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10. 24. 08:38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15가지 속성들을 살펴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 사랑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

 

무례히 행한다.’는 말은 희랍어로 아스케모네이입니다.

이 단어의 스케마 형식, , 예법, 방식 등을 뜻하는 단어에, 라는 부정접두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다.’는 이 말의 뜻은 형식, , 예법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무례하게 행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무례히 행하는 것은 예의가 없고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막무가내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정리하면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분적인 인격을 갖추지 못한 채 자신이 좋을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여서 상대방을 질리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 12월 명문대(고려대)에 다니는 어떤 남학생이 같은 과에 다니는 여학생과 1년간 사귀다가 헤어진 후에 만나주지 않는 여학생 주변을 맴돌려 스토킹을 하는 등 무례한 행동을 해 오다가 그 여학생이 다른 남학생과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하숙집까지 따라 들어가서 목 졸라 살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이 남학생이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이렇게 무례하게 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2. 무례히 행하지 않는 사랑의 특성입니다.

 

사랑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나타나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십계명을 보면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사랑에 대해 말씀하고 있고 5-10계명을 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사랑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무례히 행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무례히 행하지 않는 사랑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무엇입니까?

 

첫째, 사랑은 비인격적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는 인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누가 더 많이 배웠고 누가 좀 덜 배웠고, 누가 더 현명한 판단을 하고 누가 덜 현명한 판단을 하고, 누가 더 진리에 가까운 말을 하고 누가 더 진리에서 먼 말을 하는지 등등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주장이나 말이 진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는 한 사랑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규범과 질서를 지키고 예의범절을 갖추고 행동하게 하는 등 인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은 인격적인 특성을 지닌 사랑입니다.

사랑은 내가 가진 신앙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신천지에 미혹된 사람들로 인해 파괴되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진 신앙이 바른 신앙이라는 말입니까? 아니라는 말입니까? 바른 신앙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또 내가 만나고 있는 상대방 또한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반사회적이고 반 가정적이 되게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 한다고 하면서 막대하는 사람들이나,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여자와 외도하는 사람이나, 남편을 사랑한고 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나, 연인을 사랑한다면서 집착하고 괴롭히는 것들은 결코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둘째, 사랑은 예의범절을 지키게 합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무례하지 않는 사랑은 상대방을 대할 때 인격적으로 대하게 할 뿐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범절을 지키게 합니다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은사 파들 중에는 자신이 받은 은사를 내세우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고 나이도 어린 사람이 윗사람의 이름을 막 부르고 혹은 아무에게나 막 반말을 하고 심지어 목회자도 교회 권위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고 무례하게 행동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을 보십시오. 십계명은 하나님이 주신 예의범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4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예의범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10 계명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범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 주신 십계명에서 예의범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무례히 행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또 사람들이 사람들에게도 무례히 행하는 것도 싫어하십니다. 레위기 19:32절 말씀에서는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경외하는 사랑을 하게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랑을 하게하고 윗사람에게 예절을 다하는 사랑을 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대할 때 예의범절을 지키게 하는 사랑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면서도 어른들을 공격하는 사람은 바른 믿음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윗사람을 무시하고 거역하는 사람들은 바른 믿음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센 머리 앞에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노인들을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믿는 사람들이 행하며 살아야 할 삶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천박하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천박하신 분이 아니시고 위엄과 품위가 있으신 분이십니다하나님이 예수 믿는 우리에게 부어주신 성령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임하시면 비록 전에는 천박하게 살던 사람일지라도 곧 거룩하게 하고 품위 있고 고상한 사람으로 변화시켜가십니다.

 

셋째, 사랑은 질서를 존중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규범과 질서를 존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반영하고 있는 이 세상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 세상입니까? 태양계가 얼마나 질서 정연합니까?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이 질서에서 조금만 달라져도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양계와 은혜 계와 이 전체 우주까지도 아주 질서정연하게 조성해 놓으셨습니다. 그 안에 속하여 있는 지구와 달이 얼마나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구의 대기권 안에 있는 기후는 어떻습니까?

4계절의 변화는 얼마나 질서정연합니까? 이 세상이 창조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창조의 질서를 깨뜨린 신 일이 한 번도 없으십니다.

 

이 세상 뿐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해 주고 계신 저 천국은 또 얼마나 질서가 완벽한 곳입니까?

천국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예절과 규범과 질서를 지키며 사는 곳입니다. 모든 질서와 조화와 규범은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신적 성품입니다. 그리고 참된 사랑은 이 규범과 질서 속에 존재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무질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일그러진 마음을 성령을 통해 질서 있는 마음으로 회복시켜 나가시는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며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고 또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이라는 가치와 질서를 회복해 나가는 삶을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질서를 깨는 것은 마귀적인 것입니다.

질서를 가장 처음 깬 존재가 바로 사단 마귀입니다. 사단은 본래 하나님 찬양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그런데 사단은 자신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질서에 만족하지 못하고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정해 주신 질서를 깨고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습니다.

 

이런 사단의 영향을 받으며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 사회 질서를 깨뜨리는 일을 자행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능력, 예언, 방언 등등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자신의 받은 은사를 자랑하며 서로 자랑하고 다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 특히 여자 성도들에게 이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고린도 전서 14:33-34절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질서의 나라 순리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곳에서는 무질서가 옵니다. 하나님을 떠난 교회는 무질서한 교회가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 비록 성도들이 세속 사회에서는 높은 지위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집에 와서는 잠잠한 것 같이 여자 성도들은 교회에서는 잠잠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모든 일을 행할 때 자기 지위와 위치를 지키라는 말입니다.

 

넷째, 사랑은 전통과 사회적인 규범을 존중하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1:2절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이 말씀은 사회적인 규범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 사회적인 규범은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는 것은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며 반면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여자들은 마치 머리를 민 것 같이 여기라고 합니다. 당시 머리를 민 사람들은 창녀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고 기도하는 여인들은 창녀같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그 사회 전통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과는 다릅니다. 오늘날은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자가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전통이 진리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으면 좋은 전통을 존중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전통과 규범과 가치관을 무시하지 말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규범을 깨뜨리는 어떤 일을 자행합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둘이 한 몸이 되고 둘이 하나가 됨으로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인 규범을 깨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바로 가족의 해체현상과 동성연애의 대두입니다. 그런데 일부이지만 이렇게 사회적인 규범을 깨는 일을 정당하다고 하면 돕고 있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깨뜨리는 일입니다.

이것이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 정상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동성애를 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하나님은 무례함을 싫어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7장을 보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과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여서 예수님은 그 제자들과 함께 바리새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셨습니다. 그 때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시고 계신 것을 알고 향유담은 옥합을 가져와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인이 마음속으로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그 여자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 것이라고 생각함을 아시고 그 바리새인 시몬의 무례함을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보통 손님을 청하면 발 씻을 물을 다 주는데 너는 그 일도 하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그렇게 더러워진 내 발을 눈물로 적시고 그 자신의 머리털로 닦았다는 것입니다.’ 너는 손님으로 온 나와 입 맞추지도 아니하였으되 그녀는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너는 내 머리에 싼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값비싼 향유를 내 머리에 부었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에게는 그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그 여인에게 무례하게 행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까? 없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무례한 바리새인 시몬은 책망하시고 그 여자에게는 무슨 말씀을 주셨습니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요한복음 12장의 말씀을 보면 또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여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고 마르다는 음식 대접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습니다.’ 가롯 유다가 이 광경을 보고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정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무례함을 책망하시면서 마리아를 이렇게 변호해 주셨습니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무례함을 싫어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례한 사람들을 책망하시고 무례한 대우를 받는 성도들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예절의 창시자이십니다.

 

무례하지 않는 사랑은 예절을 갖추고 있는 사랑입니다.

이 예절을 갖추고 있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이 성품은 만물 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물을 보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 식물,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즘 생태 교란식물들 생태 교란 동물들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리나라 생태계를 교란 시키는 나무와 풀들 때문에 토종 나무들이 다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생태를 교란시키는 물고기 때문에 토종 물고기들이 씨가 말라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생태교란 동식물들을 염려하고 제거하기 위해 수고하고 또 연구하듯이 예절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예절에 어긋난 사람들을 인해 염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성품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 속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신 새 사람 속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 속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참으로 높은 예절을 소유한 단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들은 무례하지 않는 사랑을 즉 예의범절을 가진 성도가 되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창조세계 속에 편만합니다.

은방울꽃을 보면 방울처럼 생긴 꽃이 얼마나 질서 있게 피어 있습니까?

보리나 강아지풀을 보면 얼마나 질서 있게 그 열매가 맺혀 있습니까?

우리가 즐겨 먹는 옥수수는 어떻습니까? 그 알알이 얼마나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습니까

 

자연세계 속에서 뿐 아니라 영적 세계에서도 질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언을 하거나 방언을 할 때 질서를 따라 하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사를 받았다는 은사주의자가 교회에 나오게 되면 그런 사람들은 얼마 있지 않아서 교회 구성원들을 다 파악하고 나면 곧 바로 이 사람들은 상하를 무시하고 막무가네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담임목사도 무시하고 교회 권위도 무시 합니다. 사단 이런 사람들을 활용하여 역사합니다.

 

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따라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은사를 받았음에도 하나님이 주신 위계질서가 있음을 깨닫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교회의 질서에 순복함으로 그 질서 속에 일원으로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질서에 순복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어느 한 교회에 머물지 못하고 이교회 저 교회로 떠돌아 다니는 떠돌이 신자가 됩니다.

 

무질서는 결코 영적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진정 영적인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구분하는 잣대가 바로 예절이며 질서에 순응함입니다. 마귀적인 사람은 결코 질서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예의범절을 갖춘 사람이 되지도 못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이 진리에 속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첫째, 무례히 행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둘째, 예절을 지키는 사랑입니다.

셋째, 질서를 지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절 질서 규범을 지키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가진 삶에 대해 에베소서 5-6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섬기고, 순종하게 하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피차 복종하게 하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으로 복종하게 합니까?

부모는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양육한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게 된다고 합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한다고 합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복종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사랑이 맺게 하는 그 삶의 열매라고 합니다.

이런 열매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이런 삶의 열매들을 맺으며 살아가는 거룩한 한 주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