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부활 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3. 4. 9. 14:42

부활 신앙

사도행전 2:29-32

 

오늘은 한국교회가 부활주일로 지키고 있는 날입니다.

부활주일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음을 기념하는 날일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도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을 믿고, 고백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부활을 믿는 신앙, 부활을 확신하는 신앙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 다양한 종교들과 우리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다른 종교들에는 부활 신앙이 없습니다. 부활 신앙은 기독교에만 있는 유일한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이 사건은 기독교가 많은 종교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종교이고, 참 종교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부활 신앙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첫째, 성경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6:6절입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청년은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입니다.

너희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따르면서 섬기는 삶을 살아온 여자들입니다. 여자들이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예수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갔습니다.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고 있었던 돌문은 열려 있었고, 그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고 있는 이 여자들 앞에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는다.’라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천사로부터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라는 말을 전해들은 여인들은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재빨리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이제는 그 시신까지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통곡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슬피 우는지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이 막달라 마리아를 먼저 만나 주셨다고 합니다. 9절입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쫒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 라고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전에 일곱 귀신이 들려 고통당하고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나고 귀신들림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일이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의 전도 대를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고 수종드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아마 막달라 마리아는 슬픔의 눈물로 예비일과 안식일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몸에 바를 향품을 준비해서 무덤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지고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20:11절 이하입니다. 마리아가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성경을 보면 이 외에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많은 기록들이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마가복음 16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모습을 보고도 잘 믿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더라.’ 12-13절입니다.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유대인들 중에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백성들은 부활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도 믿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제자들의 믿음이 참 적어보이지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해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못하실 것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어떻습니까? 이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 능력을 베풀어주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은 잘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다면, 나의 형제가 죽어갈 때, 나의 부모가 죽어갈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그 하나님께 나의 형제를, 나의 부모를 살려 주시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기 목숨을 연장해 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던 히스기야 왕과 같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아프면 어떻게 합니까? 병원을 찾아갑니까? 먼저 하나님께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합니까?

 

제가 모 교회에서 청년부 회장으로 있을 때 아주 가까이 지내던 청년이 응급실에 입원해 있다는 말을 듣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는 이미 몇 명의 청년들이 와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의식도 없이 병원시트 하나만 덮고 누워 있는 청년을 보면서 저는 마음으로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다시한번 기회를 주세요.’ 라고 수도 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세상을 떠났고, 우리는 그 가족들과 함께 끝까지 장례 일정에 참여 했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교회에 갔다가 어떤 집사님이 저를 찾으신다는 말을 듣고 만났습니다.

그 집사님은 저에게 회장님 누구누구선생님이 소천 하셨다면서요. 회장님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매달려 보셨어요. 그러면서 그 집사님은 혹시 그럴 믿음이 생기지 않으셨다면 제게 전화 한통 해 주시지요. 제가 하나님 앞에 그 청년을 살려주시기를 기도 못한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집사님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나하고는 그렇게 친하던 청년인데 나는 왜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주시기만 바라고, 하나님 살려 달라.’하나님 반드시 살려주시라.’고 기도하지 못했는가? 왜 그렇게 기도할 믿음이 생기지 않았는가? 자책하면서, 그 때 저는 제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적은 믿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렇게 믿음이 적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하나님이 가지신 그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 때에는 저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언제나 내가 너의 병을 고쳐 줄 것이라고 너는 믿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 제가 믿습니다.’ 라고 믿음의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고백하는 믿음을 받으시고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실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가 믿음으로 바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복하시자, 한 아이가 한 끼에 먹을 분량인 작은 도시락 하나를 가지고 남자만 5,000,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합하면 적어도 2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이시고, 12광주리나 남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그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살피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가지신 믿음’ ‘기적과 표적들이 나타났던 큰 믿음 주시길 원합니다. 아멘.

 

부활하신 예수님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주셨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5-8절입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우리가 가지고 고백하는 부활신앙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말씀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교회와 개인들이 경험한 부활의 체험을 기록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가진 부활 신앙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신앙에 그치지 않고, 우리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체험하고 그 부활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은 단순히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기록해서 전달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만약 성경이 단순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지식을 전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부활사건은 2,000년 전에 사셨던 예수님 한 사람의 부활사건으로 끝이 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2,000전에 이루어진 예수님의 부활이, 2,000년도 더 지난 우리들에게는 별의미가 없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2,000년 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사건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사건이 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나아가는 우리들의 죽은 영을 살려주시는 영의 부활사건으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죽은 영이 살아나는 이 사건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 영이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장차 그 육체도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를 믿는 우리의 영의 부활몸의 부활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이 죽음의 땅을 살아가는 인류에게 기쁜 소식 큰 희망을 주는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주심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 대신 죽어주신 속죄의 사건이며,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사건은 우리로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해 주는 믿음을 주고 확신을 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고백하는 이 부활신앙은 어디에 근거한다는 것입니까?

첫째, 성경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부활 신앙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둘째, 예수님의 빈 무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또 다른 증거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세종대왕, 을지문덕, 연개소문, 서희, 이순신장군 등등이 있습니다. 외국사람 중에는 알렉산더, 나폴레옹, 징기스칸, 공자, 맹자 등등이 있습니다. 종교계에는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 등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은 다 죽어 무덤에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거짓으로 예수님을 모함하여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게 하고, 십자가형을 언도 받고 죽으시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죽으신 예수님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 가문의 무덤으로 예비해 둔 그 무덤에 묻히게 됩니다. 그리고 무거운 돌문으로 무덤 문을 막아 군병들로 하여금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일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예수님은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고 준비한 사람이 있었는데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서 말씀을 듣다가, 예수님께서 곧 죽으시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위해 그 몸에 값비싼 향유를 붓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알았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리아는 좀 났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으실 십자가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도 몰랐고 예수님의 부활도 몰랐습니다. 모를 뿐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서는 묻기도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직접 보고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잘 믿지 못해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더디 믿는 자여!’ 라고 책망하기도 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다른 마리아,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고 무덤을 찾아갔습니다.(28:1) 그런데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빈 무덤뿐이었습니다(24:3)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무덤에 묻혀 있는 그 종교의 시조를 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아멘.

 

이어 살펴볼 것은 예수님이 부활을 통해 해 주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긴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 이외에도 죽음을 이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과 예수님의 부활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입고 그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그 몸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3일 날에 죽음을 이기시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심으로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부활하심을 통해 해 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사망 권세를 이겨주셨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 왔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왔습니다.’(5:12)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6:23)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영생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게 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5: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이렇게 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 안에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의 육신은 죽게 되지만, 우리의 거듭난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고, 장차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여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이렇게 부활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을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1:13절 이하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 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행을 사모하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사망권세를 이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 부활하심을 통해 해 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둘째,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하늘 소망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는 죽었다가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11) 유두고는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떨어져 죽었는데 바울이 기도함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그 날 밤에 전에 죽었던 거룩한 성도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진짜 부활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이런 부활이 장차 있을 것이라는 하나의 예표입니다. 진짜 부활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3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1:4절에서는 그 주신 부활의 산 소망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소망이라고 하며 그 소망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이라고 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렇다면 우리가 믿어야 하는 부활신앙은 어떤 신앙이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부활신앙은 무엇입니까?

첫째, 영의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첫 번째 부활사건은 영의 부활입니다.

영의 부활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성령을 통해 거듭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될 때, 우리 영혼이 거듭나게 되는데, 이때 우리의 영의 부활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영이 거듭나게 되는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영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영의 부활을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부활신앙은 무엇입니까?

둘째, 몸의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몸의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20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15:23절에서는 이후 사람들의 부활이 차례대로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 말씀을 보면 부활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고, 그 후 사람들의 부활이 두 번에 걸쳐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몸의 부활의 첫 열매로 2,000년 전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부활이 있게 될 것인데, 이 부활은 두 번의 서로 다른 부활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먼저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에게 속한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요한계시록 20:4절은 이 사람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아제산: 죽었다가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이 말씀을 보면 그 때 두 부류의 성도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 사람들은 모두 다 순교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점은 앞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은 아벨로부터 종말 시대가 이르기 전까지 그 믿음을 지키며 순교한 순교자들이라면, 뒤에서 말씀하고 있는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요한 계시록 시대에 등장하게 될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시대에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순교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이 두 부류의 순교자들의 부활이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부활하여서 메시야왕국에서 천년 동안 자기에게 주어진 고을 들을 다스리며 왕 노릇하며 살 것이라고 합니다. 이 순교자들의 부활이 사람들 가운데 있게 될 첫 번째 부활입니다.

 

그 다음은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라고 합니다.

이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천년 왕국이 다 지난 후에, 이제 예수님이 그 모든 통치와 권세와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 즉 최후의 심판인 흰 보좌 심판을 앞두고 또 한 번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부활에 대한 말씀이 요한복음 5:28-29절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때 무덤에 있는 자 즉 이 세상에서 몸을 가지고 살다가 죽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부활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될 생명의 부활로 부활하고, 믿음이 없는 불신자들은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으며 살게 되는 심판의 부활로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가져야 할 부활 신앙은 무엇입니까?

 

영의 부활과 육체의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영의 부활은 예수님을 믿고 그 영혼이 거듭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의 부활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영체를 입고 부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육의 부활은 두 단계로 구분되어 성취됩니다. 먼저는 순교자들의 부활이 있게 되는데 이 사람들은 부활하여서 천년 왕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사람들의 부활이 있게 되는데, 이때는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 예수님이 그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 백 보좌 심판을 앞두고 부활하게 됩니다.

 

이때 예수 믿고 의롭다 칭함을 받고 죽은 성도들의 영은 생명의 부활에 참여 하여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고, 예수 믿지 않고 죽은 모든 사람들의 영은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여 그 사함 받지 못한 죄에 대한 심판과 정죄를 받아 영원토록 지옥형벌을 받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부활신앙입니다.

 

이것으로 모든 사람들의 삶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런 설명과정에서 벗어나 있는 예외적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부활에 대한 말씀도 있지만 휴거에 대한 말씀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5:25-26절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말씀은 기본적으로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류역사를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어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지만 오직 이 사람들은 죄인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유일하게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휴거되고, 천년 왕국을 거쳐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가게 되는 아주 예외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무릇 살아(남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는 이 말씀은 휴거에 대한 말씀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서

 

먼저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시요 생명이시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과 생명을 주시는 주체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의 주인으로서 자신을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과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그 영이 다시 살아나는 영의 부활과 그 몸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 몸의 부활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사람들의 부활입니다.

사람들의 부활은 두 단계로 나누어집니다.

 

먼저는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 때문에 순교한 순교자들의 부활입니다.

이는 사람가운데 첫 번째 부활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루어집니다. 이들은 부활하여서 예수님이 이 세상 속에 세우실 메시야 왕국에서 왕 노릇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그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 있게 될 부활입니다.

이때는 지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부활이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여 천국의 복을 누리며 살게 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토록 지옥형벌을 받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휴거에 대해서

 

다음에는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휴거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은혜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에 공중의 휴거되어서 예수님께서 죄악 된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후에 휴거된 성도들은 하나님이 이 땅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그 새로 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위에 세워질 메시야 왕국에 백성으로 참여하여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죄인으로 태어나는 인류 중에서 유일하게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베드로는 이후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3:10절입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라고 증거 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부활보다 더 은혜가 되고 영광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다릅니다. 세상은 부활 전함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부활을 전하는 베드로를 핍박하고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부활을 증거 하다가 순교하게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된 사람들은 죄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 것을 싫어하고, 죽음을 말하는 것을 싫어하고, 죄와 사망을 전제로 하고 있는 부활전함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세상에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부활의 복음입니다.

헬라어를 보면 증인과 순교는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부활의 증인이라는 말은 그 증거를 위해서는 순교를 각오한 사람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죽음에 매여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향해 어떤 자세로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 주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까지 각오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부활의 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는 성도가 되겠다는 각오와 결단을 하게 되는 이 복된 부활주일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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