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행복의 길
신명기 30:1-10
들어가는 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행복할 때도 있고 불행할 때도 있습니다.
늘 행복하기만 한 사람도 없고 또 늘 불행하기만 한 사람도 없습니다. 행복과 불행이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다른 행복을 누릴 때에도 불행이 함께 있고 불행한 삶 속에도 행복이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켈러’라는 유명한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태어 난지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아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3중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생활이 얼마나 불행했겠습니까? 그 삶이 얼마나 힘이들었겠습니까?
그런데 당사자인 ‘헬렌켈러’ 그런 자신의 삶 속에도 행복은 있었다고 합니다.
‘헬렌켈러’는 자기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고 합니다. 또 자기를 사랑으로 돌보아 준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헬렌켈러’는 불행한 삶의 조건들 속에 살고 있었지만, 그 마음은 행복을 느끼면서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최고의 권력자는 대통령입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다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합니다.
물론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특별한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행복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직무를 잘 감당하고 나면 퇴임이후에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어떻습니까?
대통령으로 뽑혀서 취임 선서를 할 때 보면 누구나 다 젊고, 패기 있고, 행복해 보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를 다 마치고 퇴임하는 모습을 보면 전보다 10년은 더 들어 보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대통령 자리가 마냥 행복하기만 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단 5년 임기 중에 그렇게 늙어버린 모습이 되었겠습니까?
이 뿐 아닙니다.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치고 불행하지 않은 대통령이 있습니까?
대통령이라는 영광스러운 권력의 불꽃이 꺼지고 나면 곧 바로 찾아오는 것이 바로 불행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행복과 불행이 교차 되어 찾아오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불행이 있고,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그런 상황 속에도 행복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원리가 다 이렇습니다.
이 세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습니다. 또 내리막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이 있습니다. 공부가 잘 될 때도 있고 때로는 공부가 잘 안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일이 잘 될 때가 있는가 하면 또 때로는 일이 잘 안될 때도 있습니다. 언제나 일이 잘되는 사람도 없고 또 언제나 일이 잘 안 되는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 힘들고 어렵지는 않습니까? 그렇다고 힘들고 어려운 현실만 바라보고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이럴 때 우리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하늘에는 누가 계십니까? 우리 삶의 모든 어려움들을 한번에 해결해 주실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희망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에서 기인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햇빛을 비쳐 주시고 또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비를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거 해 주고 있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그냥 놓아두고 계시는 것입니까? 또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고난을 주시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난과 기근의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고난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고난을 주시고 또 어떤 어려움을 주실 때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으신 이유가 있으십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와 같이 어려움을 당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강대국으로 일어나서 중동지방을 다 점령하였던 신 바벨론 제국 앞에 서게 됩니다. 이 바벨론은 앗수르를 무너뜨리고, 아람을 무너뜨리고, 북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이제 예루살렘에 자리 잡고 있었던 남 유다까지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 남 유다는 남쪽에 있는 애굽을 의지하고 바벨론을 막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신흥 강대국 바벨론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애굽 군대는 바벨론의 군대에게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벨론은 이스라엘 국토를 유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했는지 하박국 선지자는 그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게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당시 포로로 잡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바벨론 군대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자꾸 지체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로들을 먹여야 하는 음식 준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바벨론 군인들은 라마 근처에 이르렀을 때 포로로 끌고 가서 부려 먹을 수 있는 젊은 사람들만 남겨두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죽였습니다. 오직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예언하였던 예레미야만 살려서 놓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포로에서 놓여난 예레미야는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곡 소리를 들으면서 라마를 떠나 애굽으로 도망갔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예레미야서 31:15-1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도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그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당시 하나님이 하고 계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스라엘은 철저히 망하였지만, 장차 나라가 회복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멸망당하는 때이지만 다시 국가를 세우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코로나 19로 힘들어 하는 것보다, 이스라엘이 당하였던 어려움이 훨씬 더 힘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망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 그런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레미야서 29: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에 희망을 주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 다 죽고, 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 가고, 첩첩산중에 숨어 있던 사람들만 겨우 그 땅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전 국토는 바벨론 군대에 유린을 당하였고, 심지어 예루살렘 성과 성전까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런 재앙의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평안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절망 속에 있지만 이것이 미래에 희망을 주기 위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그 누구도 이 망국의 역사를 평안으로 희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일을 평안으로 희망으로 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통스러운 삶 가운데 자기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들이 가지고 살았던 잘못된 믿음과 잘못된 삶을 깨닫고 그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된다면, 이 모든 재앙들이 오히려 이들에게 평안을 가져다주는 사건이 되고, 장래를 보장해 주는 희망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을 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본심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 주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신명기 30장의 말씀도 이것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고난 가운데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통해 자신들이 지은 죄를 깨닫고, 그 죄악 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심으로, 생명과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명기 30장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생명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까?
첫째,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기억해 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 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 내야 할 ‘이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앞에 기록되어 있는 신명기 28-29장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28:1-6절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28:15-19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이 말씀에 근거하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라가 망하고, 또 지금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 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이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저주가 그들의 삶에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먼저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삶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가장 먼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은 어떠한지, 내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바르게 살아 왔는지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이제 나를 사랑하시지 않으시는가 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나를 미워하시나 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나를 버리셨는가 보다.’ 라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해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고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되든지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을 얻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행복한 삶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그 사랑하는 외아들까지 아끼시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고난의 날에 가장 먼저 기억해 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코로나 19로 마비된 상거래로 인해 그 하던 장사가 잘 안되고 심지어 부도까지 날 수 있습니다. 당장 먹고 살아갈 일이 막막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아멘.
그 어떤 경우가 우리에게 다가올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와 구원의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 내는 것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받은 삶에서 생명이 넘치는 풍성한 삶으로 회복될 수 있게 하는 첫 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고난 중에 생명과 행복을 누리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 죄에서 떠나 여호와께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3절입니다.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다 이성을 가지고 있어서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 갈 수 있는 능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잘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한 후에 늘 내가 옳다고 판단한 대로 살아갑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옳다고 판단한 대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뭐가 내게 유익된가 하는 것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더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죄악성입니다.
학생들은 공부에 열심 하는 것이 옳고 핸드폰이나 게임만 하고 노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러면 그 알게 된 옳은 길을 따라 살아갑니까? 물론 소수지만 이런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장래가 보장되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무엇이 더 즐거움을 주는지, 지금 내가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를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어른들은 옳다고 생각되는 길을 따라 살아갑니까? 아닙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지금 내게 유익을 주는지, 무엇이 지금 내게 이익이 되는지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게 이익이 된다고 하면 불법까지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국이라는 사람을 통해 잘 보지 않았습니까?
그가 가진 생각과 이상은 저 하늘에 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온 삶을 보면 그가 가진 이상대로 살았습니까? 조국은 자기 자신을 평등을 최고의 자치로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라고 하면서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이기적인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런 조국을 보며 조로남불, 혹은 통키호테와 같은 삶이라고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너희의 유익을 위해, 너희의 이익을 위해, 너희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못한 삶을 인정하고, 그 실패하며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실패하는 삶을 살았을지라도 좌절하고 절망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패 가운데 좌절하고 절망하여 앉아 있게 되면 우리의 삶은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기억(Remember)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언약을 맺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면 하나님께 돌아가는 우리의 회개는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회개에는 먼저 죄악 된 삶에서의 돌이킴이 있어야 합니다.
그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근본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려고 하면 우리의 회개는 한 번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될 때의 회개는 단회 적이지만, 우리의 잘못된 삶에서 돌이키는 회개는 반복적으로 계속 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의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후회하거나 뉘우치는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뀔 때까지 거듭거듭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과감히 그 잘못된 자리를 떠나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타락한 존재임을 지적으로 자각하고(시51:3,4), 또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슬퍼하고(시51:17), 또 그 지은 죄에서 단호히 돌이키는 의지적인 결단까지를(행26:18)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진정한 회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함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만 하나님께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입술의 고백만 하나님께 돌아가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까지 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2절에서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서 회개 하고, 이제 하나님만을 위해서 바르게살기로 결단하게 되면, 이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우리가 죄악 된 삶에서 회개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되면, 우리가 돌이키게 되는 그 즉시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마음을 돌이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 하게 되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벌하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어떤 마음으로 징벌하실까요? ‘너 나와 맺은 언약을 어기고 범죄 했지,’ ‘어디 당해 봐라’ 하는 식으로 우리를 징벌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징벌하시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고통 가운데서 깨닫고 돌이키면 다시 은혜를 주시고 생명과 복을 주시려고 징벌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그 즉시 그 마음을 우리에게로 돌이키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고통스러운 삶에서 건져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그 즉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건져내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잊지 말고 있어야 할 중요한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가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우리는 범죄한 삶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마음을 돌이키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불행한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 우리의 처지와 상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처지와 상태가 어떻든지 상관없이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어주실 수 있으신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4절과 7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4절입니다.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7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이 4절 말씀에서는 우리의 처지가 어떻든지 구원해 내실 것이라고 하시며, 7절 말씀에서는 우리의 원수와 적군이 어떤 자이든지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심판을 베푸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심을 그 증거로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 최대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상태로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 강대한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왔습니까?
하나님께서 강한 손과 그 편 팔로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심으로 애굽을 치셨습니다. 그래서 애굽은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애굽 왕 바로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 많은 노동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니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아서 종 삼으려고 군대를 이끌고 따라왔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다 가운데 길을 내어서 시나이 반도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건너가게 하시고, 그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온 애굽 사람들은 다 물에 빠져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4절과 7절에서 약속하신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고 애굽은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 증거들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떤 처지와 상태에서도 능히 구원해 내실 수 있으신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적과 원수들이 그 어떤 사람이든지 다 멸망시킬 수 있으신 분이신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의사가 가망 없다고 포기한 병도 기적적인 방법으로 치료 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로 사업체도 주시고 또 그 사업체를 통해 부요케 하실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가정을 다시 믿음 살아가는 가정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 회복시키실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을 땅의 높은 곳에 세우사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하실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못하실 것이 전혀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언제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까?
우리가 회개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돌아갈 때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로 돌아오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그 모든 은혜와 복을 우리들에게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회개하고 돌아갈 때 우리는 어떤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까?
셋째, 이전보다 더 번성하게 되는 복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행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중에,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로 돌아 오사 우리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런데 이 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복은, 이전에 우리가 누리던 은혜와 복 보다 더 크고 번성한 복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5절 하반 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은 단지 범죄 하기 이전 상태로 다시 회복해 주시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삶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시되, 이전보다 더 큰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번성한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이런 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욥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욥기를 보면 욥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까?
욥은 “내가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하나이다.” 라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회개하는 욥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신앙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되 전에는 귀로 듣고 믿던 신앙이었는데 이제는 눈으로 확실하게 보는 신앙으로 변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신앙적이고 영적인 면에서 이전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욥이 받은 육신적인 복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을 주신지라” 욥은 물질적인 면에서도 이전보다 더 풍족하게 되는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적으로는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셨는데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욥은 가정적으로도 이전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증거 하는 바에 의하면, 욥은 고난 후 “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장수의 복을 주심으로 욥은 이후에도 140년이란 새롭고 축복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욥에게, 그 백성들에게, 혹은 우리들에게 왜 이렇게 더 번성한 복을 주실까요? 그 이유가 9-10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 같이, 너희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더 번성한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엇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까?
-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 우리가 이렇게 회개하고 나갈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우리들을 보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던 자가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이 될 때, 하늘에서는 한 영혼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살아나게 되는 것을 인하여 기쁨의 잔치가 열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가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잃었던 아들을 다시 얻게 된 것을 인하여 기뻐하면서 잔치를 열었듯이 우리 하나님께서도 잃었던 영혼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나아올 때 이런 기쁨을 가지시고 천국에서 기쁨의 잔치를 배설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가운데 있다가 다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잃었다 얻은 아들을 다시 얻은 그 기쁨으로 우리에게 이전보다 더 큰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사실 우리의 모든 것은 만사 오케이인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의 경제적인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기뻐하시면 우리의 가정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기뻐하시면 우리 자녀들의 문제가 선한 방향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기뻐하시면 우리 교회의 장래는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기뻐하시면 북한 핵과 지금 우리의 가장 큰 근심거리인 코로나 19 바이러스도 문제가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언약을 기억하고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들을 보시고 기쁨을 느끼시고 하나님이 느끼시는 그 기쁨을 우리에게도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시편 70:4절에서는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세상만 위해 살던 길을 버리고, 죄악 된 생활을 하던 것을 버리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시고, 우리에게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 안에서, 더 큰 은혜와 복을 누리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생명과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초대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성도들이 받게 되는 복입니다.
- 이 약속하신 언약의 말씀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뻐하셨고, 또 그 포로에서 돌이켜 국가를 회복시켜 주셨고, 또 열조에게 약속하신 땅에서 열조보다 더 번성한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 이런 행복 된 삶이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신명기 30장의 말씀을 통해, 생명과 행복 된 삶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가기를 결단하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당하고 있는 지금 이 문제는 우리의 죄악 된 삶 때문에 왔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죄와 잘못된 삶들을 회개하고, 회개하고 나아가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회개의 대열에서 제외될 수 있는 성도나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죄와 잘못된 삶을 깨닫게 해 주시는 은혜가 우리 각자에게 임하여서, 우리 각 개인이 우리 교회가 우리 교단이 우리나라의 전 기독교인이 하나님 앞에 그 죄를 회개하며 나아가게 되는 날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우리 민족에게 회복을 주시는 날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과 고난의 원인을 환경에서 찾지 말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죄악된 삶에서 찾아서, 지금부터라도 돌이켜 생명과 행복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우리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로 그 마음을 돌이키사, 그렇게 돌이킨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이전보다 더 큰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신 하늘나라까지 기업으로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생명과 행복으로 초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먼저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이렇게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다 받아 누릴 수 있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