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3:17-22
1. 하나님의 인도하심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바쁘게 보내고, 오늘 이 아침에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한해를 되돌아볼 때 어떤 사람은 보람 있는 한 해였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 해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행각해 보면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이 있었던 한 해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박근해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게 된 후 우파는 그 세력을 다 잃어버리고 좌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독주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20년 이상의 집권을 공언하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확신과 자신감을 무너뜨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조국이라는 사람이 법무장관에 지명되면서 시작된 상황의 급변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된 상황의 주도세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이 때 기독교가 잘만 하면 다시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올 수도 있어 보입니다. 이런 반전은 모두 다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신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치시고 훈계하심으로 인도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시편 32:8절입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하나님이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다가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 봐라.’ ‘이 길로 가라.’ 라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시편 119: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 되어 매 순간순간의 삶을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내 길의 빛”이 되어 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성령을 통해 인도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로마서 8:14절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성령을 통해 인도해 주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기도 응답을 통해서 인도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마태복음 7:7절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 낼 것이요,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하신 말씀대로 기도응답을 통해 인도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들을 인도해 주십니다.
때로는 꿈을 통해 인도해 주십니다. 꿈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던 대표적인 사람은 요셉입니다. 이런 요셉을 보고 그 형들은 ‘꿈꾸는 자’라고 했습니까?
또 때로는 마음에 소원을 주셔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나라에 왔던 초기 선교사님들은 거의가 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주시는 소원을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젊음을 바치고 인생을 바쳤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 중 한 사람인 ‘맥클레이 선교사’는 일본선교의 꿈을 품고 일본에 와서 선교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에 가서 선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소명이라는 강한 깨달음을 받고 한국선교로 그 선교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선교의 길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이 매클레이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에 선교하려고 부활절 아침에 인천항 즉 제물포 항에 발을 들려놓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출애굽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 그 백성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 친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이 머물면 그들도 머물렀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그들도 따라 이동하였습니다.
또 때로는 사람의 조언을 통해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그 자녀들을 데리고 광야에 있었던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그때 이드로는 재판 자리에 앉아 있는 모세와 그의 판결을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게 됩니다. 그 줄의 길이가 얼마나 긴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습니다.
이것을 본 이드로는 모세에게 조언하기를, 만약 혼자 이 많은 백성들을 재판하면 모세도 지치고 백성들도 곧 지쳐버릴 것이라고 하면서, 10부장과 50부장과 100부장과 1,000부장을 세워서 그들에게 재판을 위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모세가 직접 처리하도록 권했습니다. 모세는 그 장인 이드로의 말을 선하게 여겨서 지혜가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1,000부장과 100부장과 50부장과 10부장을 삼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양한 인도하심을 보면서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이 처해 있는 형편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던 것 같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2020년 새해 첫 날을 맞이하고 있는 이 아침에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첫째,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맞는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의 모습입니다.
13:18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이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어떻게 나왔다고 합니까?
대열을 지어서, 열을 맞추어서, 질서 정연하게 나왔다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어디에 갇혀 있다가 탈출하게 될 때 어떻게 합니까?
갑자기 불이 난 건물에서 사람들이 탈출하여 나오게 될 때 어떻게 합니까? 모두 자기한 몸 살겠다고 질서도 없고 방향도 없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아우성을 치며 나오는 것이 보통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그렇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국군의 날 군대가 오와 열을 맞추어서 열병하듯이 그렇게 질서 있게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이렇게 질서 있게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군사훈련을 많이 받아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애굽 왕들은 전쟁이 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들의 편에 가담할까 두려워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는 전쟁무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노예처럼 일만 시켰고 또 박해만 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훈련받은 군인처럼 질서정연하게 나올 수 있었습니까?
이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 사용하던 가제도구와 그 기르던 각종 짐승들을 이끌고 나오면서 어떻게 질서정연하게 나올 수 있었습니까?
사람의 능력과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인도해 내셨다는 설명 외에 다른 설명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광야 40년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2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질서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할 목적지는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가기 가장 쉬운 길은 흔히 ‘카라반’이라고 하는 해변 길입니다. 이 길은 지중해 해변을 따라 난 길로서 주로 장사꾼들이 다녔던 길입니다. 이 길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거의 유일한 길이고 또 지름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출애굽기 13:17절입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이 말씀을 보면 해변 길은 쉬운 길이지만 이 길에는 블레셋 이라고 하는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가다가 전쟁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길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 사람들임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변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광야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2019년도에 우리를 인도해 오신 것을 되돌아보면 우리 형편과 처지에 꼭 맞게 우리를 인도해 오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지는 2020년 한 해 동안도 우리 각자에게 꼭 맞는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면 언제나 빈틈이 없고 정확합니다.
우리 교회는 대림상가 2층에 세워져서 오늘날까지 지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하러 다닐 때 여기만 와 본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곳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그 때 본 다른 곳들은 다 여기보다는 장소도 넓고 시설까지 다 준비된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다면 그 모든 곳이 여기보다는 월세가 비쌌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때 월세를 많이 주어야 하는 그곳들 중 하나에 교회를 개척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때 마음을 낮추어서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이 오늘까지 교회를 유지하여 온 중요한 요인일지도 모릅니다.
당시 생각에는 여기는 장소가 좁고 많이 미흡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하나님이 이곳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적은 돈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버티어 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버티기 힘든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주변에서 요양보호사 파견센터를 해 보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양보호사로 파송할 성도들도 없는 형편이었기에 그런 권면을 한 귀로 듣고 다른 한귀로 흘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교회 형편은 점점 어려워지고 무슨 방도를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 아는 목사님이 재가센터를 설립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말들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을 따라 재가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태릉에 있는 다른 교회를 방문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 큰 기대도 없이 2009년 12월 말에 재가센터를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초에 세 분이 거의 동시에 저희 센터에 등록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이 세분을 통해서 교회 운영비가 충당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5-6명 정도의 어르신들을 고정적으로 섬기며 교회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이 성장해 갔습니다.
그러자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재가센터가 성장하게 해 주셔서 그 지출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아멘, 그래서 오늘까지 교회 문을 닫지 않고 굶지 않고 지내왔습니다.
물론 재가센터를 맡고 있는 사모님의 수고와 노력도 큽니다.
요즘은 아이들도 다루기 힘들지만 노인들을 수발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힘든 일을 다 사모님이 다 해 낸 것입니다. 만약 제가 했다면 지금까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는 어떻게도 안 되니까? 재가센터를 통해 은혜를 베풀어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김천환 목사님이 오셔서 큰 위로와 힘을 얻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으로 인해서 정영달 목사님이 가끔 오셔서 새로운 활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나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실 때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또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없는 요구를 하시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따라 갈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또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십니까?
둘째,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맞게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길은 광야 길이었습니다.
광야는 길이 없는 곳이며 또 험한 곳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광야길 보다 해변길이 더 좋아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했던 광야 길은 낮에는 그 온도가 40-50도를 오르내리고,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비도 잘 오지 않아서 물이 귀한 곳입니다. 그래서 풀도 살기 어렵고 나무는 살지 못하는 그런 곳이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광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니 이런 광야 길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낮을 뜨거운 햇볕은 구름기둥으로 막아 주시고, 밤의 추위는 불기둥으로 막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는데 주도 면밀하셨을 뿐 아니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도 빈틈없이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만세 전에 우리의 구원계획을 세우시고,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을 주도면밀하게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비록 광야 같은 길일지라도 우리는 안심하고 따라갑니다.
왜요. 그 길은 우리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인도해 가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인도해 가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 감화 감동하시면서 인도해 가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있으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교회를 개척할 때 교회를 먼저 정하고 그 인근으로 이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가야할 기한이 될 때까지 교회 장소를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삿짐을 안산에 있는 어느 전도사님 집 지하실에 맡겨 두고, 저희는 아이들 둘을 데리고 부모님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희 가족 네 사람은 어느 기도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아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한두라도 가져오려고 이삿짐을 맡겨 놓은 그 집을 들렸습니다. 그런데 막 도착해 보니 저희 짐을 맡겨 놓은 그 지하실에 물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그 지하실에 들어가 보니 누가 싱크대의 물을 틀어 놓고 나간 것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건물 주인이 우리가 도착하기 바로 전에 그 지하실에 들어갔다가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도착했을 때 이제 막 물이 차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약 그 날 저희가 기도원에 더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집으로 돌아올 때도 아이들 생각해서 그 집으로 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그 날 저희가 그 집에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저희가 그곳을 지나가고 난 후에 그 건물주가 나타나서 물을 틀고 갔다면 저희는 모든 가재도구들을 다 버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우리가 다 뒤집어 써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날 저희가 그 집에 조금만 늦게 도착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아마 물이 점점 차올라서 많은 짐들을 쓰지 못하고 버려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희 가제도구와 옷과 책들을 다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비싼 인부를 사서 그것을 다 들어내고 또 쓰레기로 비싸게 처리해 주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망가진 시설을 다시 수리해 주어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날, 정확한 시간에, 우리가 그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 주심으로 인해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땅 바닥에 두었던 침대와 몇몇의 물건 외에는 모두 다 무사히 건질 수가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사실 당시 저희의 생활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과 같이 힘든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맡겨 놓은 짐까지 다 잃어버리게 되었다면 얼마나 낙심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지 않으시나 보다.’ 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저희를 인도하셔서 저희가 그런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증거가 바로 여기 남아 있는 책들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과 우리가 처하게 될 환경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이 비록 광야 길 같아 보일지라도 그 길이 우리에게 유익되기에 하나님은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변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셋째,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바랐던 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빨리 가는 것이지요? 빨리 가서 기업의 땅을 받고 정착해서 사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을 살면서 섬겼던 애굽의 신들과 애굽의 풍습들을 다 버리게 하고, 그 조상들이 믿고 섬겨 왔던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셨습니다. 그래서 광야 학교에 입학시키셔서 40년 동안 이 신앙훈련을 하신 것입니다. 왜요.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변화되어야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2-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네가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과 같이 단지 육신의 떡으로만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백성을 만드시려고 먼저 광야 학교에 집어넣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훈련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자기의 정과 욕심을 내어버리는 훈련을 하십니다. 그리고 난 후에 비로써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훈련을 하십니다.
혹시 지금 광야 같이 메마른 환경 속에서 살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비록 그런 환경 속에 있더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 염려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광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적지가 아니었듯이, 광야 같이 메마른 우리의 환경이 우리 삶의 최종적인 목적지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지는 따로 있습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신앙훈련이 끝나고 나면, 하나님은 성경에 약속하고 있는 그 나라, 메시야의 나라를 우리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혹 그 이전에 죽어서 메시야 나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는, 약속하신 천국의 지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지 못할지라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종국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예배해 두신 그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살펴볼 것은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2. 우리의 자세
우리가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명확하게 아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알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잘 아시고,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도 잘 아시고, 우리에게 유익된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서 살아야 합니까?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있는 대로 우리에게 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에는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없는 기독교는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독교는 살아계시는 하나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경에서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너무 중요합니다. 고린도 전서 13:13절 말씀을 보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라고 함으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다시 보면 믿음이 그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하늘 소망도 가질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더군다나 하며 살 수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소망과 사랑의 기초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중요성을 아무리 말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질 뿐 아니라,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실 때에 믿고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고 살려면 먼저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믿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가진 믿음 안에서 순종하는 삶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은 순종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중요성에 대해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순종으로 나타나는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라면, 순종으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아름다운 미덕은 바로 순종하는 삶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믿는 견고한 믿음 안에서, 그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구보다 더 많이 누리며 살아가는 이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환경도 너무나 잘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이 우리 신앙의 삶에 유익이 되는지도 잘 아십니다. 오늘 우리는 40년 광야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통해 이런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실수하심이 아니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이 유익 된지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도하시는 길이었습니다.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우리의 삶은 각자 다를지라도, 또 때로는 그 삶이 광야와 같은 삶일지라도, 그 모든 삶은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인도하시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고 들고 있는 우리 모두는 우리를 은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새로 주어지는 2020년 한 해 동안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우리 모두 다 누리며 살아가는 이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