대해 민수기 14:28절에서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의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 주신다고 믿음의 말을 하였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말한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자신들은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불 신앙적인 말을 한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말한 대로 그들에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말에 이런 능력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속담에 생각이 마음을 낳고, 마음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운명을 낳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속에는 우리의 마음과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담고 하는 말대로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한 대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믿음에 따르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성경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네 믿음대로 되라 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는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으시듯이, 우리가 하는 말에도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말한 대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2. 겨자 씨 비유

 

이것은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겨자씨 비유에 대한 말씀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씀의 내용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는 것입니다. 이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씨이지만 다 자란 후에는 나무가 되어 새들이 그 가지에 둥지를 만들고 보금자리를 삼을 정도로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겨자씨 비유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겨자씨는 비록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씨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씨이지만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가지고 있는 생명이 자라고 자라 나중에는 큰 나무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시작되는 것을 보면 겨자씨와 같이 작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나중에 자라서는 큰 역사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들의 눈에 마치 겨자씨와 같이 작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 무시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가 되면 겨자씨가 큰 나무를 이루듯이 천국은 영광을 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의 역사에서도 같습니다.

겨자씨 비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정도로 큰 믿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위대한 믿음이기 때문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 같은 믿음이기 때문에 기적이 나타나고 이적이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믿음이 겨자씨와 같이 작은 믿음일지라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면 그 믿음에 따르는 믿음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믿음의 역사를 가져오게 하는 겨자씨 믿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겨자씨 믿음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믿음이지만, 그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생명을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살아 있는 생명력이 역사하여서 결국 큰 나무가 되게 하는 역사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의 경험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가 믿음으로 자녀들을 축복할 때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나 믿음이 있어서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주시기를 바라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믿고 축복한 대로 자녀들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부모를 가진 자녀는 망하거나 잘못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축복한대로 그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우리 삶에 사역에 비전을 가지고 살고, 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 줄 때, 우리에게 무슨 큰 믿음이 있어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기도를 다 들으시고 그대로 역사하실 것을 확신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은혜가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작은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삶에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기적의 역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금식하였더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의사도 어찌할 수 없다고 손을 든 암 병도 낫게 하시고, 고질병도 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치료를 경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크기 때문에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기적을 체험하고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겨자씨와 같이 작은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의 증거

 

이런 내용들이 성경 속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을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 그렇게 큰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큰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하였던 사람들은 불과 몇 사람이 안됩니다.

하인의 중풍 병을 고침 받으러 나왔던 이방인 로마 백부장과 그 귀신들린 딸을 고침 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 나왔던 이방여인의 경우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언제나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네 믿음이 어디 있으냐?’ ‘믿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보리라.’ ‘믿고 의심하지 말라.’ 등등 작은 믿음에 대해 경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여행을 나가서 기적을 행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이었지만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이 작은 자들아’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 대해 참고 기다려야 하느냐 라는 책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들은 늘 적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경우도 같습니다.

야이로는 비록 예수님께서 그 딸의 병을 고쳐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께 그 딸을 고쳐주시기를 바라고 나아왔지만 그렇다고 큰 믿음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가는 도중 지체 할 일이 생겨서 그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 끝이구나, 더 이상 내 딸은 살아날 수 없구나 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적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던 혈루증이 고침 받은 여인은 어떻습니까? 이 여인도 예수님은 반드시 내 병을 고쳐주실 것이다.’ 라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각종 병을 고쳐주셨다고 소문이 난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내 병도 고침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 작은 소원을 가지고 나아와 조심스럽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은 대로 병이 났게 되는 기적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의 믿음은 어떠했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명하시면 자신도 물 위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여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걸어오라 말씀하소서 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 하시자 베드로는 담대히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물 위를 걷다가 파도치는 물결을 보고 무서워 하여 믿음을 잃게 되자 가라앉기 시작하였습니다. 다급해진 베드로는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였고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의 손을 잡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물 위를 걷게 되는 기적을 경험한 것도 베드로에게 무슨 큰 믿음이 있어서 걸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음 작은 믿음이 이런 기적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어머니께서 싸 주신 자신의 점심 도시락을 먹지 않고 예수님의 손에 드린 어린아이의 믿음과, 이 작은 도시락을 받아서 예수님께 드린 제자들의 작은 믿음이 그런 큰 기적을 불러온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고침 받은 사건은 어떻습니까?

이 사람이 무슨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고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병이 나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믿음을 가지고 이 베데스다 연못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그 작은 믿음이 예수님을 만나 병 고침을 받게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한 것입니다.

 

귀신들린 아들 고침 받은 사람을 보십시오.

이 사람에게 무슨 큰 믿음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 무슨 일을 할 수 있거든 저 죽을 줄 모르고 불에도 물에도 막 들어가는 이 불쌍한 내 아들을 도와달라고 했었습니다. 이 믿음이 적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라고 하시면서 견고한 믿음을 가질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그 때 이 사람은 제가 믿는다고 하면서 귀신들린 아들을 가진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모가 가진 작은 믿음을 보시고 그 아들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적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이들이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은 비록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 작은 바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갔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은 작지만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에서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오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경험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비록 우리가 가진 믿음이 겨자씨와 같이 작은 믿음이라도 반드시 살아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질 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우리가 이것을 알려면 죽어 있는 믿음에 대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죽은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 죽은 믿음은 두 마음을 품고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청년의 경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청년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자청년은 결국 무엇을 택하였습니다. 재물을 택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두 마음을 품은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는 죽은 믿음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믿음입니다.

 

둘째, 죽은 믿음은 의심하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1:6-7절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두 절의 말씀을 보면 죽은 믿음은 의심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의 상 주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셋째, 죽은 믿음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우리 신앙이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해 민감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았던 바울은 자신을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거룩하신 성령께서 그 자녀 된 우리들에게 거룩함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 죄를 회개하지 않는 믿음은 살았다 하는 이름만 가진 죽은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 하였던 중심적인 증거 내용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죄를 회개하는 믿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정리하면 살아 있는 믿음은 오직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 죄를 미워하고 죄인은 긍휼히 여기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면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증거들이 또 있습니다.

그러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은 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지만 살아 있는 자는 말하고 사고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마음속에서는 날마다 믿음의 생각이 새롭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창조적인 생각이 일어나고, 좋은 생각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기자는 자기 마음이 마치 필객의 붓같이 좋은 마음으로 넘쳐흘렀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은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생각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을 따라 창조적인 생각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이런 증거들이 우리가 살아 있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증거 해 주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창조적인 생각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창조적인 생각을 주셔도 오직 생각만 하지 전혀 행동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식물인간이라고 부르듯이 이런 사람들은 건강한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 마음의 떠오른 좋은 믿음의 생각들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보고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믿음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반드시 믿음이 자라고, 헌신이 자라고, 사명이 커지고, 책임감이 더 커지는 성장이 있게 됩니다. 마치 살아 있는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듯이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금년은 작년 보다 성장하였고, 내년은 금년보다 더 성장한 믿음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살아 있는 믿음 성장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3. 겨자 씨 비유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

 

우리가 이런 겨자씨 비유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씨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에는 언제나 역사가 따릅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인 겨자씨를 보고 우리가 믿음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겨자 씨 같은 작은 믿음을 보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얼마나 우리의 믿음에 응답해 주시고 싶어 하시는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만 가지면 바로 큰 은혜로 우리에게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며, 산에게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이해를 가지게 되면 성경 속에 왜 그렇게 기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겨자 씨 같이 작은 믿음만 보아도 능력으로 권능으로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믿음에 큰 역사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작은 믿음을 하나님께 보일 때 하나님은 태양도 달도 멈추게 하시는 큰 역사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작은 믿음을 보이고 하늘을 바라 볼 때 하나님께서는 홍해 바닷물도 둘로 갈라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양식이 떨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고 또 광야의 극한환경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늘 믿음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믿음을 보시고 큰 역사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믿음의 큰 역사들이 많이 일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은 비밀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겨자씨 같이 작은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함께 하시면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둘째, 우리의 작은 믿음이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겨자씨와 같은 작은 믿음이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우리가 작은 믿음이라도 겨자씨와 같이 생명이 있는 믿음을 심으면 그 믿음은 반드시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모세는 큰 믿음의 사람이기에 홍해를 갈랐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을 정복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이 가진 믿음이 특별한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도 자기 믿음이 대단한 믿음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적을 체험한 것이 그 믿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체험하고도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적을 체험하고도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고 화 있을진저 가버나움아, 화 있을진저 벳세다야라고 하시면서 기적을 체험하고 신앙을 버린 사람들에게 마지막 날 소돔 사람들이, 노아 때 심판을 받고 멸망당한 사람들이 너희의 불신앙적인 행위를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은 우리의 신앙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기적이 왜 일어납니까? 기적은 우리의 작은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믿음이 기적을 불러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셋째, 우리는 작지만 살아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겨자씨와 같이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가정생활 속에서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 속에서도 살아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 안에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도 살아 있는 믿음을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으면 우리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세계 속에 우뚝 선 민족이 될 것이며 세계 여러 나라를 살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겨자씨 믿음 가진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비록 우리가 가진 믿음이 작은 믿음이지만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작지만 살아 있는 믿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모두는 작지만 살아 있는 믿음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살아 있는 믿음이 우리 가정을 살리고, 우리 교회를 살리고, 우리 이웃을 살리고, 우리나라와 결국 세계를 살리는 믿음의 역사를 이룰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가 비록 겨자씨와 같이 작지만 살아 있는 믿음을 가져서 이런 믿음에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과 비전을 이루어드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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