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0. 2. 1. 08:18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디모데전서 6:11-12

  

사람들이 하며 살아가는 말 중에는 듣기 좋은 말도 있고 듣기 싫은 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존경합니까? 당신은 참 정직한 사람 같습니다.’ 라는 말들은 듣기 좋은 말이지만, 그렇지 않은 말들도 있습니다.

 

제가 아침 운동을 다닐 때 어떤 사람들은 그 나이와 신앙에 상관이 없니 목사님!’ ‘목사님!’ 이렇게 불러주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나이도 별로 많지 않은 사람이 김 목사!’ ‘김 목사!’ 라고 하기도 하고, 또 심지어 어떤 사람은 목사야!’ ‘목사야!’ 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있었어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우리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말씀에서도 뿌린 대로 거둔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부르며 사는 호칭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엄마 아빠 오빠 누나 형 동생과 같은 호칭들이 있으며, 교회 안에서는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도님 같은 호칭들이 있습니다.

 

이런 호칭들은 책임감을 일깨워주는 힘이 담겨 있습니다.

여자와 엄마는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엄마라는 호칭에 얼마나 큰 책임감이라는 힘이 담겨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저를 향해 목사님’ ‘목사님 이렇게 부를 때 제 마음 속에는 그래 내가 좋은 목회자가 되어야지 이런 마음이 들게 됩니다. 집에서 아이들이 아빠’ ‘엄마라고 부를 때 부모의 마음속에는 그래 내가 좋은 아빠가 되고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이런 마음이 들게 됩니다.

 

자녀가 위기의 상황 속에서 엄마 아빠를 부르면서 도움을 요청하면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성이 마비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위기에 처한 자기 자녀를 구해내기 위해서 불속에도 뛰어 들어가고 물속에도 뛰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부모가 물에 빠진 자녀를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부모가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수영을 하지 못하면서 물속에 뛰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직 자녀를 구해 내야겠다는 생각이 이성을 마비시켜서 수영도 못하면서 물속에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고 난 후, 그리 오래 되지 않는 때였습니다.

처음 나간 교회에서 약 1년 반 정도 다니다가 집 가까운데 있는 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청년부 회장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앙의 경륜이 짧았던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교회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거의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들일 정도로 신앙의 연조가 깊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청년들이 신앙을 가진지 별로 오래 되지도 않은 나를 회장시키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그 교회는 500명이 조금 넘었던 교회였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500명을 넘는 교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 날 저녁에 잠을 자려고 누워있는 제 마음속에 한국의 지도가 보이고, 500명의 넘는 교회들이 여기 저기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교회에서 청년 회장이 되어 서 있는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때 저는 마음에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부르시고 내게 청년부 회장이라는 직분까지 맡겨 주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겠다.’ 라는 각오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살아가는 나의 첫 출발이요 결심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디모데의 경우에도 같았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린 나이에 바울의 전도를 받고 성도가 되고 나중에는 에베소교회 담임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디모데가 목회를 하였던 에베소는 아데미 우상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던 곳입니다. 나이 어린 디모데가 이런 곳에서 목회하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의 눈물로 목회하고 자주 금식하며 목회를 했습니다.

이렇게 힘겹게 목회를 하고 있었던 디모데를 향해 사도 바울은 너 하나님의 사람이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러줄 때 디모데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가 디모데가 아니니까 그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인식하고, 그래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세우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야!’ 나는 하나님의 사람처럼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결단을 하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해 줌으로 용기와 위로를 주고 다시 사명감을 일깨워주었던 사도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야 할 삶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디모데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었던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도 됩니다.

 

그러면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사람들이 피하며 살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6:11절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그러면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3절입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첫째, 다른 교훈을 피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른 교훈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의 믿음의 가장 기초적인 교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주신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다른 교훈입니다. 또 다른 교훈은 무엇입니까? 둘째,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경건한 생활을 외면하게 하는 것이 다른 교훈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바른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을 따라 살게 하는 것이 바른 교훈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경건한 삶,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바른 교훈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과 그 주신 말씀을 부인하거나 넘어서는 것은 다른 교훈입니다.

또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에 힘쓰지 않는 것은 다른 교훈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아무리 능력이 나타나고 역사가 나타나도 이런 사람들은 다른 교훈을 쫓는 사람들입니다.

 

요즘은 바른 교훈에서 떠난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아무 교회에나 발을 들여 놓아서는 안 되는 시대입니다.

한국에 있는 800만 명의 성도 중에 약 200만 명이 이단적인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이단들의 교회는 비록 그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의 숫자가 1만 명 혹은 2만 명이 넘어도 이 사람들은 이미 다 죽은 자들이거나 혹은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반석위에 세워져 있는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단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주보에서 보듯이 그 입구를 보면 마치 반석 위에 세워져 있는 교회 같으나 실상은 절벽의 허공위에 세워져 있는 그런 교회들입니다. 이 그림은 이단교회의 실상과 결말을 풍자적으로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이런 이단적인 교회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단적인 교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하거나 그 주신 말씀을 넘어서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이 요구하고 있는 경건한 삶을 살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바른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첫째, 신앙적인 고백에서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삶이 경건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 바른 교회의 모습입니다.

 

둘째, 부 하려고 하는 것을 피하라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6:9절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은 부자가 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자가 되는 것을 목적삼고 살아가면 부를 얻기 위해 신앙까지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부자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까?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며 살아가는 부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는 중에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부하게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누리며 사는 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시는 부는 내가 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자기 힘과 노력으로 부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곧 파멸과 멸망이라고 합니다. 이런 부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부를 소유하고 또 그 주신 부를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이것이 세상 부자와 그리스도인 부자의 다른 점입니다.

 

셋째,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라고 합니다.

6: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시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장사가 잘 되는 날에 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주간의 장사는 종치는 것입니다. 요즘 같이 여가문화가 발달 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는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은 공휴일과 주일에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일을 지키려고 가게 문을 닫는 것이 쉽겠습니까?

 

장사를 하는 사람의 눈에 하나님이 보이면 주일에 가게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는 사람의 눈에 돈이 보이면 주일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돈의 버는 맛을 알게 되면 주일을 지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게 됩니다.

 

디모데 전서 6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려고 하면 이 세 가지를 피하라고 합니다.

다른 교훈을 피하고,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버리고,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나는 믿음이 좋기 때문에 죄와 싸워서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하면서 마치 맞장 뜨려는 자세로 덤벼듭니다. 그런데 성경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것들을 극복해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피하는 것 이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피하며 사는 사람들이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 성 안에 죄악이 가득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성속에서 누리며 살게 되는 부와 문화와 안락함 때문에 그 성으로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의로운 사람이었던 롯은 소돔 사람들의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였는데,”(벧후2:7)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소돔에서 고통당하며 살고 있던 롯을 건져주실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롯은 도덕적으로 문란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불법한 행실을 계속 보면서 그 영혼이 심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롯은 믿음생활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요셉이 노예로 있었던 당시 애굽은 여성 해방운동이 가장 앞서가고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여성들은 자기 남편이 아닌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고 사는 그런 사회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요셉이 살았던 애굽도 마치 소돔과 같이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가지고 살았던 기준은 당시 애굽 사람들이 가지고 살았던 기준과는 달랐습니다. 요셉이 가지고 살았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명확한 자기 기준을 가지고 산 사람이었기에 자신을 유혹해 오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그것은 죄입니다. 그것은 제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는 일입니다.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분명하게 말해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디발의 아내는 계속적으로 요셉을 유혹해 왔습니다.

요셉이 그 유혹을 피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한 것입니다. 이 요셉의 삶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유혹을 피하며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첫째, 명확한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유혹의 현장에서 도망치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청소년 금지구역을 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청소년들이 죄악 된 환경 속에 들어가서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당국에서도 학교 주변에는 유흥업소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죄악 된 세상에서 이끌어 내는 것이 쉽겠습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죄악으로 끌고 내려가는 것이 쉽겠습니까? 우리가 사람들을 믿음으로 끌어 올리는 것보다 사람들이 우리를 죄악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다면 모릅니다.

그러나 미안한 말씀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힘도 그런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늘 말씀보고 예배와 기도생활에 힘쓰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런 경건생활을 멈추는 순간 곧 바로 유혹에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 말씀을 받았던 디모데는 당시 약 40세 정도 되는 젊은 나이였습니다.

디모데는 젊은 나이에 에베소 교회 담임목사가 되어서 사역했습니다. 이런 디모데에게 바울은 무엇이라 권면하고 있습니까? 다른 교훈을 피하라. 부자가 되려는 것을 피하라. 돈을 사랑함을 피하라.’ 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네가 유혹하는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켜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혹과 시험을 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바울의 교훈을 우리들도 꼭 기억하고 죄와 악을 피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사람들이 따라 살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11절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단지 피할 것만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피할 것은 피해야 하겠지만 또 따라 살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그 행하며 살아가는 삶을 보고 평가합니다.

제가 과거에 섬겼던 교회의 집사님 중에 대학교 총장으로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교육관이 없어서 주일학교 예배가 9시에 본당에서 있었고 그 동일한 장소에서 11시에 장년들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린이 예배 마치고 나면 예배당이 어지럽혀집니다.

주보도 떨어져 있고, 휴지도 떨어져 있고, 여기 저기 아무렇게나 놓아둔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사들은 학생을 돌보고 곧 바로 교사회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청소하거나 정리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어떤 분이 와서 떨어져 있는 주보도 줍고, 의자도 정돈 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바로 대학교에서 총장으로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대학총장이라 시간을 내어 교회 모임에 참여하고 봉사할 수는 없었지만, 주일 예배를 드리러 올 때 조금 일찍 나와서 예배당을 정돈하고 청소하는 일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매 주일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조금 일찍 교회로 나와서 청소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 분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원하여 청소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이 신실한 신앙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회사를 운영하는 한 안수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비오는 날 주일 저녁 시간에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이 집사님을 보았습니다. 이 집사님은 지하실 벽면을 손으로 훔치고 다녔습니다. 왜 저러고 다니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이 나간 후에 저는 그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벽면은 젖어 있었고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성도들아 다 집으로 돌아가고 없는 그 시간에 비가 많이 오자, 그 집사님은 교회에 비가 새는 곳이 없나 살피기 위해서 지하실 벽면을 쓰다듬고 다녔던 것입니다. 저는 그 모습 속에서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 집사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11절 말씀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까?

 

첫째, 의롭게(디카이오쉬네)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덕과 자질과 상태를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칭해 주시는데, 하나님이 사람들을 의롭다 칭해 주시는 그 말씀에는 능력이 있어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그 사람 안에서는 실재로 의롭게 되는 존재의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의롭게 그 존재가 변한 사람들만 성경이 요구하고 있는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의는 바로 이렇게 존재가 변한 사람들이 살게 되는 의로운 삶을 말합니다.

 

둘째, 경건(유세베이아)하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경건은 하나님의 의를 덧입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서서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이런 삶의 태도에 대해 야고보서 1:27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는 고아 과부를 그 환난에서 돌아보며 사는 삶,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사는 삶이 성도들이 살아야 할 경건한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1절 말씀에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는 것이 성도들이 살아야 할 경건한 삶이라고 합니다.

 

셋째, 믿음(피스티스)으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은 신뢰성, 신실성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예수를 믿고 의롭다 칭함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된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신실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넷째, 사랑(아가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사랑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아가페 사랑을 말합니다. 사람들의 사랑의 특징은 자기가 그 중심이 되어서 하게 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다릅니다. 이 사랑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하게 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그 중심에 두고 하게 되는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요한복음 3:16절에서는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5:8절에서는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14:10절에서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사랑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사랑을 하며 살 수 있습니까? 이 사랑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자기가 죽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다섯째, 인내(휘포모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인내는 확고부동한 믿음확고부동한 소망을 가지고 그것을 믿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인내를 말합니다.

 

여섯째, 온유(프라위파디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온유에 대해 사전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온유는 나약함이 아닙니다. 온유는 하나님의 통제 하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힘을 활용하고 하나님의 힘을 사용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온유는 하나님에 의해 통제 되고,’ ‘길들여져 있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온유는 하나님의 통제 아래서 하나님에 의해 길들여진 부드러운 성품으로 나타나는 온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삶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야 할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의 사람들이 싸워서 쟁취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12절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영생을 취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선한 싸움은 어떤 싸움입니까? 에베소서 6: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 영생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가진 믿음을 증거 하여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축구 잘 아시죠?

축구경기에서는 어떤 팀이 이깁니까? 골을 많이 넣는 팀이 이기지요. 야구에서는 점수를 많이 얻는 팀이 이깁니다. 바둑은 집을 많이 만드는 쪽이 이깁니다. 이런 스포츠 경기들은 상대팀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으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이 말하고 있는 믿음의 싸움은 이런 상대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악의 세력과 싸워서 80퍼센트를 이겼다고 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00퍼센트 완전히 악의 세력을 뿌리 뽑아야 이긴 싸움입니다.

 

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싸움은 이런 종류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다른 점은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할 이 싸움은 악의 세력과의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악한 세력과의 영적인 싸움을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이 싸움에서 이기는 승리의 비결은 바로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견고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입게 되는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믿음으로 구원 얻고, 믿음으로 성화를 이루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또 믿음으로 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싸움에 대해 찬송가 357장에서는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후렴))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말씀을 정리합니다.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를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마 바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들의 이름들도 부르면서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직 마귀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다 하나님께 속해 있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삶을 살다가 어려운 일이 닥치게 되면 여러분은 이 성경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말씀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피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교훈을 피하고, 부하기를 피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따라 살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싸워서 쟁취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영생을 취하라.’고 합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의 사회적인 신분이 어떻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상관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늘 기억하고 피할 것은 피하고, 따라 살 것은 따라 살고, 싸워서 취할 것을 취하며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이 땅에서는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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