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뼈들의 회복(에스겔 37:1-10절)
오늘 주시는 에스겔 37장 1-10절까지의 하나님 말씀을 통해 “마른 뼈들의 회복”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받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에스겔 37장은 이스라엘 회복을 보여주신 환상으로 유명합니다. 단원을 나누면 1-4절까지는 골짜기에 널려있는 마른 뼈와 해골들이 부활하는 환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여주고 있으며, 15-28절까지는 두 막대기의 예언으로 이스라엘이 장차 통일될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마른 뼈에 대한 환상은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해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마른 뼈는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들은 당시 10년 이상이나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에 가졌던 소망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들의 상태는 마치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절망적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말씀을 통해서 살아난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은 죽어서 흩어졌던 마른 뼈들이 다시 모여서 새 생명을 얻고, 큰 군대를 이루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그들에게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의 내용을 3대지로 나누어 적용하면서 은혜를 받기로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태를 보여줍니다(1,2.11절).
에스겔 37:11절 말씀에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뼈에 대한 환상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북 왕국은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고, 남 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당시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침입하여 성전 안에서까지 이스라엘인들을 죽였다고 대하36:17절에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 왕 여호야긴은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또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포로로 바벨론 땅에 잡혀가게 되었으며, 고국에 남겨졌던 사람들도 죽임을 당하거나 애굽 등지로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른 뼈는 바로 이 같은 그들의 절망적인 상태를 비유한 것입니다. 본문 2절 하반부에 보면 이 뼈들이 ‘아주 말랐더라’ 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상황이 완전한 절망, 회복 불가능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뼈들은 매장되지 못한 채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에 씻겨 지고 뜨거운 햇볕 아래 노출되어 살은 이미 썩어져 없어졌고, 뼈들끼리도 서로 분리되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바싹 마른 뼈들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뼈들을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절망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현재 기거하고 있는 바벨론 땅은 ‘골짜기’입니다. 에스겔이 갔던 그 특별한 골짜기의 이름이나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발 강가에 있는 델아빕 부근의 어느 골짜기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겔37:12절 보면 이 골짜기를 ‘무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지에서 죽은 자와 같은 생활을 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 환상을 예수 믿기 이전의 우리의 상황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까지 는 모두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할렐루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들에 대해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3절). 이 질문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절실한 것이었고 대답은 아주 분명했습니다. 에스겔은 자기의 아는 것을 중대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시는 대로 따르기 원합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 같은 질문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질문을 하신 것입니까? 이러한 의문을 가질 수 있었던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믿음의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아시나이다.” 이처럼 믿는 사람들은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떠한 문제라도 하나님께서 관심을 보이시고 역사하시면 불가능한 것이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고인이 되신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회고담에 보면 “나는 서독 총리 콘라드아데나워와 아침 커피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의례적인 인사를 마친 후 대뜸 목사님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지요? 라고 내게 물었습니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실이라고 하면서 이 믿음이 있다면 세상의 어떤 절망 중에서도 소망이 있다고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마19:26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소생할 수 있습니다(4절).
본문 4절 말씀에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회복의 계획을 실행하시고, 선지자를 그 실행의 그릇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명하시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렇게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쉽게 표현하면 ‘마른 뼈(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탈골되었던 뼈들입니다. 그런대 말씀을 전파하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서로 연결됩니다(7절). 뿐만 아니라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게 됩니다(8절). 이는 회복이 불가능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소생됨을 의미합니다. 좁게는 포로기의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회개하여 옛적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지에서 말씀을 절실하게 접했고, 하나님 성전을 그리워하며 그발 강가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는 하나님말씀의 능력 이외에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4:12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사람의 영혼 소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지요. 진리의 말씀은 우리를 의로 교훈하며 더러워진 환부를 도려내어 새 생명으로 전환시키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시편 19:7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 시킨다’ 고 했습니다. 복음을 가리켜 ‘생명의 말씀이라고 거듭 표현한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곧 말씀을 믿고 고백한 자들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론만의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눅 1:37절 말씀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렘 33:6절 말씀에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성령을 통해서 완전한 구원을 받게 됩니다(8-10절).
본문 겔37:8-9절 말씀에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화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마른 뼈들이 사람의 모양을 갖추었지만, 아직까지 그 속에는 ‘생기’가 없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9절).에 의해 에스겔이 생기를 불어넣자 뼈들이 생기를 회복하여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10절). 여기서 생기에 해당하는 원어의 뜻은(바람, 기운, 성령, 숨, 영)으로 해석되지만 신약에서는 ‘성령’ 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만 사람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본토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셔서 언약 백성으로 삼아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도 이와 같은 흐름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성령을 체험한 자만이 능력 있는 큰 군대, 열매 맺는 신자가 된다는 것입니다(갈5:22절). 예수님께서 승천 직전에 행1:8절 말씀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절)고까지 단언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면 더 이상 우리는 육신에 있지 아니하며 영의 일, 곧 생명과 평안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롬8:5-6절).
오늘날 마른 뼈와 같은 상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믿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하여금 자신을 온전히 주장할 수 있도록 그분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그 뜻대로 믿는 우리에게 역사 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포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롬8:11절 말씀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영접하여 중생하는 순간부터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 하십니다. 하지만 성령내주와 성령 충만은 다릅니다. 성령 충만을 비유하면 술에 취하거나 돛단배가 돛폭에 바람을 팽팽하게 타는 것과 같습니다. 밧데리에 충전이 된 것이나 신들린 현상같이 성령이 나를 전적으로 지배하고 인도하고 가르치고 힘 입혀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풍성한 신앙생활의 비결은 성령 충만에 있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전도하고, 기도하고, 주님을 섬기는 힘은 성령에서 옵니다. 또한 성경을 가르치고 주를 닮게 하시고 고난과 시련 속에서 승리하고 기뻐하는 능력도 성령 충만 받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본문의 말씀을 통해 마른 뼈의 환상에서 살펴본 것 같이 하나님을 떠나 있던 우리들은 아무 쓸모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구원의 소망을 찾게 된 것입니다. 이제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역동적인 활력 속에서 창조적인 일을 도모하며 힘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부단히 읽고 배우고 묵상하는 일과 성령님과 동행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항상 간직하며 살아가시길 원합니다.
2020년 4월 26일 (참 빛 교 회)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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