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있을 두 가지 심판을 받을 준비가 되셨나요?
히브리서 9:27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을 출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날을 생일이라고 하며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생일 이전에 우리 개개인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그 태어난 생일날을 기점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똑 같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우리와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그 모양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 즉 영을 불어 넣으시니 생령 즉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2: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니라.’ 아담은 우리 모든 사람들과 같이 신생아로 태어나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성인인 아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영을 불어 넣으심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다릅니다.
하와는 아담과 같이 땅의 흙으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아담의 갈비 대 하나를 취하셔서 지은 사람이 하와입니다. 이런 하와를 보고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이 살이로다. 이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라고 아름다운 기쁨과 환희의 노래로, 그 마음의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 모든 인류는 이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신생아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생명이 주어진 기간 동안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애에 대해 시편 90:10절에서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이 시편의 말씀과 같이 사람들의 삶을 보면 그 살아가는 삶의 기간은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오래 사는 일부 사람들은 100세를 넘기며 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리고 벌써 70-80세를 넘기게 되면, 이제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내게 부여된 그 어떤 역할을 감당해 나가면서 살 수 없게 됩니다. 사고도 행동도 어둔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아주 짧은 시간을 살고 나면 모두 다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일생을 정리해 보면, 보통 학교의 공부를 마치고 나면 20대 초반이 됩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또 군대에 갔다 와야 하니 그러면 20대 중반이 됩니다. 이렇게 하고 난 후에 취직을 하고 스스로 자신의 생애를 책임지고 살아가려고 하면 최소한 20대 후반은 지나야 합니다.
이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30대가 됩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아 키우다 보면 1명만 낳아서 키우는데도 20년은 훌쩍 지나갑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아이가 세명이나 되면 20년의 세월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후딱 지나가 버리게 됩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고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자기 삶을 살아갈 때까지 지원하다가 보면, 부모의 나이는 어느새 50대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했다고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 모두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면 곧 손자 손녀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바쁜 자녀들 대신에 손자 손녀를 키워주느라 한 10년은 후딱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면 보통 부모는 50대 후반을 넘어서서 60대에 진입하게 됩니다.
60대에 들어서면 부모는 이제 자기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젊은 날에 운동을 하고 건강을 위해 준비해 오지 않은 사람들은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가 됩니다. 그래서 활동이 자유롭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늙어가고 이렇게 지나가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내가 알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이 때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인생의 허무입니다. 그리고 짧은 인생이지만 힘겹게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 살아온 파란 만장한 삶을 자서전이라도 써서 남겨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오늘 오전에 나눈 말씀에서는 이런 위치에 이르렀던 전도자 솔로몬이 그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무엇이라고 고백하였습니까? ‘해 아래에서 수고하며 살아온 그 모든 삶들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었다.’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전도자가 결론으로 해주고 있는 말씀이 전도서 끝부분인 전도서 12:13-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 것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솔로몬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다 살고 죽게 되면, 자신이 살아온 그 삶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본분이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 한 아기로 태어나서, 짧은 날을 살다가 결국 죽어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 인생이라도,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살다가 죽음으로 인생이 끝이 나게 되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인생은 그렇게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기로 태어나서 살아온 이 육체의 생명은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우리가 죽을 때 우리 육체와 분리되는 우리 영혼은 죽지 않고, 육체를 가지고 살 때와는 다른 생애와 삶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이 살아가야 하는 그 삶은, 우리 영혼이 불멸의 영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기 않고 끝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살아가다가 죽게 되는 우리들에게는 이 후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개개인에게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심판입니다.
이 개인적인 심판은 사람이 죽을 때 즉 죽음으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게 될 때 있게 된다고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때 개개인을 심판하는 기준은 믿음입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 동안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심판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사람들의 영은 낙원으로 가고,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았던 사람들의 영은 음부로 가게 된다고 합니다.(눅16:19절 이하) 이 심판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심판입니다.
이 때 낙원에 가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나사로와 같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장차 두 번째 심판인 백보좌심판을 앞두고 부활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일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하여 천국으로 가는 그 날까지 마치 천국과 거의 유사한 낙원에서 그 영혼들이 쉼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 바로 낙원에서의 생활입니다.
이 때 음부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죽을 때에 심판을 받아서 음부로 가라는 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꼭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던 불신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때 음부로 가라는 판결을 받게 되는 사람들 중에는 목회자도 있고, 장로도 있고, 권사도 있고, 집사도, 성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왜 자신들에게 음부로 가라는 판결을 내리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항변할 것입니다. ‘왜 나는 예수님을 믿었는데 음부로 가라고 하십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의 이 심판의 중요한 기준은, ‘네가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믿음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고, 내가 가지고 살았던 믿음이 성경이 요구하시는 믿음이었느냐?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이었느냐? 하는 것이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증거 해 주고 있는 믿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 낙원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성경이 증거 해 주고 있는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심판을 받아서 음부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볼 때 당연히 천국 혹은 낙원에 들어갈 것 같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 당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며 살았던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누구보다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며 살았던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들 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13절입니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이 사람들은 천국 문 앞에 서서 자신들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막아서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볼 때 천국 혹은 낙원에 들어갈 수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온 몸에 심한 병이 들어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 보였던 거지 나사로였을 것입니다. 누가보아도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비참한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낙원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낙원에 먼저 들어가 있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더라고 합니다.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일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에 살 동안 얼마나 흉악한 죄를 저질렀든지, 세상에서 가장 참혹하고 처참한 형벌이었던 십자가형을 언도 받고 예수님과 함께 달렸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낙원에 들어가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면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옆에 계신 예수님을 지켜보다가, 예수님은 자신과 같이 죄인으로 십자가 형벌을 당하고 계신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로 죽어가는 그 순간에, 예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함을 인정하고 그 예수님에게 자신의 미래를 의탁하게 됩니다.
이런 십자가상의 강도에게 예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강도는 죽은 후에 반드시 거치게 되는 심판을 믿음으로 이기고 낙원에 들어간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죽어서 낙원에 가보면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요?
성경이 증거해 주고 있는 참된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었던 아벨, 셋,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등등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장차 죽어서 음부에 가보면 거기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거기 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불신자들 사이에 우리가 대단한 믿음이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이 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거기에 와 있을까요?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였던 그 믿음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해 주셨던 그런 믿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해 주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믿음은 첫째, 성경이 증거 해 주고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바른 믿음입니다. 만약 성경이 증거 해 주고 있는 믿음과 다른 믿음,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으시는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생명이 우리에게 있을 동안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해 주시고 있는 그 믿음,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그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일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서 더 시급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왜 이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애에는 두 번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죽을 때 개개인에게 이루어지는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마치고 죽게 될 때 곧 바로 이 첫 번째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심판의 중요한 기준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유무에 따라 낙원에 가게 되기도 하고 음부에 가게 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 심판에 대해 이렇게 증거 합니다. 히브리서 9: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개개인에게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심판입니다.
둘째는, 세상에서 살다가 죽은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하나님의 백 보좌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이 세상의 역사가 끝이 나고, 또 장차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세상 속에 세워지게 될 메시야의 왕국인 천년 왕국까지 다 끝난 후에, 이 세상 속에서 살다가 죽은 그 모든 사람들의 영혼들이 마지막 나팔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인 백 보좌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4:10절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이 하나님의 심판대가 바로 백 보좌 심판대입니다.
고린도후서 5:10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백 보좌 심판대입니다.
이 심판의 광경을 묘사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 심판에서는 하나님이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계시고, 천사들이 행위 책을 가지고 와서 각 사람이 행한 악행을 읽으면서 죄에 대한 형벌을 구형하는 검사의 역할을 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보혜사가 되시어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증거 해 주시면서 ‘그러므로 000에게는 무죄를 선언함이 합당합니다.’라고 하나님께 요청하게 되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그 판결을 들으시고 그대로 무죄 선언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무죄한 자로 인정함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행위 책을 가지고 와서 각 사람이 행한 악행을 읽으면서 형벌을 구형하는 검사의 역할을 할 때,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해서는 변호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지은 그 죄에 대한 형벌로 내리시는 것이 바로 불 못 즉 지옥입니다.
이 마지막 심판을 받기 위해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과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5:28-29절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부활은 낙원과 음부에 가 있는 사람들의 영혼들이, 백 보좌 심판 바로 직전에 울려 퍼지는 마지막 나팔 소리를 듣고 부활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활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낙원에 가 있었던 영혼들은 믿음으로 그 모든 죄가 다 사하여졌다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판결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음부에 가 있던 사람들은 그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정죄함을 받아서 지옥으로 가라는 최종적인 판결을 받고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천국과 지옥에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천국과 지옥의 구분이 어디서 이루어진다고요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 로 구분됩니다.
이때 이 믿음은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 가져야 할 믿음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약속해 주신 그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 믿음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공의회 의원이며 관원이었던 니고데모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참 유대인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이 볼 때 가장 모범적인 믿음의 사람,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모델이 될 만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니고데모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까? 니고데모의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영혼이 거듭나지 않은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영혼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육체가 죽어서 첫 번째 심판을 받게 될 때 낙원으로 가지 못하고 음부로 간다는 것입니다. 네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거듭난 사람이 되어야 그 육체가 죽은 후 첫 번째 심판을 받게 될 때 낙원으로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예수를 구주로 믿고 거듭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의 출발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되 이왕이면 이렇게 성경이 증거 해 주고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이 증거 해 주고 있지 않은 믿음과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으시는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으시는 믿음은 헛된 믿음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7:21-23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러면 성경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는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통해 우리 영혼이 다시 태어나서 영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나 살고 있듯이, 우리가 영의 부모님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의 변화에 대해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윗을 만나니 나와 마음이 같은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먼저 존재의 변화가 있는 거듭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내가 믿음 안에서 존재가 변하였다는 것을 그 삶의 열매로 증명하며 살아가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15-20절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은,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믿음이 아니고, 성경이 전해주고 있는 믿음,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그런 열매가 있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믿음 안에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두 가지 심판을 이기고, 능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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