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빛의 자녀처럼 살라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3. 24. 14:01



빛의 자녀처럼 살라

요한복음 1:1-14

 

1. 빛을 필요로 하는 세상

 

태양계는 11개의 행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행성들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태양의 자기장 안에서 태양과 함께 이동하며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성과 같은 행성은 태양과 너무 거리가 가까워서 사람이 살지 못하는 행성으로 있고, 또 다른 행성들은 태양과 너무 거리가 멀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는 태양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태양을 돌고 있기 때문에 사람과 생물들이 살아가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행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태양계 중에서 오직 지구에서만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태양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 근원입니다.

그래서 여름과 같이 태양 빛을 많이 받을 때에는 동식물들의 활동량이 늘어나고, 겨울과 같이 태양 빛이 줄어들게 되면 동식물들의 활동량도 덩달아 줄어듭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햇빛을 2주 이상 보지 못하게 되면 활동 에너지가 감소하여 몸이 무거워지고 별 일 아닌 것도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일을 하려고 해도 정보처리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기억력 또한 감소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태양은 우리 육체 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해가 비치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해가 비치는 시간이 짧아지게 되면 날씨만 추워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병들이 생기게 됩니다. 특히 겨울철이 되면 우울증 환자가 많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일조량이 적은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는 겨울철에 우울증 환자가 많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렇게 햇빛을 보지 못하여 생기는 계절성 우울증 치료에는 25~1만 룩스의 강한 광선을 비쳐주는 광선치료가 아주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햇빛은 풀과 나무, 동물들과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햇빛은 사람의 삶에 뿐 아니라 사람의 기분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겨울철이라 하더라도 시간을 정하고 밖에 나가서 억지로라도 햇빛을 쪼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날씨가 춥다고 따뜻한 방안에만 계속 있지 말고 따뜻한 햇빛이 내려 쪼이는 낮 시간에 잠깐 씩이라도 나가서 햇볕을 쬐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육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에도 좋습니다.

 

2. 빛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첫째 날 빛이 있으라.’ 하시므로 빛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넷째 날에는 빛을 내는 발광체인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첫째 날 만드신 이 빛과 넷째 날 만드신 이 빛은 어떻게 다릅니까?

하나님이 첫날 창조하신 이 빛은 넷째 날 창조하신 태양의 빛보다 더 근원적인 빛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근원적인 빛부터 만드셨는가?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이유는 이 때 창조하신 빛이 이후에 창조하게 될 만물들을 생성하는데 절대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빛을 만드시고 그 다음에 만물들을 만드시고, 그 다음에 태양 빛을 만드시고 그 다음에 태양 빛을 받으며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만드시고 그 빛을 통해 만물들을 만드시고, 그 창조하신 만물들 중에 태양빛을 만드시고 그리고 그 태양 빛을 의지하며 살아갈 생명체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이렇게 이중적입니다. 빛과 만물들, 태양과 생명체들의 순으로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하신 것이 빛을 만드는 일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 주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빛으로 어두운 세상에 비추시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4:15-16절입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려면 예수님이 비추어주시는 이 빛이 그 사람에게 비춰져야 합니다.’ 내 지식, 내 이해, 내 경험, 내 이성, 내 직감으로는.. 절대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려면 이 빛을 받고 이 빛의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다시 창조하시는 재창조에 이 빛이 역사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6절입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여기서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은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 전에 비취게 하신 빛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이것은 우리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재창조에 관여하시는 빛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빛의 비췸을 받은 후에 비로소 변화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빛의 비췸을 받기 이전에는 구약성경을 많이 읽었지만 자기 지식으로 볼 때 예수는 잘못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선봉에 섰고, 나중에는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가던 도중에 하늘에서 비취는 햇빛보다도 더 밝은 빛의 비췸을 받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즉시 육신의 눈은 멀게 되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보게 되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 복음의 빛이 사람들에게 비취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무슨 꺼풀이 씌워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않습니다. 복음의 광체를 못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고린도후서 4:3-4절 말씀에서는 이 세상 신인 사탄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못 보게 만든다고 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존적인 모습입니다.

아무리 학벌이 높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특출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이해력이 좋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빛은 영혼을 비추어주는 영적인 빛이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실존적인 모습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첫째, 아담의 후손이 된 모든 인간은 죄와 절망의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여 타락함으로 인해 빛이신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점점 더 깊은 죄와 절망의 어두움의 세계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범죄에 함께 속하여, 아담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절망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이사야서 9:2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어둠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취었다고 합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그런데 마태복음 4:15-16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통해 이 빛이 비취었다고 합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요한복음 1:5절 말씀을 보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어두운 세상을 비취시고 계셨지만, 세상은 예수님이 참 빛으로 오셨다는 것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두컴컴한 지하 감방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큰 희망이며 기쁨이 되는 것처럼, 어둠에 갇혀 있는 인류에게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비춰주시는 한줄기 빛인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 빛을 갈망하며 간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시편 18:28절입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나의 등불을 켜 주셔야만 내 흑암이 물러간다는 말인 것입니다. 시편 80:3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얼굴을 돌려주셔야 우리에게 참 빛이 비추어져 구원을 얻게 된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실로암 이라는 복음 성가의 가사를 보면 사람들의 상태가 어떻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태가 마치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나가는 상태와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어두움이 언제 벗겨진다고 합니까? 마치 눈먼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 실로암 연못에서 그 눈을 씻게 되었을 눈을 뜬 것처럼, 세상의 참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빛 가운데 살 수 있게 된다는 찬양입니다.

 

둘째, 죄와 절망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 빛이 비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요한복음 1:9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참빛이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그러면서 이 세상에 참 빛이 되시는 분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와 세상 전체에 희망과 생명을 주시는 참 빛이신 분이 이 세상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빛이시되 햇빛 정도의 빛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빛의 원천으로서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빛을 만드신 분이시고, 스스로 빛이 되시는 분이시고, 영원한 빛의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빛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만 죄악과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참 희망입니다.

우리가 참 빛이신 예수님과 멀어지는 것은 빛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고 우리가 참 빛이신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것은 빛을 찾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뒤 덮고 있는 어둠을 몰아내기 위하여,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참 빛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5절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 말씀은 우리 주 예수님이 이 세상의 생명이고 이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참 빛이신 예수님은,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의 절망을 거두어내고, 희망과 생명을 주려고 이 땅에 오셨는데,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을 대적하고 쫓아내고 죽였습니다.

 

요한복음 1:9-11절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우리가 창세기에서 보듯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부터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악의 어둠으로 뒤덮여 버린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참 빛이신 성자 하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참 빛 되신 성자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가득한 어둠을 몰아내고 빛과 생명을 공급해 주시려고 이 세상에 찾아오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어둠을 몰아내신다는 것은 사람을 무지하게 하고, 악하게 하며 저주아래 머물게 한 죄와 악의 세력을 몰아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의 세력을 꺾으셔서 우리 안에 있던 각종 어둠들 즉 모든 불의와 거짓과 폭력과 부패들을 청소하여 내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이 빛을 비춰주실 때 우리 안에서는 영적인 변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변화를 어둠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저항을 합니다.

빛이 왔지만 사람들은 이미 익숙한 어둠을 더 사랑하고 빛으로 나아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여 가능하면 빛을 차단하고 어둠 속에 머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러나 빛과 어둠이 대결하면 언제나 빛이 이깁니다.

저녁에 캄캄한 집에 들어가서 전등불을 켜 보십시오. 불을 켜는 순간 어둠은 사라져 버립니다. 참 빛이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빛을 비춰주시면 결국 우리 안에 있던 모든 어둠들은 물러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 마음 안에 비춰주시는 빛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빛입니다. 이 예수님이 비춰주시는 빛으로 우리 마음 안을 가득 채우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빛을 우리 마음에 채웁니까?

우리가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그리스도를 내 마음 속에 영접함으로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이 보내 주신 성령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빛을 비춰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사회는 질서도 없고, 희망도 없고, 올바른 지도자도 없는 깜깜한 겨울과 같습니다. 이 시대가 종말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 어두움은 더해만 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제 머지않아서 이 겨울은 지나가고 새싹이 움을 돋아 내는 봄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이 봄은 누가 우리에게 가져다줍니까?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다시 오실 때 죄악과 어둠은 이 땅에서 다 몰아내시고 사랑과 정의로 통치하시는 메시야 왕국을 세우시고 친히 통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는 아무나 다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빛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굳게 믿고, 내 안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고 예수님이 비춰주시는 빛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빛의 자녀들이 다 되시어서 길 바랍니다.

 

셋째, 우리들은 하나님의 빛의 자녀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부천에서 목회하고 있는 배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교회에 한번이라도 나온 사람들은 거의 80-90% 놓치지 않고 등록시킨다고 합니다. 그 비결이 이렇습니다.

 

이 목사님은 교회에 새로 나온 사람들이 있게 되면 두 아들로 하여금 교회 앞에 놀게 한답니다.

그래서 그 아들들로 하여금 예배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새 신자의 집을 알아 오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주간에 우연히 전도하다가 온 것 같이 그 집을 찾아가 벨을 누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지난주에 본 교회 목사님을 외면하지 못하고 수고하신다고 하며 차 한 잔 마시고 가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계를 시작하기 때문에 새 신자를 거의 놓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동네에서 단란주점을 하고 있는 부부가 처음 교회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간 주점 근방에서 전도하면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단란주점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점 사장님은 놀라면서 어떻게 우리 집을 알고 왔느냐?’고 했고, 목사님은 이 지역에 전도하다가 사장님을 보고 들어왔다.’고 하며 이야기 하는데 하나님이 이 주점에서 서빙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점 사장님께 제가 한 주간에 한두 번 가장 바쁜 저녁 시간에 홀 서빙은 해 드리겠다.’라고 했더니, 아니 목사님이 어떻게 술집에서 서빙을 할 수 있느냐?’고 거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이 목사님은 제가 서빙 하는 조건은 단 한 가지뿐인데, 교회에서 가슴에 차는 00 교회 담임목사 00 라는 이름표만 차고 서빙 할 수 있게 해 주시면 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주간에 한두 번 목사라는 이름표를 차고 홀 서빙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아무 말도 안하고 단지 술만 갖다 주는 일을 했는데 사람들이 그 가슴에 달린 00 교회 00목사라는 그 이름표를 보고, 처음에는 별 목사 다 있네. 내가 이제까지 살아왔지만 술집에서 서빙하는 목사는 처음 본다.’라고 수군수군하다가 나중에는 호기심이 발동하여서 여기 않으시라.’고 하면서 목사님 앞이라고 담배도 숨겨서 피우고 술도 돌아앉아서 먹으며 대화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화를 해 보니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 자기도 교회 다녔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이 술 서빙을 하시니 이제 술을 끊어야 되겠다.고 하기도 하고, 전에는 술을 먹으면 내가 이만큼 먹었다. 라는 것을 보이려고 빈병을 테이블위에 올려 두고 먹었는데, 이제는 마치 술을 별로 안 먹은 것처럼 술병을 테이블 아래 감추면서 먹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몇 달 계속되자 단란주점 사장님이 술집에 오는 단골손님들에게 전도를 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인도되어 나오고, 그 중에서 십 몇 명이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어떻게 도무지 전도할 수 없을 것 같은 술꾼들에게 전도할 수 있었습니까?

이 목사님이 술꾼들의 입장까지 낮아져서 다만 그들과 함께 해 준 것뿐인데 그것이 그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게 되니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결국 그 술집 사장님의 인도로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술집이라는 어두운 곳에 이 목사님을 통해 한 줄기 빛이 비취게 되자, 요한복음 1:12절 말씀처럼 그 빛이 어둠을 이기고 결국 세상의 참 빛이 되시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영접하게 까지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우리 주 예수님이 먼저 이렇게 하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는 그 존귀하신 신분을 버리시고, 이 낮고 낮은 땅으로 인간이 되어 내려오신 것입니다. 마치 배 목사님이 목사라는 신분을 버리고 단란주점에 서빙을 하러 들어간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그렇게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까?

아담에 죄 아래에서 어둠에 싸여 있는 사람들이, 인생의 참된 길 생명의 길을 벗어나서 헛되고 헛되며 썩어지고 말 무의미한 것에 그 목을 매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그 결국이 멸망이라는 것을 보고 모른 채 그냥 두고 볼 수 없으셔서 그렇게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인생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셨건만, 사람들은 그 보낸 선지자들이 전해 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친히 직접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그 인격과 그의 행하시는 삶을 통해서 자신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나타내 주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히브리서 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채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세상의 참 빛이 되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 속에 꽉 찬 어둠인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없애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죄와 불행을 그 한 몸에 다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대속적인 죽음을 죽어주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 마음에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까지 부여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죄에 눌리고 죄에 짓밟힌 채 어둠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생명과 희망의 빛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아 누리고 사는 은혜가 이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누리며 이 땅에서 주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은혜를 입은 우리들은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그 인격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의 말씀을 보면,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지금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습니까? 빛의 자녀답게 살고 있습니까?

 

성경은 세상이 참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1: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저절로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와 신분에 맞는 언행이 있어야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언행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빛을 받은 사람다운 모습이 우리 밖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만약 성도들이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의 칭송을 받을 것이지만, 만약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세상은 교회를 무시하고 욕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5:14-16절에서는 세상과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전에 전기불이 없을 때에는 밤에 어디를 가려고 하면 등불을 들고 다녔습니다.

등불은 사각으로 된 유리 상자 안에 불 켜진 호롱을 넘어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등 안에 켜진 호롱불의 빛이 유리를 통해서 밖으로 전해져서, 그 등을 들고 어디를 가든지 사방이 환해집니다.

 

그런데 호롱에 불을 오래 켜면, 끄으름이 많이 올라와서 유리가 더러워집니다.

그러면 자주 그 유리를 닥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등불을 켜도 그 빛이 밖으로 잘 전달되지 않아서 등불이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이 등불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옛 성품을 다 버리지 못하고, 우리가 아직 깨끗하게 되지 못하면, 우리 안에 모신 그리스도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둠 속에서 빛 가운데로 건져내셨지만, 우리가 여전히 어둠의 행위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이름만 빛의 자녀이지 그 행위는 여전히 어둠의 자녀로 살고 있으면, 우리 안에 모신 예수님은 그 모습을 드러내시지 못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평안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착한 삶과 올바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닦지 않은 유리 등불처럼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을 드러내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2019년을 시작한지 벌써 3개월이 지나 봄의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 쪼이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이 주일 아침에 우리는 참 빛이신 예수님이 왜 우리에게 오셨는지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먼저는 죄와 그 죄가 가져다주는 절망 속에서 헤매며 살아가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빛이 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쳐 주신 그 빛으로 어두운 세상에 비춰주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에 오신 참 빛이신 예수님을 온 세상에 증거 하기 위해서는 밝은 유리창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밝은 유리창을 가질 수 있는 길은 날마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잘못된 일들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처럼 살고자 하는 결단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록 우리가 예수님처럼 온전하게 살 수는 없을지라도 예수님을 본아 살려고 힘쓰고 애쓰며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이런 삶을 통해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서 어두운 밤을 비추어 주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어두운 세상을 비추어 주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이 바로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렇게 힘쓰고 애쓰며 살아가는 삶이 이 한 주간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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