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성탄절은 어떤 날인가?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0. 1. 4. 18:42



성탄절은 어떤 날인가?

마태복음 1:18-23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날입니다. 2019년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가져다 준 로 인하여 불행탄식절망 속에 빠져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유일한 희망이 무엇입니까? 아담의 죄에서 인류를 구원해 주시는 분으로 약속되고, 또 그 약속을 성취하러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어 주신 예수님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창세기 3:15절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 주실 것이라 약속하신 그 메시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서 7:14절에서 약속하신 대로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이 성탄절을 기념합니까?

우리가 성만찬을 기념함으로 그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주의 오실 때까지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듯이, 우리가 성탄절을 기념함으로 우리 구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재림의 주로 다시 오실 그때까지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2019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두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성탄절의 유래이며, 다른 하나는 성탄절의 의미입니다.

 

첫 번째 살펴볼 것은 성탄절의 유래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1225일을 성탄절로 지킵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교회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AD 200년 경 부터입니다. 그러나 AD 300년 초 까지는 교회의 주된 관심이 ‘31체 하나님에게 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인성보다는 신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성탄에는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대영백과사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초기 교회 축제 중에는 없었다.’

 

그러다가 4세기에 접어들면서 삼위 1체 논쟁은 끝이 나고 기독론 논쟁이 중요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성탄절에 대한 가르침이 교회에서 보편화되어 갔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주후 349년 로마 교황 율리어스1225일을 크리스마스로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지키고 있는 성탄절의 공식적인 시작입니다.

 

그러다가 5세기 이후에는 각 지역마다 독특한 성탄문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5세기 중반부터는 크리스마스 축제가 시작되고,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 성탄절을 중요한 절기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의 기원

  

초기교회가 성탄절을 지켰다는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성탄절의 기원에 대한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탄절이 교회 내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와, 다른 하나는 이교문화의 전통을 교회가 흡수한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1. 이교문화 기원설

 

가톨릭 백과사전에서는 성탄절 축제의 기원이 이집트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의 농경 신 사툰과 태양신 미트라를 기념하기 위해 지켜오던 날이 성탄절의 기원이라고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무적의 태양신들인 쏠 임빅투스의 날로 지켜오던 날이 성탄절의 기원이라고 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성탄절은 로마의 태양신 축제에서 기원한 날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방신을 섬기던 날이 혹은 로마인들이 지켰던 절기가 성탄절이 되었다고 하며 성탄절 지키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2. 교회 기원설

 

교회가 성탄절을 1225일로 정한 것은 누가복음 1:26절에 근거합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제사장 사가랴가 대 속죄일에 속죄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천사를 만나고 천사로부터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계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이 대속죄일 직후인 925일 경에 세례 요한을 잉태하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26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잉태는 세례요한보다 6개월 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잉태는 이듬해 325일에 한 것이 됩니다. 여성이 아기를 잉태하면 약 9개월 후에 아기가 태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계산을 하여 보면 1225일 경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이 됩니다. 이 주장은 설교를 너무 잘해서 황금의 입이라고 불려던 대주교 요한 크리소스톰386년에 한 것입니다.

 

또 다른 견해는 유대인들은 창조와 구속이 같은 날 일어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월절 기간인 닛산 월 14일에 돌아가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터툴리안은 이 닛산 월 14일이 태양력으로는 325일로 계산해 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견해와 같이 창조와 구속이 같은 날이라면 예수님을 수태하신 날이 곧 돌아가신 날이 됩니다

이런 기초적인 이해 위에서 정리해 봅니다. 여성이 아기를 잉태하면 약 9개월 후에 태어나게 됨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신 3월 25일에다가 9개월을 더하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은 1225일이 됩니다. 이것은 서방 교회가 성탄절을 12월 25일에 지키는 견해였습니다. (참고로 동방 교회에서는 조금 다르게 계산하여서 16일을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탄절을 지켜 온 과정

 

교회가 성탄절을 지켜온 역사를 보면 AD 30년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 후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지켜오던 생일날인 1225일을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로 지켜왔습니다. 당시에는 교회가 박해 받던 시대라서 집이나 비밀장소에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도 은밀하게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BC 46년경이 되었을 때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 1225일을 로마의 절기인 동지로 정하고 지키게 합니다. 금년에 동지가 언제입니까? 1222일 바로 지난 주일이 우리나라 절기로 동지입니다. 이 날은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과 로마의 동지가 같은 날로 겹쳐지게 됩니다.

이때 로마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이 탄생한 날로 지켜오던 성탄절과 로마가 절기로 지키는 동지가 겹쳐지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밤이 가장 긴 동지에 태어나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이 날을 지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같은 날 1225일에 로마인들은 동지로 지키고 성도들은 성탄절로 지켰습니다.


참고로 역사적 기록들을 보면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달력을 기준으로 1225일을 하누카로 지켰습니다. 하누카는 빛의 축제라는 뜻인데 이 날은 BC 165년경에 제사장 마타티아스의 네 아들이 혁명을 일으켜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를 물리치고 예루살렘 탈환한 것을 기념하여 지켰던 절기입니다. 이 날 이방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어둠이 물러가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빛을 찾았다고 하면서 아홉 가지를 가진 촛대에 불을 밝혀 기념했습니다.

 

이렇게 1225일은 여러 민족과 각종 종교에서 아주 의미 있는 날로 지켜오던 날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로마에 의해 박해 받던 기독교가 로마의 공인된 종교가 되고, 이후 기독교가 유럽 전역에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기독교는 로마사회의 대표적인 문화의 주도세력이 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나중에는 기독교인들이 1225일에 지켜오던 성탄절이 로마가 지키는 대표적 축제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탄절이 이교 종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든가, 태양신 축제의 변신이라고 하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낭설에 불과합니다. 이미 기독교 내부에서는 예수님이 1225일에 탄생하신 날로 알고 기독교가 박해를 받아온 오랜 기간 동안 조용히 지켜 온 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뜸해 지는 시기가 되자 비로써 성탄절에 대한 기록들이 역사상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이 성탄절은 로마의 문화로 정착되어 지금까지 지켜오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의 반전

 

그러다가 종교개혁시대가 되면서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반전이 일어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교회가 각종 형상과 우상을 만들어서 기독교를 미신적인 종교로 변질 시킨 것을 바로 잡고자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만을 유일한 신앙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없는 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보고 하나 둘 교회에서 제거하여 나갔습니다.

 

이런 과정 중에 부각된 문제가 바로 부활절과 성탄절이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연관되어 있고,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과 연관되어 있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이 두 절기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논의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5774월에 열린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에서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때 성찬을 집례하고 말씀을 강독하는 자는 성직을 박탈한다고 결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성경에 나오는 말씀강론과 세례와 성찬만 이 세 가지만 기독교 예식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런 전통은 이후 영국교회로 이어져서 1643년 영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금지하기에 이릅니다. 다시 이런 전통은 청교도들에게로 이어져서 청교도들이 만든 웨스트민스터 대 요리문답35문에서는 교회에서는 오직 말씀의 설교와 세례와 성찬만 시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적인 전통을 이어 받은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성탄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설교자로써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아더 핑크 목사는 크리스마스 놀이는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완전히 세상에 속한 것으로서 로마 가톨릭의 이교적인 관례이므로 더 이상 당신이 이 열매 없는 어둠의 일과 교제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하십시오. 당신은 주님께 속한 자유인이므로 세상에 속한 이 값비싼 관습에 매여 있을 수 없음을 말입니다.’

 

설교의 황제라 불리는 스펄젼목사는 우리는 때와 절기들에 미신적인 가치들을 두지 않습니다. 분명 우리는 현재 교회력으로 규정되어 있는 소위 크리스마스를 믿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는 결코 마스 즉 미사를 믿지 않고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는 구세주의 생일로서 어떤 특정한 날을 지켜야 한다는 성경적인 근거를 도무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종교개혁교회에서는 월삭, 부활절, 맥추 감사절, 추수감사절 등등의 절기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복음주의 전통에 서있는 교회들은 성탄절을 계속 지켜왔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복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선교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성탄절을 교회의 중요한 절기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성경에서 지켜 행하라는 말씀이 없는 성탄절을 지켜야 합니까? 폐지해야 합니까?


성탄절을 지켜온 우리교회의 입장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정확한 날을 모르는데 지킬 필요가 있느냐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성탄절은 이교문화에 근거한 날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성경에 성탄절을 지키라는 말씀이 없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가 누가복음의 해석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은 1225일 경이 됩니다. 그리고 이 날을 처음에는 일부 교회에서 지켜오다가 나중에 교회가 공식적으로 이 날을 교회 절기로 확정하고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해 주어도 믿을 수 없다고 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탄절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견해를 인정하고, 이 날이 이교문화에서 중요한 날이라고 하면서 성탄절 지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지키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 날에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고 믿고 있는 교회에서는 이 날을 교회의 내려오는 전통에 따라 성탄절로 지키면 됩니다.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세례와 성만찬에 대해서는 성경에 분명하게 세례를 주라. 성만찬을 기념하라. 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라.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라. 는 말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성탄과 부활이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내용이지만 이것을 절기로 지키는 것을 금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볼 때 성탄절에 관한 중요한 논점은, 성탄절이라는 그 날의 중요성 보다, 성탄절이라는 의미의 중요성에 있다고 봅니다.

 

만약 우리가 성탄절이라는 날을 중요시하면 오늘날 세속 사회에서 성탄절을 즐기며 노는 날로 알고 있듯이 교회에서도 그렇게 되어갈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탄절이라는 의미를 중요시하면 이 성탄절은 우리 신앙에 많은 유익을 주는 날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탄절을 지키되 성탄절이라는 날보다 성탄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살려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교회는 이 성탄절을 두 가지 의미에 중심을 두고 그간 성탄절을 지켜왔고 또 앞으로도 지켜갈 것입니다. 첫째는,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들은 이 날을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주셔서 베풀어주신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날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해서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전해 주는 날로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성탄절을 지키는 이유가 성도들에게는 그 믿음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 불신 세상을 향해서는 복음 증거라는 선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지킨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종교개혁자들의 전통을 이어 받아, 구약 유대교에 근거를 두고 있는 각종 절기 즉 월삭, 안식일, 안식년, 희년, 맥추 감사절 등등과 미국에 정착하였던 청교도들이 지켰던 추수감사주일은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탄절과 부활절은 첫째, 우리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둘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한 선교적인 목적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 두 절기는 비록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 절기는 아니지만, 그 날이 주는 의미를 살려서 지켜오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살펴볼 것은 성탄절은 어떤 날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 성탄절은 우리들에게 어떤 날입니까?

첫째로, 이 성탄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진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약속은 많이 하지만 그 한 약속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기를 치기 위해 고의로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려고 하나 지킬 능력이 없어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지킬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들이지요. 정치인들은 국민의 표를 얻어서 당선되기 위해서 수많은 약속을 해 놓고 나중에는 지키지 않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다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고 있는 약속들 중에 단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신 것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의 근가가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번 하신 약속은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지 관계없이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성탄절 날에 깊이 생각해 봐야 할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수많은 약속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많은 약속들 중에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라는 약속들이 참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갈라디아서는 보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인류의 구세주는 이 땅에 보내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진 그 날이 바로 성탄절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게 지켜진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주신 수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하시고 있는 수 많은 약속들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근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들도 살아가는 삶 속에서 약속을 잘 지키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멘.

 

또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둘째로, 이 성탄절은 하나님이 인류를 향한 사랑을 실천해 보이신 날입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사랑하며 삽니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내게 사랑 받을 만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사랑할 가치도 없는 그런 사람들까지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성탄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탄절은 인류를 향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되고 확증된 날입니다.

 

인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요한복음 3:1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이 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내어주실 정도로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세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인간 차원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그 본체가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 차원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이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 차원의 사랑으로 죄의 저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 중에 가장 어려운 사랑은 하나 뿐인 자신의 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사람들도 사랑함으로 돈은 줄 수 있습니다. 사랑함으로 시간은 내어줄 수 있습니다. 사랑함으로 내가 가진 지혜와 지식도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은 어렵습니다. 그 사랑의 크기가 내 생명을 사랑하는 사랑보다 더 크지 못하면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은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준다는 것은 나를 다 준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주고 나면 내게는 더 이상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그 목숨을 잃어버리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자신이 죽고 없어지면 그 모든 소유 그 모든 업적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고 난 후에야 온 천하를 얻은 것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며 살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성탄절은 우리들도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나 자신을, 가족을, 성도들을,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결단과 각오를 새롭게 하게 하는 날입니다.

 

또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셋째로, 이 성탄절은 예수님이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오신 날입니다.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는 죄입니다.

이 죄가 인류의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이 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저주 아래 살게 했습니다. 이 죄는 인간과 인간의 사이를 파괴하여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과 범죄를 가져왔습니다. 이 죄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파괴하여 자연도 더 이상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자연은 지진, 태풍, 기상이변, 쓰나미를 통해 인간에게 혹독한 시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로 시작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문화를 발전시켜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소득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여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으로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이방종교와 철학에서는 인간성과 도덕성을 고양시키므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통해서 이 땅에 유토피아를 이루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유토피아를 이루지 못하고 점점 죄와 탐욕이 만연한 곳이 되어갔습니다. 역사가 진보되고 발전되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심성은 점점 더 악화되고 갔습니다. 사람들의 범죄는 더 지능화되고 조직화 되어 갔습니다. 악을 제어하고 선을 고양하려고 세운 국가가 오히려 범죄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 자신으로 손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해야겠다는 희망을 버렸습니다.

죄의 종 된 인간이 이 땅에 유토피아를 이루려고 하는 것 자체가 헛된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교육을 더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지능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서 교육이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보다 오늘날은 물질적으로는 부요해졌고 지식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인간성부분에서는 더 타락하고 악해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이혼이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동성연애자가 서울대의 총학 회장이 되고 심지어 목회자가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인간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악화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죄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다 처리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 성탄절에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특별한 날을 삼아서 감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근원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내게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이 성탄절에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특별히 감사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성탄절에 구주를 보내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탄절에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실천해 보이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탄절에 예수님이 우리의 근원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2019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들도 어떻게 나의 삶을 드려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기도하고, 고민하고, 묵상하면서, 경건하게 보낼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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