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로마서 구원계시의 총 정리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8. 9. 21. 07:46




로마서 구원계시의 총 정리

로마서 8:31-39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변합니다. 그래서 사랑도 변하는 것입니다. 전에 사랑했던 사람을 이제는 미워하기도 하고 전에 원수 같이 생각했던 사람을 이제는 사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은 감정이라고 하지 않고 의지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다고 합니까? 죄인이 된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대속 제물로 내어주시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증거 할 때,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행하신 일들을 가지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로마서 8:28절의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할 때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는 것입니까?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까? 그 마음과 감정 속에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을 뿐 아니라, 그 감사와 감격이 에너지가 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의지로 나타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로마서 8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로마서 8장의 문맥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어떤 행동과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까?

 

1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며 사는 자라고 합니다.

4절입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사는 자라고 합니다.

13절입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며 사는 자라고 합니다.

14절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사는 자라고 합니다.

15절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자라고 합니다.

17절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고난까지 함께 받는 자라고 합니다.

23절입니다. 그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

25절입니다. 참음으로 오래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

로마서는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탄식으로 기도로 중보 해 주신다.’고 합니다.

성령은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예정해 두신 대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가도록 역사하신다.’고 합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성화를 이뤄가게 하시다가, 결국에는 영화롭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해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신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 주신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8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것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에서는 사람들의 죄를 들추어내고 심판하는 두 가지 근거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통해 죄를 들추어내고, 이방인들에게는 양심을 통해 그 죄를 들추어내신다고 합니다.

 

로마서 4장 이후에서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구속에서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나 다른 길을 주신일이 없으십니다. 이렇게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을 우리는 이신칭의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신칭의의 신앙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 구원신앙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삶을 통해, 아담과 예수님의 대표성과 연대성을 통해, 혼인 비유, 율법과의 관계 등등을 통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전해주고 있는 이신칭의 신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실재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변화 즉 중생, 거듭남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생한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살게 되는 성화를 이루어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8장의 설명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8:31-39절에서는 복음에 대한 증거를 다 마친 바울이, 자신에게 놀라운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신 하나님, 가장 공정한 방법으로 가장 의로운 방법으로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 안에 서서, 그 베풀어주신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탄 속에서 그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탄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구원에 관한 말씀은 로마서 1:-8:30절까지 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로마서 8:31-39절 말씀은 죄인이 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시고 죄인의 괴수와 같은 자신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감격, 그리고 믿음의 확증과 고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은혜에 대한 감격과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인지 혹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인지 아는 것은, 그 사람에게 바울과 같은 이런 감사와 감격이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고, 이런 감사와 감격 속에서 이루어지는 믿음의 고백이 있는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말씀하려고 하는 구원론은 이런 구원론과 다른 구원론입니다.

과거에 나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며 그러므로 지금 나는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이 나중에 죽으면 천국 간다는 구원론은 이제까지 말씀해 온 구원론과는 다른 구원론입니다. 이런 구원론을 가지고 있었던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구원파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교인들은 이런 구원파적인 구원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구원파적인 구원론으로 인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도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그 받은 구원에서 떨어진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장함으로 이 사람들은 결국에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살아가는 삶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면 곧 숨을 쉬고 살게 되듯이 예수 믿고 중생한 사람들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이 중생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살아가는 그 삶을 통해 보여주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예수님을 알고 또 믿고 있다고 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있게 되는 중생의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한 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대표가 바리새인들이었고 니고데모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에 이어지고 있는 말씀이 바로 로마서 8:31-39절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내가 확신한다고 합니다. 38-39절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이 구절에서 주어가 누구입니까? 주어가 내가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바울의 자기 확신 바울의 자기 신앙고백을 담고 있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구절을 오해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신앙적인 확신을 담아서 고백하고 있는 이 구절을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확신으로 주어를 바꾸어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울의 신앙고백을 담고 있는 이 구절을 어떻게 바꾸어 해석합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이라면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라면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어떤 조건들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라고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 말씀들은 어떤 말씀으로 이해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그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든지 하나님이 붙들고 있는 사람이 되고 또 그 하나님의 손에서 그 사람을 누구도 빼앗을 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바울은 이런 확신을 가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확신을 우리들도 가져야 하는 확신이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해석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국어 공부를 다시 하고 와야 합니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이런 해석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반성은 교회가 이런 잘못된 구원관과 확신을 성도들에게 전해 주므로, 이 잘못된 확신은 성도들로 하여금 사망의 잠을 자게 했다는 반성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잘못으로 성도들은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지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믿는 자라며 당연히 살아가야 하는 믿음의 삶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도들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을 정죄한 자는 아무도 없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또 성도들은 예수를 믿고 있는 나를 그 무엇도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손에서 끊어 낼 자 없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빼앗아 낼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부터는 분명하게 예수 믿는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를 믿는다면 참 믿음을 가졌다면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러면서 너희가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그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이 바로 로마서 후반부의 내용들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얻게 되는 죄 사함과 칭의는 죄인인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자 세상에 빛이 있게 되었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보고 너는 이제 의로운 자다.’ 라고 칭해 주실 때 실재적으로 우리 안에서는 의로운 사람으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칭의는 우리의 존재의 변화와 함께 하나님과의 관계의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우리의 존재의 변화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는 우리 안에는 아담 안에 속한 악한 본성들이 있었는데, 이 악한 본성들과 함께 의롭다 칭해 주시는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주시는 의로운 새로운 본성이 함께 존재하게 되는 존재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계의 변화란 무엇입니까?

이렇게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 그때부터 우리는 비로써 거룩하신 하나님과 부자지간의 관계를 맺고 믿음으로 살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견인해 주심 안에서 날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점점 하나님을 닮은 의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숙되어 나가게 되는데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야할 삶은 바로 이렇게 성화를 이뤄나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오래 성화를 이뤄 나간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성화에는 이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완전한 의로움에 이르게 되는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게 되어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그때입니다. 그 때 우리 주 예수님이 어떠하신 것 같이 우리들도 주의 영화로운 형상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가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이런 믿음의 삶을 성경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과거에 얻게 된 칭의 안에서 이루어지는 존재의 변화 관계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삶을 통해 계속됩니다.

그리고 미래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완성되어 영화롭게 되는 때에 의의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 믿고 의롭게 되는 것은 과거에 예수를 믿고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었을 때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성화를 이뤄 나가는 삶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종말론 적인 완성을 앞에 남겨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은 예수를 구주로 믿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종말론적 완성을 바라보고 참고 인내하며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관계를 신학에서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독교회 안에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후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사람들, 구원의 완성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죽으면 천국 간다. 라고 하면서 오늘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하는 신앙을 조롱하는 말로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결국 하는 말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도 그 살아가는 삶에 따라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결국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그 살아가는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믿음으로 받게 되는 구원을 말할 때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면 오는 두 가지 변화 즉 존재의 변화와 관계의 변화를 동시에 말해야 합니다. 존재의 변화는 예수 믿고 의롭다 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존재의 변화는 동시에 관계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 관계의 변화 안에서 하나님과 원수로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면서 열매 맺는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믿음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로마서 8:31-39절에서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두 가지 확신 속에서 살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입니다. (8:31-34)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조건은 로마서 앞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아들의 형상을 본 받아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는 네 가지를 확신하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우리를 아무도 대적할 수 없다고 합니다. 31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고 합니다. 32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를 아무도 고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33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를 아무도 정죄할 수 없다고 합니다. 34

 

또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 하고 있는 사도바울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나는 환난 곤고 박해 등등을 넉넉히 이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존재하는 그 무엇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전해 주고 난 후 그 구원계시에 대해 총정리하고 총결산하면서 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가지고 고백하며 살아야 할 신앙고백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여기에 대한 부수적인 내용 또 구체적인 내용들은 다음 시간에 한 번 더 살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고백하고 있는 이 바울의 신앙고백과 확신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며 살아가는 신앙고백이 되고 확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 이 확신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되고 확신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