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마태복음 13:31-33
카오스 이론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용어 중에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카오스’는 혼돈이라는 단어이지요. 여기에 ‘이론’을 붙였으니 ‘카오스 이론’은 혼돈이론이 되지요. 이 이론에 의하면 자연계의 현상들이 매우 혼돈스럽고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혼돈스러운 우주 속에는 아주 복잡한 구조의 질서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이론이 ‘카오스 이론’입니다. 그래서 이 ‘카오스 이론’을 다른 말로는 ‘결정된 혼돈’이라고도 합니다. 그 의미는 이 우주가 겉으로 보기에는 혼돈스러워 보이지만 그 혼돈 속에는 기존의 질서체계에서는 포착되지 않는 복잡한 구조의 또 다른 질서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카오스 이론입니다.
나비효과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 중에는 ‘나비효과’라는 것도 있습니다.
‘나비효과란?’ 중국의 북경 하늘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 짓을 하면, 이 나비의 날개 짓은 아주 작고 미미한 활동이고 움직임이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작은 량의 공기만을 움직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뉴욕에서는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 나비효과는 말도 안 되는 이론 같아 보입니다.
어떻게 나비 한 마리의 날개 짓으로 움직인 작은 공기의 움직임이, 지구 반대편지역에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기상학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실재로는 이런 일들이 이 세상에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주에서 본 유럽은 펄펄 끓는 붉은 대륙 같아 보인다고 합니다.
현재 유럽은 40도 안팎의 찜통더위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중서부 지방은 봄철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가뭄이 발생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폭설이 내리고 산불이 발생하는 등등 기상이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이런 기상이변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연구해 보니까? 가정에서 무심코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마치 온실처럼 만들어서 기상이변을 가져 왔다고 합니다. / 우리는 우리 가정에서 사용하는 불이 지구환경에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느냐? 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론에서는 작은 나비의 날개 짓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구 전체의 기후변화를 가져 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나비효과’라고 합니다.
이 ‘나비효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그 모든 변화에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시발점 즉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것의 시작은 매우 작은 것이라도 나중에는 거대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국가적으로 위기를 맞이한 나라들이 여럿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에 IMF를 맞이하여 국가 위기상황에 놓인바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을 보면 모두가 다 과거에는 잘 사는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국가 재정이 풍부하다고 하며 그 돈으로 과도한 복지정책을 남발하였습니다. 그러자 국민들도 이런 국가정책에 편승하여 흥청망청 낭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계속 이렇게 나가면 위험하다는 경고등이 울렸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일을 맡아서 하는 공무원들이 국민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도 인기가 떨어질까 봐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국가 부도사태가 왔습니다. 중남미의 부국 아르헨티나와 관광 수입만 해도 엄청난 지중해의 부자나라 그리스에 온 위기는 이렇게 과도한 복지 정책 때문에 터진 것입니다.
성경 속의 나비효과
이런 나비현상이 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이런 나비효과를 보여주는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2: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된 다윗은 전쟁을 통해 주변나라들을 제압하고 나라를 안정적인 기반 위에 세워놓았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이런 건의를 했습니다. 왕이 전쟁터에 있다가 무슨 일을 당하시면 안 되니까? 이제 왕은 왕궁에 계시고 전쟁은 저희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터를 떠나 왕궁에서 지내게 됩니다.
전쟁터와는 달리 왕궁에서는 한가한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저녁 해질 무렵에 한가하게 성벽 담장 위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성 밖에 있는 어느 한 집에서는 여인이 달빛 아래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신하에게 ‘저기 보이는 저 여인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신하는 그 여인은 신혼 중인데도 불구하고 그 남편을 전쟁터에 보낸 왕의 신하 우리아의 아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다윗은 신혼 중임에도 혼자 지내게 된 여인을 위로해 주려고 밧세바를 궁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그러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만 것입니다.
얼마 후 밧세바는 다윗에게 자신이 ‘임신을 한 것 같다.’는 전갈을 보내 왔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다윗은 이 불륜을 감추어 보려고 전쟁터에 나가 있는 그 신하 우리아를 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아에게 ‘너는 지금 신혼 중인 것 같은데 전쟁터에 나가 있어서 되겠느냐?’라고 하면서 집에 돌아가서 몇일을 쉬도록 휴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아는 워낙 충성스러웠던 군인인지라, ‘동료들이 전쟁터에서 생사를 걸고 싸우고 있는데 자신은 집에 가서 평안히 잘 수 없다.’고 하며 집에 가지 않고 왕궁의 뜰에서 그 밤을 보냅니다.
다음 날 아침 다윗 왕은 우리아가 왕궁 뜰에서 잤다는 말을 듣고, 우리아를 재차 불러서 집에 가서 쉬라고 설득합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그 밤에도 집에 가지 않고 왕에게 자신은 전쟁터로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할 수 없이 우리아를 전쟁터로 보내면서, 그 손에 요압 장군에게 전해줄 밀서를 주어 보냅니다. 그 밀서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적과 싸울 때 우리아를 최선봉에 내세워서 싸움에 맹렬해 질 때 우리야만 남겨 놓고 후퇴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아는 결국 적군의 손에 죽게 됩니다.
밧세바의 임신은 휴가를 온 우리아로 인한 임신이 되며, 전쟁에서 죽은 부하의 아내를 다윗이 거두어 줌으로 다윗은 부하의 아내를 보살펴 준 선한 군주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의 범죄는 완전 범죄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어떻게 반전됩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의 죄를 들추어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네 집에 큰 재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며, ‘너는 밤에 은밀하게 밧세바와 범죄를 했으나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보는 백주 대낮에 네 처들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나단의 예고대로 이후 다윗의 삶 속에는 큰 재난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아들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서 서로를 죽이고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아들 압살롬은 다윗에게 반역을 일으켜서 다윗 왕국을 송두리 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후궁들을 백주 대낮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욕보였습니다.
다윗이 한 행동 즉 작은 날개 짓이, 몇 년 후에는 엄청난 폭풍이 되어 되돌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이스라엘 전체가 다윗과 압살롬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어서 서로를 죽이고 죽는 내전을 치루게 됩니다. 이런 국가적인 불행의 원인이 다윗이 목욕하는 여인을 본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그 밤에 다윗이 목욕하는 그 여인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비효과’라는 것입니다.
또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 섬기고 살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까이 가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유혹을 받아 따먹은 그 열매 때문에 인류 전체가 죄의 고통에 빠져 지금까지 허덕이며 살게 된 것입니다. 하와의 그 작은 한 행동이 정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정탐군 12명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해 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10명의 정탐 군이 그 정탐한 땅을 혹평하고 잘못 보고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낙담하고 하나님과 모세를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서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떠도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모든 사람들이 다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정탐 군들의 잘못된 보고 하나가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무심코 하는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가, 무심코 주는 한 번의 잘못된 눈길이, 무심코 하는 잘못된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결과를 우리 삶 속에 가져오는지에 대해 성경은 수도 없이 많은 예를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내 마음의 판단대로 ‘무엇이 지금 내게 유익하냐?’ 라는 내 중심적인 판단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아도 전채를 보지 못하고 내 기분 내 입장 내 편리함을 따라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며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의 행동 나의 말 나의 생각들이 내 삶에만 영향을 미쳐온 것이 아닙니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 때문에 우리 가정이 영향을 받고 우리교회가 영향을 받고 우리 사회와 우리나라가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온 세계가 다 하나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나라의 경제가 파탄이 나면 그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다른 나라들에게 곧 바로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세계 경제가 여러 번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그리스는 국토 전체가 관광지입니다.
그리스는 관광 수입만 해도 엄청납니다. 그래서 그리스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나라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가 축적하고 있던 그 많은 부를,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과도하게 지출하다가 보니 국가재정은 바닥이 났습니다. 그런데도 국민은 계속 제정적인 지원을 원하니까? 그 후에는 외국에서 돈을 빌려서 재정적인 지원을 해 주다가 결국 국가부도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 빠져 있는 그리스 국민들은 지금도 나라는 망하더라도 우리가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은 축소할 수 없다고 하며 대모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 문제입니다.
그리스는 유럽 연합에 속한 국가였기 때문에 유럽 연합에서는 그리스의 국가부도를 막아보려고 수많은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독일이 가장 많은 돈을 부담하였고 그 다음이 영국입니다. 영국은 과거 대영제국이라 불리며 부와 영광을 누리며 살았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옛날처럼 부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 나라도 실업률이 높고 자기 나라 국민들도 먹여 살리기 힘이 드는데, 유럽연합에 가입함으로 인해 이민자들이 몰려 들어오고 있고 또 그리스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대야 하니 유럽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브렉시트 즉 EU 탈퇴를 조건으로 국민투표를 하게 되었고 결국 영국은 EU탈퇴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EU 탈퇴가 또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영국 한 나라가 EU에서 탈퇴하였는데 왜 세계 각 국가가 난리입니까? 그것은 온 세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 나라의 문제는 그 나라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2010년도에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이 일으킨 쓰나미로 원전이 폭발하고 멈춰서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이 원전사고를 아직까지 처리하지 못해서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를 계속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태평양이 오염되어가고 이 오염은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바다 오염 시뮬레이션을 보니 2015년에 이미 우리나라 동해 서해까지 이 오염 물질이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지진으로 인해 일어난 원전사고가 지금 일본은 물론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중요성
이 세상 만물을 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사람들이 다스리며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잘못되면서 그 다스림을 받고 있는 온 피조세계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로마서 8:22절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이 세상의 관리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이 주신 만물을 그 말씀대로 잘 관리하면서 살면 사람들도 행복하고 만물들도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범죄 하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맡기신 만물도 함께 탄식하게 됩니다. 로마서 8:21-22절입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성경은 사람들이 범죄 하여 썩어짐에 종노릇하게 됨으로 만물도 썩어지는 존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회복의 은혜를 입는 것 같이, 피조물들도 이런 사람들의 회복에 동참하고 참여하길 고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 한마디를 해도 눈짓 하나를 보내도 행동 하나를 할 때에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나의 말 한마다가 큰 영향을 미칩니까? 나의 말 한마디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수 있습니다. 나의 행동 또한 얼마나 중요합니까?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합니다.
성경본문 강해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마태복음 13장은 천국 비유의 말씀을 하고 계신 장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는 두 가지 비유의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째는 ‘겨자씨 비유’이고, 둘째는 ‘누룩 비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곳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❶ ‘겨자씨’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작은 씨로되 그것이 땅에 심기어 자라면 큰 나무가 됩니다. ❷ ‘누룩’은 사람이 밀가루 반죽을 할 때 누룩 한 주먹만 넣으면 밀가루 한 말도 부풀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비유는 겨자씨나 누룩은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태복음 25장에는 ‘양과 염소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직전에 있게 될 흰 보좌 심판의 때에 모든 사람들이 두 부류로 구분될 것이라고 합니다. ❶ 그 때 예수님께서 그 오른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합니다. ❷ 이 때 의인들이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라고 질문합니다. 나는 그런 일을 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❸그러자 임금이 대답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행하며 산 그 모든 행동을 내가 받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행한 그 작은 행동들이 이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게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살 여유가 있으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에게 무관심하였던 그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❶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라고 하시니 ❷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❸ 이에 임금이 대답하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예수 믿는 우리가 얼마나 말과 행동에 신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행한 그 말과 행동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일을 행하라고 요구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 작은 날개 짓을 바로 하라고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❶ 학생은 학생으로 해야 될 날개 짓을 하고, ❷ 목사는 목사로서 해야 할 날개 짓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날개 짓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이 우리 미래를 엄청나게 차이 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우리나라나 우주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내가 큰소리를 치고 욕하고 화를 내어도 나와 조금만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나의 행동이 우리니라에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예수 믿는 우리들은 이 시대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삽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길을 가다가 가방을 주웠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서류와 함께 1억 원도 넘는 큰돈도 들어 있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은 돈을 내가 가집니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런 행동을 했는데 그런 나의 행동을 내 친구가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친구가 앞으로 내가 믿고 있는 예수를 믿을까요? 믿지 않을까요? 그 친구는 평생 살면서 돈을 주워서 챙긴 나의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며 평생 예수를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이야기는 전해 듣는 사람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중에는 사회 각개각층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작은 행동이 그 이야기를 듣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의 작은 행동이 미치는 영향력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수 믿는 우리가 주운 가방을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었는데 내 친구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 친구는 평생 살면서 돈을 욕심내지 않고 선한 일을 행한 나를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방 주인도 그 가방에는 돈 뿐 아니라 중요한 서류가 들어 있었는데 주워서 돌려주어서 고맙다고 하며 사례할 것입니다. 이 사람도 평생 그 때 일을 잊지 않고 이야기하며 그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들에게 교훈하시기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불쌍히 여기라.’고 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라.’고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게 되면 우리가 행하며 산 그 삶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쳐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다투거나 투기하거나 싸우지 말라.’고 합니다. ‘완고하거나 악을 행하는 삶을 살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면 악한 영향력이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동들이 다 ‘나비효과’로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한 행동의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하지만 한국의 1000만 성도가 이렇게 살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그 행동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바닷물의 염분 농도는 약 3.5% 라고 합니다.
이 소금이 바닷물이 썩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국민 중 약 5%만 되어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 5%의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말을 하, 바른 행동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과거 ‘아르헨티나’는 땅이 넓고 기후도 온화하고 지하자원도 많아 아주 살기 좋은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점점 나라의 돈이 쌓여갔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민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세금은 적게 거두고 그 비축해 두었던 많은 돈을 선심 복지공약으로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인가가 있었지만 나라는 아주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계속 국가가 주는 혜택을 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국가 부도사태까지 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유한 나라 중 하나가 ‘스위스’입니다.
지금 스위스에는 돈이 너무 많아서 국가는 국민들에게 1인당 매월 300만원씩을 나눠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위스 국민들은 우리는 그 돈을 받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며 그 돈을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대단한 국민 수준이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내년에 선거가 있습니다.
선거에서 인기를 얻어 당선되기 위하여 벌써 각종 복지정책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무상급식 무상보육만 시행되었는데도 벌써 학교마다 교육청마다 돈이 없다고 난리이고, 지방자치 단체도 돈이 없어서 아무 것도 못하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런 형편인데도 계속 표를 얻으려고 선심성 공약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앞으로 나라가 어떻게 되든지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나만 국회의원이 되고 나만 지방자치 단체 장이 되면 그만이라는 아주 무책임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잘못된 작은 날개 짓 하나가 우리나라 장래를 재앙으로 몰고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 없이 하면 지하자원도 별로 없는 우리나라는 곧 바로 재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어려우니 지원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을 다시 가동하고 금강산 관광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대모까지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중국의 추격을 받아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술력은 우리가 월등하지만 원가 경쟁력에서 밀립니다. 그래서 매년 수천 억 원의 적자가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빅 3 조선의 노조들은 우리는 직장에서 명예 퇴직할 수 없고 우리는 월급을 줄일 수 없다고 합니다. 내가 월급만 많이 받으면 회사는 망하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잘못된 날개 짓을 계속하면 회사는 망하고 결국 직장은 다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라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쳐서 나라경제까지 어려워질 것입니다.
들려오는 소리들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암울해 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라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나에게 뭐가 이익이냐?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날개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라도 날개 짓을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가 바른 날개 짓을 하며 살면 우리의 바른 날개 짓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쳐서 가정과 나라와 국가의 미래가 밝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된 우리가 위기의 시대에 하며 살아야 할 바른 날개 짓일 것입니다.
여의도에서는 매년 ‘벚꽃 축제’가 열립니다.
한두 그루의 벚꽃이 있으면 축제가 열릴 수 없습니다. 여의도에 한 그루 두 그루 벚꽃을 심어 나간 결과 벚꽃이 군집을 이루게 되면서 벚꽃 축제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벚꽃을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 사람이 바른 날개 짓을 하고 또 한 두 사람이 바른 날개 짓에 참여하게 되다가 보면 나중에는 여의도의 벗 꽃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바른 날개 짓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작은 나비의 날개 짓이 기상을 바꾸듯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하는 바른 날개 짓이 결국에는 우리 가정을 변화시키고 우리 교회를 변화 시키고 우리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듯이 밀가루에 넣은 적은 누룩이 그 많은 밀가루를 부풀어 오르게 하듯이 우리의 말과 행동과 가치관이 결국 그렇게 우리나라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전에 ‘총회 세미나’가 있어서 ‘사랑의 교회’를 간 일이 있습니다.
전국에선 한 천명 가까운 목회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복잡했겠습니까? 목회자들이 많이 모였으니 대접을 잘한다고 교회에서는 시간 시간마다 간식을 준비해서 주었습니다. 그래서 입구는 움직이기조차 불편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간식을 먹다가 그 껍질을 땅에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가는데 그곳만 비어 있었어요. 그래서 가보니 바닥에 간식을 싼 껍질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복잡한 중에도 그것을 피해 가려고 그 자리를 비워 놓았습니다. 제가 그 껍질을 주어서 휴지통에 넣고 간식을 받으려고 갔는데 간식을 나눠 주는 그 교회 성도가 제가 한 일을 보았는지 저를 보고 90도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왜 그 성도가 제게 인사하는지 알지요. 그래서 저도 인사를 하고 지나갔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 속에 이런 마음이 듭니다.
그 간식을 나눠주던 성도는 아마 그 교회 충성된 성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쓰레기를 피해 지나가는데 그것을 주워 깨끗하게 처리해 준 저를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하든지 구역예배를 드리든지 할 때면 아마 그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작은 날개 짓이 그 사람의 평생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시편 50편은 ‘아삽의 시’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큰 헌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것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믿고 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건지리니 그렇게 해서 환난에서 건짐을 받은 네가 나를 세상 속에서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삶이 어렵고 힘이 들 때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자녀가 말을 잘 듣지 않다가도 몸이 아프면 울면서 ‘엄마’라고 하며 달려오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부르며 나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믿음이 회복되고 내 삶이 회복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디모데 전서 2장을 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합니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이라고 합니다.
❶ 안식일이 왜 거룩한 날입니까? 다른 날과 다른 목적으로 구별해 놓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❷ 예배당이 왜 거룩합니까? 다른 목적으로 구별해 놓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❸ 하나님이 왜 거룩하신 분이십니까? 세상 신들과 구별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① 남자들의 거룩한 삶에 대해 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라고 합니다. 우리 손은 일하고 싸우는 생존을 위한 손입니다. 이런 손을 들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의 손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남자들의 거룩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② 여자들의 거룩한 삶에 대해 9절 이하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을 행하고.........., 일체 순종함을 종용히 배우라.’고 합니다. 여자들은 겉모습으로만 단장하지 말고 속사람의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단장을 하고 사라처럼 남편에게 순종으로 단장하라고 합니다. 여자들은 이것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❶ 남자들은 세상 속에서 기도하면서 그 주어진 삶을 살고, ❷ 여자들은 겉모습으로 단장하지 않고 속사람으로 단장하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큰일을 하라고 요구하시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통해 올바른 날개 짓을 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며 살아야 할 믿음의 삶이라고 합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가치관 다른 목적 다른 동기 다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이렇게 내가 달라지면 가정이 달라지고 교회가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지고 나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0절 말씀에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라고 하십니다. 우리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기로 작정합시다. 내가 하는 공부에 충성하고 목회에 충성하고 가정에 충성하며 바르게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긍정적인 날개 짓을 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을 살아갑시다. 그래서 내가 바뀌고 바뀐 나의 바른 날개 짓을 통해 결국에는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성도들이 됩니다. 이런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삶이 우리가 살아가는 앞으로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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