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환 목사

사랑이 제일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0. 12. 27. 18:23

제목: 사랑이 제일이다. (본문 고전 13:7-13)

 

이 시간 봉독한 고린도전서(13:7-13)까지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사랑이 제일이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어느덧 다사다난했던 2020년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앞으로 5일만 있으면 2021년도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건강하시고 행복한 삶이 모든 성도들에게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세 가지로 말씀을 주십니다.

 

첫째로,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바란다 하십니다.

둘째로, 사랑은 영원하며 완전하다 하십니다.

셋째로, 사랑은 제일 위대하다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전서 13장은 온 성도들이 잘 아시는 사랑 장으로 유명합니다. 단원을 나누어 보면 1-7절은 사랑의 특성에 대해 말씀하시고, 8-13절은 사랑에 영원성에 대해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그 방향을 따라 가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바란다 하십니다.(7)

 

본문 7절 말씀에 모든 것을 참으로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에 관해서 말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랑은 추상적인 것만이 아니고 인간의 구체적인 삶 속에 있는 근본적인 요소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또한 인간과 인간 사이를 규정짓는 근본적인 동력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져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랑이 어떻게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까?

 

첫째는, 모든 것을 바라고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허락하심으로서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건설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들에게 사랑을 주시고 사랑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라는 신분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의 모습, 즉 모든 것을 믿고, 바라는 자세로 살지 않는다면 그는 껍데기 신자일 뿐입니다. 껍데기 신자란? 믿음, 소망, 사랑이 없는 신자입니다.

 

딤후서 3:10-11절 말씀에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는 것을 네가 관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느 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에게 어떤 여자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범죄 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시데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분이신 것이 분명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부인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부인부인은 지금 부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 했는데요라고 부인이 반문하자 무디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이요.” 그렇습니다. 징계는 자녀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그대로 방관할 수 없어서 사랑하는 자녀를 향해서 사랑의 채찍과 매를 듭니다. 그처럼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징계가 올 때, 그것이 해석되고 징계로 확신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랑은 영원하며 완전하다 하십니다.(8-12)

 

바울은 본문에서 사랑의 본질적 특성을 아름다운 시적 문체로 묘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가치를 부각시킴으로서 사랑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여러 비유를 들어 은사의 가치는 일시적이나 사랑의 가치는 영원무궁하다는 절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두 가지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사랑의 영속성. 2)사랑의 완전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사랑은 영원합니다(8-11).

본문 8-11절 말씀에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절대적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은사들은 불완전하고 임시적이나 사랑은 영원하다고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과 같은 성령의 은사들은 일시적이며 불완전하며 종말에 완전한 것이 올 때에는 폐하여질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와 같은 사실을 어린아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히 어린 시절의 일을 버리게 되듯이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받는 지식과 예언, 그리고 방언과 같은 영적 은사들은 장차 예수님의 재림으로 성취될 완전한 은사에 의하여 대치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령님의 모든 은사들이 커다란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그것들 자체로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없어지지 아니하며 영원토록 그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은 예언과 방언과 같은 은사에 집착하여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사랑은 완전합니다(12).

본문 12절 말씀에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또한 현재와 미래를 대조하여 사랑의 완전성을 설명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모든 일들이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에는 명확하고 완전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깨닫고 느끼는 이해나 표현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지니게 될 완전한 이해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온전함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때가 되어서야 성취될 결론적 개념입니다.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가변적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하여 미래에 대하여 연속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적인 모든 영적 은사들은 미래에 완성될 사랑에 비교될 수 없으니 종말에 가서는 효력을 읽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랑을 완성시키셨습니다. 우리도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십분의 일이라도 실천하며 삽시다.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바라보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요일서 4:18절 말씀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셋째로, 사랑은 제일 위대하다 하십니다.(13)

 

본문 13절 말씀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사랑의 위대성을 역설함으로서 그의 사랑의 말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믿음과 소망은 사랑과 더불어 항상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견디는 소망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활력소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믿음과 소망보다 사랑의 가치가 더 크다고 표현하고 있으니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하였습니다. 곧 사랑이 제일 위대하다는 찬사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인데 비해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신앙적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음이라”(요일4:19). 사랑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요, 사랑의 창시자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요일서 4:10절 말씀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으로 부상을 입고 한 수용소에 옮겨진 중환자들은 출혈과 고열로 목이 말라 물, ,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이가 나온다하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평상시라면 조산원의 도움을 받고 낳을 수 있지만 그곳은 피폭환자들의 수용소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둘 다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한 구석에서 나는 조산원입니다. 그 산모 곁으로 나를 옮겨주십시오하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합니까” “아닙니다. 나는 조산원입니다. 제발 옮겨나 주세요라고 애원하므로 다른 환자들이 그를 산모 곁으로 옮겨주었습니다. 그 조산원은 피투성이의 몸이었지만 산모에게 다가가서 순산을 시켰습니다. 이때 으앙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남자 아이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 조산원은 원기가 떨어져 그만 목을 수그린 채 죽었습니다. 산모도 그 뒤를 따라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 탈 없이 잘 자랐습니다. 그는 성장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어 일본 그리스도 교회의 한 복지시설에서 봉사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나는 양친의 얼굴을 본 일도 없고 이름도 모르지만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고 하는 사실은 이전에 나의 양친이 살아계셨다는 증거입니다. 그와 같이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일도 없으나 질서정연하고 일사불란한 대우주를 볼 때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3:14절 말씀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도 귀한 사랑을 실천하며 사시는지요?

아니면 사랑은 고사하고 미워하지는 않으신지요?

 

이제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깊이 간직하십시오.

서로서로 사랑을 나누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분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3가지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바란다 하십니다.

둘째로, 사랑은 영원하며 완전하다 하십니다.

셋째로, 사랑은 제일 위대하다 하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들이! 잘 아시는 성경말씀 요한복음 3:16절 말씀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이 저절로 이루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희생의 댓과를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치루시고 완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사랑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한해를 잘 보내시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귀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20201227(참 빛 교 회)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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