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모
출애굽기 17:8-16
사람들은 누구나 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은 받으면서 정작 중요한 내용인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교육은 별로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부모가 어떤 부모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부모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모님들에게는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뜻이 있는 부모들은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에 대해 배우길 원합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좋은 부모가 되는 가르침이 있는 곳들을 찾게 됩니다. // 그래서 찾게 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첫 번째 요소는 먼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부부관계가 좋아지고 또 균형을 이루고 살아가는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좋은 부모가 되는 첫 번째 요소는 바로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될 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두 번째 요소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한 약속을 쉽게 어기고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약속할 때와 약속을 지킬 때의 상황이 변했어도 그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부모라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세 번째 요소는 아이가 좋아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호감을 주는 부모가 될 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아이가 거부하는 부모는 결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좋은 부모가 되는 것과 아이와의 상호관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잔소리입니다. 잔소리 보다 더 아이들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요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려면 잔소리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되는 네 번째 요소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꾸중하고 책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잔소리는 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잔소리는 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요소는 아이들을 훈육할 때 일관성 있는 훈육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말했다가 내일 상황이 바뀌면 다르게 말하는 것을 아이들은 아주 싫어합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부모가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그 가치관에 혼란이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보다 불행한 일이 있겠습니까?
좋은 부모가 되는 여섯 번째 요소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잘 경청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하는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지 말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 때 아이들이 하는 말을 경청하는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요소는 율법이 아닌 은혜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잘못할 때마다 그 잘못을 지적해 주어야 속이 시원한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 그때에도 부모는 사랑으로 자녀를 대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게 합니다. 그래야 좋은 부모가 될 수가 있습니다.
여덟 번째, 자녀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자극을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의 잠자고 있는 상상력을 일깨워주는 부모보다 더 좋은 부모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런 부모를 만난 자녀들은 창의력이 뛰어난 지성인으로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특히 이렇게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 그 창의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아홉 번째,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할 때 중요한 사람은 어머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되라는 말은 좋은 어머니가 되라는 말로 생각해도 된다고까지 합니다. 그러면 왜 어머니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그리고 좋은 어머니가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모에게서 영향을 받고 자란 아이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 너무 중요하다고 합니다.
2. 자기를 사랑하는 좋은 엄마가 되려면 ‘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갖고 자기 인생을 사는 엄마가 될 때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도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자신감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3. 좋은 엄마가 되려면 ‘아이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합니다.
아이는 늘 품 안의 자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엄마는 아이를 너무 감싸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는 그런 세상과 부딪치며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아이에게 주신 권리입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엄마가 좋은 엄마입니다.
4. ‘선생님 노릇을 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때로는 아이를 가르치고 권면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에라도 마치 선생님처럼 아이를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차라리 아이가 처한 입장을 공감하며 아이 입장에 함께 해 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엄마의 지원을 받게 되면 그 일에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에게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100마디 교훈과 가르침을 주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5.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 주라.’ 는 것입니다.
아이는 보통 엄마와 많은 시간을 가집니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모성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성도 함께 필요합니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감싸고만 돌지 말고 아이가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녀 교육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인터넷을 보면 자녀 교육에 아버지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56점짜리 인생’이라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미국 링컨 대학의 5만 명의 학생들이 받은 질문입니다.
여기서 질문자는 학생들에게 아버지와 TV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질문합니다. 그 때 학생 68%가 나는 TV를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아이들이 아빠보다 TV를 더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충격이지요.
2. 이어지는 내용은 2002년 한겨레신문에서 35세 -55세 남성 300인에게 조사한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아버지 10명 중 3명이 평일인 월화수목금요일까지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2시간미만이라고 합니다. 아빠는 거의 아이들과 시간을 못 보낸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31.7%가 1주일 60시간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대학생인 자녀에게 당신 아버지에게 있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44%가 우리 아빠에게 재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생각에는 자신이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과도한 노동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녀가 바라는 것은 달랐습니다. 자녀는 아버지가 자신과 함께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든든한 재정적인 후원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아버지의 54.9% 가 ‘나는 좋은 아버지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월 소득이 높은 가정일수록 높게 나타났습니다.
‘행복 가정 제단’이 2006년도에 전국 7개 도시 가장 400명을 조사한 내용입니다.
우리나라 아버지의 생활비 부담률이 95.6% 로 세계 1위였으며, 대한민국의 40-50대 남성 사망률이 세계 1위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사는 아버지를 그 자녀들은 몇 점짜리 아빠라고 생각하였을까요? 자녀들은 매긴 성적표는 56점이었습니다. 우리 아빠는 56점짜리 밖에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들은 아버지와 자녀의 서글픈 ‘동상이몽현상’입니다.
아버지의 생각과 자녀의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1. 그래서 또 질문하기를 자녀에게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와 의논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이 때 아버지 50.8%가 자녀에게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와 의논을 하지요 하고 했습니다.
하지만 똑 같은 질문을 자녀에게 했더니 약 4% 만이 아버지에게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아빠와 그 자녀가 서로 너무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 대학생인 아들이 : 우리 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하시는데 요 며칠 일찍 들어오시니 어색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저녁 식사는 그렇게 가시 방석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51살의 아버지 : 어쩌다 아이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려고 일찍 들어왔는데 자녀는 친구와 먹으러 나가야 한다거나 이미 먹고 왔다고 하면서 그냥 제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빠와 자녀 관계의 현주소라는 것입니다.
3. 2005년 어느 잡지에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아버지들의 소박한 꿈은 그 자녀가 처음 말을 배우고 첫 걸음마를 하고 또 첫 학교에 입학하던 그 때와 같이 살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에게 가장 아팠던 순간은 어느 날 문득 보니 자기는 집안에서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고 오직 돈 버는 기계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 내가 이 가정에서 무엇인가? 라는 고민과 갈등이 일어나더라고 합니다.
대학생이 된 그 자녀에게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너는 어떤 생각이 들더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가장 해 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약 56%가 아버지가 자신들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해 오신 삶을 알기에 ‘아버지 사랑합니다.’ 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이제까지 그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만큼 아빠와 자녀의 사이가 단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통계들은 얼마나 자녀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색한지, 얼마나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긴밀해 져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어머니들이 아버지와 자녀들이 친밀해 지는 이 면에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십계명이 있듯이 ‘좋은 부모 되기 위한 십계명’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이와 놀아주는 부모가 되라.
부모는 부모의 권위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라.
아이는 부모에게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의 말 듣기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말을 듣되 아이의 수준에서 들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셋째, 아이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
아이들이 크면 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골라주는 옷 입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기가 옷을 선택해서 입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옷을 스스로 선택하여 입으면서 이제 내 삶을 내가 통제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아이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입을 옷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는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넷째, 사소한 잘못은 못 본 척 하라.
부모는 아이 뒤를 따라 다니면서 간섭하기를 좋아하나 그러면 아이는 창의력이 없는 수동적인 아이가 된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자율적인 권한을 주어 스스로 하게하며, 조그마한 실수와 잘못은 못 본 채 눈감아 주는 부모가 되라고 합니다.
다섯째, 차라리 칭찬을 자주하라.
자식 농사는 칭찬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 농사가 칭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의 잘못을 나무라기보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잘하는 일이 있으면 의도적으로 칭찬해 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녀는 칭찬 받는 그런 행동을 계속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부정적인 감정도 표현하게 하라.
부모는 자녀의 좋은 감정은 칭찬하나 부정적인 감정은 억압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에게 생각의 자유를 주어서 긍정적인 감정 뿐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도 표현하게 함으로 감정을 속이지 않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곱째, 아이 수준의 용어를 사용하라.
아이에게 갖고 놀던 장남 감을 잘 정리하라고 하지 말고, 갖고 놀던 장남 감을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을 알려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덟째, 일관성 있는 태도를 견지하라.
부모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면 아이가 해 갈려 하고 혼란을 느껴서 옳고 그름을 배울 수 없다고 합니다. 부모가 일관성 있는 태도를 견지할 때 아이는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홉째, 출생에 대해 이야기 해 주라.
아이에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어 왔다고 하지 말고, 성교육 차원에 바르게 알려주어야 정서가 안정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 번째, 부모를 알게 하라.
자녀가 부모를 알지 못하면 오해하여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를 알게 되면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부모는 그 자녀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자녀도 자신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하라고 합니다.
만약 내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 다이아나 루먼서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는 아이의 자존심을 키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세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보리라.
만일 내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데 관심을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을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 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선언문 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가족은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가족은 나의 삶에서 우선순위 첫째입니다.
가족의 중심은 부부입니다.
내 아내는 /내 남편은 나의 삶의 동반자입니다.
자녀는 소유물이 아니고 인격체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가족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성경 말씀
이제 성경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출애굽기 17장의 말씀은 전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8절입니다.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그러면 왜 아말렉 족속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격해 왔습니까?
사막에서 살았던 아말렉 사람들이 볼 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고 있었던 르비딤 광야는 물이 없는 곳으로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불모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 이르렀을 때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백성들로 먹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르비딤 광야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일을 전해들은 아말렉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에서 물을 발견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발견한 물의 양도 심히 많아서 이제 르비딤도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아말렉 사람들은 그 땅이 자신들의 소유임을 주장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서 떠나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거처를 옮겼습니까?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구름기둥이 르비딤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르비딤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말렉 사람들은 힘으로 이스라엘을 쫓아내려고 군대를 이끌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아말렉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남아 국가들이 남중국해에 있는 산호초나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남사군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나, 일본 사람들이 ‘독도’를 자기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영토에 대한 집착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그 지하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막대한 ‘지하자원’ 등 경제적 가치 때문입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쟁을 걸어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전쟁은 르비딤에서 솟아 난 물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9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이 때 모세는 두 가지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여호수아에게 전쟁을 할 수 있는 청년들을 택하여서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론과 훌과 함께 기도하러 산에 올라간 것입니다.
이런 모세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모세는 현실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앞에 당면한 전쟁이라는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여호수아에게 전쟁을 할 수 있는 청년들을 모아 아말렉과 싸우라고 한 것입니다. 그 당면한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올바른 신앙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이성적으로 올바르게 대처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9절 말씀에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모세를 보게 됩니다.
또 보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9절 말씀에서 우리가 또 보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두 번째 모세는 현실을 넘어서서 역사하고 계시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전쟁을 할 수 있는 청년들을 택하여서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라고 현실적인 대안을 지시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기 위해 아론과 훌을 데리고 전쟁터가 다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이 약속하고 계신 천국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할지라도 세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 죄악 된 세상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이 사람들도 같이 심판을 받아 그 결국은 지옥형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 그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믿는 믿음이 너무 중요합니다. 이 믿음은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이며, 이 성령 하나님과 인생을 동업하며 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우리 삶속에도 아말렉과 같은 대적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귀가 역사하므로 각종 어려움들이 찾아올 수도 있고 각종 문제들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 삶에 다가온 문제들을 바로 직시하고 바르게 대처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모세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였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모세가 기도하니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고 모세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니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에 대한 바른 인식 위에 서서, 하나님을 믿고 기도의 손을 들게 되면 하나님이 믿고 기도하는 우리 삶 속에서 개입하시고 역사하셔서 우리 삶을 찾아오는 각종 문제들과 어려움들을 이겨 나갈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삶을 찾아오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은 결국 우리의 기도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에 자녀의 성공적인 미래가 달려 있고, 우리가 기도해 주지 않는 것에 자녀의 실패하는 삶이 달려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입니까?
믿음 안에서 볼 때 좋은 부모는 첫째,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 부모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며 사는 부모입니다. 셋째, 그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부모입니다. 그렇다면 나쁜 부모는 어떤 부모입니까? 그 반대일 것입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그 자녀를 위해 기도해 주지 않는 부모일 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하면 이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서 무슨 각오와 결단을 해야겠습니까? 그것은 내 자녀를 위해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각오와 결단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역사는 바로 기도생활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그냥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기도에 응답하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삶을 찾아오는 각종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기도하는 살아가는 삶의 결단이 있어지길 바랍니다.
어거스틴을 보십시오.
10년 이상 방탕한 생활을 하던 어거스틴이 어떻게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견고해 세워나갔던 성자가 되었습니까? 그 어머니 모니카의 쉬지 않고 기도하였던 눈물의 기도가 응답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디모데를 보십시오.
디모데는 어린 나이에 예수님을 믿고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어린 디모데가 초대교회를 세워나가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의 믿음은 먼저 그 외조모 로이스와 그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이 디모데에게 까지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디모데 후서 1:5절입니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이 말씀은 디모데가 가진 믿음은 그 어머니 유니게와 그 외할머니 로이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단이 베드로를 넘어뜨리기 위해 마치 농부가 키질 하듯이 사단이 그렇게 베드로는 흔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31절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런데 왜 베드로는 시험에 빠져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기도를 힘입어 시험에서 돌이킨 후에는 너와 같이 시험에 든 성도들을 굳게 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32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라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이 말씀은 베드로가 시험에 빠져 넘어지지 않게 된 것은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어떻게 해서 무너졌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소리를 합해 기도할 때 무너진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함께 합심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베드로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 합심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구원해 주신 것 아닙니까?
교회의 능력은 함께 합심해서 기도한 것에 있습니다.
사실 목회의 승패는 그 목회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그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그렇게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기도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 가정과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의 손을 드는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우리의 기도를 듣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삶 속에서 경험하며 누리면 살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서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좋은 부모가 되는 다양한 가르침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좋은 부모가 되는 요소들과 좋은 부모가 되는 십계명 등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이런 교훈들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까?
신앙 안에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또 자신의 위해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삶을 사는 부모가 좋은 부모이며,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사는 부모가 나쁜 부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응답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사랑과 은혜와 역사들을 우리 자녀들의 삶 속에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도응답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덧입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이 세상에 더 복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어버이 주일에 우리 모두 기도하며 사는 삶의 결단을 함으로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고 누리며 살아가는 복 있는 삶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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