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늘 배우는 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8. 7. 12. 18:26

 

 

 

늘 배우는 신앙

창세기 13:5-11

 

1. 아브라함 당시 가나안의 상황

 

고대 근동지방은 세계 3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첫째는 헷 족속입니다. 이 헷 족속은 지금의 터키 지방에 세력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유럽의 중심세력입니다.

둘째는 앗수르, 바벨론족속입니다. 이 앗수르 바벨론 족속은 지금의 이라크 지방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아시아의 중심세력입니다.

셋째는 애굽 족속입니다. 이 애굽 족속은 지금의 이집트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아프리카의 중심세력입니다.

 

이렇게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3대 세력 사이에 놓여 있었던 가나안 땅은, 헷 족속의 힘이 강하면 헷 족속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었고, 바벨론의 힘이 강하면 바벨론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었고, 애굽의 힘이 강하면 애굽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당시에는 애굽이 강성할 때라 이 가나안 땅은 애굽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애굽이 이 지역을 직접 통치하지는 않았습니다. 애굽은 각 도시들을 개별 국가로 인정해 주되, 가나안 땅 요충지에 주둔군을 파견해서 이 땅을 다스렸습니다.

 

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사도행전 7:2-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에 있을 때 부르셨습니다.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서 그 부모와 형제들과 함께 메소보다미아 땅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이렇게 믿음으로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의 가족들은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하란 땅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머물러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하란 땅에서였습니다.

그 때 상황이 창세기 12:1-4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4절만 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 오세더라

아브라함은 다시 약속의 땅으로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모와 형제들을 하란에 남겨 두고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쉽지 않았겠습니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이것은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주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서 믿음으로 하란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이 첫 번째로 그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만난 믿고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로 돌아온 이후에는 전처럼 다시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고 사는 생업에 종사하게 됩니다.

 

이 제자들을 예수님이 두 번째로 부르시는 장면이 누가복음 5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시몬 베드로에게 오셔서 그 배를 빌려 타시고 말씀을 전하신 후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다시 던지라요구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하면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의 죄악 된 삶의 모습을 깨닫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마태복음에 의하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초기 제자들은 정식 제자로 부르심을 받아 그 삶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두 번의 부르심을 받고 난 후에 정식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3.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삶

 

아브라함이 어렵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른 곳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약속에 땅에 이른 아브라함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창세기 12:10절 말씀을 보면 그 땅에 기근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이른 약속의 땅에 기근이 왔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유목생활을 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짐승을 방목하면서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물과 풀이 없으면 생업에 어려움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근이 들었다는 것은 먹고 살기 어려워졌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극심한 기근을 만나게 되자 아브라함은, 그 가족들과 가축들에게 먹일 물을 얻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근으로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지면 누가 가장 힘이 듭니까? 그 땅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그래도 삶의 터전이 있고 이웃이 있기 때문에 기근을 견디어 내는 것이 좀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방금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마치 나그네와 같은 아브라함으로서는 기근이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서 방목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마치 가시방석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편했을 것입니다.

 

 

4. 물이 풍부하다는 애굽으로 내려 감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에게 good news가 들려왔습니다.

가나안 땅 아랫 쪽에 있는 애굽에는 물이 풍부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심한 기근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가나안을 떠나 물이 풍부하다는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간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먼저 가나안에 살고 있는 다수의 민족들로부터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기근으로 자신들도 살아가기 힘이 드는데, 아브라함이 가족과 많은 가축을 끌고 들어와서 자신들이 땅에서 살려고 하였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볼 때 아브라함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경계의 눈, 적대적인 태도로 아브라함을 대했을 것입니다.

 

둘째,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하며 살고 있는 가나안땅에 비하면 애굽은 나일 강으로 인해 물과 초장과 양식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가축들을 먹고 입히기에 수월한 곳이었습니다.

 

셋째, 도시마다 독립된 왕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치안이 불안한 가나안 땅에 비하면, 애굽은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통치가 이루어져 있는 안정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인들에게 적대적이지가 않았습니다.

 

넷째, 애굽은 모든 것이 풍부한 곳이었기 때문에 민심 또한 좋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애굽에 물이 풍부하다는 말을 듣고 곧 바로 결단을 하고 애굽으로 내려 간 것입니다.

 

다섯째,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주 예쁜 여인이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중에 만난 사람들이 예쁜 사라를 보고 한 가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애굽 왕은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모두 취하여 자기 궁궐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아내로 삼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아브라함은 그 아내 사라에게 애굽에 가서는 나의 아내라고 하지 말고 누이라고 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창세기 12:12-13절입니다.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당시 애굽 왕 바로는 자신 이외의 사람이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쁜 여자를 보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자기 부인으로 삼았습니다. 만약 결혼한 사람이라면 그 남편을 죽이고서라도 그 여자 취하였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보면 얼굴이 예쁜 여자들에게는 출새하고 호의호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브라함에게는 근심거리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너무 예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서 그 아내 사라에게 누이라고 거짓말 해 주도록 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상황은 아브라함이 염려한대로 되어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겼고, 대신 바로가 주는 많은 지참 예물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 심정 어떠했겠습니까?

아마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 온 것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기근이 들어서 살기 어렵더라도 애굽으로 내려오지 말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있을 것을 하면서 후회하고 또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고 섬기며 사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창세기 12:1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듣고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가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다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네가 어찌 그를 네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너의 잘못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내어주고, 그간 사라가 왕에게 받았던 모든 소유재물도 다 함께 주면서 애굽에서 떠나라고 추방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다시 약속의 땅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5.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아브라함

 

성경은 이렇게 해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의 소유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따라 애굽에 내려갔다가 돌아온 그 조카 롯의 소유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온 가나안 땅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재산이 많이 불어난 아브라함과 롯이, 그 땅 원주민들이 사는 곳을 피해 다니면서 가축을 기르다가 보니 언제나 물과 풀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물과 풀을 먼저 차지하려는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제안

 

이 모습을 보게 된 아브라함이 그 조카 롯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창세기 13:8-9절입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대단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 조카 롯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만약 롯에게 그가 살 땅을 먼저 선택하도록 하는 선택권을 주었다가, 만약 롯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자신이 차지하겠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약속해 주신 땅이니 안 된다 라고 하며, 너는 다른 곳을 선택하라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먼저 선택권을 준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런 제안을 롯에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오늘 우리 삶으로 비교해 보면, 큰 교회를 담임하는 담임목사가, 그것도 교회에서 평생을 보장 받은 위임목사가, 자기 교회에서 자기를 따르고 있는 부목사에게 네가 이 교회 위임목사가 되든지, 아니면 너는 이 교회를 나가서 새롭게 교회를 개척하든지 둘 중 하나를 먼저 택하라 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부목사가 그 교회 담임목사직을 선택한다면, 위임목사라는 자기의 기득권을 다 포기하겠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제안입니다.

아브라함은 한 가족 사이에 일어난 조그마한 다툼을 이렇게 아파하며 내가 가진 기득권을 다 내려놓더라도 이런 다툼을 막아야 겠다는 마음으로 이 큰 양보를 결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무엇이 아브라함으로 이런 대담한 제안을 할 수 있게 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첫 번 소명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부모와 형제와 함께 갈대아 우르 땅을 떠나 하란까지 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브라함과 그 일행은 하란에 이른 이후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가 중병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부친을 버려두고 갈수가 없어서 거기 머문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다시 부르셨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재차 부르시는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서, 가기를 거절하는 부모와 형제들을 하란에 놓아 둔 채, 조카 롯만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도착한 가나안 땅은 기근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서 적응하여 살지 못하고 물이 풍부하다는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던 아브라함은 예쁜 여자는 모두 자기 아내로 삼는다는 애굽 왕 바로가 무서워서, 아내에게 동생이라고 거짓말하라고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이 어떻게 조차 롯에게 이 파격적인 제안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을 받고 난 후 한 것이 이 제안입니다. 그러면 애굽으로 들어갈 때와 애굽에서 나오는 그 사이에 아브라함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기는 고통을 겪으면서 경험한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가 섬기며 사는 하나님, 그가 하나님 한 분 만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온 그 하나님은, 천하를 호령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애굽 왕 바로까지도 마음대로 주관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경험했습니다. 자기는 비록 연약하여 실수하고 거짓말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넘어지고 쓰러졌지만, 하나님은 그런 자신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지도 꾸짖지도 않으시고, 창세기 12장에서 약속하셨던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그 권능의 손으로 애굽왕 바로를 징벌하시고, 바로의 손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섬기며 사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어주시기 위해서 자신을 지켜 주시고 자신을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 조카 롯에게 먼저 살고 싶은 땅을 선택하라고 양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어떻습니까?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갈데아 우르에서 신앙의 출발을 같이 했습니다. 롯은 하란에서 떠날 때에도 유일하게 아브라함을 따라 나섰던 사람입니다. 이 롯은 가나안에서 있었던 기근 때에도 아브라함과 같이 했고, 애굽에서 고난당할 때에도, 애굽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을 때에도 아브라함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의 사건을 경험하고 나온 이후에, 아브라함의 신앙과 롯의 신앙이 서로 달라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의 구원을 경험한 이후에, 그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애굽 왕까지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고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신앙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달랐습니다. 롯도 아브라함과 동일한 신앙의 경험을 하며 살아왔으나, 아브라함이 발견하여 믿게 된 하나님,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시면서 구원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롯은 오히려 애굽의 부요와 풍요함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애굽의 부요와 풍요함에 그 마음이 빼앗긴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롯은 아브라함이 그 살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자 어디를 택하게 됩니까?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이 보이고, 마치 애굽 땅과 같이 보였던 요단들을 택하게 됩니다. 롯은 그가 애굽에서 경험한 세상적인 부요와 풍요함을 얻기 위하여, 창세기 13:13절 말씀을 보면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라고 하고 있는 대도, 그곳 사람들의 죄와 악에 대해서도 눈을 감고 나중에는 이 소돔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13:12절입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그러나 이 12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머물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약속의 땅에서 살았습니다. 창세기 14:23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악한 소돔 사람들과 짝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다른 점

 

아브라함과 롯은 무엇이 달랐기에, 동일하게 신앙을 출발 했고, 동일한 신앙의 과정을 겪어왔는데, 이들의 신앙과 삶이 이렇게 서로 판이하게 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왜 아브라함과 롯이 이렇게 서로 달라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창세기의 본문에서 알 수 있는 차이는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진 신앙은 늘 배우는 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어려운 결단을 하고 떠날 때에도 배우고, 하란에서 다시 소명을 받게 되었을 때에도 배우고, 그 도착한 약속의 땅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을 때도 배우고, 애굽에 들어갔다가 큰 낭패를 당한 후에도 배웠습니다. 이렇게 늘 배우는 신앙을 가졌던 아브라함의 신앙은 점점 성장하여서,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조상의 신앙에 까지 이르게 되어갔습니다.

 

그런데 롯의 신앙은 어떠했습니까?

롯은 배워야 될 때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롯의 신앙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졌던 롯은 나중에 하나님이 소돔을 심판하실 때에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소돔에서의 롯의 구원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구원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신앙은 아브라함의 신앙과 같이 늘 배우는 신앙입니까? 그래서 작년보다 금년이 훨씬 신앙이 좋아졌으며. 저희 교회를 개척할 때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앙이 훨씬 성장한 신앙입니까?

아니면 롯과 같이 작년이나 금년이나 변함없는 신앙이며, 교회에 처음 나올 때 가졌던 신앙이나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앙이 별 차이 없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처음보다 지금 신앙이 더 아래로 내려간 신앙입니까?

 

예수님은 자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늘 듣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 장래가 소망이 있는 성도들이 됩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밭에 심은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 중에 가장 작은 씨로되,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까 자라고 자라서, 나중에는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이 생명력이 있는 신앙이라면 우리의 신앙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당연히 자라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생명력이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신앙은 자라고 또 자랐습니다. / 롯도 처음에는 생명력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은 자라지 않았고 그대로 정체 되어 있다가 나중에는 말라 비틀어져서 고사한 신앙이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신앙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늘 배우고 자라나는 신앙이냐? 아니면 배우고 자라지 않은 신앙이냐? 하는 차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진 신앙은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자라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이 작년보다는 금년이 났고, 처음 교회에 나올 때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앙이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는 늘 배우는 신앙, 늘 배우고 성장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나무가 잎을 내고 열매를 맺게 되듯이 그렇게 열매를 맺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가진 신앙이, 아브라함이 가졌던 신앙과 같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라고 성장하는 신앙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고, 우리의 인격과 품성이 자라고, 우리의 신앙의 삶이 자라서, 나중에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보시고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라고 인정해 주는 믿음의 삶을 사시게 되시길 바랍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서도 같습니다. 우리 신앙이 자라고 있으면 우리가 가진 신앙은 생명이 있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신앙이 자리지 않고 혹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신앙이 생명이 있는 신앙인지 생명이 없는 고백만의 신앙, 구호만의 신앙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참 신앙과 거짓된 신앙은 성장하는냐? 성장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고백하는 신앙은 늘 배우는 신앙, 그래서 늘 성장해 나가는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두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은 늘 배우는 신앙, 그래서 늘 성장해 가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의 실패한 삶을 통해서도 배웠습니다. 이 때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은 그가 섬기는 하나님은 이방 불신 세력을 대표하는 애굽왕 바로까지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큰 확신을 주었습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이후 아브라함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갔습니다.

 

또 하나는 자기를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 자기와 그 후손들에게 주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약속하신대로 그 땅을 자기와 그 후손에게 줄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아브라함의 목자와 그 조카 롯의 목자가 부족한 초장을 두고, 부족한 샘물을 두고 다툴 때, 서로 갈라서면서 그 땅을 선택할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주는 삶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이런 아브라함의 신앙의 진보는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은 늘 배우는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침에도 배우고, 예배드리면서 배우고, 실패를 통해서도 배우고, 사람을 만나서도 배우고,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배우고, 자식을 번제로 드리는 헌신을 통해서도 여호와 이레 하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믿음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 배우고, 기도의 능력에 대해 배워나간다면, 우리도 결국 아브라함 같이 장성한 신앙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 참빛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작년보다 금년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 보다는 내일이 더 나은 신앙을 가지고 살게 되도록, 늘 배우는 신앙의 삶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임을 교회 앞에서와 하나님 앞에서 보여드리며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배우고 성장하는 믿음이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날마다의 신앙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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