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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방향키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0. 8. 16. 16:13

인생의 방향키

야고보서 3:1-5

 

1. 말이 인생을 좌우한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언제나 말씀을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조 사건을 보면,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자 곧 빛이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자 곧 그 말씀하신 대로 하늘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즉시 말씀하신대로 되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은 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들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창조는 조금 다릅니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의 모양을 만드시고 그 만드신 사람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심으로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창조하신 사람에게만 언어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과 같이 사람들도 말로 의사소통을 하며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주의 능력이 담겨 있었듯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언어에도 힘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말에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말을 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에는 긍정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부정적인 말을 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에는 부정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좋은 일을 주실 것이야 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긍정적인 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그 앞에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일이 다가오더라도 그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자세가 그것을 이겨 나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오늘 아침은 왜 이렇게 힘이 들지,’ ‘오늘은 일진이 영 안 좋을 것 같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부정적인 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조그마한 문제라도 생겨서 일이 꼬이게 되면 그러면 그렇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나는 참 지질이도 복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낙심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과 말에는 우리 삶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또 어떤 말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부정적인 말을 하며 불신앙적인 삶을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긍정적인 말을 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런데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하며 사는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하며 사는 말을 잘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을 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말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아는 우리들은 말을 할 때 생각해서 말을 해야 합니다. 걸러서 말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한 말이 우리 인생을 좌우하고 우리 미래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생각은 마음을 낳고, 마음은 말을 낳고, 말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운명을 낳는다.’ 이 말은 우리가 사용하며 사는 말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마음을 드러내 줄 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게 될 우리의 행동과 습관과 운명까지 좌우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며 사는 말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며 사는 말은 현재의 내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또 미래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이런 말씀까지 하셨습니까?

너희가 한 말로 인하여 너희가 심판을 받고, 너희가 한 말로 인하여 너희가 정죄를 받으리라” (12:36-37) 예수님은 종말의 날에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는 기준도 바로 오늘 우리가 하며 살아가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과학자들 중에는 우리가 한 말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녹음을 하면 내가 한 말이 녹음테이프에 담겨 있듯이, 과학자들은 우리가 한 말들이 이 우주 공간 속에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녹음해 둔 말을 다시 들을 수 있듯이 장차 우리가 한 말들을 그대로 재생해 낼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말은 그냥 막 해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4:11-12절을 보면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 하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5절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자신이 행한 일과 자신이 한 말을 하나님 앞에 직고즉 스스로 고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이 말씀은 꼭 기억하시고 말을 조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2.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말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말들을 보면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말이 있습니다.

 

첫째,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 18:21절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이 말씀을 보면 죽고 사는 것이 우리가 하는 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인생의 실패자가 되어서 살아갈 의욕을 잃고 이제 한강에 투신자살하려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눈앞에 이제까지 전혀 보이지 않던 교회의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 십자가가 빛나고 있는 교회로 갔고, 그 교회 목사님을 만나 대화하다가 그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형제여! 죽을 용기가 있습니까? 그러면 그 용기로 다시 시작해 보십시오.’ 이 사람은 목사님의 그 말을 듣고 죽으려고 했던 그 용기로 다시 시작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경우에 합당한 말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에 고 장자연이라는 젊은 여자 연예인이 인터넷 사이트의 악성 댓 글 때문에 고민고민하다가 자살한 사건도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런 것을 언어폭력이라고 합니다. 직접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지만 언어를 통해 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여서 죽게 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며 사는 말에는 이렇게 힘이 있습니다.

 

둘째, 기분 좋게 하는 말과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까? 내게 애정을 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나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해주고, 내가 하는 일을 격려해주고, 언제나 나의 입장을 헤아려 주는 그런 사람입니까? 아니면 만나기만 하면 나의 말과 행동을 책잡고, 비판하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고, 언제나 가시가 돋쳐 있는 말을 하는 그런 사람입니까? 우리는 나의 기분을 좋게 해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가까이 하고 싶어지지만,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그런 사람은 피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셋째, 흥하게 하는 말, 망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 11:9절입니다.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악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웃을 망하게 하는 능력이 있으나, 의인은 그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이웃으로 구원받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자녀를 망하게 하고 흥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망하게 하고 흥하게 하는 것도 우리가 하는 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내가 늘 하며 사는 말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을 바꾸면 내 자신이 바뀌고, 내 자녀가 바뀌고, 내 가정이 바뀌고, 내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믿음을 주는 말과 불신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던 12명의 정탐꾼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12지파의 족장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가나안 땅은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장대한 아낙 자손이고 또 철병거로 중무장하고 있는 강한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던 10명의 정탐 군들은 우리의 힘으로는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들과 전쟁을 한다면 우리는 몰살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가나안 땅은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서 전처럼 노예로 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던 여호수아 갈렙은 달랐습니다.

가나안 땅에 사는 백성들은 강한 백성들이지만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어주시기 이해서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베푸시면서 우리들을 이끌어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나안 사람들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부류 사람들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10명의 정탐 군들은 객관적인 현실만 보았기에 불신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갈렙은 객관적인 현실과 함께 그 현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동시에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중에 어떤 부류에 속합니까?

우리 모두는 먼저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말고 우리 현실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까지 보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게 되고, 또 장차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다섯째, 악의적인 말과 선의적인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람들을 보면 두 부류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무슨 사건이 일어나면 선의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과 악의적인 말을 하는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론을 등에 업고 우리나라의 여론을 조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악의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터넷 상에서 달려지는 댓글을 보면 금방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악한 사회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선한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

 

지금부터는 우리들이 선한 말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하라” “하지 말라라는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우리 하나님이 하라라고 하신 말씀들은 다 선한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들은 다 악한 말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선한 말을 하며 살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선한 말을 하며 살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첫째 이유는, 우리가 하며 사는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18:21절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는 말씀은 말로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고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공부가 아닙니다.

공부도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바로 친구들에게 왕 따를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 명의 학생이 의도적으로 한 학생을 왕 따 시키면 견디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친구들이 한 목소리로 그렇게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은 정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이상 현상을 보이게 됩니다. 그 아이가 똑똑한 아이라도 오랫동안 왕 따를 당하게 되면 거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로 변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에는 사람을 죽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힘도 있습니다.

말로서 사람들을 살려내는 현장이 바로 교회가 아닙니까? 교회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옵니까?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옵니까? 간혹 그런 사람들이 오기도 하지만 교회는 주로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실패한 사람들이 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들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되면 상처 받아온 그 마음과 삶이 회복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건물이 아름다운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아니면 교회의 규모가 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지위 높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좋은 교회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그 문제들이 서서히 고쳐지고 회복되어 나가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통해 이런 치료들이 이루어집니까?

그것은 설교 말씀을 통해서 치료가 이루어지고, 또는 사랑이 깃든 성도들의 격려의 말과 돌봄과 보살핌을 통해서 치료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며 사는 말에는 사람들을 죽이는 힘도 있고 또 사람을 살리는 힘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흥하게 하는 힘도 있고 망하게도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힘도 있고 불신앙에 빠지게도 하는 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있는 우리들은 어떤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말을 할 때 사람들을 낙심시키고, 절망시키고, 좌절시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우리는 그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고, 격려해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에는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살려내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불행해 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진정 자신이 행복해 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며 사는 말에 따라서 행복해 질 수도 있고 불행해 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왜 선한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둘째 이유는, 우리가 하며 사는 말에는 치료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16:24절입니다.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선함"의 히브리어는 '노암'입니다. 노암 기쁨을 주는 말,’ ‘아름다운 말,’ ‘친절한 말,’ ‘은혜스러운 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선한 말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말, 듣기 좋은 말, 친절한 말, 은혜스러운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여기에서 양약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마르페입니다.

마르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라파라는 말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입니다. 라파는 치료라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라파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사용하는 선한 말에는 어떤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까?

잠언서의 말씀에서는 첫째, 마음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마음은 정신적인 면입니다. 둘째, 뼈를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뼈는 육체적인 면을 말합니다. 선한 말에는 이렇게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뼈는 피를 만드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말을 해 주면 그 선한 말이 우리 몸의 필수 구성요소인 피를 만드는 뼈를 튼튼하게 해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럴게 해서 튼튼해진 뼈는 우리에게 피 즉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등을 만들어 줍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 몸의 두개 골, 척추, 골반 뼈 등등에서는 계속해서 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뼈는 일생동안 500킬로그램 정도의 피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피는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 주어진 기능을 다하게 됩니다. 이 피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효약이 바로 선한 말이라고 합니다.

 

뼈에 이상이 생기면 약물로 치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약물치료는 부작용이 많은 치료방법입니다. 선한 말로 뼈를 치료하면 부작용이 전혀 없습니다. 선한 말은 완벽한 치료약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를 만나든지 이 명약을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잠언 12: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정리하면, 지혜로운 자의 말에는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하며 사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될 수만 있으면 선한 말, 경우에 합당한 말, 용기를 주는 말, 격려의 말을 하며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잠언 15: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여기서는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고 가르칩니다. 온순한 혀라는 말은 잠언 12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양약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순한 혀치료하는 혀라고 번역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면 생명나무는 어디에서 나옵니까?

생명나무는 창세기와 요한 계시록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은 이 생명나무 과실을 먹고 살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장차 우리들이 천국에 가서 또 생명나무 과실을 먹고 살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은 그것을 먹는 사람들을 살리는 나무입니다.

 

그러면 선한 말생명나무와 같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생명나무 과실을 먹으면 살아나듯이, 사람들이 선한 말을 듣게 되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말을 들으면, 상처 받은 마음이 다시 살아나고, 아픈 마음이 다시 살아나고, 아픈 몸이 다시 살아나고, 아픈 뼈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이 바로 선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말을 생명나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한 말을 하면서 살아야겠습니까? 악한 말을 하면서 살아야겠습니까?

우리가 선한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셋째 이유는, 우리가 하며 사는 말이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키가 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3:4-5절입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서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이 말씀은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작은 방향키가 결정하듯이, 우리가 하며 사는 말이 우리 인생의 방향키가 된다고 합니다.

 

요즘은 아주 큰 배들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길이가 수백 미터나 되는 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작은 방향키입니다. 방향키가 지시하는 대로 배는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우리 삶은 우리의 말이 방향을 트는 대로 따라 갑니다. 말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우리 인생의 방향키가 되어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위에서 만나며 사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늘 행복해 하며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늘 불행해 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불행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사용하며 사는 말이 바로 우리 삶의 핸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말의 핸들을 돌리는 대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오른 쪽으로라고 말하면 우리 마음과 몸과 삶은 그 말하는 쪽으로 돌아갑니다. 또 우리가 왼 쪽으로라고 말하면 우리 마음도 몸도 삶도 다 그 쪽으로 돌아갑니다. 또 우리가 직진이라고 말하면 우리의 마음과 몸과 삶이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갑니다. 또 우리가 후진이라고 말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삶은 뒤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렇게 우리가 하며 사는 말을 따라갑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인생이란? 말을 앞세우고 그 뒤를 따라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가는 곳에 우리의 행동이 가고, 또 우리의 행동이 가는 곳에 우리의 습관이 가고, 우리의 습관이 가는 곳에 우리의 운명이 따라 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면 우리는 행복 쪽으로 우리말의 키를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행한 삶을 살기 원하면 우리는 불행 쪽으로 우리말의 키를 돌리면 됩니다. 그러면 불행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해 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먼저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을 바꾸면 그 바뀐 말은 우리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 줍니다. 이렇게 바꾸어진 생각과 마음은 결국 우리의 습관과 운명을 바꾸어 나가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곳으로 말의 키를 돌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말한 그대로의 생애가 여러분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말의 키를 돌리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살리는 말로 키를 돌리겠습니까? 죽이는 말로 키를 돌리겠습니까?

치료하는 말로 키를 돌리겠습니까? 병들게 하는 말로 키를 돌리겠습니까?

흥하게 하는 말로 키를 돌리겠습니까? 망하게 하는 말로 키를 돌리겠습니까?

믿음의 말로 키를 돌리겠습니까? 불신의 말로 키를 돌리겠습니까?

선한 말로 키를 돌리겠습니까? 악의적인 말로 키를 돌리겠습니까?

 

오늘의 나의 삶은 어제 내가 한 말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내일의 나의 삶은 오늘 내가 한 말의 열매입니다. 내일 내 인생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여러분은 말의 키를 돌리고 인생의 키를 돌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머지않아서 반드시 그 말한 것과 같은 그런 날이 온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멘.

 

선한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넷째 이유는 선한 말을 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29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대로 소용이 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잠언 12:25절입니다. 근심은 사람을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사람을 즐겁게 하느니라.’

 

성경에는 우리 언어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한 말을 하지 않고, 선한 말을 하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선한 말을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앞으로 어떤 말을 하며 사시겠습니까?

우리 언어생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이쯤에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지고 있는 삶의 조건들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며 살아가는 말입니다. 말은 우리가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의 중요성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용하며 사는 말이 왜 중요합니까?

첫째,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말에는 치료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말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선한 말을 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말을 가지고 마지막 날에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말이 우리 인생의 방향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행동을 낳고,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습관을 낳고, 우리의 습관은 우리의 운명을 낳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말을 바꾸면 행동도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상황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우리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의 핸들을 어디로 돌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인생의 핸들을 돌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방향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제부터 우리가 사용하며 살아가는 말을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변화된 언어생활을 통해 결국 우리의 생활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어 지는 역사가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일어날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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