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창세기 15:1-6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믿음으로 응답하여 나아오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 약속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약속입니다. 두 번째 약속은, 자녀를 주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실 것이라는 후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세 번째 약속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 삼으셔서 세상만민이 복을 받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 중에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에 이루어집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졌다고 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어야 이루어집니다.
또 약속의 말씀 중에 복의 근원 삼아주시겠다는 약속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이것은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고 곧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 약속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약속들은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작정하신 때에 이루어집니다.
성경에 이런 약속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부활의 약속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고 곧 바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약속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믿는다고 곧 바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 두신 때가 되어야 천국가게 되는 것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이런 약속들과는 달리 우리가 믿을 때 곧 바로 이루어지는 약속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보시고 곧 바로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창세기 15: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었을 때 곧 바로 의롭게 여겨 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이신칭의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내용들은 우리의 믿음이 준비될 때까지 그 성취가 유보된 약속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실재 예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후손의 약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날 때 하나님은 후손을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창세기 12:2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니, 믿음을 가지고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그 아버지와 형제들과 조카까지 데리고 갈대아 인의 땅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2. 이로부터 약 5년 후 아브라함이 75세가 되었을 때 또 다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녀를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5:5절입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 때 아브라함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떠난 이후입니다.
그리고 마치 친 자식처럼 여기던 조차 롯도 떠난 이후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에게 남아 있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부모 형제 아비 집을 다 떠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의지할 가족이 없게 되었던 아브라함은 누구를 상속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은 그 집의 종이었던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3절입니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누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까?
4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상속자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여겨 주셨습니다. 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졌습니까?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도 확인되었고, 또 하나님께서도 그 믿음을 인정해 주셨으니 자녀를 주신다는 약속이 이루어졌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때로부터 약 25년이 지난 100세가 되었을 때 이루어집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우리 마음에는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고, 또 아브라함도 그 약속을 믿었는데,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으셨느냐?는 의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에는 반드시 그에 따르는 하나님의 역사가 따라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믿음에 따르는 역사를 베풀어주시지 않으셨느냐? 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 사이에는 무엇이 개입되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약속의 성취의 관계를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첫째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때와 연관되어 있는 약속들이 있습니다.
이런 약속들은 우리가 믿음을 고백한다고 곧 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때가 되어야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겸손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메시야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주셨습니다. 창세기 3:15절 말씀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가 되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 주셨습니다.
또 재림의 약속도 있습니다.
이 약속도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가 되면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우리 주 예수님께서 천군 천사들을 거느리시고 재림하실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믿음을 고백할 때 곧 바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의 구원사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곧 바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곧 바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는 기도도 곧 바로 병 고침의 역사로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대로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 마음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후손을 주시지 않으시고, 25년이 지난 후에 약속을 이루어 주셨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이 지체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살펴볼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주신다는 뜻은 확고합니다.
왜 그렇게 봅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달리 거짓말 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든지 립 서비스로 끝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시고도 25년간 응답을 지체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문제가 있어서 지체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아브라함이나 그 아내 사라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길은 믿음을 준비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리며 살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믿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나은 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믿음의 준비는,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아 더 나은 학교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준비가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준비한 사람들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받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준비 여부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사느냐? 하는 삶이 달려 있습니다. 평생을 바쳐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을 준비하지 못하면, 일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같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리며 살 수 있는 믿음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이 믿음을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이 30년이었습니다. 그래서 30년 동안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누리며 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혜로운 삶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이런 사실들을 깨닫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준비에 나의 미래, 우리 가정의 미래, 우리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이 믿음의 준비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내일의 우리 삶이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살펴볼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가야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믿음으로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 땅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에게 임한 것이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에 흉년이 든 것입니다. 흉년이 들게 되면 더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 땅에 살고 있는 토박이들이 아닙니다. 외지에서 그 땅에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여행자들이 더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외지인이었습니다. 그 땅에 우거하려고 온 떠돌이였습니다.
그러니 그 흉년이 아브라함에 얼마나 큰 어려움을 주었겠습니까?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그 흉년을 믿음으로 참고 견디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땅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을 떠나 물이 풍부하다고 하는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확고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근이 들어 삶이 어려워지자 약속의 땅도 버리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의 땅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함께 하시면서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도 완전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 완전했다면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한다고 그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세상적인 상황을 넘어서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이삭의 삶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삭 때도 아브라함 때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이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은 다 어려움을 당하는 중에, 이삭에게는 복을 주셔서 그해 100배의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수확물을 비싼 값에 팔아서 거부가 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악화된 경제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어려워진 환경 속에 있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가지게 되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 무엇입니까?
환경도 어려운데 그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으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믿음 잃어버리는 것이 환경의 어려움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믿음은 환경과 조건을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 개인에게도 필요하고, 우리 가정에도 필요하고, 우리 교회에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환경과 조건을 넘어서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있는 대로 우리들의 삶에, 우리의 가정에, 그리고 교회와 그 사역 속에 함께 하시면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후손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셔서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고 하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온전히 믿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브라함이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하나님은 분명하게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부모와 형제와 조카까지 데리고 떠났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후 하란에서 다시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날 때에도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아마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은 그 조카 롯을 마치 자식 같이 생각하고 믿고 의지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셔서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해 주셨는데, 아브라함은 결혼한 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되자, 또 하나님이 약속을 주신 후에도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되자, 그 조카 롯을 마치 아들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고 의지해 오던 조카 롯이 나중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으로 떠나갔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네 후손을 땅에 티끌같이 많게 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다시 주셨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이때는 조카 롯이 떠난 이후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실한 믿음의 종인 엘리에셀이 내 후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엘리에셀이 네 후사가 되지 않고 네 몸에 난 자가 네 후사가 되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네 후손이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5:6절 말씀을 보면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겨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후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완전했습니까?
이후에도 그 믿음은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이후에 사라는 나이가 많아서 경수가 끊어지고 자녀를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믿음은 흔들렸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던 아브라함에게 사라는 ‘하나님께서 후사를 꼭 나를 통해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다.’라고 하면서, 내 경수가 끊어진 것을 보니 다른 사람을 통해 자녀를 낳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을 듣고 그 종 하갈을 취하여 자녀를 낳았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 86세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사라를 통해 약속하신 자녀를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약속입니다. 사라는 이미 자녀를 낳을 수 없게 된지 15년도 더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표시로 그 집 모든 사람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렇게 해서 온전한 믿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다음은, 사라의 믿음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사라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갈대아 우리 땅을 떠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라는 아브라함과 결혼한지 오랫동안 자녀를 갖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몸은 아직 자식을 낳을 수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면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그 남편 아브라함이 롯을 그 믿음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 롯이 떠난 후 그 종 엘리에셀을 믿음의 후계자로 생각할 때에도, 아브라함과 자기를 통해 자식을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자 나이가 많아지고 경수는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자녀를 낳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사라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 결론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아브라함을 설득하여 하갈을 취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99세 때, 사라의 나이가 89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명년 이맘 때 사라에게 자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믿음을 할례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장막 뒤에서 이 말씀을 들은 사라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요. 자신은 이미 할머니가 되어 있었고, 오래 전에 경수까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라는 이 말씀을 듣고 웃으면서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라를 책망하시며 ‘사라가 왜 내 말을 믿지 못하고 웃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임신기간은 10개월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10개월 뒤에 아들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해야 하는데 왜 1년 뒤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사라가 자신 속에 있는 불신앙을 깨닫고 믿음을 가지게 되는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사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환경과 여건을 넘어서서 역사하실 수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자신이 늙었지만 능히 자녀를 주실 수 있으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도 믿음을 가지고, 사라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비로써 약속의 자녀 이삭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 살펴볼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가지고 살았던 믿음과 그 믿음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믿음의 변화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자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그 종 엘리에셀을 그 믿음의 상속자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서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를 생각하고 대비하는 두 마음을 함께 품고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야고보서 1:6절 이하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두 마음을 품고 있는 믿음을 야고보서는 의심하는 믿음이라고 하면서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받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았으되 30년 동안 자녀를 갖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이 언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네 몸에서 날 자와 내가 언약을 맺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습니다.
그 때 사라는 ‘하나님께서 당신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고 하면서 ‘나는 자녀를 낳을 수 없게 되었으니 내 종 하갈을 취하여 그 약속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도 이 말에 동의하고 이스마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사라를 통해 약속의 자녀를 줄 것이라고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때는 벌써 사라는 89세의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었고, 그 믿음의 표시로 그 집 모든 사람들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은 완성되어갔습니다.
사라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의 변화
사라가 자녀를 낳을 수 있을 때에는 그 가진 믿음이 확고한 것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생각할 때도, 사라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약속의 자녀를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경수가 끊어지고 더 이상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되자 그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설득하여 그 종 하갈을 취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라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라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이성적인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성적인 믿음을 가졌던 사라는 자신이 아들을 낳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다른 이성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갈을 통해 자녀를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라가 언제 이 이성적인 믿음을 버리고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철저하게 이성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라는 89세가 된 자신이 자녀를 낳게 될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웃었고 그 일 때문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라고 하시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후 사라는 이성적인 믿음을 가진 자신의 불신앙적인 모습을 깨닫게 되고, 환경과 조건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사라도 결국에는 하나님과 그 약속의 말씀을 믿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 된 믿음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
이렇게 두 마음을 품었던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성적인 믿음을 가졌던 사라의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변화되는데 걸린 시간이 30년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30년 동안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녀를 낳을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변화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런 아브라함과 사라의 삶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 우리 삶 속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그 약속을 받은 사람의 믿음이 준비 될 때 일어납니다. 그 이전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이 있어도 그 약속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손뼉 치는 것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 손으로 손뼉을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손이 함께 같은 시간에 만나야 합니다. 두 손을 서로 다른 곳에서 아무리 힘차게 흔들어 되어도 손뼉은 쳐지지 않습니다. 손뼉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두 손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은 어떤 곳입니다. 어떤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은혜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사라가 한 마음 한 믿음으로 함께 하게 될 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 것 같이, 두 세 사람이 한 마음 한 믿음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서 역사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같은 마음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같은 마음 같은 믿음으로 함께 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늘 같은 마음 같은 믿음 가지고 주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이 우리들도 살아가는 삶 속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개인 가정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의 주인공들로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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