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신앙
누가복음 2:15-20
오늘은 2023년 전에, 정확하게 말하면 2027년 전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하루 전날입니다. 예수님은 성탄절인 내일 새벽에 태어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일날입니다.
전에는 신.불신의 떠나 모든 사람들이 성탄절을 중요한 날로 기억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 풍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귀신들의 축제인 할로인 축제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성탄절에는 애써 무관심한 시대입니다.
이것은 시대가 그만큼 변했다는 것입니다.
시대는 변할지라도 우리들의 신앙과 우리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 그 신성을 부인하시고 육신을 가진 사람의 모양으로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은 어디에서 태어나셨습니까?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왕궁이 아닙니다. 귀족들의 집이나, 부자들의 대 주택이 아니었습니다. 짐승들이 살도록 꾸며 놓은 짐승의 우리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갓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이 누워 두셨던 침대는 말들에게 음식을 담아 먹였던 구유였습니다.
보통 자녀들은 어떻게 태어납니까?
부모의 사랑과 관심 속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부모는 그 태어날 자녀를 위해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 즉 ‘입을 옷,’ ‘누울 이불,’ ‘먹일 우유’, ‘이동할 유모차’ 같은 것들을 미리 미리 준비해 둡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모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던 예수님의 부모는, 로마 황제가 명령한 호적을 하려고, 그 고향 베들레헴으로 여행 중에 있었습니다. 당시 가난하였던 요셉은 머물 방 한 칸도 마련해 두지 못한 채, 만삭이 다 된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이들은 그 밤에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여관집 주인의 배려로 이들은 말 우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 밤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 새벽에 이제 막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천사들이 알려 준 메시야의 탄생을 확인하고 경배하고 돌아갔습니다.
이후 요셉은 베들레헴에 머물 거처를 마련하고 머물면서 제8일에는 할례를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33일 후에는 모세의 법대로 정결 예식을 드리기 위해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에서 시므온도 만나고, 안나도 만나고,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정결 예식을 마친 후에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머물러 계실 때,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됩니다. 이들은 동방에서 이스라엘 왕의 탄생을 알려 주는 별을 보고 찾아와서, 그 준비해 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며 경배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부류의 서로 다른 경배자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동방박사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사회적인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련할 수 있는 귀한 예물을 준비하고 나아와서 경배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목자들입니다. 목자들은 밤에도 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양을 지켜주고 그 품삯을 받으며 살았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목자들에게는 예수님께 드릴 준비된 예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로부터 인류의 구세주가 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양을 치던 그 지팡이를 들고 나아와서 빈손으로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다해 예물을 준비하여 드린 동방박사의 경배도 기쁘게 받으셨지만, 미쳐 드릴 예물을 준비하지 못하고 맨손으로 나아왔던 목자들의 경배도 기쁘시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성탄절에 중요한 것은 예물이 아닙니다. 예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과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경배하는 믿음입니다. 이 신앙, 이 믿음이,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고, 또 성탄주일예배를 통해 고백하는 신앙이 되고 믿음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누가복음 2장에는, 이 목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했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목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했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신앙적인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첫째, 목자들의 신앙은 행동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천사들로부터 메시야의 탄생을 알려 주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즉시 달려가서 아기 예수님을 찾아서 경배하였던 행동 하는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15-16절입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목자들은 그 밤에 베들레헴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때 뜻밖의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천사들이 나타나서 인류의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곧 수많은 천군과 천사들이 나타나서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이신 예수가 나셨다.’라고 예수님의 나심을 찬양하는 합창을 하게 됩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목자들이 보인 반응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빨리 가서..... 그 아기를 찾아보자."라고 하며 그 즉시 베들레헴으로 빨리 달려갔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 목자들은 인류의 구세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이 다니엘을 통해 약속해 주셨던 70이레 곧 메시야가 오실 때가 다 되어가고 있었던 때입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천사들이 전해준 그 은혜의 현장을 확인해 보고, 그 가진 믿음도 고백하며 경배드리고 싶어서 즉시 달려간 것입니다.
사실 목자들이 그 밤에 해야 했던 일은 그 주인들이 맡겨 준 양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목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밤에는 양을 지키고, 그 다음날 아침에 세상의 구주로 나신 분을 찾아가서 경배하고 찬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목자들은 세상의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경배하는 일이, 그 맡은 양들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구주로 오신 분을 찾아 경배하는 일을 뒤로 미루지 않고, 양들을 들판에 놓아두고 그 즉시 베들레헴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이 목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특징은 깨닫고 알게 된 대로 그 즉시 결단하고 행동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복음의 소식을 듣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일이 필요한 줄은 알면서도, ’아직 나는 젊으니까? 세상을 좀 더 즐기고 살다가, 나중에 늙어서 죽기 전에 교회 가면 될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열심을 내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탄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속삭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급하게 믿을 것이 없다. 천천히 해라. 예수를 믿더라도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고 믿어라. 아직도 시간이 많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꼼꼼히 따져 보고 믿어라.’라고 속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단의 속삭임에 속아서 “그래, 한 번 믿으면 평생을 믿어야 할 것인데, 천천히 믿어도 되지 뭐,”라고 하며, 믿음의 결단도 뒤로 미루고, 회개의 결단도 뒤로 미루고,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도 헌신도 뒤로 미루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인생을 끝마쳐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더 많은 성도들은 한번 예수를 믿기로 결단을 한 이후에,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런 성도들은 주일을 빼 먹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얼마나 열심을 내는지 모릅니다. 이런 성도님들은 ‘천천히 하라, 대충하라, 나중에 하라,’ 라고 하는 사탄의 속삭임을 이기신 분들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목자들은 메시야의 탄생의 소식을 듣자 지체하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목자들은 세상의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지체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바로, 즉시 움직이고, 즉시 행동하는 신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한 이 성탄 주일에,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이 고달프고, 힘들고, 어렵고, 또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이것저것 많이 있을지라도, 또 오늘처럼 날씨도 춥고 길은 미끄러워 다니기가 조심스러울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일에 다시 열심을 내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마음속의 생각으로만 이제 나도 열심을 내야지 생각하고, 그 구체적인 삶 속에서는 미적거리며 있지 말고, 목자들과 같이 내가 열심을 내야겠다고 깨달았으며, 그 즉시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깨달은 것을 그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 이런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금년 성탄절에는 우리 모두, 즉시 행동했던 목자들이 가졌던 신앙을 보면서, 우리 신앙의 습관도 ‘지금, 즉시’ 결단하고 행동하는 신앙으로 바꾸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또 목자들의 행동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둘째, 은혜의 현장을 찾아가 확인하는 신앙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탄생하실 당시에는 신문이나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나타나서 "베들레헴에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너희가 강보에 쌓여 말구유에 누인 아기를 볼 것인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알려 주었을 때, 목자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고, 그래서 구주가 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때 목자들은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요? 아니 어떤 엄마가 이 추운 겨울에 애기를 낳아서 집에 재우지 않고, 말 구유에 누여 둔단 말이요,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지 마시오." 라고 하며 비웃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말한 그 현장으로 가서 세상의 구주가 정말 그렇게 태어나셨는지를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베들레헴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신 그 기적의 현장을 목격하였고, 말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고 인류 역사상 첫 번째로 메시야를 경배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목자들과 같이 확인하는 신앙입니다.
사도행전 17:11절 말씀을 보면,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 그것을 다른 쪽 귀로 흘려버리지 않고,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를 확인하고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목자들도 같습니다. 목자들은 하나님이 세상의 구주를 보내신 그 현장을 확인한 후,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도 이와 같은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해 주시고, 설교를 듣고 깨닫게 된 말씀이 있으면, 그 듣고 깨달은 것으로 끝내지 말고 그 말씀이 사실인가? 아닌가? 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으면 이제 믿음의 결단을 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후속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키우는 방법이며, 우리의 믿음을 견고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은 정확무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거나, 천사를 통해 말씀하셨거나, 혹은 목회자를 통해 말씀하셨을 때, 내가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우리는 말씀을 건성으로 듣지 말고, 그 말씀이 정말 그러한가? 다시 확인해 보아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확실하다면,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성탄절에 목자들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신앙의 두 번째 특징은 이렇게 확인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멘.
또 목자들의 행동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셋째, 목격한 사실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는 신앙입니다.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달려 가 보니 천사가 전해준 말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자기들이 여기 찾아오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었을 것입니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셔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해 보려고 즉시 달려왔다고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시 몇 명의 목자들이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한목소리로 천사들이 해 준 말과 천사들의 찬양을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자신들이 들판에 놓아두고 온 양들이 생각나서 서둘러 돌아갔을 것입니다.
목자들은 인류의 구세주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이고, 아기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나 경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들은 천사의 음성과 찬양을 가장 먼저 요셉과 마리아에게 전해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목자들은 성탄의 첫 목격자요. 첫 증인인 샘입니다. 그들이 증언한 중요한 내용은 바로 아기 예수가 인류를 위해 탄생하신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이 천사들의 증언이 목자들에게서 마리아에게로 전해 짐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 목자들은 그 밤에 양을 지키는 일을 끝마치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로 돌아가서 어젯밤에 일어났던 일들, 즉 밤에 들판에서 천사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와 천군 천사가 나타나서 한 찬양과, 천사의 증거대로 베들레헴 동네에서 만났던 아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목자들의 믿음은 이렇게 천사들을 만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의 말대로 태어난 인류의 구세주를 만남으로 확증되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천사를 만나고 예수님을 만난 것을 간증하고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평생 동안 천사의 증언과 예수님을 만난 것을 전하며 간증하며 증인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훌륭한 증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증인입니다. 증인이라는 말 안에는 "순교자"라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이 말은 증인은 순교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알고 경험한 일을 증거하다가 비록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본대로 사실을 증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받게 될 불이익과,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해서, 증거 해야 할 내용을 바꾼다면 거짓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살아남을지 몰라도 이 허위 증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지 모릅니다. 증인의 한 마디에 사람들의 생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많이 죽었습니다.
예수는 역사 속에서 살다가 죽은 한 위인이었다고 말하였으면 핍박을 피하고 고상한 학자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고,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에 죽어주셨고,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무덤에서 부활하신 구세주라고 증거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에 타 죽었고, 어떤 사람은 사자에게 찢겨 죽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죽을지라도,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순교한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사실은 메시아의 탄생에 관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발견하고, 그 별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까지 오기는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동네에서 메시야가 나셨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롯 왕궁을 찾아가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가 어느 동네에서 난다고 예언되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말을 듣고 헤롯왕은 발끈하였지만, 그 감정을 숨기고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서 물어보았습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메시야는 베들레헴에서 나신다고 예언되어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베들레헴에서 인류의 구주가 나신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목자들처럼 그 역사적인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후에도 그 예수님께 나아가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메시야 사역을 성취하신 후에도 그 증인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과 여러 종류의 선교 단체가 바로 세상에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에 증언해 주는 단체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예수님이 이 세상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전해주는 증인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종류의 증인입니까?
참된 증인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금년 성탄절부터라도 우리는 목자들과 같이 내가 경험한 것을 세상에 전해주는 참된 증인으로 살아가는 결단을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목자들의 행동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넷째,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 겸손한 신앙입니다.
본문에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11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동방박사들은 마리아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에게서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리아는 비록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였지만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였을 뿐이었고, 마리아가 낳은 아기 예수가 바로 이스라엘이 기다려 온 왕이시고 인류의 구세주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예수님께만 경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진귀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과 아기 예수님을 단순히 비교해 보면, 동방박사들은 그들이 경배한 아기 예수님보다 교육 수준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이제 갓 태어난 아기에게 경배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비록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아기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된 인류의 구주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나 목자들처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가로채는 것보다 더 악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사람들은 반드시 죽었습니다.
사도행전 12:2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당시 유대 왕이었던 헤롯이 찬란한 왕복을 입고 백성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였는데, 그 연설을 듣고 아첨을 하는 사람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라고 소리 지를 때, 헤롯은 자기가 잘나서 백성들로부터 이런 칭송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우쭐댔습니다. 하나님은 이 교만한 헤롯 왕의 몸에 작은 벌레가 생기게 하여서 죽게 하셨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12:23절 말씀입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영광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 무엇이라도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다면, 영광을 가로챈 사람은 그 누구라도 죽고 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예수님만을 높이고, 자기는 낮아지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번 성탄을 통해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고 경배했던 동방박사들과 같이,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나 자신은 낮추며 살아가는 바른 신앙의 결단이 있어 지시길 바랍니다.
또 목자들의 행동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섯째, 그 생활로 돌아가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2:20절입니다.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마태복음 2:12절입니다. ‘그들이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동방 박사들도 그 먼 길을 와서 예수님께 경배하고 돌아갔고, 목자들도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어디로 돌아갔을까요?
자기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그 일터와 삶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그 아기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았고 경배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얼마나 놀라운 경험을 하였고, 또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한 것입니까?
이 사람들은 인류 역사에 딱 한번 있는 일,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시는 그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또 그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뵈옵고 경배까지 한 사람들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이들은 천사를 만나고 천사들과 대화를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한 이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 신앙의 완성은 이렇게 그 본연의 생활로 돌아가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완성되는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변화 산에서 거룩하신 모습으로 변화하신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담화하시는 신기한 모습을 보고 황홀경에 빠져서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여기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는 데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런 평안한 자리에만 계시고 싶으셨다면 왜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거친 세상으로 오셨겠습니까? 예수님은 고통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그들 대신에 그들의 죄와 질병과 절망의 짐을 짊어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어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 덕분에 한자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고 그 은혜를 감사하며, 이전에 살던 일상생활 속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예수님 대신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믿고 잘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참된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자기에게 주어진 생활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가정을 잘 돌아보고, 자기에게 주신 직업에 성실하고, 그러면서도 삶의 현장에서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복음을 세상에 전해주며 사는 성실한 사람들이 참된 신자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불성실한 사람은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목자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난 후 그곳이 너무 좋다고 하며 오래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을 기다리는 양 떼를 생각하니 베들레헴 마구간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소유한 채 서둘러 돌아가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난 메시야를 전해주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메시야를 전해주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신앙은 이렇게 완성되어 갑니다.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완성되어 갑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2023년 이 성탄 주일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는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해준 그 말씀,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그 말씀, 즉 ‘세상의 구세주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했다.’라는 이 말씀이 참 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그 말씀이 참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믿어지면, 그 다음에 할 일은 목자들과 동방에서 온 박사들과 같이, 우리들도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우리의 삶의 현장 속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입술과 우리의 삶으로 세상에 예수님을 전해주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성탄 주일에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우리의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행동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 모두는 규모 있는 생활 습관을 통해, 건강을 잘 지켜나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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