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로마서 8:28-30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로마서 8:28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이 말씀을 사실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1장에서 8장까지의 말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로마서 1장에서 8장까지의 말씀에서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여기에는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하는 믿음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고도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후에 한 말씀이 바로 8:28절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서는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오늘 우리가 첫 번째 살펴볼 것은 ‘우리가 안다’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말은 주로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둘째는 경험적이고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셋째는 직관적이고 계시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로마서 8:28절 말씀에서는 이 세 가지 앎 중에서 직관적이고 계시적인 앎을 뜻하는 ‘오이다 멘’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는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전도용 소책자인 4영리를 설명하고 난 후에, 그 설명을 듣고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영접 기도를 시키면서 ‘당신은 이제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제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십시오.’라고 합니다.
이런 전도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성경으로 글을 배우고 또 하나님을 배우면서 자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다 잘 알고 있지만, 그 중에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하나님에 대해 배운 지식이 믿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배워서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 하나님을 내가 만나고 경험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 경험을 통해서 나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도 나를 아시는 관계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상호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여서 알게 되는 이런 앎을 ‘기노스코’라고 합니다. ‘기노스코’는 경험적이고 체험적인 앎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고 체험하게 되면 우리 신앙은 완성이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여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서는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변화가 있습니다. 그 변화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 안에서 그 죽어 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중생의 경험입니다. 이 중생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경험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였어도 이런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그 영혼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을 만나서 기적을 체험하고서도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1:20절입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 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 진저 벳세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회개하였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베풀어주시는 기적을 경험하고서도 중생하지 못하여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에 이르지는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기적을 체험하고 중생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말씀을 보면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다 그 문둥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그 중에 아홉 명은 믿음으로 문둥병은 고침 받았으되 중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마리아인은 그 문둥병을 고침 받았을 뿐 아니라 믿음 안에서 중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7:17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병을 고침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병을 고침 받든지 병을 고침 받지 못하든지 관계없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 영혼이 거듭나는 중생의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의 경험이 왜 이렇게 중요합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 영이 거듭난 성도들만이 영으로 계신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섬기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으로 계신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계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영에 주시는 계시를 받아서 알게 되는 앎을 계시적인 앎 직관적인 앎이라고 합니다. 이런 앎을 성경은 ‘오이다.’라고 합니다. 로마서 8:2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안다.’라고 하는 이 말씀에 사용되어 있는 단어가 바로 ‘오이다.’입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아는 것에는 지식적인 앎도 있고, 체험적이고 경험적인 앎도 있고, 하나님이 계시로 주시는 계시적인 앎 직관적인 앎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로마서 8:28절에서 자신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로 직관적으로 주신 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앎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계시로 직관적으로 알게 된 것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살펴볼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 안에 당신을 사랑하는 감정이 생겼다.’ 라고 하며 사랑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수시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에 기반을 둔 사랑도 변합니다. 전에 사랑했던 사람을 이제는 미워하기도 하고, 전에 원수 같이 생각했던 사람을 이제는 사랑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은 감정이라고 하지 않고 의지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다고 합니까?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된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대속 제물로 내어주시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증거 하실 때 ‘나는 내 마음 안에 너희를 향한 이런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죄인 된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행해 주신 일들’을 가지고 사랑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로마서 8:28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속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마음에 품고 있는 감사와 감격이 에너지가 되어서 결국 의지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 사랑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의지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의지로 행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해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신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그 놀라운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람들을 사랑해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한 기록들이 바로 로마서 1장에서 8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로마서는 먼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를 어떻게 드러내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죄는 율법을 통해 들추어내 주시고, 이방인의 죄는 양심을 통해 들추어내 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3장까지의 내용입니다.
로마서 4장 이후에서는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구원을 위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나 다른 길을 주신일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을 ‘이신칭의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로마서는 이 구원신앙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삶을 통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담과 예수님의 대표성과 연대성을 통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또 혼인 비유와 율법과의 관계 등을 통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가 전해주고 있는 중심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이신칭의 신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실재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변화인 중생 즉 거듭남이 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렇게 중생한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살게 되는 성화를 이루어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8장까지의 설명입니다.
우리가 세 번째 살펴볼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로마서 8:2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동일한 한 사람을 인간 편에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그 뜻대로 불러주신 사람’인 것입니다. 아멘.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불러 주신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편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그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그 아들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실 때에도 순종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멘.
성경에서 이런 말씀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삶의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뒤집어서 다르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3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들을 말합니까?
문맥상으로 보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부모가 되어도 안 되고, 우리 자녀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심지어 나 자신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8:28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해 주고 계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멘.
우리가 네 번째 살펴볼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간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것’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경험하게 되는 인생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성공도 경험하고 때로는 실패도 경험합니다. 때로는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도 하고, 때로는 진학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행복한 일을 경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행한 일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일 행복한 일을 경험하며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쁜 일 불행한 일도 많이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많은 아픔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건강의 문제로 힘겨워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믿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며, 때로는 유혹을 받아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의 마지막에는 누구나 다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것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다음은 ‘합력하여’ 라는 말씀을 살펴봅니다.
‘합력한다.’는 이 말은 헬라어로 '쉬네르게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함께 일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를 바로 앞의 ‘모든 것’과 연결해서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함께 일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어서 ‘선을 이룬다.’는 말을 살펴봅니다.
선이라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아가돈’입니다. 이 ‘아가돈’은 ‘값진 열매를 맺게 한다.’ ‘옳고 유용하게 만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선을 이룬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선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라고 해석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 계획하신 선하신 목적’을 이루어가십니까?
시간의 제한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살기 때문에 현재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을 바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영원 속에 사시는 우리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과거 즉 창세전에 우리를 위해 예정해 놓으신 선하신 뜻과 목적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그 선하신 뜻과 목적이 완성하게 되는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계획하신 그 선하신 목적과 뜻이 완성되는 미래적 관점에 서서, 그 계획하신 뜻과 목적을 이루어 가시려면 지금 무슨 도움을 줄 필요가 있는지를 생각하시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 개입하셔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해 주심으로 그 계획하신 뜻과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런 구체적인 예를 ‘요셉’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였습니다. 이 요셉을 위한 하나님의 예정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장차 근동 지방에 큰 기근이 왔을 때 사람들이 그 기근에도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해 두신 사람이 요셉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야곱과 그 자손들이 애굽의 고센지방에 정착을 하여서 애굽이라는 강대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큰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이 두 가지 일을 이루어가셨습니까?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도록 하셨습니다. 애굽에서는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는 시위대 지하 감옥에 갇히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요셉은 어느 날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주고 그 해몽대로 복직되면 반드시 도와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직된 술 맡은 관원 장이 요셉과 한 약속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하셨습니다.
2년이 지난 후에 애굽 왕이 한 꿈을 꾸고 번민하는데 그 꿈을 해석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의 꿈을 해몽해 주었던 요셉을 기억해 내고 왕에게 요셉을 소개하게 됩니다. 이런 일을 통해 요셉은 어릴 때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애굽의 총리가 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미리 예정해 두신 그 목적과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하는 요셉의 간절한 기도에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예정해 두신 목적에 맞게 요셉을 쓰시려고 준비시키고 훈련시키고 바꾸어 나가셔서 결국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도록 해 주셔서,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이루어 가려고 계획하신 두 가지 일 즉 세상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해주는 일과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보호를 받으며 고센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 목적하신 이 두 가지 일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자신을 가족들보다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가졌던 요셉은 자신을 미워하여 애굽에 노예로 파는 악한 일에 쓰임을 받았던 그 형들의 죄까지 용서해 주면서, ‘형들이 나를 미워하여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파는 죄를 지었으나 그러나 그것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실상은 형들을 통해 그렇게 하도록 예정하시고 작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20-21)
이렇게 보면 로마서 8:28절 말씀은 우리가 알고 있었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그 삶에 찾아오는 어려움이나 잘 됨, 고난이나 승리 등등의 그 모든 일들이 결국 다 합력하여 선 즉 좋은 결과를 이루어 주신다.’라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로마서의 문맥 안에서 이 로마서 8:28절 말씀을 다시 해석해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 즉 하나님이 그 사람을 향해 미리 얘정해 놓으신 선하신 뜻과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문맥 속에서 해석해 본 로마서 8:28절 말씀의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최종적이고 영원한 목적에 대해 로마서 8:29-30절은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29절 상반 절에 보면 ❶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으로 부르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사람들마다 다 다릅니다. 저는 청년의 때 부르심을 받았고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때 우리를 아신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훨씬 이전인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아시고 우리의 생애를 미리 다 정해 두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하심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1:4-6절 말씀에서는 이 하나님의 예정을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계획을 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29절 말씀을 보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는 이 하나님의 형상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언제 이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 이루어집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 안에서 성령을 통해 그 영혼이 거듭나게 될 때입니다. 이후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이 계획하신 이 목적을 이루어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로 부르신 성도들이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도록하기 위해서, 때로는 고난을 주기고 하고, 아픔을 주기고 하고, 실패하게하기도 하십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한 가지씩 한가지 씩 떼어 놓고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전체를 놓고 이런 일들을 보면 그 이해가 달라집니다.
야곱의 경우를 보십시오.
야곱의 삶을 부분부분 떼어 놓고 생각해 보면, 그의 삶은 하나님이 목적하신 일들을 이루어 가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어려운 생애를 살았으면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의 삶 전체를 통해서 다시 보면 어려움을 주었던 그 모든 삶들이 합력하여 결국에는 사기 군과 같은 야곱을 거룩한 족장으로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주어진 인생의 어느 한 단면만 바라보고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오늘까지 잘못 살아왔고 그래서 오늘은 실패했을 지라도, 그 실패한 삶만 바라보고 낙심하고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전체 인생 중에서 오늘 나의 삶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런 통시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현재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떠날 수 있으며, 현재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가끔씩 이렇게 현재 나의 삶에서 조금 떨어져 서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나의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현재라는 한 단면만 바라보고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 나의 삶에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있을지라도, 그 아픔을 내 인생 전체 속에서 바라보면서 나를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붙잡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당하는 사는 모든 일들과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 모든 일들과 사건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우리가 아담 안에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통해 자기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가길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정해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나가는 삶의 모델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여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29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함께 품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나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삶 속에 당하는 사는 환난을 통해서 우리 인격을 다듬어 나가라고 합니다.
로마서 5장입니다. ‘....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 말씀은 이렇게 의역할 수도 있습니다. ‘....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인격을 인격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을 인내하면서 인격을 다듬어 나가면 이렇게 다듬어져 가는 우리 인격이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확실한 하늘 소망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처음부터 반석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혈기도 많았고 욕심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많은 어려움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가더니 나중에는 예수님처럼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주는 순교의 재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래 참으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디모데전서 1:16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본을 끼쳐 우리로 하여금 그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기 위해 오래 참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마가복음 10: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또한 예수님은 용서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며,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삶 속에서, 이 모든 삶들을 합력하여 하나님이 창세전에 계획하신 목적, 즉 사람들이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하기 위해서 때로 행복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고, 기쁨도 주시고 슬픔도 주시며, 성공도 주시고 아픔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해 가시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로마서 8:30절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4단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첫 번째 단계는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나에 관해 이미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창세전에 미리 하나님의 택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의 두 번째 단계는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미리 택하신 사람들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게 하십니다.
구원의 세 번째 단계는 의롭다 칭해 주셨다는 것입니다.(칭의)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사람들에게 거듭남을 주사 죄를 버리고 의를 추구하며 성화를 이루어 가서 점점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구원의 네 번째 단계는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 이후 장차 우리 구원이 완성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어떠하심과 같이 영화롭고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놀라운 은혜들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말씀들을 읽으면 너무 감사하고 너무 행복하지 않습니까? 이런 말씀들을 읽으면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이런 은혜를 주신 주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결단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이렇게 볼 때 로마서 8:28절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그 삶에 찾아오는 어려움이나 잘 됨, 고난이나 승리 등등의 일들을 합력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은 그 삶에 찾아오는 어려움이나 잘됨, 고난이나 승리 등등의 일들이 합력하여 하나님이 창세전에 예정하신 선하신 계획과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선하신 목적 속에는 우리를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 앞에 펼쳐지는 2021년도의 삶이 혹 우리가 기대하고 바란 대로 되지 않을 지라도, 그런 삶들 모두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임을 굳게 믿고, 그리고 그 모든 삶들이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도록 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들임을 믿고,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일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기쁨 마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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