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들과 라마의 통곡
마태복음 2:1-12
오늘은 성탄절을 이틀 앞둔 주일저녁입니다.
여러분은 성탄절하면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탄생, 천사들의 찬양, 목자들의 방문, 동방박사의 방문 등등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성지 순례를 가서 가이드에게 동방 박사에 대해 아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동방박사는 페르시아에서 온 박사들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 페르시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메데 바사 연합국이 세운 나라입니다. 지금의 국명으로는 이란입니다. 그 중에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메데인으로 알려 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를 잘 알지요?
1275년에 마르코 폴로가 페르시아를 방문하였을 때 거기서 동방박사들의 무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르코 폴로가 발견한 그 무덤의 비문에는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으며, 그 만남이 그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주후 614년에 페르시아 군인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였는데 그 때 페르시아 군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있는 교회들을 다 파괴하고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와중에도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 탄생 교회는 파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교회 벽과 바닥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 때문입니다. 거기 모자이크에 새겨져 있는 동방 박사들의 옷이 페르시아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은 예수 탄생교회는 그 조상들이 와서 경배 드렸던 교회라고 하면서 파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방박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서에만 나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이 동방박사들의 무덤교회가 지금도 이란의 ‘우루미에’에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이란은 이슬람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 동방박사들의 교회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동방의 박사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또 그 별의 인도하심을 받아 예루살렘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들이 이렇게 다윗의 별의 인도를 받아 ‘우르미에’에서 예루살렘까지 오려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약 1년까지 걸리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이 먼 길을 별을 보고, 별의 인도함을 받으며 찾아왔습니까?
이들이 별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찾아오게 된 배경은 민수기 24:15-17절의 말씀입니다.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이르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손들을 다 멸하리로다.’
이것은 선지자 발람이 한 유명한 예언입니다.
발람은 당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예언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과 방불할 정도로 정확하고 확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발람의 명성은 당시 근동지방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발람이 장래에 대한 예언을 하였으니, 그의 예언은 당시 인근지역으로 퍼져 나가고 또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결국 페르시아 지방에 사는 메데 사람들에게 까지 전해졌던 것입니다.
당시 메데에는 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점성술사들 즉 오늘날로 말하면 천문학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메데 지역에 사는 박사들이 하늘의 별을 관측하다가 발람이 예언한 그 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밤이 되면 날마다 나타나는 그 별의 인도함을 받아서 예루살렘에 까지 온 것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발람이 예언한 한 별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한 별을 발견하고 그 오신 왕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메데 지방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분이 어디 계시냐? 우리로 가서 경배하게 하라 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던 왕은 대 헤롯이었습니다.
이 헤롯왕은 왕권에 집착이 아주 강함 왕이라서 누구라도 자기 왕위를 넘본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자기 아들이라도 죽였던 아주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헤롯이 동방박사들에게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나신 분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아마 이 헤롯은 ‘내가 이스라엘의 왕인데 누가 나를 제거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말인가?’라고 하는 경계심을 가지고, 자신과 자신의 가문과 왕권을 경쟁하게 될 왕을 찾아서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헤롯은 여우 같이 아주 능수능란한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이런 속마음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서기관들을 왕궁으로 소집하여 자기가 동방박사들에게 전해들은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성경에는 약속하고 있는 그 왕은 누구이며, 어디서 태어나며,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상세하게 묻습니다.
그 때 헤롯 궁으로 불려갔던 서기관들은 헤롯의 음흉한 흉계를 알지 못한 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메시야의 탄생에 관한 예언들을 소상하게 전해 줍니다. 그 중에 헤롯이 가장 관심을 보인 내용은 바로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미가서 5:2절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고을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헤롯은 메시야가 태어나는 곳이 유대 땅 베들레헴 에브라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헤롯은 다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여서 성경에 이스라엘의 왕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예언되어 있다고 하면서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냅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가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그 메시야를 찾게 되거든 너희만 경배하고 말 것이 아니라, 나도 가서 메시야에게 그 왕에게 경배할 수 있도록 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헤롯의 본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헤롯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경배하기 위하여 알려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헤롯은 장차 자신의 정적이 될지도 모르는 그 왕을 어릴 때 없애버리기 위하여 알려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헤롯의 의도를 몰랐던 동방 박사들은 헤롯에게 꼭 그리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렇게 해서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는데, 전에 그들을 앞서 인도하여 오던 별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별을 따라 그 별의 인도를 받고 따라 가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그들이 드리려고 준비해 온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각각 예물로 드리며 경배합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님을 만나서 경배한 그날 밤에 하나님이 그 천사들을 동방에서 온 박사들에게 보내셔서, ‘너희는 오던 길을 되돌아감으로 헤롯에게로 가지 말고, 전혀 다른 길을 따라 너희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오던 길과 전혀 다른 길을 따라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편 헤롯왕은 예루살렘 왕궁에서 동방박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주간이 지나고 두 주간이 지나도 동방박사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군사를 풀어서 알아보니 동방박사들은 이미 다른 길을 따라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는 즉시 군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2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헤롯왕은 이렇게 해서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왕 메시야를 없애려고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16절입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예언의 성취하고 합니다.
마태복음 2:17-18절입니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창세기 35장의 말씀
이 예레미야 예언은 창세기 35장을 그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레미야가 예언한 것은 바로 야곱의 아내 라헬의 이야기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야곱에게는 아내가 네 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사랑하는 아내는 바로 라헬이었습니다.
이 라헬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의 이름은 요셉이고, 둘째 아들의 이름은 베냐민입니다. 그런데 라헬은 둘째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게 됩니다. 창세기 35:16-18절입니다.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였느니라 하매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이 사건은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면 라헬이 그 둘째 아들을 낳다가 죽은 이 사건이 어떻게 메시야 예언이 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5:3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구약성경 전체가 바로 인류의 구세주로 오실 예수님을 증언해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구약성경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이 참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첫째, 메시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낳게 될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사야서 7:14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이라 하리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처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는다는 말인가? 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며 병자도 고치시며 없는 것을 있게도 불러 내실 수 있으시는 분이시지요. 여러분은 다 이 하나님을 믿으시지요. 아멘.
둘째, 메시야는 우리와 똑 같이 아기로 태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사야서 9:6-7절입니다. “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공평과 정의로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리라“
왜 전지전능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하필이면 아기로 태어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 일을 통해서 그 신성을 버리시고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그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구주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와 똑 같이 아기로 오시는 것입니다. 아멘.
셋째, 메시야는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고 우리 대신 죽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사야서 53:5, 11-12절입니다. ‘그가(메시야)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해 기도하였느니라.’
메시야의 이 대속적인 죽으심이 바로 우리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 죄에서 구원을 받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믿음이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어 주셨다는 것을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왼 일인지 왼 은혜인지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으심이 저절로 믿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사람들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넷째, 메시야의 성품은 온유하고 겸손하시다고 합니다.
이사야서 42:3절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세상은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짓밟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더 큰 권력자가 되고, 부자가 되고, 권세 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메시야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상한 갈대 같은 사람들이라도 결코 꺾어 버리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사람들이라도 귀하게 보시고 존귀하게 보십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우리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능력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드러나고 나타나는 인품으로 평가되는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멘.
이외에도 구약성경에 나오는 7대 절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5대 제사가 있습니다. 성결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이 있으며 다양한 사건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메시야를 증거 해 주고 있는 말씀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살펴볼 시간이 없습니다. 만약 구약성경에 나오는 메시야 예언을 다 살피려면 수십 권의 책을 써도 부족할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요한복음 5:39절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창세기 35장의 라헬의 이야기는 곧 누구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까? 바로 인류의 구세주로 오실 예수님에 대해 전해 주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야곱의 아내 라헬의 출산 이야기가 예수님을 전해 주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까?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은 그 둘째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게 됩니다. 라헬은 슬픔 속에 죽어가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벤오니)라 부르라고 합니다. 여기서 ‘벤’은 아들이고, ‘오니’는 슬픔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은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야곱은 그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부릅니다. 이 때 ‘벤’은 아들이고 ‘냐민’은 승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은 ‘승리의 아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라헬이 그 아들에 대해 부른 이름과 야곱이 그 아들에 대해 부른 이름이 어떻게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는 것이 됩니까?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메시야는 이 세상에 두 번 오십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첫 번째 오시는 초림 때에는 슬픔의 아들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야가 두 번째 오시는 재림의 때는 승리의 아들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라헬의 출산이야기가 보여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정말 우리 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그렇게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은 첫 번째 오시는 초림 때에는 그 신성을 부인하고 인간의 인성을 취하셔서 우리와 같이 고난당하시고 박해를 받으시며 슬픔을 당하시다가 결국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시는 슬픔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오시는 재림 때에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사 그 신적인 영광을 회복하시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성도들은 구원하시고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승리의 아들 곧 왕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야의 이중적인 사역에 대해 라헬의 이야기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도 역시 메시야의 예언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말씀
창세기 35장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은 이후 1,400년이 지난 때인 예레미야 시대에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떠오는 세계의 최강대국은 바벨론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은 그 힘으로 인근 국가들을 정복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통적인 강대국이었던 애굽을 의지하고 바벨론의 침략을 막아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바벨론의 적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달랐습니다. 우리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성경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어떻게 도와주셨는지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손아귀에서도 구해 주셨고, 홍해에서 광야 40년 동안 어떻게 도와주셨는지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때, 솔로몬 때, 여호사밧 때, 히스기야 때 어떻게 우리 조상들을 위하여 역사하셨는지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용기를 내어 싸우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볼 때 예레미야는 믿음도 없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심지어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앞잡이 매국노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잡혀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서도 예레미야는 그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백성들이 덜 죽게 되고, 전쟁의 피해도 덜 보게 된다고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 전쟁이 일어났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망하고, 1차 2차 3차에 걸쳐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586년 전쟁에서 포로가 된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다가 라마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벨론 사람들이 볼 때 그 잡은 포로의 숫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들을 다 끌고 가는 것은 시간 낭비, 인력 낭비, 물자 낭비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건강하고 바벨론에 가서 써 먹을 수 있는 젊은 사람들만 데리고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죽이려고 계획하였습니다.
이 때 바벨론의 군대 장관 느부사라단은 부하들에게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예언하였던 예레미야를 풀어주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포로에서 풀려나 애굽 즉 지금의 이집트로 떠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포로들은 등급에 따라 분류하여서 대량 학살을 행함으로 포로의 숫자를 줄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이 때 예레미야는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곡 소리를 들으면서 라마를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런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레미야서 31:15-17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도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그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의 이스라엘은 철저히 망하였지만,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이 있게 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나라가 멸망당하는 때이지만,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 국가를 세워주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은 통곡의 시대 즉 벤오니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회복할 때가 되면 벤야민의 시대 즉 승리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우리 주 예수님은 베들레헴 라마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초림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벤오니 즉 슬픔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 대신 고난의 받으시고 죽으실 고난의 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헤롯왕에 의해 2살 아래 아기들 약 20명이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메시야로 오시는 이 예수님으로 인해 이런 슬픔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슬픔의 사건을 마태복음 2:17-18절에서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사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곱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이렇게 볼 때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마태복음 2장의 이 말씀은 창세기 35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6-18절입니다.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였느니라 하매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그리고 또 마태복음 2장의 말씀은 예레미야 31장의 성취입니다. 15-17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도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그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데 이 말씀들이 요한복음 5:39절 말씀에 의하면 구약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메시야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이 세상에 두 번 오시는데 첫 번째 오실 때는 고난의 주로 오시고, 두 번째 오실 때는 영광의 왕 승리의 왕으로 오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동방박사와 라마의 통곡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동방 박사들은 페르시아 메대 지역에 사는 박사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발람이 전해 주었던 메시야 예언을 전해 들었고, 그 예언대로 메시야의 별이 떠오르자 그 별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고국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오게 됩니다.
이 동방박사의 방문으로 예루살렘에서는 소동이 일어나고, 그 후폭풍으로 베들레헴에서는 어린 아기 약 20명이 죽는 학살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마태복음 2장에 기록되어 있는 이 사건들은 창세기 35장의 라헬의 이야기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후 약 1,400년이 지난 예레미야 때에 다시 재현되었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지금 예수님의 초림의 시대는 벤오니 즉 슬픔의 아들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시대는 벤야민 즉 오른 손의 아들 승리의 아들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구속을 믿는 믿음 안에 서서, 예수님의 재림으로 성취될 이 승리의 날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믿음으로 승리하게 될 그 날을 내다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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