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서

구약의 복 있는 사람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11. 7. 08:38

 

 

복 있는 사람

시편 1:1-6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시편 1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오늘 우리는 이 시편 1편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은 누구이시겠습니까?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십니다.

 

그러면 사람 중에서는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시고 또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그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복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도 주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면서 그 은혜와 사랑을 세상에 전해주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이런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전도자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가장 명확하게 확인하게 되는 때는 죽은 이후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육체는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고, 그 가진 믿음의 유무에 따라 예수 믿는 사람들의 영은 낙원으로 가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은 음부로 가 있게 됩니다.

 

그러다가 백 보좌 심판을 앞두고 음부와 낙원에 있는 영들이 모두 거룩한 영체를 입고 부활하게 되는데, 이 때 낙원에 있는 영혼들은 부활체를 입고 천국으로 들어가고, 음부에 있는 영혼들은 부활체를 입고 지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때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던 성도들은 자신이 참 행복자라는 것을 명확하게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목적으로 삼고 있는 행복은 바로 장차 천국에서 누리며 살 이 행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은 행복을 어디서 찾습니까? 이 세상 속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세상이 주는 행복을 누리기도 하지만, 그러나 세상이 주는 행복은 잠시 잠깐의 행복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행복은 일이 잘 되어서 행복해 하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불행해지는 그런 행복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속에서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이 세상의 조건과 환경을 넘어서는 행복이고, 영적인 행복이고, 참 되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시는 참 행복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고,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세상이 주는 행복과 다르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르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나는 항상 기뻐한다.’ 너희도 비록 로마의 박해 속에 어렵게 신앙생활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의 바울은 하나님도 몰랐고,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방법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이 전해 준 유대 종교와 율법을 통해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이런 바울이 볼 때 초대 교회는 유대종교의 파괴자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 선봉장을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고 있었던 당시 바울의 심령상태에 성경은 무엇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까? 마치 가시 채를 발뒤꿈치로 계속차고 있는 것 같이 아주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시 채를 발뒤꿈치로 계속 차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곧 가시에 살점은 헤어져서 피가 나고, 나중에는 그 가치 채가 뼈에 부딪치면서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교에 있을 때 바울의 심령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런 바울이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나는 항상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감옥에서도 너희는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라.’ 라고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을 권면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성도들은 복음 안에서 구원받은 구원의 기쁨, 하나님의 사랑의 감격 속에서 느끼는 충만한 사랑의 기쁨, 성령이 주시는 은혜 안에서 느끼는 희락과 믿음이 확신이 주는 기쁨 등등을 누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왜 시편 1편의 말씀을 살펴보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시편 1편에서는 참 복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이 2019년에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사는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 1편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시편 1편에서는 어떤 사람이 참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생각할 때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의 이 말씀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시편 1:1-2절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복이 있는 사람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게 된다.”라고 하고 있는데도, 이 말씀을 도덕적이고 윤리 적을 바꾸어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 즉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사람,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또 하나님 좋아하시는 일 즉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즉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은 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꾸 이 말씀을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생각하여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은 하고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늘 부딪혔던 것도 이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다고 늘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살아가는 삶속에 나타내며 살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울이 쓴 서신들을 보면, 그 앞부분에서는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되는지에 관한 교리적인 설명을 하고 난 후에, 그 뒷부분에서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살아가야 하는 구체적인 삶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말씀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바울이 세운 교회들을 찾아다니면서 바울의 말처럼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도 믿어야 하지만 예수를 믿는 믿음 하나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으면 하나님의 백성의 표인 할례도 받아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도 지켜 행해야 한다고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세운 교회들의 신앙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에서 흔들리고 있는 교회들을 향해 바울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1:6-7,9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아주 강한 어조로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오류를 극복하고 시편 1편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시편 1편에서는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까?

첫째, 복 있는 사람이 되려고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믿음 안에서 복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사람이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시편에서 사용하고 있는 복 개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에서 사용하고 있는 복이라는 단어는 아쉬레이(י???)입니다. 아쉬레이’(י???)는 우리의 행동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가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의 존재나 상태를 보여주는 형용사입니다.

 

우리는 이 아쉬레이 라는 형용사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시편 1편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행동이나 동작을 해서 받게 되는 그런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복은 이미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존재가 되고 그런 상태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1편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이미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은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면서 사는 삶을 통해 나타내 보여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시편 1편에서 말씀하는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인의 꾀를 멀리하고, 죄인에 길에 서지 않으려고 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으려고 하며,’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살아가고자 힘쓰고 애쓰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시편 1편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 있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는 상태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살아가는 삶 즉 악인의 꾀를 쫒지 않는 삶,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삶,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삶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순종하여 살아가는 삶을 통해 보여주며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신자들이 있습니다.

 

1)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기 위해서 수고하고 노력하고 힘쓰고 애써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굉장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 헌신과 열심이 다른 사람이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어디서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 당시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바리새인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는 칭함을 받기 위해서 정말 열성적으로 율법을 지켜 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도 낫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왜요. 바리새인의 의는 인간적인 열심에서 나온 인본주의적인 의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가려면 이런 인간의 의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인간의 의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얻게 되는 믿음의 의로 되기 때문입니다.

 

2)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은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이미 받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그 육신은 이 땅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그 영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하늘나라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 복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살아오셨습니까?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 밖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살기 위해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이미 다 받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복을 받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와 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 그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하늘에 속한 복과 땅에 속한 복들을 다 주셨습니다. 로마서 8:31-32절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복 중에 최고의 선물은 그 아들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아들까지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나머지 것들을 주시는 것은 얼마나 쉬우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안에서 하늘에 속한 복과 땅에 속한 복을 이미 우리들에게 다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복들을 다 누리고 살면 됩니다. 우리 모두는 이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다 누리며 살아가는 참 복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이미 다 받아 누리고 살고 있다면 왜? 무엇을 더 얻기 위하여? 그렇게 새벽마다 기도하고, 매주 예배드리고, 때로 전도하고, 거룩한 성도로 살려고 그렇게 애쓰고 힘쓰느냐?’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싶어서 그렇게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내게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너무 감사해서 그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위해 나의 마음을 바치고 정성을 바치고 힘을 바쳐서 사는 것뿐입니다. 저는 오늘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둘째, 복 있는 사람들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듯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의 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그는 누구입니까? 그는 앞에서 말씀한 복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이미 복 있는 사람이 된 그런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믿음 안에서 이미 복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면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사는 삶을 통해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리에 않지 않는 삶을 통해서 보여주며 살게 됩니다.

 

3절 말씀에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함께 하시면서 은혜와 복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마치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이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형통을 누리며 살게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시냇가에 심긴 나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시내의 풍부한 물과 함께, 땅 속에 녹아 있는 양분을 뿌리로 빨아들이고, 또 하늘의 햇볕을 받아 탄소동화작용을 하여서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철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가 그런 삶의 예를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성경 속에는 이런 예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어받아 가나안 땅에서 살 때 그 땅에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이삭에게 하나님은 너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에 거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복을 줄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과 그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랄 지방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이삭은 기근 중이지만 샘을 파서 그 얻은 물로 농사를 지었고 그 기근 중에 100배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이삭의 삶을 창세기 26: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랄 지방에 살고 있던 블레셋 사람들은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극심한 기근 중에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이 드는데 자기들 땅에 우거하러 온 이삭은 100배의 수확을 거두고 또 양과 소가 계속 생산을 하여 때를 이루게 되어서 점점 그 재산이 늘어나고 종들도 심이 많아지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여 이삭이 사용하고 있던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 판 우물들을 메우고 또 자기들의 땅에서 떠나가라고 하면서 쫒아내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삭은 어떻게 기근 중에도 이런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의 기업을 이어 받았던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답게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에 거하라 그러면 네게 복을 주리라.’ 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가나안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삭의 삶 속에 은혜를 베푸셔서 기근 중에도 100배의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되는 형통의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또 이런 예를 동일한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야곱 때도 온 세상에 기근이 임하였습니다. 이삭의 아들이었던 야곱은 아버지에게 교육받은 대로 기근 중에도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얼마나 심한지 먹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곡식의 여유가 있어서 그 여유 곡식을 팔고 있다는 애굽으로 그 아들들을 보내 양식을 사오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야곱은 믿음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기서 내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여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자손 70명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산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때로부터 약 430년 후에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 자손의 숫자가 약 200만 명으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여러분 430년 만에 70명이 200만 명으로 불어나게 되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번성케 해 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가 헤로토투스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막은 어떤 곳입니까? 사막은 덥고 혹독한 기후로 인해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는 어떤 곳입니까? 오아시스는 따뜻한 기후와 풍부한 물로 인해서 각종 식물들이 풍성히 자라나는 곳입니다.

 

헤로도투스는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상태가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사막 같은 이 세상 속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누리며 사는 복인 것입니다. 아멘.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 서 있는 우리들은 이렇게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내가 복 있는 성도로 살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나는 이미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사막 같은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비록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지만 내 마음은 내 영은 이미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라는 믿음입니다. 저는 이 믿음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별 볼일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세상의 복과 신앙의 복 육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이미 다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복들을 다 누리며 살 자격이 있고 권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 안에서 첫 번째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 안에서 두 번째 알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주신 이 모든 복들을 누리며 사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복들을 누리며 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신명기 28장의 말씀은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28:1-2절입니다. 네게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라고 하면서 네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네 자녀가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는 등등 하나님이 그 삶 속에 주시는 다양한 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약속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서 1:8절입니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구약성경 출애굽기도 우리에게 이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갔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주마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그 약속하신대로 자신들에게 주실 것을 굳게 믿고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약속의 땅으로 가려고 나왔지만 믿음이 없어서 순종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예들을 말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살아가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 그 주신 약속들을 믿고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뜰에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는 하나님의 치유의 말씀을 믿고, 그 자신의 불치의 병을 고침 받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 주신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였더니 문둥병이 치유를 받았고 또 각종 불치의 병이 고침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는 우리의 육신적인 삶에서 뿐 아니라 영적인 삶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 깊은 영적 은혜들을 누리면 살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영적인 은혜와 복을 다 주셨다는 것을 믿었고 이런 믿음이 있었던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깊은 영적인 복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믿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는 깊어진 믿음만큼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금 이런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누리며 살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그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믿고 의지하며 살지 않고, 우리의 재능과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으로 살려고 하고 있을 때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땅에 속한 사람으로 살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역사를 경험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들을 경험하고 살려고 하면 하늘에 속한 하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복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통해 우리들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그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살아갈 때 우리의 삶 속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한 삶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직업과 하고 있는 일과 활동하는 분야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현실 속에 있든지 우리에게 주어진 그 현실 속에서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면,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고 있는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면, 하나님의 말씀에 약속하고 있는 은혜의 역사과 교회 안에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면, 우리 직장 안에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한 은혜의 역사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복을 다 받아 누리며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서 믿음이 있는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그 모든 은혜와 복들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셋째, 그 살아가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인정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사람

 

그러면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철 스님을 보십시오. 그의 절제된 삶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을 보십시오. 무소유를 주장한 그의 삶을 탐욕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보십시오. 전에 신앙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 추모하지 않았습니다.

또 천안함 사건 때 살신성인의 군인 정신을 보여준 고 한준호 준위도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그 군인정신을 인정하여 충무무공훈장까지 수여하지 않았습니까?

경제인으로는 주식회사 현대를 일으킨 고 정주영 회장이 있을 것입니다. 정주영 회장의 일대기를 보면 정말 뛰어난 경제인인 것을 누구나 인정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혁신 경영을 통해 구멍가게 수준이던 삼성을 세계일류기업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이 사람들은 스스로의 노력과 수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높은 차원의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해도 그렇게 능력 있고, 절제되고, 높은 윤리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우리들도 이런 사람들의 성공적인 삶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 대해 시편 1편 말씀에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그런 사람들이 삶을 바람에 나는 겨 즉 쭉정이와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람에 나는 겨 쭉정이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쉽게 압니다. 추수할 때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 알곡과 껍질을 담아놓고 키질을 하면, 껍질은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다 날아가고 오직 무거운 알곡만 남게 됩니다.

시편 1편의 말씀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믿음을 갖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결산하고 추수할 때 이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 말씀에서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여, 의인의 모임에 들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기서 인정해 주신다는 말을 다르게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아신다.” 혹은 하나님께서 보살피신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사람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시는 사람이라고 하시는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종말 비유 중 하나인 열 처녀의 비유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시는 사람들과 모르신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 사람들은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혼인예식에 참여하게 된 지혜로운 다섯 처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르신다고 하신 미련한 다섯 처녀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 사람들은 등은 준비하였으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입니다. 이 처녀들은 혼인 예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고, 다른 성경에 의하면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겨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종말에 관한 비유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시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니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겨 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아시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믿음과 삶을 인정해 주신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사람답게 그 자신도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고 있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내가 이새의 아들 중에서 이스라엘의 2대 왕을 택하였다고 하시면서 그는 나와 마음이 합한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고백하기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께서도 다윗을 잘 알고 있으셨고, 다윗도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거듭난 사람으로서, 이미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의 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때 성도들이 누리고 사는 형통의 복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주시는 세상적인 복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지혜의 복, 통찰력의 복, 환경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형통의 복, 등등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십니다.

 

이렇게 볼 때 복 있는 사람들은 두 가지 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복은 세상이 전혀 줄 수 없는 영적인 복입니다.

이 복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주신 구원의 복이며, 영생의 복이며, 하늘 시민권을 가진 복입니다. 이런 복은 세상이 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으신 복이며, 오직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만 주시는 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어서 받게 된 복이 아닙니다.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복이며 은혜로 선물로 주신 복입니다. 할렐루야!

 

그 두 번째 복은 세상도 줄 수 있는 복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일관성 있게 증거 해 오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던 사람이었던 여호수아 갈렙, 그리고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영적인 복만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영적인 복과 함께 세상적인 복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복 뿐 아니라 세상적인 복도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마음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고 또 듣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두 가지 복을 받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의 복도 받아 누리고, 형통한 삶의 복도 받아 누리고, 또 하나님께 의인이라는 인정함을 받을 뿐 아니라, 장차 주시는 하늘나라의 복도 받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다운 삶 즉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행치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 하시면서 형통함을 주시고 또 이런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시고 장차 하늘나라의 복을 누리며 사는 특권을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19년 이 하반기에 우리 모두는, 복 있는 성도, 형통한 성도,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는 성도로서, 이런 성도들에게 주시는 모든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한 해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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